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야! 살인자라고!!

***

어두컴컴한 작은 방.

빛이라곤 창을 가린 엷은 커튼 사이로 비치는 달빛이 전부였다.

희미한 달빛에 드리워진 긴 그림자.

그 그림자 끝에서 시작점을 찾아가니 김탄이 창문 밑에 기대어 웅크리고 있었다.

초췌한 그의 얼굴은 마치 죽은 자 처럼 보였다.

초점 없는 눈은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고 벌어진 입은 생기 없이 말라 있었다.

적막한 이 공간은 이승의 것이 아닌 저승의 것이 감도는 듯 삭막하고 메마른 공기로 가득 차 있었다.

순간 이 세계가 현실이란 듯 바람이 불어 와 커튼이 펄럭였다.

방으로 들어 온 바람은 마치 다시 깨어나라는 듯 김탄의 머리도 건드리며 흩날렸다.

그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김탄이 갑자기 고개를 아래로 툭 떨구었다.

메마른 입술을 앙 다물자 그의 눈에서 눈물이 방울져 떨어지기 시작했다.

눈물이 무릎 위에 흥건해지자 김탄은 더욱더 몸을 웅크렸다.

김탄은 속절없이 떨어지는 눈물을 멈추려는 듯 입술을 지그시 깨물어 봤다.

하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았고 터져 나오는 눈물을 억지로 막았냐며 화를 내는 듯 그의 입으로 흐느낌이 절로 흘러나왔다.

왜 자꾸 의지와는 다르게 이러는지 모르겠다.

울고 싶지 않은 데 자꾸만 눈물이 난다.

김탄이 그 흐느낌마저 제발 멈추라는 듯 이빨로 입술을 더욱더 세게 깨물었다.

그러나 그의 바람대로 되지 않고 그가 애써 참고 있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윽. 흐 흑.”

그러자 그가 서둘러 제 손으로 입을 막아 봤다.

소리는 작아졌지만 눈물이 더욱더 많이 흘러내려 앞까지 보이질 않았다.

다른 손으로 그 눈물을 훔쳤다.

그래도 또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

“제길.”

김탄이 눈물이 멈추라고 욕설을 내뱉어 보았지만 흐르는 게 참아지질 않았다.

정말 둑이 터져 버린 물줄기 같은 눈물.

김탄은 지금 너무 힘이 들었다.

혹시나 눈물이 멈출까 그가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았다.

눈물 사이로 불 꺼진 전등이 희뿌옇게 눈에 들어왔다.

“하아.”

그도 모르게 한숨을 내 뱉자 더욱더 눈물이 솟구쳤다.

빌어먹을 이 눈물이 절대 멈추지를 않는다.

눈을 감았다.

감아도 소용없었다.

눈물은 절대 멈추지가 않았다.

감은 눈 사이로 반장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김탄은 이상하게 가슴이 조여오고 아팠다.

어째서?

왜?

내게 이런 일들이 일어나게 된 걸까?

왜 내가 겪어야 하는 거지?

왜?

그가 지금까지 겪은 일.

상상하지도 못했고 또 예측하지도 못했었다.

평범한 일상을 살다 휘몰아친 불운.

모든 것을 잃어버린 지금 김탄은 처참한 마음뿐이었다.

인정할 수도 없고 또 부정하고 싶었다.

원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로 인해 억울함에 화가 났다.

그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일그러진 얼굴로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화를 내도 눈물은 절대 멈춰지질 않았다.

김탄이 눈물을 다시 손등으로 훔치자 끼익 거리며 낡은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쳐다보자 검은 형체가 방으로 들어오는 게 보였다.

“꺼져!”

김탄이 소리치자 검은 형체는 그대로 뒷걸음질 치며 조용히 문을 닫고 사라졌다.

김탄에게 쫓겨난 박토가 문에 등을 기대고는 손에 들린 접시를 쳐다보았다.

김탄에게 줄 저녁식사였다.

그 모습을 거실에서 숙제를 하고 있던 박월이 보고는 물었다.

“안 먹는데?”

손에 들고 있던 접시를 아쉬운 듯 바라보던 박토가 월에게 시선을 옮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월의 표정이 침울해졌다.

그는 다시 말없이 숙제를 하기 시작했고 박토는 싱크대 앞으로 가 개수대 안에 접시를 비우며 투덜거렸다.

“기껏 힘들게 만들어 가져 갔더니 먹을 생각도 안 하네. 먹어서 힘을 내야 그 파이온이라는 놈들을 없앨 거 아냐. 쳇. 멍청한 건지 심약한 건지.. 쯧. 하아~”

다 털어버리려는 듯 얕은 한 숨을 훅 내쉰 박토가 벽에 걸려 있는 앞치마를 꺼내 몸에 둘렀다.

스펀지에 세제를 묻히고 설거지를 시작했다.

-아이코 이런.-

김탄 때문에 마음이 쓰였는지 식탁 위에 저녁 먹고 치우지 않은 그릇이 생각난 박토가 당황했다는 듯 안절부절이었다.

고무 장갑을 도로 벗을 순 없어 월에게 부탁을 했다.

“월아! 식탁에서 다 먹은 그릇 좀 가지고 와.”

“싫어! 나 바빠. 숙제해야 돼.”

“숙제? 숙제면 삼촌 좀 도와주고 이따가 해도 되잖아?”

“안돼! 좀 복잡해. 믿음에 관한 주제로 글짓기를 해야 하거든.”

순간 박토의 손에 들고 있던 접시가 미끄러져 설거지 통 안으로 퐁당 들어갔다.

평상시 잘 하지 않던 실수다.

“갑자기 왜 이러지?”

어색함에 혼잣말로 중얼거리고는 구겨진 얼굴로 월을 돌아보았다.

잠깐 와서 그릇 좀 가져다 달라는 데 말을 징그럽게 안 듣는다.

“야. 월아. 잠깐만 삼촌 좀 도와 줘라. 응?”

“싫어. 난 믿음이라는 게 뭔지 검색해야 해. 숙제거든.”

말을 마친 박월은 새초롬한 표정을 지으며 스마트 폰으로 검색을 시작했다.

그걸 본 박토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정말 믿음이라는 주제로 글짓기를 한다는 게 사실일까? 아님, 내가 믿지 않아 김탄을 힘들게 했다는 걸 다시 상기시키는 것일까?-

박토는 지금 그가 한 생각이 맞는지 한참 동안이나 월을 살폈다.

일부러 한 말은 아닌 것 같았다.

그는 아주 진진하게 자료를 조사하며 메모까지 하는 열성을 보였다.

정말 열심히 숙제하고 있는 박월이다.

이건 칭찬을 해야 되는 일이다.

그렇지만 박토는 이상하게 찝찝하고 켕기는 마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가 고무장갑을 벗은 다음 빈 그릇을 가지러 식탁으로 향하며 일부러 헛기침을 해봤다.

“헛 흠.”

박월이 그를 신경 쓰고 있는지 아닌지 확인 해 본 것.

만약 일부러 믿음이라는 주제로 글짓기를 한다는 걸로 박토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기 위해 공격을 한 거라면 박월은 박토를 예의주시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 쳐다볼 게 분명했다.

그러나 박월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숙제에 집중했다.

그렇다면 진짜 믿음에 관한 글짓기가 맞다.

하지만 저렇게까지 진지한 모습은 처음이었다.

박월의 평소와 다른 색다른 모습에 박토는 어색하기까지 했다.

항상 숙제를 할 때 흐트러진 자세와 집중력 없이 딴청을 부리는 통에 박토가 내내 똑바로 하라며 잔소리를 해왔었던 그 이전과는 다른 모습.

-자식. 아픔을 겪고 성장한 거군-.

멋대로 결론을 내린 박토는 식탁 위의 빈 그릇을 수거하며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때 갑자기 박월이 박토를 불렀다.

“삼촌! 삼촌!”

다급한 박월의 부름에 박토가 손길을 멈추고 월에게 향했다.

“왜? 뭐 물어볼 거 있어? 숙제가 어려운 거야?”

하지만 그의 질문에 답을 안하고 스마트 폰만 쳐다보는 박월.

그에게로 향하는 박토의 걸음이 느려지다 멈추게 되었다.

마치 절대 쳐다보기도 싫다는 듯 외면하는 듯한 박월의 모습에 잠시 충격을 받아서였다.

그러자 박월이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다시 입을 여는데.

“아니. 할 말이 있어.”

그저 박토는 이렇게 되물어 볼 뿐.

“뭔데?”

그런데 박월은 또다시 박토의 물음에 답을 하지 않고

“잠깐만..”

이라고 말을 내 뱉고는 다시 스마트 폰을 보며 스크롤을 내렸다.

할 말이 있다면서 저러는 박월의 태도에 박토는 약간 기분이 상했다.

-저 자식이 저러는 거 뭐 어제 오늘 일이 아니었느니 신경 쓰지 말자. -

이렇게 생각하고는 다시 식탁으로 가 빈 그릇을 들고 싱크대 개수대로 향했다.

하지만 온 신경은 뒤통수로 가 있었다.

그가 개수대 앞에 서자 드디어 다시 월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삼촌. 숙제 때문에 검색 좀 해 봤는데 한 중학생 형이 반 친구들로부터 학폭을 당했는데 그걸 담임 선생님한테 말했었대.”

“어 그래? 그것 참 몹쓸 일이네.. 그래서?”

“잠깐만..”

박토는 수거한 빈 그릇을 설거지 통에 담고 월을 돌아보았다.

-저 자식이 진짜. 사람 감질나게..-

똥개 훈련을 시키는 것도 아니고 자꾸만 무언가 대화를 시켜 놓고 제 멋대로 단절 시키는 박월에게 살짝 화가 난 박토.

하지만 그 뿐이었다.

박토는 설거지를 마저 하기 위해 스펀지를 도로 들고 설거지를 시작했다.

그렇게 열심히 설거지를 하고 있는 그의 등 뒤로 다시 박월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 어.. 믿어주지 않아서 자살했대.”

풍덩.

빠각!

갑자기 손에 들린 접시가 설거지 통으로 도로 떨어져 접시끼리 부딪혔다.

분명 이가 나간 소리 같았다.

서둘러 박토가 접시를 들어 살폈다.

역시나 이가 나가 있었다.

“이휴~ 자꾸 왜 이러는지 모르겠네.”

근 5년 이래로 접시에 이가 나간 건 처음이다.

특히 설거지를 할 때 놓쳐 나간 경우는 생전 처음.

그가 잘 하지 않는 실수 때문에 이가 나간 접시를 안타까운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비싼 건데. 어쩔 수 없다.-

박토는 설거지 통을 뒤적여 이가 나간 접시를 모두 모아 개수대 옆 싱크대 위에 올려놓았다.

그때 갑자기 박월이 무언가 광분한 듯 소리쳤다.

“살인자!”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은 박토.

마치 그에게 한 말 같았기 때문이었다.

박토는 설마 아니겠지라는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박월은 무언가 격분한 표정이었지만 박토를 보지 않고 스마트 폰을 보고 있었다.

그렇다면 스마트 폰 속의 살인자를 보고 소리친 것.

대체 어떤 살인자가 그를 그렇게 화가 나게 했는지 박토가 궁금해 물었다.

“살인자?”

순간 박월이 박토를 째려보았다.

세상에 어떻게 8살 아이의 얼굴에서 저런 표정이 나올 수 있을까?

험악하게 일그러진 박월의 얼굴을 보자 박토는 이상하게도 등골이 오싹해졌다.

“어떤 살인자를 보고 그렇게 화가 난 거야?"

박토의 물음에 박월은 마치 그에게 분노한 듯 소리를 쳤다.

“이 선생님 살인자야! 믿어주지 않았잖아! 믿어 줬으면 이 형 죽지 않았을 거야! 살인자야! 그렇지! 삼촌! 살인자라고!”

박토는 살인자라는 소리가 귀에 꽂힐 때마다 온몸의 털이 쭈뼛쭈뼛 섰다.

분명 믿지 않아서 살인자라고 했다.

이 얘기는, 그러니까 박월이 박토에게 하고 싶었던 말인 것 같다고 생각한 그는 마음이 불편해졌다.

신우 프로텍 사고는 박토 때문에 벌어진 게 아니라 파이온이 날린 미사일 때문이다.

그러나 그 사실을 외면한 체 박월은 박토가 그 모든 원인인 것처럼 화를 내고 있는 것.

이렇게 계속 되는 오해는 해소해야 한다.

언제까지 살인자 누명을 쓸 수 없는 법이다.

심기가 불편해진 박토가 어색한 헛기침을 하곤 월에게 입을 열었다.

“월아. 혹시 너.. 내가 김탄을 믿지 않았던 것 때문에/”

쨍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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