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해. 왜냐하면 괴물이니까.

***

“뭐야? 넌.”

미캐의 말에 은비사는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의자에 묶인 채 맹랑하게 반말이라.. 겁도 없이.-

은비사는 그런 그녀가 마치 가소롭다는 듯 기분 나쁜 미소를 지었다.

한편 실험할 때마다 나타나서 기분 나쁜 표정으로 쳐다보기만 했던 은비사를 이렇게 가까이 보니 이미캐는 토할 정도였다.

묻는 말에 대답은 안하고 처 웃기만한 저 악마 새X.

이 개 같은 새X.

“너 뭐야? 대체 누구길래 나한테 이러는 거지?”

이미캐가 버럭 소리치자 은비사는 아예 픽 픽 거리며 실소를 내뱉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줄 모르고 날뛰는 강아지처럼 저러는 이미캐가 은비사의 눈에는 불쌍하기까지 했다.

-지금 자신의 처지를 모르는 건가? 꽁꽁 묶인 상태로 능력도 내지 못하는 게 입만 살아 나불거리는 것이 곧 네 제삿날임을 알아서 그런 거겠지. 나는 정말 이 공간에 괴물인 너와는 한 순간도 같이 하기 싫다. -

순간 은비사의 눈매가 비열해졌다.

그런 그가 주머니에서 라텍스 장갑을 꺼내 손에 끼기 시작했다.

그걸 본 이미캐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은비사의 행위를 보니 곧 그녀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거라는 걸 예측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재빠르게 공간을 훑었다.

이곳은 주변에 빈 종이 박스가 널려 있는 창고.

방치된 곳인 듯 필요 없는 물건들이 정리가 되지 않은 채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책상 몇 개, 의자 같은 사무용 집기들이 임시로 보관 되어 있는 이곳은 실험실은 아니었다.

그녀는 지금 이 공간 의자에 묶여 있는 채 방의 맨 끝에 있었다.

멀찍이 떨어져 벌레 보듯 쳐다보는 은비사와 그의 하수인들을 이미캐는 죽이고 싶을 만큼 증오가 치밀어 올랐다.

“말해!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냐고? C팔!”

미캐가 또다시 은비사를 향해 소리쳤다.

하지만 그녀의 소리를 못 들었다는 듯 은비사는 답을 하지 않고 다른 손에 라텍스 장갑을 마저 꼈다.

그런 그의 태도에 이미캐는 더욱더 성질이 잔뜩 올랐다.

그는 묻는 말에 대답을 안 하는 것뿐만 아니라 부러 무시하고 있었다.

마치 심리적으로 옥죄어 기선을 제압하려는 듯 보였다.

이미캐는 그런 걸 잘 알고 있었다.

언제나 그녀의 아버지가 해오던 방법이었다.

말 잘 듣게 길들이기 위해 어렸을 적부터 수 없이 당해온 무시.

그러나 그녀는 그런 것에 면역이 되어 있었다.

“대체 너 누구냐고? 이 C팔! 눈 찢어진 X끼야!”

-당돌하다 못해 되바라졌다. 상스럽고 천박하네. 진짜 못 들어주겠다. 괴물.-

미캐의 욕에 짜증이 난 은비사가 잠시 감정이 흔들렸다.

그녀를 기선 제압하려던 의도가 엇나가고 외려 그녀의 심리적 도발에 살짝 걸려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잠시뿐.

이내 벗어난 듯 다시 냉정을 찾은 은비사는 천천히 그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눈빛, 걸음걸이, 손짓.

그의 몸에서 풍겨 나오는 은비사의 카리스마는 거만과 당당함 그리고 냉혹함이 묻어 있었다.

그렇게 자신에게 걸어오는 은비사를 본 이미캐는 살짝 겁이 나기 시작했다.

아무렇지 않게 소리를 치고 욕을 했지만 그녀는 무력한 처지일 뿐이다.

은비사가 나타나면 언제나 끔찍한 실험이 동반됐다.

미캐는 그녀 스스로 강인하다 세뇌를 걸어봐도 무의식 깊이 각인된 두려움에 떨리는 입술이 멈춰지질 않았다.

그 사실에 미캐는 순간 화가 솟구쳤지만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는 떨리는 입술을 잠재워 봤다.

결국 미캐 앞으로 다가온 은비사는 눈을 아래로 지그시 내리깔며 이미캐를 내려다 보았다.

무시와 조롱, 더러움과 추함을 보는 눈빛이었다.

상당히 정말 끔찍하게 기분 나쁜 눈빛이다.

이미캐는 그의 시선에 짜증부터 났다.

“뭘 꼬라 봐 미친 새X야! 대체 너 누구냐고!”

한 치의 흔들림 없는 은비사의 표정과 눈빛.

싸이코 패스의 눈빛이라면 저런 눈빛일 듯.

감정 없는 은비사의 모습에 이미캐는 살짝 소름도 돋았다.

그런 표정으로 한참 동안 미캐를 쳐다보던 은비사가 그대로 한쪽 무릎을 바닥에 꿇고 앉았다.

그래서 은비사와 이미캐가 눈높이가 맞춰진 묘한 상태가 되었다.

그런 그에게 절대 질 수 없다는 듯 노려보는 이미캐를 은비사도 표정 없이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이 상태로 둘의 기 싸움이 한참 동안 계속되었다.

하나 이미캐는 차가운 그의 표정에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의지와는 다르게 맥박도 빨라졌다.

결국 그의 시선을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는지 미캐가 먼저 고개를 옆으로 홱 돌렸다.

그런데 은비사가 그제야 움직일 때가 됐다는 듯 라텍스 장갑을 낀 손으로 그녀의 턱을 거칠게 잡았다.

깜짝 놀란 미캐가 소리쳤다.

“뭐야? 안 놔!”

은비사는 그녀의 말에 반응하지 않았다.

그저 그의 손으로 잡은 미캐의 턱을 요리조리 돌려 보며 살피기만 했다.

방사선 실험으로 살갗이 군데군데 뭉개져 있는 미캐의 얼굴은 흉측했다.

군데군데 벗겨진 허물이 흘러내려 너덜거리기까지 했다.

-훗, 능력이 발현되지 못하는 군.-

저번 데이터 수집 실험에서 이미캐의 난동으로 알앤디 센터에선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

그때 한 연구원을 완전 만신창이로 만들 정도로 포악했다던 얘기를 들었던 터라 지금 그녀가 거친 말을 내뱉으며 성격을 부리는 게 그리 놀랍지 않았던 은비사였다.

그 당시 갑자기 이미캐에게서 나온 치유 능력 때문에 지금 그녀의 목에 꽂혀 있는 주사바늘로 약물이 조금씩 투여되고 있는 중.

그 이전처럼 약물을 완전히 차단한 게 아니었다.

그로 인해 다행히 그녀의 능력은 제어가 되고 있는지 그녀의 얼굴은 처음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 모습을 살피느라 은비사가 그녀의 얼굴을 살펴 봤던 것.

이미캐는 그런 그가 그저 기분이 나쁠 뿐이다.

“뭐 하는 거야? 이 미친 새X야!”

순간 그녀의 흉터를 살피던 은비사가 그녀의 눈을 쳐다봤다.

눈과 눈이 마주친 상황.

이미캐의 눈은 상당히 흔들리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 은비사의 눈 속에 깃든 광기를 느꼈다.

언제나 죽고 싶은 그녀였지만 지금은 죽을 것 같아 상당히 공포스러워 피하고만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지지 않고 싶었다.

입을 앙 다물고 그를 노려보았다.

그 뒤로 또다시 말없는 기 싸움이 시작됐다.

은비사는 사실 어린 것이 당돌하면서 독하기까지 하단 생각에 애를 먹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사람이 아닌 괴물.

반드시 죽여야만 하는 존재.

기 싸움은 은비사가 입을 여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너도 조금은 사람이라고 능력이 제대로 발현되지 않는 건가? 훗.”

“뭐라고?”

미캐가 되묻자 은비사가 픽 웃었다.

정말 비웃음 그 자체였다.

“사람이라.. 겉모습만 사람일 뿐이겠지.”

“뭐래? 대체 뭐라는 거야? 미친 놈아.”

미캐는 지금 속이 부글부글 끓어 올랐다.

사람을 납치해 감금을 하고 제 멋대로 실험하는 이들이 사람이네 아니네 이렇게 말하는 게 어이가 없었다.

분명 실험을 했기에 그녀가 가진 능력의 비밀을 알고 있는 자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렇게 할 권리도 없을뿐더러 자격도 없다.

거만하고 재수 없는 놈들.

대체 왜 이렇게 하는 지 물어도 답을 주지 않는다.

그저 짐승 보듯 대하며 무시만 일삼는 이들에게 성질이 북받쳐 오른 미캐, 정말 참을 수 없다는 듯 소리쳤다.

“니들 정신병자야?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냐고? 말해!”

은비사는 또 대답이 없었다.

정말 미캐를 사람 취급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그 사실에 이미캐는 분노했지만 그뿐이다.

아무리 소리치고 욕을 해도 그들은 외면할 뿐이었다.

은비사가 자리에서 일어서 더러운 게 묻었다는 듯 장갑을 낀 손을 돌려보았다.

그리고는 벗어 훅 집어던졌다.

멀리 날아가는 장갑을 미캐가 눈으로 쫓았다.

장갑은 한 쪽 구석에 마련 된 휴지통 옆으로 떨어졌다.

갑자기 은비사의 하수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달려와 바닥에 떨어진 장갑을 주워 들었다.

마치 더러운 걸 만지는 듯 집게 손가락으로 들어 올린 장갑을 휴지통 안에 넣더니 손을 겉옷에 닦았다.

그걸 다 지켜 본 이미캐는 정신이 붕괴되는 것만 같았다.

모든 과정이 혐오 그 자체였기 때문이었다.

이미캐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두컴컴한 지하실 창고 안에 대여섯의 남자들이 모두 그녀를 증오의 시선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뭘 잘못했지? 내가 왜 이런 모욕을 당해야 하는 거지?-

그들의 마음에 자아마저 붕괴될 것만 같았던 미캐는 더 이상 그들을 쳐다보기가 힘들었다.

미캐가 그들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은비사를 노려보았다.

“날 실험하는 게 맞지? 대체 너 누구야? 군인이야? 아님 경찰이야?”

은비사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되물었다.

“나?”

“그래. 너. 이 개X끼. 처음부터 지금까지 날 지켜보고 있었잖아. 대체 너 누구길래 나한테 이러는 거지?”

“알고 싶나?”

미캐가 그렇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자 은비사가 비웃으며 입을 열었다.

“나는 사람이거든.”

미캐는 기분이 나빠 미간을 찌푸렸다.

혐오스러운 괴물을 취급하며 스스로는 사람이라고 으스대다니.

무슨 이런 경우가 다 있는지..

그녀에겐 외려 그들이 괴물 같았다.

“뭐? 사람? 장난해? 지금.”

어이가 없어 그녀가 되묻자 은비사에게서 나온 대답은 똑 같은 것이었다.

“아니. 장난이 아니야. 난 사람이라고.”

“뭐? 사람?”

“그래. 정확히는 널 죽여야 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될까?”

미캐는 머리가 터질 것 같고 뒷 목이 뻐근해져 왔다.

스트레스가 극강인 상태.

은비사의 말을 들은 미캐는 왜 이들이 자신을 학대하고 괴롭혔는지 그 이유를 알아버렸다.

그녀가 가진 능력 때문이다.

그래서 가두고 실험하고 고문하고 학대했던 것.

‘달라서 그래. 그들과 달라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래서 혐오를 하는 것이고.. 그렇다고 너희들이 나를 죽일 권리는 없어.’

미캐가 물었다.

“그런데 왜? 어째서 날 죽이려는 거지? 이유가 뭐야?”

은비사는 대답대신 눈을 내리깔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경멸의 시선 그 자체였다.

완전 퇴치해야 할 바이러스 혹은 치워버려 할 오물.

또는 제거해야 할 악성 종양 같은 취급을 받고 있다는 사실에 미캐는 분노하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 살기가 어리자 기다렸다는 듯 은비사가 그녀의 물음에 답을 했다.

“알 수 없어. 너는 이유도 모른 체 죽게 될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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