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 도착하다

그림출처-장세현 작가
그림출처-장세현 작가

한정수와 내가 제주도에 도착했을 땐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뒤였다. 온통 회색빛이었다. 공항 대기실 의자에는 수많은 인파가 남기고 간 손자국이 얼룩져 있었다.

제주도의 공항 대기실 의자에 한정수와 나란히 앉아 멍하니 창문 밖을 바라봤다. 창문 너머로 열대식물 줄기가 축축 늘어진 채 서 있는 모습이 마치 커다란 장승처럼 보였다.

관광지인데도 태풍이 일본에서 방향을 바꾸어 한반도로 올라오고 있다는 일기예보 때문에 대합실은 몹시 한산했다. 희뿌연 하늘 위로 옅은 불빛만이 흩어지고 있었다. 그가 먼저 식사를 하는 게 어떻겠냐는 말에 2층 식당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검푸른 도시를 내려다보며 식사를 했다. 식사하는 동안 서로 침묵했다. 그도 나처럼 앞으로 관계를 지속해야 하는지를 두고 잠시 생각했던 것일 수도 있었다. 눈의 눈빛에서 어차피 스치고 지나갈 인연인데 집착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와 함께 보냈던 시간을 쉽사리 지워질 것 같지 않은 예감이 들었던 내가 몹시 낯부끄러웠다. 그래서 서로 부담을 갖지 않고 식사가 끝나면 깔끔하게 서로가 가야 할 길로 가면 그만이었다.

“제주에서 저와 두 시간만 함께 있어 줄 수 있나요?”

“네?”

“지언 씨 부탁을 들어주면 제 부탁도 들어준다고 약속했으면서 잊었어요? 저희 어머니 집에 들어가 잠깐 만나고 나오면 되니까 크게 걱정할 건 없어요. 그동안 벌인 사업도 잘되고 새 사람도 만났다고 할 테니까, 그저 가만히 앉아 있다가 나오면 됩니다. 마지막으로 아픈 어머니를 편안하게 해 드리고 싶어요.”

도저히 그의 부탁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공항 밖으로 나왔다. 거친 밤바람에 오소소 살갗이 일어났다. 그가 외투를 벗어 내 어깨 위에 걸쳐주며 대기 중이었던 택시를 불렀다. 택시는 공항을 출발해 도심 속으로 내달렸다. 그는 네온사인이 환히 켜져 있는 대형 할인매장 앞에서 택시를 잠시 세워두고는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자신의 어머니가 입을 내의 한 벌과 과일 한 바구니를 사서 나왔다. 잠시 그의 애인처럼 행동해야 한다는 게 부담스러웠다. 사실 제주도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요셉 신부를 만나려고 했었다. 고평오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하고 싶었으며, 은근히 요셉 신부의 건강도 걱정되었다. 그런데 자꾸만 내 의사와 상관없는 일이 벌어졌다. 거부할 수 없는 무언가가 나를 잡아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품이 필요할 것 같아서요.”

한정수가 미안했던지 농담처럼 말을 던졌다.

“너무 잔인한 소품들이네요. 제가 편안하게 행동할까 걱정이 됩니다.”

무겁게 내려앉은 목소리, 어두운 얼굴빛으로 누구를 만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택시가 동부산업 도로를 빠져나가자, 곧 해안도로로 접어들었다. 검은 바다 위를 쏴 하고 파도가 밀려들었다. 멀리 작은 어선들의 불빛은 바람 때문에 몹시 출렁였다.

드디어 한정수의 고향에 도착했다. 마을 입구까지 왔는데 그가 머뭇거렸다. 잠시 방파제에 앉아 담배를 한 대 피우고 가자고 했다. 얼마 동안 방파제에 말없이 앉아 있던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말하지 않아도 그가 왜 그러는지 알 수 있었다. 그의 인생을 모두 잃어버렸다는 허탈감에 가슴 아파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잠시 핸드폰을 가방에서 꺼내 요셉신부한테 전화를 걸었다.

“신부님! 지언이에요.”

“비아구나!”

“건강은 어떠세요”

“난 괜찮다. 그런데 어디야?”

“아직 마음을 굳히지 못했어요. 조금만 더 시간을 주세요.”

나는 아주 사무적인 말투로 짧게 통화를 끝냈다. 요셉 신부의 목소리를 듣는 동안 내내 코끝이 찡해 왔다. 영어를 쓸 때와 달리 한국말로 대화를 하는 요셉 신부의 말투는 몹시 간략했다. 내가 제주도에 와 있음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한정수와의 약속 때문만은 아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고평오가 한 말을 모두 확인하고 싶었는데, 왠지 모든 것들이 사실로 드러날까 싶어 겁부터 났다.

골목을 지나 얼마를 걸어가자, 허름한 외딴집이 나왔다. 집 앞에 도착하자, 정주석이 대문을 대신해서 턱 버티고 있었다. 아주 오랫동안 손을 보지 않은 흔적이 역력했다. 집은 오랜 세월을 훑고 지나간 상흔이 있었다. 정주목이 한쪽으로 내려져 있었다. 집안에 사람이 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뒤돌아서서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의 얼굴은 노모를 너무 오랫동안 찾지 않았다는 죄책감 때문인지 침통했다.

한정수는 지나온 모든 일이 허상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러니 나도 자잘한 감정에 쉽게 반응하지 말랬다. 엄마와 동생이 처참하게 죽은 모습을 보는 순간부터였을 것이다. 신을 거부하며 사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아직도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조차 모른 채 살고 있다. 목표도 없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오기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어망!”

한정수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고 있었다. 그러자, 문이 덜컹 열렸다. 몹시 초췌하고 몸집이 작은 노인이 방문을 열고 나왔다. 밖으로 나온 노인은 자기 아들이 돌아왔다는 사실을 알고 어쩔 줄 몰라 허둥지둥하였다.

“어서 들어와. 아이고, 이게 웬일이야. 연락도 없이.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느냐.”

“바빠서 미처 연락드리지 못했어요. 그리고 함께 온 사람이 있어요.”

그제야 나를 발견한 노모는 반갑게 웃으며 방으로 들게 했다.

“저녁은 먹었냐?”

“먹었어요. 그런데 왜 이렇게 방이 차요?”

“혼자 사는데. 뭐시. 그런데 애들 소식은 있었고? 고 어린 것들이 눈에 밟혀서. 그런데 이 처자는 누구시냐.”

“사귀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 아버지 고향도 제주도라서 함께 왔어요.”

“잘 왔시요. 그런데 사는 형편이 누추해서.”

“괜찮습니다. 인사가 늦었어요. 이지언입니다.”

“우리 알들이 부족한 게 많아요. 얼굴이 참하네.”

노모의 해맑은 웃음소리를 듣자, 가슴이 뻥 뚫려버린 것처럼 아팠다. 누구를 기다린다는 것은 고통 그 자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노모의 얼굴에 드리워진 고통의 흔적이 보였다. 노인의 얼굴에 피는 웃음이 왠지 나를 불편하게 했다. 그의 노모에게 거짓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던 탓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그만 일어서겠습니다. 볼일도 있고 해서.”

“여기서 자고 아침에 가요? 누추하지만 불 넣으면 금방 방이 따뜻해져요.”

“아닙니다. 다음에 다시 한번 들르겠어요.”

굳이 한정수도 나를 붙잡지는 않았다. 집을 나와 골목 어귀를 나서는데 바닷바람이 온몸으로 감겨왔다. 어깨를 움츠리자. 머리카락이 자꾸만 코트 속으로 말려 들어갔다. 그러자 그가 목도리를 풀어서 내 목에 감았다. 그의 체취가 풀썩 날렸다.

“그럼 요셉신부를 만나러 가겠어요.”

“지언 씨 앞으로 연락해도 되지요?”

“다른 의미를 두지 마세요. 그렇다고 당신과 같이 밤을 보낸 사실을 가볍게 생각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택시 잡아 줄게요. 오늘 여기까지 와주어서 고마워요.”

“저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택시가 도착했다. 나는 얼른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창문으로 그의 표정을 살폈다. 그는 꼼짝도 하지 않고 굳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짙게 내린 제주의 어둠과 너무도 잘 어울리는 남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젠 그만, 더 이상의 아픔은 싫었다. 스쳐 지나갈 수밖에 없는 그런 인연으로 생각하며 모든 기억을 털어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또다시 인연의 고리를 연결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아릿하게 가슴이 아팠다. 미진한 이 느낌 때문에 감정에 얽매지 않으려고 했음에도 마음은 불편했다. 고독함을 달래기 위한 일회성으로 만나고 헤어졌던 시절을 보냈다. 고독이 깊숙하게 들어찬 밤이었던 날은 다가오는 남자들을 쉽사리 밀어내지 못했다. 서로에 대해 아는 바가 없어도, 서로를 쉽게 받아들인 게 습관처럼 되었던 때도 있었다. 이별을 반복할 때면 앓고 있는 고독이 어쩌면 유전적인 병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마치 바이러스처럼 나를 괴멸시킬 것처럼 환절기가 되면 더욱 휘몰아쳐 왔기 때문이다.

날씨가 변덕이 심했다. 어둠이 점점 짙게 내려앉으면서 뿌연 는개가 피어올랐다가, 곧 먹구름이 몰려들더니 차창 밖으로 굵은 비가 쏟아졌다. 곧 요셉 신부가 머무는 성당에 도착할 것이다. 그런데 막상 요셉신부의 얼굴을 마주할 용기가 나질 않았다. 입술이 바짝 메말라 있었다.

그림 출처- 장세현 작가
그림 출처- 장세현 작가

다시 아픔으로

여기까지 원고를 읽고 나는 이지언을 만나봐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원고를 구성부터 수정해야 하는지 아니면, 문맥 정도나 봐주어야 하는지를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의 글은 잃어버린, 퇴색해 가는 추억의 아픔을 더듬어주는 촉매 역할을 했다. 생각해보면 누구나 아픈 기억들이 없었겠는가.

단지 바쁜 생활고에 지쳐서 잠시 잊었거나, 아니면 너무 가슴이 아파 생각조차 떠올리는 것을 두려워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지언, 그녀는 내 가슴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근원적 슬픔까지도 흔들어 깨웠다. 대단한 위력이었다. 놀라웠다. 아내를 만나기 전에 가슴앓이했던 여자까지도 떠올리게 했다.

그녀들 가운데 누구와 함께 살았더라면 내 처지가 이토록 비참하지 않을 수도 있을 거라는 막연한 회한을 품었다. 모든 게 내 탓이 아닌 내가 사랑했던 그녀들 탓이란 생각이 들게 했다. 내가 신림동 고시원에서 힘겹게 원고와 싸우는 것도 모두 내가 사랑했던 그녀들 때문이었다.

나는 적어도 사랑에는 등급이 있다고 생각했다. 모두 다 사랑이라고는 하지만 그 빛과 색깔이 달랐다. 정도 차이는 그녀들의 직업과 생김새 또는 나를 생각하는 깊이의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나는 내 기준에서 등급을 나누었다.

나를 사랑했던 그녀들이 그 사실을 알면 배신감을 느끼며 침을 뱉을 수도 있을 테지만, 내 영혼을 흔들어 깨웠던 깊이에 따라 사랑의 색은 얼마든지 달라졌다. 그렇다고 사랑이 모두 똑같은 것은 아니었다.

아내는 그 사실을 눈치채고 있었다. 그래서 나더러 구제 불능이라며 정신병자 취급했다.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적어도 내 나름대로 많은 여자에게 지고지순하게 사랑을 고백했던, 고리타분한 스타일을 알아버린 아내로서는 숨 막혀서 가난하게 살겠다고 자유를 선언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녀에게 또다시 메일을 띄웠다. 그런데 어제 보낸 메시지도 수신확인이 되지 않은 상태였다.

“원고 때문에 만나고 싶습니다. 바쁘다면 핸드폰이라도 주시던지요. 원고를 새로 써야 하는지 아니면 수정만 해야 하는지 몰라서요.”

그때였다.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시간이 되면, 대전에 한 번 내려오라는 것이었다. 딸아이가 나를 찾는다고. 그 소리를 듣는 순간 가슴이 멎을 듯 아팠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주중에는 곤란하고 다음 주에는 꼭 내려가겠다고 약속했지만,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아이에게 달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아내의 목소리는 당장 이란 의미는 아니었다.

시간이 되면 이란 단서가 붙었다. 해서 생각과 달리 느긋하게 대꾸하고 말았다. 왜 이다지도 아이만 생각하면 가슴이 아픈지 모르겠다. 훗날 내 가슴이 찢어지도록 아팠던 사실조차 아이는 모를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자꾸만 아이에게 무언가를 해주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거의 잠을 자지 않은 것처럼 정신이 몽롱하다. 이지언 그녀가 주고 간 원고 때문일 수도 있다. 돌이켜 생각하면, 그녀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는데도 마치 그녀와 잠이라도 잤던 것처럼 그녀의 냄새가 내 살갗 어딘가에 숨어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켰다. 오늘은 그녀가 답신을 보내왔으면 하는 바람으로 침대에 누웠다. 그런데 자꾸만 컴퓨터를 켜고 무언가를 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지언, 그녀의 원고를 컴퓨터 속으로 활자화시켜야 한다는 강한 욕구가 일었다.

컴퓨터를 켰다. 커서가 깜박였다. 한동안 우두커니 앉아 화면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화면 보호 장치에 걸려 화면이 암흑으로 변했다. 나무가 나오고, 열대식물이 우거졌다. 오른쪽 모서리에서 개구리가 마구 튀어나왔다. 기린 목이 옆에서 비쭉 나타났다. 인터넷에서 내려받은 화면 보호 장치 화면이 자꾸만 시선을 가로막았다. 도무지 무엇부터 써야 할지 모를 일이었다. 그렇다고 이지언, 그녀의 원고를 무작정 뺏겨 나갈 수도 없었다. 적어도 내 가슴속으로 들어와 앉은 활자를 풀어내야 할 것 같았다.

엔터를 쳤다. 다시 화면이 밝아졌다. 우습게도 나는 이지언이 던지고 간 그 원고를 펴놓고 처음부터 다시 치기 시작했다. 물론 토시 하나 건들지 않았다는 것은 거짓이다. 내 나름대로 매끄럽게 원고를 수정해 갔다. 그런데도 예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전율이 흘렀다. 마치 신들린 사람처럼 무섭도록 키보드를 두드렸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 아래의 그것이 불끈 솟더니 고개를 쳐들었다. 후끈 달아오른 얼굴이 벽에 걸린 거울 속에 비쳤다. 몇 달 동안 발기가 되지 않았던 성기가 저 스스로 고개를 쳐들다니, 벌떡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그날로 나는 컴퓨터에 매달렸다. 이지언이 주고 간 원고와 씨름하기 시작했다. 아니, 내 가슴에 고인 활자를 하나하나 퍼내기 시작했다. 가슴은 온통 먹물로 들어찼다. 그것을 아주 조심스럽게 가슴 속으로 쑥 밀어 넣었다. 마치 활자들은 이지언의 글이 아닌 내가 쓴 원고라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이경

1997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오라의 땅’으로 등단

2002년 동서문학상 단편소설 대상 당선 ‘청수동이의 꿈’

2022년 직지소설문학상 중편소설 최우수상 수상 ‘달루에 걸린 직지’

*저서: 장편소설 『는개』, 『탈의 꽃』, 단편소설집 『도깨비바늘』, 『아름다운 독』,『달루에 걸린 직지』에세이집『아난다가보내온 꽃씨』 출간

*메일 imk0802@hanmail.net

저작권자 © 불교공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