태어나서 사랑을 받아 본 게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반장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물끄러미 김탄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시선에 수줍었던 김탄은 눈을 아래로 살며시 내리깔았다.

반장이 갑자기 한 쪽 무릎을 꿇었다.

마치 김탄의 얼굴을 자세히 살피려는 듯 보였다.

김탄은 그런 그가 부담스러워 힐끔거리며 곁눈질로 쳐다보다 더 이상 힘들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의 시선을 완전히 피했다.

-고아 처음 보이나? 뭘 그렇게 빤히 쳐다보는 거지?-

마음이 삐딱해진 김탄이 마음 속으로 욕을 했다.

-제기랄.  어?-

순간 손에 느껴지는 따뜻한 감촉에 김탄은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두텁고 거친 투박한 손이 김탄의 손을 잡고 있었다.

그로 인해 화들짝 놀란 김탄이 토끼 눈으로 반장을 쳐다보자 그가 다른 손으로 김탄의 잡을 손을 마저 감싸며 입을 열었다.

“탄이라고 불러도 되지?”

반장의 물음에 김탄이 어색하게 고개를 살짝 끄덕이자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 탄아. 나를 어려워하지 말고 아버지처럼 생각하렴.”

난데 없는 아버지란 소리에 김탄은 또 한 번 깜짝 놀랐다.

-처음 보는데 아버지라 부르라니...-

그냥 빈말인 것 같았다.

그런데 반장의 얼굴이 침울해져 있었다.

그런 말을 하고 그런 표정을 짓는 반장을 김탄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슬픈 눈빛으로 허공을 잠깐 바라보던 반장이 이내 평상시 그의 표정인 꼬장꼬장한 얼굴로 되돌아 왔다.

그러더니 김탄에게 다시 입을 열었다.

“나도 너 같은 아들이 있었어. 20년 전에 죽었다. 아마 네 나이 때와 비슷한 시기였을 거야.”

“아.. 네.. 그러셨어요?”

“아까 내가 네게 했던 말이 항상 들어왔던 거겠지만 난 달라. 난 정말 네가 아들 같아서 그래.”

“아.. 네..”

반장은 말을 멈추고 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불을 붙인 담배 한 모금을 깊이 빨아들인 후 내뱉었다.

담배 연기에 한숨을 날려보내려는 듯 보였다.

그렇게 담배를 피우던 반장이 입이 말랐는지 입맛을 한 번 쩝! 다시고는 말을 이었다.

“아이를 잃은 후 세상의 아이들이 보이기 시작하더구나. 소중한 걸 잃으니 소중한 게 눈에 들어오더라는 거야. 그게 무슨 말이냐 하면, 내 아이를 잃기 전엔 내 아이만 소중했는데 아이를 잃고 나니 세상의 아이들이 다 소중하더란 말이다.”

“아.. 네..”

수줍게 대답만 하는 김탄.

반장이 다시 김탄의 표정을 살폈다.

그는 조금 전 경직된 표정에서 많이 풀려 있었다.

살짝 편안함도 어려 보였다.

달라진 김탄의 태도에 반장은 좋은 마음을 표현하기가 어색한 듯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난 말이다. 오늘 네게 한 말은 진심이었어. 고아라고 주눅 들지 말고 또 나를 아버지처럼 생각하라는 것도 진심이다. 난 세상의 아이들이 모두 내 아이들이라 생각하거든. 그러니 동정이나 아님 겉치레로 하는 말이 아니라는 소리야. 오해할 까 봐 얘기하는 거야.”

“아. 네.”

또 짧은 대답만 한 김탄.

하지만 그의 입에는 살짝 미소가 어려있었다.

그 미소에 기분이 좋아진 건지 반장의 얼굴에도 미소가 어렸다.

“난 오늘 널 처음 봤지만 말이다.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은 씩씩하게 힘내라는 거야. 그리고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를 진짜 아버지처럼 한 번 생각해 보라는 거다. 또 이렇게 말한다고 걱정하지 말고. 안 부려먹을 거니까. 딸처럼 생각한다고 말하며 며느리를 부려먹는 시어머니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소리야.”

반장의 농에 김탄이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다.

“네. 알았어요. 아버지처럼 생각하겠습니다.”

담배를 문 체 곁눈질로 김탄을 한 번 쓱 쳐다본 반장의 입에 어린 미소가 더욱더 커졌다.

꼬장꼬장하고 무뚝뚝한 그의 얼굴과 어울리지 않는 환한 미소였다.

김탄은 그의 표정에서 진심이 느껴졌고 또 마음도 따뜻해졌다.

그래서인지 김탄의 미소는 함박미소로 변해버렸다.

.

.

.

“반장님..”

회상을 마친 김탄이 반장을 나지막이 불러봤다.

하지만 죽고 없는 사람.

눈을 뜨자 눈 앞에 발이 보였다.

혹시 그럴 리는 없겠지만 반장이 아닐까 김탄이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 쳐다보았다.

손에 접시를 들고 내려다보고 있는 박토가 보였다.

그가 접시를 내밀며 입을 열었다.

“이봐. 김탄. 울더라도 좀 먹고 울어. 아까 저녁을 못 줘서 다시 만들어 왔어.”

박토의 말에 김탄은 얼굴부터 일그러뜨렸다.

자신의 모든 불행의 원인인 것 같은 박토가 싫었기 때문이다.

그 생각에 화가 난 김탄이 접시를 손으로 치며 소리쳤다.

“꺼져! 그냥 날 내버려 둬!”

쨍그랑!

김탄이 쳐낸 접시가 벽에 부딪혀 산산조각 나버렸다.

당황한 박토가 서둘러 깨진 그릇 조각들을 주웠다.

그러다 날카로운 그릇 조각에 손이 베인 박토는 순간 짜증이 났다.

“그런다고 달라지는 건 없어. 힘들어도 떨치고 이겨내야 함/”

“꺼져! 꺼지라고! 당장!”

도무지 대화가 되질 않았다.

그 어떤 말도 들으려 하지 않는 김탄.

조언도 충고도 또 위로도 통하지 않았다.

그저 모든 걸 밀어내려고만 하는 김탄에게 안타까움을 느낀 박토가 그를 돌아보았다.

어둠 속에서도 김탄의 번뜩이는 눈빛이 증오로 얼룩져 있었다.

창문을 통해 어스름하게 들어오는 달빛에 김탄의 눈물이 반짝였다.

박토는 지금 알고 있었다.

모든 잘못이 박토에게 있는 것처럼 원망하는 김탄의 마음을.

박토는 속이 썩어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없었고 또 김탄에게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온몸으로 그의 원망을 받을 뿐..

박토는 먹먹한 마음에 자기도 모르게 입에서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하아~”

박토 또한 소중한 사람을 잃어 본 경험이 있는 자.

지금 김탄이 그러는 것처럼 절망했었고 분노 했고, 원망하며 슬퍼했었다.

예기치 않는 상실은 영혼을 처참하게 부숴버리는 것.

마음은 상실을 미처 대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 번 겪어보면 두 번째는 조금은 익숙하기에 담담해진다.

하지만 처음 겪는 상실의 아픔은 부정의 마음을 계속해서 불러 와 철저히 사람을 무너뜨린다.

이것은 시간이 지나야만 사라지는 감정이고 또 희석되는 에너지다.

박토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어떤 말로도 김탄의 마음을 달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누가 대신 치유해 줄 수 없는 부분이기에 그저 스스로가 치유하는 수 밖에 없다.

박토가 손에 들린 깨진 그릇 조각을 바라보았다.

다시 붙인다 해도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다.

설령 다시 붙이고 말끔히 수정한다 해도 속 안의 금이 남아 있는 것처럼 김탄의 마음도 지금 그럴 것이다.

완전히 깨져 버린 것.

‘아물길 바랄 수밖에..’

김탄에게 꺼내고 싶은 말이었지만 꺼내지 못한 박토는 얕은 한숨을 살짝 내쉰 후 다시 김탄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모든 걸 체념했다는 표정이었다.

공허한 눈빛은 어두컴컴한 방바닥을 보고 있었고 흐리고 탁했다.

힘없이 벌어진 입술은 메마른 체 갈라져 있었다.

그런 그의 모습은 마치 아무리 원망을 해도 아무 소용없다는 걸 이미 알아버린 것 같은 일종의 자포자기 같았다.

그나마 원망의 대상인 박토에게 분노를 쏟아내느라 울진 않고 있었다.

그가 하루 종일 우는 통에 박토는 마음이 불편했었다.

그래, 차라리 그렇게 분노하는 게 더 낫다.

스스로 놓아 버리는 것 보단 살아있는 것 같으니까.

그러나 박토의 바람을 깨버리듯 김탄의 초점 없는 눈동자에 다시 눈물이 고이며 흘러내렸다.

정말 슬퍼서 우는 눈물은 잘 멈추지 않는다는 듯 끊임없이 흘러내린 그의 눈물이 방바닥에 고여 달빛에 반짝였다.

박토는 그런 그를 보고 있자니 더욱더 애가 탔다.

또한 싫었다.

타인의 슬픔을 계속 공감한다는 건 지치는 일이다.

“그래도 넌/”

“꺼지라고! 다 너 때문이야! 모든 게 엉망이야! 순식간에 엉망이 되어 버렸다고!”

솔직히 박토는 반장의 죽음에 연관이 없었다.

다만 그는 바탈을 찾고 지키는 사명을 받은 자.

어쩌면 박토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김탄이 불행을 겪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그가 나타나지 않아도 불행은 필연이었다.

그걸 잘 알고 있는 박토였지만 이상하게 김탄의 악다구니는 그의 가슴에 비수같이 꽂혔다.

순간 그의 가슴에 찌르르한 통증이 일었다.

가슴이 먹먹해져 저절로 입에서 앓는 소리가 새어 나오려는 걸 애써 눌러 참았다.

그가 이런 감정을 느끼는 데에는 김탄의 원망으로 인한 죄책감을 느껴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김탄이 지금 쏟아낸 악다구니, 원망, 분노.

그 모든 것이 과거 그가 겪었던 것과 흡사해서였다.

‘아픔은 누구에게나 공평한가 보다. 나만 특별히 아플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 그래도 나는 네가 부럽다. 적어도 넌 지켜 낼 힘이 있으니까.’

과거 그가 너무 어려 지켜주지 못했던 가족이 생각난 박토는 가슴에 커다란 돌덩이가 짓누르는 것 같았다.

손을 가슴에 대고 문질러 봤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김탄은 우는 걸로도 속이 풀리지 않았는지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원통하고 서러워하는 모습이었다.

정신을 놔 버릴 것만 같은 모습.

저대로 계속 저러다가는 진짜 실성할 지 모른다.

하지만 박토는 도와줄 수가 없었다.

그를 지켜보기가 힘들었던 박토는 애써 외면하듯 고개를 돌렸다.

창문에 드리워진 커튼 사이로 달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하늘거리는 얇은 마사천을 통해 들어온 달빛은 요정이 흩뿌린 빛처럼 이곳의 슬픔은 모르겠다는 듯 그저 아름답기만 했다.

“왜! 왜! 왜애애애애애애!”

김탄의 고성에 박토가 화들짝 놀라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지금 분노로 휩싸여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오싹한 살기도 전해졌다.

그런 김탄이 천장을 쳐다보았다.

마치 하늘을 원망하는 듯 보였다.

“왜! 왜냐고? 이 병신 같은 상황은 대체 뭔데? 나한테 왜 그러는 건데!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기에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거야! 대체 왜!!!!!!!”

.

.

.

.

“훗~ 뭘.. 잘못했냐고?”

은비사의 물음에 이미캐는 목에 핏줄을 세우며 악을 썼다.

“그러니까. 미친 새꺄! 대체 내가 뭘 잘못했길래 나한테 이러는 거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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