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열게 된 첫 만남.

“웃기시네.”

“뭐라고?”

“난 안 죽어. 안 죽는다고. 죽는 건 너야. 그리고 난 죽으면 안 되거든. 개X끼야.”

보통은 살려달라고 하는 게 맞다.

그러나 저 보통이 넘는 꼬마 여자애는 외려 은비사를 도발 하고 있었다.

게다가 한치의 떨림도 없이 또박또박 말을 뱉은 그녀의 말에 은비사는 살짝 당황하기도 했다.

-설마?-

은비사는 곧장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의 목에 꽂힌 대동맥 주사를 살펴봤다.

혹시 힘을 되찾아 저러는 것인지 염려되는 마음에서였다.

하지만 주사 바늘도 잘 꽂혀 있었고 투약량도 정상이었다.

그리고 조금 있으면, 그녀가 다시 힘을 찾기 전에 다량의 마취 용액이 그녀의 몸속으로 들어갈 예정이다.

안심한 은비사가 한시름 놓은 듯 안도의 미소를 짓자 갑자기 왕종철의 너털웃음소리가 들렸다.

“으하하하하하. 아하하하하하하. 흐흐흐흐흐.”

왕종철의 웃음은 미캐의 신경을 자극시켰다.

정말 웃겨서 내는 웃음소리 같았다.

걸걸한 노인의 웃음.

쇳소리와 힘 빠진 풍선 같은 소리가 섞여 있었다.

미캐가 그 소리가 나는 곳을 쳐다보자 그 전에 보이지 않던 한 노인이 미캐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여전히 그는 무엇이 웃긴 건지 껄껄 웃고 있었다.

그러나 인자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섬뜩한 눈매가 예사 노인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미캐 앞에 다가와 선 왕종철은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마치 신기한 걸 보고 있는 호기심 어린 아이의 눈빛이었다.

그렇게 미캐를 살펴보던 왕종철이 옆에 서 있던 은비사에게 말을 걸었다.

“이렇게 보니 신기하구만. 그래. 나도 이야기로만 들었지 이렇게 보는 건 처음이야. 여자 바탈이 진짜로 존재한다는 걸 말이다. 정말 신기해.”

순간 그의 대화를 엿들은 이미캐는 기분이 나빴다.

안 그래도 벌레 보듯 하는 은비사 때문에 염장에 불이 났는데,

어디서 노인 하나가 나타나 자신을 동물원 우리에 갇힌 동물 구경하듯한 그에게 화가나 미캐가 입을 열었다.

“뭐래? 딱충이 파오후 꼰대가. 니가 대빵이야? 개 십장생 엿이나 먹어.”

순간 표정이 굳어진 왕종철.

미캐의 말을 정확히 알아 들을 수는 없었지만 욕같이 들려 기분이 나빠서였다.

“비사야. 저것이 뭐라는 겐가?”

왕종철의 물음에 은비사는 얼굴부터 붉혔다.

요즘 아이들이 쓰는 은어들.

내용은 욕이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할 지 몰라 은비사가 그냥 에둘러댔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별 내용 아닙니다.”

하지만 왕종철은 은비사의 당황한 표정을 보고 썩 좋은 내용이 아니라는 걸 알아챘다.

욕이 분명했다.

“허허허허허허. 나쁜 말인가 보구나.”

대수롭지 않은 듯 말을 뱉은 왕종철이 미캐를 노려보았다.

안광이 번뜩이며 입가에는 야비한 미소가 떠올랐다.

이미캐는 그런 그가 눈꼴사나웠다.

미캐가 그를 보고 입을 오므리며 한 마디 내뱉었다.

“후~”

그녀의 의미 없는 한 마디에 왕종철은 알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그러자 미캐가 다시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

“까시 졸라 잡네. 미친 할아버지가. 돌았어? 외계인 임?”

짝!

손이 들어와 미캐의 뺨을 후려갈겼다.

거칠고 세며 투박했다.

미캐의 고개는 옆으로 돌아갔고 뺨의 통증에 아팠는지 얼굴을 찡그렸다.

왕종철에게 되바라진 언행을 하는 미캐에게 은비사가 손찌검을 했던 것.

얼마나 세게 때렸는지 시간이 지나도 볼이 얼얼했다.

또 입안이 터졌는지 입 속에 피 맛이 돌았다.

미캐는 입 안에 피가 고이자 삼키지 않고 모았다.

그리고는 은비사의 얼굴에 뱉었다.

“퉤!”

.

.

.

쿵!

김탄이 스스로 벽에 머리를 찧었다.

쿵!

또다시 김탄이 자신의 머리를 벽에 찧었다.

쿵!

다시 머리를 벽에 찧고 난 후 김탄이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다 무릎을 세워 쭈그려 앉은 몸을 더욱 움츠렸다.

공벌레처럼 둥글게 만 몸은 세상이 싫은 듯 경직되어 굳어 있었다.

그러던 그가 마치 세상과의 소통을 완전히 차단하려는 듯 팔꿈치 안쪽으로 고개를 파묻었다.

뚝. 뚝. 뚝.

눈물 방울이 그의 눈에서 떨어졌다.

얼마나 울었는지 눈은 퉁퉁 부어 있었고 코까지 빨개져 있었다.

콧물이 줄줄 흐르자 크게 훌쩍거리고는 지친 듯 그대로 눈을 감았다.

.

.

.

“부끄럼이 많구나!”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김탄이 고개를 들자 책상 앞에 한 중년 남자가 서 있었다.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덩치 큰 아저씨는 무뚝뚝한 인상을 가졌지만 호감 가는 얼굴이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느라 내가 들어 온지도 모르고 있었나?”

“네? 아차.”

그제야 김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 남자를 향해 꾸벅 인사를 했다.

그러자 남자가 손을 위아래로 저으며 입을 열었다.

“앉아. 앉아.”

시키는 대로 김탄이 의자에 앉자 그 남자가 다시 말을 이었다.

“어. 난 이 작업장 생산 라인 총괄 매니저인 김성식이라고 하네. 그냥 편하게 반장님이라고 불러.”

“네.”

오늘 김탄이 면접을 온 이곳 바로 신우 프로텍.

혹시나 떨어질까 조바심이 난 김탄은 주눅이 든 체 김성식이라는 반장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스스로 반장이라는 사람은 주머니에서 안경을 꺼내 쓰고는 김탄이 책상에 미리 올려놓은 서류를 들고 살피고 있었다.

그가 순간 미간을 찌푸리며 한숨을 쉬자 김탄의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맘에 안 드는가 보네.. 어쩌지?-

탈락의 위기의 기시감을 느낀 듯 의기소침해진 김탄이 그대로 다시 고개를 떨구자, 반장이 느릿느릿한 어조로 그에게 물었다.

“음. 그래. 특성화고를 졸업했다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김탄.

“네.”

“정밀 기계를 전공했더구나.”

“네.”

김탄의 대답을 끝으로 더 이상 대화는 진행되지 않았다.

반장은 다시 서류를 한참을 훑어 보았다.

뭔가 내심 맘에 들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러던 그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하아~ 여긴 네 전공과 무관한 일을 하는 곳이야. 그래도 괜찮겠어?”

“네?”

김탄이 그냥 되묻자 반장이 마치 화가 났다는 듯 눈을 부라렸다.

그런 그를 본 김탄은 다시 주눅이 들어 그의 시선을 슬며시 피했다.

그러자 다시 반장이 그에게 말을 걸었다.

“전공과 무관한 곳이라고! 말귀를 못 알아 듣니? 내 말은, 그래도 여기서 일하는 게 괜찮겠냐는 말이다.”

“괘.. 괜찮아요. 시켜만 주세요.”

“그래? 그럼 기술 배운다 생각하고 열심히 해. 굶어 죽진 않으니까.”

“네.”

개미 같은 목소리로 김탄이 대답하자 반장이 흘러내린 안경 너머로 김탄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 시선에 더욱더 주눅이 든 김탄이 어쩔 줄 모르겠다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손을 꼼지락거리자 반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고아라고 했지?”

“네?”

김탄이 깜짝 놀라 반장을 쳐다보며 되묻자 반장은 흘러내린 안경을 추켜 세우며 퉁명스럽게 말을 뱉었다.

“원. 녀석. 뭘 그렇게 놀래? 별 것도 아니고만.”

반장은 당황한 체 그저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김탄을 향해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양 입 꼬리를 아래로 쭉 한 번 당기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우리 땐 고아 천지였어. 그딴 거 별거 아니야. 주눅 들지 마. 열심히 일하면 다 잘 먹고 잘 살아.”

반장이 격려차 한 말이었지만 김탄의 고개는 그대로 아래로 떨구어졌다.

누구나 그런 말을 꺼낼 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고아인 당사자 김탄은 이 사실이 상당히 서글픈 일이었다.

고아라는 말 한 마디에 김탄은 과거, 사랑 받지 못하고 또 사랑해 주는 사람 없었던 어린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그 시절을 생각하니 눈물도 핑 돌았다.

하지만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는 참았다.

언제나 사람들은 그에게 주눅 들지 말란 소리를 했었다.

밝은 모습을 보여도 또 주눅이 들지 않게 애를 썼어도 소용없었다.

외려 그런 소리에 더욱더 주눅이 들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고아라고 하면 마음의 안경부터 썼다.

투명하게 본다 말하지만 그냥 직시가 아닌 왜곡을 했다.

일단 처음부터 의심을 하고 마음의 벽을 치듯 경계를 했다.

부모 없이 자라 되바라지지 않을까?

혹은 나쁜 아이가 아닐까?

항상 그런 오해부터 받아 온 김탄.

똑같은 잘못을 해도 일반 가정에서 자란 아이와 고아가 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어쩌다 한 실수와 그러니까 그랬지 라는 구분이 확실하게 갈렸다.

편견은 김탄을 고아라는 틀에 가두고 빠져 나오지 못하게 했다.

그가 고아로 살고 싶지 않아도 그 틀은 어김없이 김탄을 고아로 만들었다.

그래서 그가 살아온 외롭고 힘든 삶.

고아는 정말 싫었다.

세상의 눈은 항상 김탄을 동정 어린 시선과 동시에 미덥지 않은 마음을 동시에 보냈다.

기댈 수 있는 가족의 부재는 지독한 외로움 그 이상의 결핍이었다.

마치 사회로부터 분리되는 느낌.

다른 세계에서 살아가는 기분.

그는 언제나 이방인이었다.

오늘 그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 사회로 진출하기로 시작한 날이었다.

그래서 치르게 된 신우 프로텍 면접.

여기서도 어김없이 고아출신이 문제다.

고아가 사회에서 은연중 경계의 대상이니 여기 회사에서도 당연히 그럴 것이다.

지금도 별거 아닌 것처럼 반장이 말을 했지만 가장 대두 됐던 건 그가 고아라는 사실이었다.

김탄은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으려 했지만 그가 신경 쓰고 싶지 않아도 그럴 수 없는 현실에 서글퍼졌다.

-그냥 차라리 무신경했으면..-

서글펐던 김탄의 눈에 눈물이 살짝 고였다.

그가 무릎 위에 세워 놓았던 배낭을 두 팔로 꽉 끌어안았다.

마치 '내 마음을 더 이상 아프게 하지 말아요.'라며 마음의 벽을 치는 듯.

그러자 그의 귀로 반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름이 탄이라고 했나? 김 탄?”

소리가 앞이 아닌 옆에서 들리자 깜짝 놀란 김탄이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와 있었던 건지 반장이 그의 바로 옆에 서 있었다.

고개를 들어 반장을 올려다보자 그가 미간을 찌푸리고는 퉁명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 그러니까 이름이 김 탄이냐고?”

“네? 네. 김탄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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