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내추럴 본 네임은 파이온.

은비사가 전화기를 꺼내서 확인하니 왕종철이었다.

이름을 보자 등에서 식은땀부터 흘렀다.

분명 실험에 대한 결과가 궁금해서 한 전화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의 얼굴이 난처하게 변했다.

그리고 그는 깊은 심호흡을 한 후 수신 탭을 밀어 왕종철의 전화를 받기 시작했다.

“네. 회장님. 아직 실험 중에 있습니다. 자세한 건 만나 뵙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이쿠, 죄송합니다.”

말을 마친 후 손목에 찬 시계를 보는 은비사.

예상보다 실험이 길어졌다.

그는 실험 때문에 왕종철과의 약속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5분 내로 출발하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회장님.”

왕종철과의 통화를 종료한 은비사는 서둘러 손짓을 하며 책임 연구원을 불렀다.

그가 헐레벌떡 뛰어와 그의 앞에 서자 은비사가 말을 했다.

“여기까지 하십시오. 박사님.”

순간 난처한 얼굴로 변한 책임 연구원.

“아니 왜죠? 저는 계속하는 게 더 좋을 듯싶습니다만..”

“제가 어딜 가야 합니다.”

“아, 그러십니까? 그렇다면 상관 없습니다. 어차피 결론을 도출하는 실험이니 비사 님이 계시지 않아도 저희가 알아서 마무리를 하겠습니다.”

그의 말에 은비사의 눈이 가늘어졌다.

책임연구원의 의견에 동의하기 싫다는 뜻.

그러자 눈치 빠른 책임 연구원이 서둘러 다시 입을 열었다.

“아, 그럼 다시 실험을 재개할 시간을 정해서 연락을 주십시오. 그때까지 개별 데이터에 대한 주파수 재구성에 대한 작업을 다 마쳐 놓겠습니다. 그때 비사 님이 오시면 이렇게 기다리지 않고 바로 투사만 하면 되니까요. 더 좋게 된 것 같군요.”

“좋습니다. 그럼.”

표정이 밝아진 은비사 때문에 책임 연구원 또한 한껏 표정이 풀렸다.

은비사는 그런 그에게 가벼운 목례를 하곤 의자에 걸쳐 놓은 재킷을 집어 들어 출입구로 향했다.

무언가 다급한 듯 빠른 걸음으로 걷던 그가 들고 있던 재킷을 입는 모습을 보고 책임 연구원이 나지막이 혼잣말로 읊조렸다.

“참. 싸가지는 없는데 더럽게 멋있네.”

말을 마친 책임 연구원은 불룩 튀어나온 자신의 배를 한참 동안이나 바라보았다.

아마도 비교를 하고 있는 중.

그러던 그가 무언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새침한 표정을 짓더니 두 손을 배를 팍팍 친 후 다시 연구를 하기 위해 발길을 옮겼다.

***

퍽!

소리만 들어도 타격감이 세 보였다.

김탄의 주먹에 배를 맞은 아이신은 그대로 뒤로 나가떨어져 방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상당히 아픈지 떼굴떼굴 구르는 아이신에게 김탄은 이성을 완전히 잃은 듯 온몸을 부르르 떨며 소리쳤다.

“말해! 누가 그랬는지!”

분명 말을 하면 화내지 않는다고 약속해 놓고는 주먹질부터 해대는 김탄이 원망스러웠던 아이신.

“이봐. 김탄 진정부터 해. 화내지 않는다고 약속했잖아. 그런데 이렇게 말도 하기 전에 때리면 안 되는 거 아냐?”

아이신의 물음에 김탄은 답을 하지 않고 몸을 돌려 아수하를 쳐다보았다.

이번에는 아수하를 때릴 심산인 것 같다는 생각에 아이신이 질겁해 소리쳤다.

“말하면 화 안 낸다고 했잖아! 때릴 거면 나만 때려! 아수하는 건드리지 말라고!”

“그래 그랬었지. 하지만 이렇게 해야 너희들이 거짓말을 하지 않을 거 아냐!”

김탄은 곧바로 오들오들 떨고 있던 아수하를 번쩍 들어 박토가 서 있는 소파 쪽으로 집어 던지며 소리쳤다.

“왜 그들이 사람들을 죽이고 나를 못살게 구는지 말하라고!”

날아오는 아수하를 본 박토는 본능적으로 몸을 피했다.

사실 그는 머리와 몸이 따로 논 상태.

저대로 소파에 떨어지면 아수하는 상당히 아플 것이다.

그렇게 생각은 했지만 왜 몸은 그녀를 피하느라 움직이고 있는지 그도 참 신기했다.

결국 소파에 떨어진 아수하.

그대로 반동에 의해 방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입에서 터져 나온 단말마.

“윽!”

소리로 봐선 상당히 고통스러워 보였다.

정말 그렇다는 듯 아수하가 아픈 허리를 손으로 잡고 힘겹게 몸을 일으킨 후 박토를 째려 보았다.

마치 자신을 받아 주지 않고 피한 그를 원망하는 듯한 시선을 느낀 박토는 그대로 고개를 돌려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그가 고개를 돌리자마자 그의 시야에 잡힌 모습은 아수하가 다친 것에 격분한 아이신이 두 주먹을 앞세우며 김탄에게 돌진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으아아아아! 김타아아안!”

-안돼! 싸움이 나면 안 된다! 김탄이 폭주하면 이 집은 날아간다.-

이 생각에 화들짝 놀란 박토가 아이신에게 소리쳤다.

“김탄의 화를 돋우지 마! 집에서 쫓겨나고 싶지 않으면 멈춰!”

곧바로 멈춘 아이신.

원망이 가득한 얼굴로 박토를 쳐다보았다.

무언가 불합리한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서 있는 그의 멱살을 갑자기 김탄이 다가와 잡았다.

그래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아이신.

박토를 쳐다보는 그의 얼굴이 울상이 되어 버렸다.

그런 그에게 김탄을 자극하지 말라는 듯 고개를 가로젓고 있는 박토.

그런 그를 본 아이신의 가슴 속에서는 천불이 났다.

순간 그의 멱살을 움켜 쥔 김탄의 팔에 힘이 들어가자 아이신은 체념을 하듯 두 눈을 감았다.

마치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견한 듯 초연하기까지 한 상태.

역시 김탄은 그를 들어 올리더니 그대로 바닥에 내리 꽂았다.

“말해! 당장! 누가 그랬는지! 너희들은 알고 있다며!”

아이신은 낙법 훈련을 어릴 때부터 지겹도록 해왔다.

하지만 이번엔 그걸 써먹을 수 없었다.

머리부터 내리 꽂았기 때문이다.

목이 꺾이지 않는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이었다.

하지만 무지 아팠는지 아이신이 고통스러운 듯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리고 그의 가슴속에서 치민 울화.

왜 박토가 파이온과 오운족이 내통을 하고 있다는 걸 김탄에게 말해 자극을 한 건지.

잠시 감춰둬도 좋은데 굳이 이야기를 꺼낸 박토의 의도가 설마 오랜 가문의 원한에 대한 앙갚음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그가 박토를 확 째려보았다.

박토는 태연하게 팔짱을 끼고 이 사태를 관망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 가슴 속에 더욱더 화가 일어난 아이신.

그가 몸을 일으키려 하자 갑자기 박토가 눈짓을 했다.

그 의미를 살펴보니 어디를 쳐다보라고 한 것.

그가 그곳을 향해 고개를 돌리니 거기에는 김탄이 있었다.

그런데 김탄이 거실 한 편에 놓여 있던 서랍장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방향과 거리를 봐선 그대로 아이신에게 던질 심산인 것 같다는 계산에 깜짝 놀란 그가 다급하게 김탄에게 다가가 그의 발에 매달리며 애걸했다.

“제발. 그만해. 화내지 않는다고 약속했잖아!”

아이신의 애절함이 통했는지 김탄이 들어올린 서랍장을 방바닥에 툭 집어던졌다.

장정 둘이나 들어야 들 수 있을 것 같은 서랍을 저렇게 가볍게 던지다니.

저 주먹에 맞으면 한 두 번은 버티겠지만 그 이상은 골로 갈 게 분명하다.

“정말이야. 다 말할 게. 알고 있는 건 다 말할 테니 그만 화 내. 김탄.”

“그럼 거짓말 하지 않는다고 약속해!”

아이신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김탄이 다시 다그쳤다.

“그럼 말해! 당장.”

“실은 정확히는 우리도/”

퍽!

김탄의 주먹이 그대로 아이신의 안면을 강타했다.

아이신은 눈 앞에 반짝이는 별이 보였다.

순간 옆으로 파랑새도 지나가는 듯.

맞아 죽어 저 세상으로 갈 때 보는 새인가?

그가 혼미해진 상태로 정신을 헤매고 있을 때 갑자기 묵직한 가슴의 느낌에 정신을 차려보니 그의 가슴팍에 김탄이 올라 타 앉아 있었다.

김탄은 보기만해도 지금 당장 주먹으로 후려갈길 태세였다.

말하라고 해서 말을 했건만 시작하기도 전에 이렇게 때리려고 하는 김탄을 이해할 수 없었던 아이신.

배달석을 찾는 일만 아니라면 지금 당장이라도 여길 벗어날 수 있겠지만..

그 놈의 배달석은 무조건 찾아야 한다.

사명은 목숨까지도 버려야 하는 숙명.

박토의 집에서 절대 쫓겨나서는 안 되는 아이신은 그저 두 눈을 감고 김탄의 주먹을 맞았다.

퍽! 퍽! 퍽! 퍽! 퍽!

아이신의 얼굴을 주먹으로 사정없이 후려치는 김탄의 모습에 박토는 살짝 소름이 끼쳤지만, 저런 곤조야말로 히어로로써 악당을 물리치기 위해 가져야 하는 필수 덕목.

그 사실에 그가 희미한 미소를 지을 때,

그의 옆에서 사랑하는 쌍둥이 오빠 아이신의 처참한 모습을 목격하고 있던 아수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말하려고 했는데 왜 때리는 거야!

“그거야 너희들이 거짓말을 할 수도 있으니까! 그러니까 당장 말해!”

구라 예방 차원에서 선 폭력이라니.

일단 기선을 제압한다는 듯 아님, 아예 거짓말을 하게 되면 이보다 끔찍한 일이 벌어질거라는 걸 암시하는 듯 김탄의 주먹질은 사정없이 계속 되었다.

남일이라도 이런 장면은 솔직히 끔찍한 장면.

그러할진대 아이신의 가족이자 배달석 지킴이로써의 영원한 동반자 아수하는 어떻겠는가?

제 얼굴이 아픈 듯 괴로움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녀도 어쩌지 못하는 상황.

대체 김탄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길래.

말을 하기도 전에 아이신을 저리 줘 패고 있는지 알 수 없었던 아수하.

시간이 지나 아이신의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기 시작하자 그녀는 그녀도 모르게 김탄에게 소리쳤다.

“파이온! 그들의 이름은 파이온이야!”

순간 주먹질을 멈춘 김탄.

그가 그대로 고개를 돌려 아수하를 쳐다보았다.

곧바로 무슨 사달이 나야 하지만 김탄은 아무 말 없이 그저 그녀를 노려보기만 했다.

그 살기 어린 강렬한 그의 눈빛에 아수하가 겁을 집어 먹고 고개를 숙이자, 옆에 서 있던 박토가 그녀에게 물었다.

“파이온? 그들의 이름이 파이온이라는 거야?”

“그래. 파.. 파이온이라는 세력이야.”

훗~

박토는 아수하의 말에 비웃음부터 나왔다.

“그 파이온이라는 자들이 진짜 오운족과 친분 좀 있는가? 이름까지 알고 있다니..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대체 너희들 어디까지 그 세력과 연관 되어 있지?”

박토의 물음에 답을 하는 게 아니었다.

불 난 데 부채질 하는 듯 한 그의 질문에 아수하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차라리 김탄과 대화를 할 걸..

집안 원수와의 대화는 절대 유리하지 않다.

그 생각에 침울해진 아수하가 눈을 내리깔고 방바닥을 쳐다보며 눈물을 흘렸다.

나름 내놓아라 하는 집안의 고명딸로 남부럽지 않게 호의호식하며 살던 그녀에게 배달석이 나타나자마자 맞이하게 된 시련과 고난.

이래서 어렸을 때부터 무술 훈련을 지독하게 시켰는가 보다.

그러나 그 무술 실력은 지금 써먹지 못한다는 사실에 회한의 감정마저 느낀 그녀.

그대로 방바닥에 엎드려 통곡하기 시작했다.

저작권자 © 불교공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