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크림 튀김’ 같은 뜨거운 고소함과 차가운 달콤함의 조화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문예창작을 공부한 도복희 시인은 습작 시절 “시는 우주의 언어”라는 말을 자주 하곤 했다. 단번에 이해되지는 않지만 시는 그에게 막연한 동경과 그리움 자체였고, 숨겨둔 비밀처럼 가슴에 파고들어 시인을 방황하게 만들었다. 시인은 지금도 여전히 삶 속에서 헤매고 있지만 시의 고리를 놓을 수는 없다고 고백한다.

지방신문 기자로 일하면서 취재와 기사 마감의 압박 속에서 시인으로 살아내는 것이 쉽진 않지만, 시에 다다르고 싶은 열망으로 그 시간들을 버텨내며, 삶의 모든 중심을 시에 두고 살아간다.

그래서인지 도복희의 시는 아이스크림 튀김 같다. 뜨거운 튀김옷 안에 감춰진 차가운 아이스크림. 높은 온도에서만 튀길 수 있는 시라는 형식 속에 삶을 돌아보는 차가운 시선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그의 시에서 중요한 것이 뜨거움과 차가움의 ‘사이’이다. 그는 이 ‘사이’에 웅크리고 있는 마음을 옮겨 적는 일은 시인의 몫이라 여긴다. 중심이 아닌 주변을 것들에 더 눈길을 주고, 마음을 쓰고, 그 사이에서 멈칫거린다.

■ 도복희 시인 소개

충남 부여에서 태어났다.

2011년 《문학사상》으로 등단했다.

시집 『그녀의 사막』 『바퀴는 달의 외곽으로 굴렀다』 『외로움과 동거하는 법』이 있다.

현재 동양일보 취재부장으로 재직 중이다.

■ 시인의 말

몽골의 대평원을 갈망하고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여행자의 자세를 꿈꾸며

쳇바퀴 도는 생활인으로 하루를 건너가고 있어도

우주를 품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줘

이 모든 건 순전히 너만 할 수 있는 거야

그러니 詩여

내게서 영영 떠나지는 말아 줄래

부탁하니 손잡고 같이 가자

■ 책 속으로

너 아니면, 안 되겠다고

잘 훈련된 기마병 되어

널 향해 달려갈 거야

매일 밤 그 마음을 토벌해

한시라도 떨어져 살아갈 수 없도록

그렇게 길들일 거야

그래, 그때까지 우리가

서로의 이름으로 채운다면

순간순간 몽골의 아름다운 무사가 되어

너를 정복하는 데

모든 것을 걸어 볼 테야

잊는 연습부터 하는

내륙의 참한 여인 같은 건

절대 하지 않을 거야

― 「몽골에 갈 거란 계획」 부분

애인의 이름으로 주술을 만들려고요

화살이 심장을 관통하도록,

비법을 연마할게요

태양 경배 자세로 나머지 생을 바친다 해도

마음을 옮기는 일이 바람의 방향을 트는 일보다

어렵다, 그랬나요

손을 적신 죄 내려놓지 못한

집착 때문이었다고 하면

나의 아킬레스건이 될까요

― 「시인으로 사는 일」 부분

기대가 사라진다는 건

봄이 되어도 꽃이 피지 않는다는 거

한겨울의 폭설이 녹지 않는다는 거

더 이상 하고 싶은 대화가 일어나지 않아

서로에 대한 관심에서 아웃된다는 거

바라보는 시선에서 그 무엇도 읽어 내지 못하는 거

기대가 없다는 건

그가 사는 현관문을 지나쳐

사막으로 가는 계단을 밤새 오르는 거

발이 붓고 외로움이 붓고

새벽에 당도하지 못하는 계단을

수도 없이 세야 하는

마른 입술이 되는 거

무미의 맛처럼 더는 아무런 맛도 느낄 수가 없는 거

그건 말이지

별이 뜨지 않는 캄캄한 길에 혼자 서 있는 거

― 「언제부터 서로에게 모든 기대를 내려놓게 되었나」 전문

■ 출판사 리뷰

고요에서 길어 올린 마음의 무늬들

‘사이’에서 그려낸 삶의 옴니버스

도복희의 『몽골에 갈 거란 계획』은 삶의 경계에서 마주친 갈등을 옴니버스 영화처럼 펼쳐 놓는다. 앵글은 시인의 눈을 투시하기도 하고 때론 주변의 표정을 클로즈업한다. 줌인

(zoom in)의 과정에서 형성되는 깊이는 도복희 시인의 첫 시집 『그녀의 사막』에서도 엿볼 수 있다. 어느 요일이든 떠날 수 있는(혹은 돌아올 수 있는) 세계를 상징하는 “사막”의 방황이 얼마간 하나의 방향을 이루었다면, 이번 시집은 삶의 고뇌를 보다 구체적이고 명확한 위치에서 들여다보고 있다

시는 집착으로 얻어지는 예술이 아니다. 어떤 ‘사이’에 웅크리고 있는 마음을 옮겨 적는 일이 시인의 몫이다. 끊임없이 나를 비우고 나를 벗어나는 애씀이 필요하다. “한 계절에 한 번쯤은 돌개바람에 흔들리는 미루나무처럼 그곳에 서 있어 볼 일이다”(「우리는 때로 돌개바람에 흔들리는 미루나무가 된다」)라는 시인의 목소리가 오래도록 귓가를 맴도는 이유를 우리는 놓치지 말아야 한다. 중심이 아닌 주변을 응시한다는 건 쉽지 않다. “문밖으로 눈이 펄펄 쌓”이는 “12월”에 “나이 든 딸과/ 더 나이 든 엄마가/ 슬래브 집에서 화투를” 치는 이야기는 함께 따뜻해지려는 구체적 몸짓이다. 도복희 시인에게 시란 체온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다시 천천히 「엄마는 12월의 화투를 좋아했다」를 읽어 보자. “잠금쇠 단단히 걸어 둔 한 평 방에는/ 찐 호박고구마 놓여 있고/ 벚꽃, 난초, 홍싸리 무더기로 들어온다/ 숨 막히는 꽃들의 싸움으로/ 모처럼 환한 겨울밤이다”라는 마지막 이미지는 오래도록 따뜻하다. 이만큼의 온도가 바로 도복희가 세상에 손을 내미는 방식이라면 더 이상 그의 시가 어디로 향할지 방향을 묻지 않아도 좋겠다

『그녀의 사막』에서 말했던 “사막”이 언제든 떠날 수 있고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세계였다면, “몽골”은 “사막”으로부터 더 확장된 시세계를 제시한다. “몽골”이란 종착지가 아니라 기착지이다. 여기서부터 도복희의 새로운 동행은 시작된다. 우리는 가만가만 시인의 앵글을 따라가자. 그 걸음에 또 다른 “물푸레나무 숲”을 만난다면 거기 멈춰 “손목이 시큰할 때까지” “숲의 주술”을 함께 옮겨 적는 일도 마땅히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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