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나 때문이라고? 말도 안 돼..

아이신의 말 때문인지 순간 김탄의 팔에 들어갔던 힘이 풀렸다.

목이 느슨해지자 마른기침을 쏟아내는 박토.

그 기침소리 사이로 김탄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흑흑흑흑..”

고개를 떨군 체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던 그가 그대로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체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아이처럼 서럽게 울기 시작하는데, 그걸 듣고 있던 바룬족과 오운족은 가슴이 헛헛해졌다.

하나 어떻게 위로할지 막막했다.

소중한 사람을 잃는 것만큼 큰 고통은 없다.

상실의 아픔은 그 무엇으로도 치유되기 힘들다.

치유제가 있다면 시간뿐.

그 시간도 무뎌지게 할 뿐 사라지게 하지는 않는다.

바룬족 박토와 오운족 아이신과 아수하도 김탄처럼 가장 사랑하는 존재를 잃어 본 경험이 있던 자들이었다.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나 무뎌졌지만 그 아픔은 여전했다.

아수하가 김탄의 곁으로 다가와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그의 어깨를 한 팔로 감싸며 입을 열었다.

“김탄. 미안해.”

잘못한 것도 없는데 사과를 한 아수하 때문에 울음을 멈춘 김탄이 고개를 들어 아수하를 쳐다보았다.

김탄은 엄마 잃은 아이처럼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고 입술은 그가 처한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는 듯 파르르 떨고 있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 애처로운 마음이 든 아수하가 그녀의 두 팔로 그를 꼭 끌어안고 다시 사과를 했다.

“미안해. 네 잘못이 아니야. 그러니까 너무 아파하지 마.”

포근한 그녀의 품과 따뜻한 그녀의 말에 김탄은 마음이 풀린 듯 가슴 속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아버지 같았어. 돌아가신 반장님은 정말 아버지 같았다고. 난 고아라서 아버지가 뭔지 몰라. 만약 아버지라는 게 어떤 건지 생각해보라고 하면 난 반장님 같은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어. 세상에 나 혼자 덩그러니 버려진 느낌으로 사는 게 어떤 건지 알아? 지독하게 외로운 느낌을 아냐고..”

격한 감정의 카타르시스인 듯 그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 이전 분노의 짜냄이 아닌 해소의 흐름 같은 눈물.

한편 김탄은 대체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손등으로 훔치고 또 훔쳐도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태어나서 이렇게 눈물을 많이 흘려본 건 처음이었던 그가 다시 입을 떼는데..

“그런데..”

목이 매여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그가 침을 한 번 꼴깍 삼키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데.. 바탈인지 박달인지 뭔지. 그 병신 같은 게 내 모든 걸 가져갔다고.. 다 사라져 버렸어. 다시는 볼 수도 없고 돌아갈 수도 없게 되어 버렸다고.. 흑흑..“

“그래서?”

난데없이 끼어든 박토 때문에 아이신과 아수하가 동시에 그의 이름을 부르며 나무랐다.

“박토!”

하나 엎질러진 물.

김탄의 눈에는 다시 독기가 어리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앞에 주구려 앉은 박토.

김탄이 조른 목이 아팠는지 손으로 목을 연신 쓸어댔다.

그리고는 입을 여는데

“그래서? 지금 네가 원하는 게 뭐지?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된 원인에게 복수하는 것? 아니면 모든 원망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는 것?”

김탄의 얼굴이 다시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하지만 박토를 노려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박토의 말에 수긍을 하고 있었기에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런 그에게 다시 입을 여는 박토.

“원래 운명이란 잔혹한 거야. 운명은 네가 하기 싫어도 그곳으로 밀어 떨어뜨리거든. 벗어나고 또 도망치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소용없어. 지금 넌 그 운명을 부정하는 거야.”

“대체 그 운명이라는 게 왜 하필 내게 온 거지? 다른 사람에게 가면 안 되는 거였어?”

“그건 네가 태어났기 때문이야. 너라는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그게 바로 운명이니까.”

박토의 말에 김탄은 더 이상 듣기 싫다는 듯 눈을 질끈 감았다.

모든 것을 부정하는 듯 보였다.

그러던 그가 다시 눈을 뜨고 박토를 노려보았다.

“그럼 내가 태어났기 때문에 시작된 운명이라는 거야?”

“그래. 그리고 충고하나 하자면 운명을 거부하지 말고 받아들이는 게 덜 힘들다는 거야. 거부하면 거부할수록 네 고통은 더욱 커질 거니까.”

“그런데 그게 왜 하필 나지? 왜 나냐고?”

“그냥 운이 없었다고 생각하고 받아들여. 네가 지금 부정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으니까. 그리고 네가 사랑하던 반장이란 사람도 다시 살아오지 않아.”

박토가 쏟아 낸 말들은 들을수록 참 기분 나쁜 말들뿐이었다.

말로 사람의 기분을 이렇게 상하게 할 수 있다니.

아픈데 더 아파 보라고 바늘로 찌른 것처럼 박토의 말은 김탄의 가슴을 후벼 파 아리게 했다.

그러던 그가 시간이 지나 부정의 감정이 극에 달하자 또다시 분노가 솟구치기 시작했다.

참을 수 없었던지 김탄이 그대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박토의 멱살을 잡았다.

“미친 X끼. 입만 열면 다야? 네가 내 심정을 알아? 소중한 사람을 잃어 본 심정을 아냐고!”

“알아. 나도 예전에 소중한 사람을 잃었어. 그러니까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거야. 바로 네 회사를 폭파시킨 그들에게 내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누나까지 모두 몰살당했어. 난..”

갑자기 박토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옛 기억을 떠올린 박토는 순간 울컥하는 마음에 울음이 나올 것만 같았다.

차마 울 수는 없기에 입에 힘을 주고는 삼켰다.

그리고는 제 손으로 김탄이 잡은 멱살을 풀며 못다한 말을 다시 이어갔다.

“그러니까 네가 이렇게 힘들어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는 거야. 나도 한 때는 너와 같은 일을 겪었으니까.”

비슷한 아픔을 겪었다는 박토의 말은 김탄의 마음을 또다시 헤집어 놨다.

가족의 몰살을 직접 목격했던 박토였다.

그도 자신이 겪은 과정을 고스란히 겪었던 것이란 생각에 김탄은 이상하게 위로가 됐다.

하지만 그렇게 냉정하게 말할 수 있는 데에는 오래 전 일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지금 김탄은 아직 그만큼의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

아픈 건 사라지질 않았다.

그가 다시 침울해지자 박토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첨언하자면 날아오는 미사일은 네가 막을 수도 있었어. 김탄.”

아닌 밤 중에 홍두깨.

날아오는 미사일을 막을 수 있었다니.

그때 당시 그 미사일을 봤지만 김탄이 막을 수 있었던 게 절대 아니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에 김탄이 물었다.

“뭐? 막아?”

“그래. 만약 내가 그때 너를 찾고 네게 바탈이 될 걸 제의했을 때, 네가 바로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그랬다면?”

“모두를 살릴 수 있었어. 각성을 빨리 할 수 있게 되는 거니까. 그렇다면 네 능력이 향상 됐겠지. 또한 그 능력으로 날아오는 미사일도 막을 수 있었을 테고 말이야. 하지만 넌 내 제안에 또 우리의 이야기에 부정하며 피하고 싫어했었다. 그러니까 네가 죽인 거다. 바로 그런 너의 소심함과 나약함이 결국 너의 소중한 친구들을 잃게 만든 거야.”

김탄의 동공이 사정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박토의 말에 마음이 무너지고 있는 중.

정말 그의 말대로 빨리 바탈이 된다고 승낙했더라면.

그로 인해 빨리 바탈이 되었다면.

모두를 살릴 수 있었다.

순간 김탄은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실수인 것 같아 눈앞이 캄캄해졌다.

부정하고 싶은 마음 때문인지 가슴에서 찌릿한 통증도 느껴졌다.

-믿을 수 없어.. 내가 죽인 거라니.. 숨이 쉬어 지질 않아..-

김탄은 고통스러운 듯 손으로 가슴을 부여잡고 가쁜 숨을 쉬었다.

누가 봐도 극악의 스트레스에 노출된 모습.

그런데 그런 그에게 박토가 또다시 소리쳤다.

“네가 죽인 거야! 김탄!”

쿠궁.

김탄의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듯 가슴이 조여왔다.

그런 그가 더 이상 서 있을 수 없다는 듯 힘없이 바닥으로 주저 앉았다.

그대로 몸을 웅크린 체 흐느끼는 김탄.

세상을 외면하는 듯 고개를 파묻은 체 들썩이는 그의 어깨에서 그가 지금 느끼는 고통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었다.

그런 김탄을 말없이 바라보던 박토는 김탄에게 미안했다.

모두 그의 입에서 쏟아낸 칼날 같은 말은 그가 일부러 쏟아 낸 말들이었기 때문이다.

-조금만 버티면 된다. 김탄. 지울 수는 없지만 아물게는 되니까.-

지금 속에 있는 이 말을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던 박토.

그도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 또한 김탄 같은 아픔을 겪었던 자다.

한 번 겪어 봤기에 그 슬픔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을 김탄보다는 잘 안다고 생각해서였다.

차라리 아픔을 내면 깊이 묻어두는 것 보단 억지로라도 터뜨려 승화시키길 바란 박토의 마음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쏟아낸 말이었지만 박토 또한 가슴이 아렸다.

애잔한 눈으로 김탄을 바라보며 미안해 할 때 갑자기 그의 귀로 아이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냉혈한 ..”

-그래, 그렇지. 내 맘을 모르고 듣는다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아이신 네가 그렇게 말한다는 건 용납할 수 없다.-

박토가 화가 난 듯 인상을 쓰며 아이신을 돌아봤다.

그러자 다시 두 눈을 부라리며 입을 여는 아이신.

“냉혈한 악마.”

“나한테 한 소리인가?”

“그럼 여기에 악마 같은 냉혈한이 너 말고 누가 있지?”

아이신의 말에 박토의 눈매가 무섭게 변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이 집에서 쫓아내겠다는 듯, 그렇게 무서운 얼굴로 변한 박토가 아이신에게 되물었다.

“뭐? 지금 뭐라고 했어? 악마 같은 냉혈한?”

막상 하고 싶은 말을 내 뱉은 아이신이었지만 심상치 않은 박토의 표정에 질겁한 그가, 할 말은 많은데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는 듯 고개를 돌려 박토의 시선을 외면했다.

지금 그는 박토를 그냥 무시하고 있는 중이다.

마치 김탄에게 쏟아낸 폭력과도 비슷한 박토의 말 때문에 그를 사람으로 대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을 대변하는 듯 시위를 하는 모습이었다.

그의 행동에 더욱더 얼굴이 굳어진 박토가 입을 열었다.

“너희들 입에서 그런 소리도 나올 줄은 몰랐다. 냉혈한이라고 욕을 하다니.”

박토의 말에 갑자기 아수하가 대꾸했다.

“그게 아니야. 박토. 아이신은 그렇게 꼭 냉정하게 직설적으로 얘기해야 했냐고 말하는 거야. 욕한 게 아니야.”

“상관하지 마. 바탈에 대한 건 내 영역이야.”

“그래도 이렇게 마음 아파하는 김탄에게 꼭 대놓고 그렇게까지 얘기할 필요는 없었잖아.”

-배달석이나 찾으러 돌아다니지. 오운족 놈들.-

바룬족의 거처에 삐대놓고선 이젠 하다 하다 바탈의 일까지 관여하는 오운족에게서 성질이 뻗친 박토.

-대체 언제부터 니들이 바탈을 챙겼던 거냐?-

“봤지? 폭주가 아니니까 당장 꺼져! 그리고 너희들이 내게 그런 말 할 자격은 없다고 생각해.”

박토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갑자기 아이신도 덩달아 버럭 소리를 쳤다.

“알았어! 사라져 주면 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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