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바탈!

은비사가 화들짝 놀라 되물었다.

“남자아이 아닙니까?”

“아니. 이 시체 말고 이번에 잡은 아이 말일세..”

온통 시체 보관함에 들어 있던 아이에게 정신이 팔려 있던 은비사는 왕종철의 말을 듣자마자 외마디가 흘러나왔다.

“아! 이런.”

은비사가 멋쩍은 듯 한 손으로 그의 짧은 머리를 연거푸 쓸어 올렸다.

그러던 그가 정말 의아하다는 듯 왕종철에게 물었다.

“그런데 여자인 게 왜?... 저 아이를 시체를 보여 주신 것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궁금하나?”

비사가 그렇다는 듯 살짝 미소 짓자 왕종철이 갑자기 뒷짐을 지고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답을 하지 않고 걷고 있는 왕종철의 뒤를 은비사가 의아해 하며 말없이 따랐다.

-언제나 이런 식이다. 정말 회장님은 답을 쉽게 주지 않는다. -

은비사는 마음이 답답했지만 왕종철을 채근할 수는 없었다.

그저 머릿속에 이번에 생포한 여자 바탈과 죽은 아이와의 상관관계가 무엇인지 생각해보려 노력 했지만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지금 그의 머릿속엔 두 가지 질문만 맴돌았다.

-왜 여자 바탈 때문에 저 남자아이 시체를 내게 보여준 것일까?

-왜 아버지가 저 아이를 죽여서 데려온 게 잘한 일이라고 하시는 거지?-

답 없는 질문을 계속 머릿속으로 되뇌어 보던 은비사에게 갑자기 왕종철이 말을 걸어왔다.

“그래. 맞아. 자네는 옛이야기를 잘 모르고 있지?”

왕종철의 입에선 은비사가 알고 싶은 답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색다른 이야기가 나왔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옛이야기라니요?”

“들어 볼 테나?”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말 너무 궁금한 게 많습니다.”

왕종철은 연사처럼 목을 가다듬기 위해 헛기침을 두어 번 하더니 아주 중요한 말을 하듯 입을 열기 시작했다.

“이 땅의 마지막 날이 다가올 것이니, 그때 하늘에서 파괴의 신이 떨어지게 될 것이다. 그리하면 흑룡이 나타나 해를 삼키어 세상에 어둠만이 드리워지게 된다. 하나 속에 셋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오직 셋이 펼쳐지게 될 때, 그때 이 세상이 끝나게 될 것이다.”

말을 마친 왕종철이 갑자기 걸음을 우뚝 멈추어 섰다.

그리고는 뒤를 돌아보며 은비사에게 물었다.

“들어보니 어떤가?”

“예.. 예언 같습니다.”

“정확히 짚었네. 아주 오래된 예언이지.”

“혹시, 바탈과 연관이 있는 예언인가요? 멸망에 관한 내용인 걸로 보아서..”

“그래. 연관이 있는 게 아니라. 그 예언이라네.”

은비사가 깜짝 놀라 되물었다.

“그렇다면 혹시 오운족 아수라님에게 들은 겁니까?”

“아닐세. 내가 찾아낸 이야기다. 세상에는 비밀이란 없는 법이거든.”

은비사는 죽은 아이와 또 그 아이를 살려서 데려오지 못한 아버지의 이야기,

또 여자 바탈과 바탈의 예언에 관한 이 모든 이야기가 서로 그 어떤 상관 관계가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퍼즐을 맞추는 기분이었고 또 그 퍼즐은 아무리 노력해도 절대 맞춰지지 않았다.

왕종철은 항상 이런 식으로 대화한다.

언제나 퍼즐을 내듯 단편 만을 말하는 그는 은비사에게 어려운 사람이었다.

'정답은 회장님만 알고 있겠지'라는 생각에 은비사의 입가엔 자조적인 미소가 어렸다.

갑자기 왕종철이 걸음을 우뚝 멈추었다.

은비사는 생각에 꼬리를 무는 바람에 왕종철이 가고자 하는 곳에 다 온 것도 몰랐다.

은비사의 눈에 들어온 또 다른 비밀 공간.

이 공간은 또 다른 세계 같은 모습이었다.

한옥에 어울릴 것 같은 격자 문살이 있는 커다란 문이 있었다.

물론 창호지가 덧대어 있었다.

중요도는 그리 높지 않은지 문틈으로 뿌연 먼지 같은 것도 앉아 있었다.

왕종철이 그 문을 열자 역시나 퀴퀴한 먼지 냄새부터 밀려왔다.

그곳은 골동품 같은 오래된 그림들과 서적들로 가득했고 대충 훑어보니 모두 낯익고 익숙한 것들이었다.

모두 한국의 문화유산이었다.

은비사가 주변을 찬찬히 훑어본 후 왕회장에게 물었다.

“이곳은.. 어디입니까?”

“내 또 다른 보물 창고라네. 자 따라오게.”

간단한 답을 마친 왕종철이 먼저 길을 나서듯 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또다시 따르는 은비사.

기다란 목재 프레임에 차곡차곡 쌓여 있는 오래된 고서와 유물 사이를 지나자 널찍한 공간이 나타났다.

이 방은 은비사에게는 단조로운 방이었다.

그렇게 흥미를 유발하는 물건도 없었고 또 익숙하지만 자세히 아는 것도 없었다.

방에 대한 관심이 떨어지자 이 방에 들어오기 전 그의 머릿속에 맴돌던 궁금증이 다시 떠올랐다.

“한데 아까 전에 그 예언을 왜 말씀하신 겁니까? 혹시 그 예언 때문에 이곳으로 저를 데리고 오신 건가요?”

“그렇다고 해두지..”

대답과 동시에 걸음을 멈춘 왕종철.

그대로 뒤를 돌아보며 이 공간을 품에 끌어안듯 두 팔을 벌리며 은비사에게 다시 말을 이었다.

“여기를 보게나. 사라진 우리나라의 보물이 있는 곳이야. 반 만년 역사가 숨 쉬는 곳이지. 내가 이것을 만들 수 있었던 건 지금의 오성이 있었기 때문이야. 대단하지 않은가?”

은비사가 그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의 태도에 왕종철은 흡족해 하며 다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오성도 한때 휘청이던 적이 있었지. 그때 위기를 잘 넘겼기에 지금의 오성이 있는 것이야. 한번 더 말하자면 20년 전 파이온에게 운석을 넘긴 대가가 지금의 오성이 된 것이란다. 어떻게 보면 아주 잘 한 선택이었어. 모두 그들이 뒤를 봐줬기에 지금의 오성이 있는 것이니까 말이다.”

“운석만 넘겼다고 이렇게 큰 결과를 낳은 겁입니까?”

왕종철이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절래 절래 저었다.

의아함에 은비사가 다시 물었다.

“혹시 그럼. 그때 파이온에게 넘긴 운석 속에 바탈 스톤이 들어 있었던 겁니까?”

“이런. 이런. 잘못 짚었네. 그래서 잘 한 선택이라 하지 않았느냐?”

“네?”

왕종철의 이해할 수 없는 말에 은비사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되묻자 왕종철은 재밌다는 듯 너털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아무것도 없었거든. 하하하하하.”

은비사가 지금 어이가 없었다.

“아무것도 없었는데 그들이 오성을 키우는데 조력을 했다고요?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그건 그들이 숨기고 싶은 걸 알았기 때문이란다.”

왕종철의 말에 그저 난처한 웃음만 나오는 은비사.

모두 선문답 같은 대화 때문이었다.

“도무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회장님.”

“이유가 알고 싶은 게냐?”

은비사가 궁금증이 가득한 어린아이 같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오운족 아수라의 공이지. 아수라가 20년 전 왜 파이온이 운석을 원하는지 알고 싶다면 그 운석을 쪼개 보라고 했었거든. 그런데 말이야. 그러고 나니 파이온이 깜짝 놀란 듯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단다. 운석을 고스란히 넘길 거라 예상했는데 그걸 쪼갰으니 말이다.”

왕종철의 말에 은비사의 눈이 커졌다.

“그럼 그때 회장님은 바탈 스톤에 대해서 모르셨다는 겁니까?”

“몰랐지. 당연히 몰랐지. 운석을 원한 파이온이었지만 그들이 왜 운석을 원하는지는 몰랐어. 하지만 아수라의 말을 듣고 궁금했지. 엄청난 제안을 먼저 해온 그들이 원하는 운석이라면 그 안에 무언가 있을 거라 판단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었어. 그러나 그들이 움직였다. 그렇다면 무언가 들어 있다는 소리였다네.”

“하지만 20년 전에는 운석 속에 바탈 스톤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왜 파이온을 움직인 겁니까?”

“비밀을 알아버렸으니까. 앞으로 나오는 운석은 다 쪼개 볼 테니.. 그들이 먼저 나를 자신들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게야. 동맹이 된 것이란다. 형제가 된 게야.”

“그렇다면 아수라님의 공이 정말 큰 것이군요.”

“그래. 고마운 사람이지.”

은비사가 생각에 잠긴 듯 말이 없어졌다.

은비사는 평소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편이라 왕종철도 그의 표정을 보고는 그의 의중을 알기 힘들었다.

하지만 지금 은비사의 얼굴엔 의구심으로 가득했다.

물론 일반 다른 사람들이 읽지 못하는 속마음.

하지만 왕종철은 그의 마음을 단 번에 읽어버렸다.

“나와 오운족과의 관계가 궁금한 모양이구나.”

“어? 어떻게 아셨습니까?”

“아수라가 선뜻 가문의 비밀을 얘기한 저의가 지금 너무 궁금해 죽겠지?”

은비사는 대답대신 허탈한 듯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난처할 때 나오는 가식적인 미소였다.

정말 은비사는 왕종철이 말한 내용이 궁금했었다.

단지 생각만 했을 뿐인데 그걸 이렇게 꿰뚫고 있는 왕종철에게 은비사는 다시금 그가 가진 능력에 탄복하기만 했다.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는 능력.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왕종철이었다.

이런 왕종철에게 은비사는 호랑이 앞에 선 강아지 같은 느낌이다.

살짝 주눅이 든 체로 고개를 끄덕이자 은비사의 표정을 읽은 왕종철은 가벼운 코웃음을 날리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은비사는 다시 말없이 뒤따랐다.

그러자 왕종철이 은비사의 궁금증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수라의 제안은 단순한 거였어. 오운족의 부와 바룬족의 멸망이었다. 그 당시 세력이 더 큰 쪽은 바룬족이었으니까 말이다. 어쩌면 아수라는 바룬족을 누르고 우리나라 최고의 가문이 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때 오운족과 바룬족의 비밀을 알게 되었고 바탈 스톤에 대한 것도 알았다.”

“그러면 현재 바탈 스톤이 나타남으로 아수라님이 말한 것이 모두 사실인 게 되었군요.”

“그래. 오운족은 오랜 시간 바탈 스톤을 기다리는 자들이라고 했었지. 하지만 단 한 번도 본 적도 없고 만져 본 적도 없다고 했었다. 그저 가문에서 전해져 오는 전설 속 이야기라고 하면서 믿거나 말거나 한번 쪼개보라고 했던 거야. 오운족도 궁금했을 거야.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 말이다.”

“궁금증을 풀기 위한 것이 결국 오운족을 우리나라 최고의 가문으로 만든 것이고 또 전설이 사실임을 입증한 게 된 것이군요.”

“그렇지. 그리고 오성을 세계 초 일류 기업으로 성장시킨 배경이기도 하단다.”

말을 마친 왕종철은 다시 걸음을 우뚝 멈추어 서고는 몸을 돌려 은비사를 바라보았다.

그 이전과는 다른 기운이어서 은비사는 묘하기만 했다.

작은 키로 은비사를 올려다보는 그의 눈이 유난히 반짝였다.

그러던 그가 무언가 자신만 알고 있는 비밀을 말하는 듯 들뜬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런데 말이다 비사야. 우리가 가지고 있는 바탈 스톤이 이 세상에 처음 나타난 바탈 스톤이지만, 그게 보통이 아니라는 게야.”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기를 보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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