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었던 자에게 실망하다

일단 박토는 아이신의 소리 없는 말을 잘 알아 들었다는 듯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박토의 모습에 아이신은 안도의 한숨부터 내쉬고는 김탄의 뒤에서 그의 팔을 잡고 있는 여동생 아수하를 쳐다보며 눈으로 얘기했다.

[아수하. 박토가 말하지 않을 것 같아. 내가 부탁했더니 알았다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빛 대화에 아수하 또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한편 묻는 말에 대답은 안 하고 오운족과 꽁냥꽁냥거리는 박토의 수상한 모습에 화가 난 김탄이 갑자기 성질이 아주 많다는 듯 버럭 소리를 지르며 채근했다.

“말해? 그들이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거짓말하지 않는다면 알 수 있다는 게 뭔지? 대체 누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거야?”

위기일발.

아수하와 아이신은 지금 절체절명의 순간이다.

박토가 한마디만 뻥긋하면 이들은 요단강을 넘어 저 세상으로 가게 된다.

절박해진 그들이 박토를 애절하게 쳐다보며 고개를 옆으로 가로 젖기 시작했다.

“말해 당장! 누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면 이야?”

김탄이 다시 소리치자 박토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입을 뻥긋했다.

“하아~ 바로 널 잡고 있는 두 사람.”

“뭐?”

쿠쿵!

김탄이 깜짝 놀라 박토에게 되묻는 것과 동시에 오운족 아수하와 아이신의 심장은 아래로 덜컥 내려앉았다.

그러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그들.

김탄의 폭주를 막기 위해 계속 잡고 있어야 하는지 살기 위해 잡은 손을 놓아야 하는지.

아주 갈팡질팡 하는 모습이 보는 이 마저 어지럽기까지 했다.

그런 그들을 처량하게 바라보던 박토가 순간 냉정하게 외면하며 김탄에게 마저 입을 열었다.

“널 잡고 있는 두 사람이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누구인지 알게 되겠지. 연관이 되어 있으니까..”

“뭐? 뭐라고?”

김탄은 자신의 인생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그들에 대해서 알고 있는 자가 바로 코 앞에 있다는 사실에 지금 혼선이 왔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게 이런 걸 뜻하는 걸까?

만나면 지금 당장이라도 죽일 수 있을 것 같은 그들이라 불리는 세력과 연관이 있다는 자신의 다리를 를 붙잡고 있는 아이신을 김탄이 무서운 표정으로 내려다보았다.

정말 연관이 있는 건지 그는 고개를 숙인 체 벌벌 떨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김탄의 말에 아이신이 시키는대로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아이신의 눈에는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눈빛으로 내려다보고 있는 김탄의 얼굴이 보였다.

시간이 지나자 김탄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새빨갛게 변했고 입은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누가 봐도 분노 폭발 직전의 모습.

엔트로피 최고조 상태였다.

김탄의 그런 모습에 아이신은 그의 다리를 잡고 있던 손을 슬그머니 풀기 시작했다.

김탄의 상태로 봐선 조만간 발길질이 시작 될 거라는 걸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아이신이 손을 다 풀기도 전에 아수하가 김탄의 팔을 탁 놓았다.

분명 먼저 선수를 칠 모양새.

의리 없이 먼저 내빼려는 이란성 쌍둥이 여동생 아수하에게 크게 실망한 아이신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수하야. 정말 이러기야? 내가 다리를 잡고 있잖아! 뒤에 있는 네가 먼저 풀면 어떡해! 나는 앞에 있잖아!”

“미안해. 아이신. 어쩔 수 없었어. 나는 지금 너무 무서워.”

돌아온 그녀의 대답에 아이신은 그저 절망에 빠졌다.

그와 동시에 아수하의 배신으로 인해 두 손이 자유로워진 김탄은 속전속결로 아이신의 멱살부터 잡았다.

곧 지옥의 스파링이 시작될 터.

아이신은 곧 다가올 미래를 바꾸고자 오들오들 떨며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저기.. 저기.. 김탄.. 내.. 내 말 좀 들어 봐.”

이 말이 통했는지 김탄은 곧바로 그를 내동댕이 치지 않고 그의 대화에 반응했다.

“만약 거짓말을 하면 바로 죽여 버리겠어.”

고개부터 끄덕이는 아이신.

그 속도가 상당히 빨라 사람이 아닌 기계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마.. 말을 할 건데 대신 듣고 너무 화내지는 마. 넌 폭주하면 절대 안 되니까..”

김탄은 일단 대화의 물꼬를 트겠다는 듯 아이신의 잡은 멱살을 풀었다.

“알았어. 그런데 대체 그들은 누구지?”

***

오성 알앤디 센터 지하 운석 연구실

차갑고 단조로운 이 공간에는 상당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오늘 시행하는 아주 중요한 테스트 때문이다.

기존의 성질과는 다른 바탈 스톤 연구 테스트.

이전의 연구는 바탈 스톤의 구조, 재질 그리고 어떤 기능에 대한 테스트였다면 오늘 하는 실험은 바탈 스톤을 열기 위한 실험이었다.

그로 인해 항상 분주했던 연구실엔 극소수의 연구자들만 있었다.

그리고 그 연구자들이 지금 모두 초 집중하고 있는 곳.

바로 특수 제작된 투명 유리막의 공간.

그 안에는 신비한 돌 바탈 스톤이 여전히 제 몸을 뽐내듯 공중에 떠 있었다.

그 돌을 바라보는 모든 연구원들은 긴장한 듯 보였다.

그 연구원들 사이로 은비사가 있었다.

그 또한 바탈 스톤을 바라보는 모습이 진지하고 신중했다.

갑자기 멀리 있던 연구원 하나가 다급하게 뛰어와 은비사에게 입을 열었다.

“준비가 다 끝났습니다.”

그의 말에 알아들었다며 살짝 고개를 끄덕인 은비사.

다시 바탈 스톤을 쳐다보는 그의 눈빛은 그 전보다 더 긴장했다는 듯 매서워졌다.

그런 표정으로 바탈 스톤을 바라보던 은비사가 나직이 입을 열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Biological signal 투사 테스트 시작.”

나지막이 내뱉은 은비사의 말은 인이어로 흘러 들어가 확성기를 통해 공간 가득 울려 퍼졌다.

비사의 명령이 실험실에 울려 퍼짐과 동시에 시작된 첫 번째 실험.

“타입 A. Biological signal. 대상 오브젝트에 주파수와 빔 발사. 셋. 둘. 하나.”

실험실 가득 음성이 울려 퍼지자 한 쪽 공간에서 기이한 소리가 들렸다.

지이이잉.

함수 발생기를 통해 생성된 주파수가 바탈 스톤에 투사되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 주파수는 빔과 같이 쏘아 주파수가 투사되는 그 시작과 끝을 알 수 있었다.

모두가 그 빔이 맺힌 바탈 스톤에 집중했다.

순간 신기하게도 그 빔에 반응을 하는 것처럼 바탈 스톤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이것은 바탈 스톤이 명백히 주파수에 반응한 것.

바탈 스톤의 겉 표면에 새겨진 이상한 기호들의 일부 색이 바뀌기 시작했다.

즉, 바탈스톤의 형태인 정육면체에서 원래부터 나오고 있던 하얀 빛의 면 중 2면이 초록색으로 바뀌었다.

가시적인 변화에 은비사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첫 번째 실험은 성공이었다.

그 미소에 화답하듯 곧이어 연구실에 울려 퍼진 음성.

“타입 A. Biological signal. Test. Exact. True!”

성공에 대한 확정의 소리에 연구원들이 물개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바탈 스톤을 열기 위해 밤을 새우며 연구한 연구원들의 자축.

하나의 실마리가 풀리자 이 공간에 들뜬 기운과 기쁨이 넘처흘렀다.

“역시, 바탈의 생체 신호가 열쇠였습니다. 비사님.”

책임 연구원의 말에 은비사는 마치 흥분한 듯 그 연구원의 어깨를 잡고 한껏 고무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됐습니다. 모두들 고생 많았습니다. 이렇다면 일사천리입니다. 그럼 곧바로 타입 B 테스트를 시작하죠.”

은비사의 말에 책임 연구원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곤 수신호를 했다.

그러자 실험실 가득 울려 퍼지는 음성.

“타입 B. Biological signal. 대상 오브젝트에 주파수와 빔 발사. 셋. 둘. 하나.”

지이이잉.

타입 B의 생체 시그널 주파수가 바탈 스톤에 투사되기 시작했다.

실험실 안에 있던 모든 연구원들은 숨을 죽이며 그 둘의 상호 작용의 반응을 기다렸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첫 번째 실험과 같은 반응은 없었다.

그래서 모두가 침묵 중.

시간이 한참 지나도 바탈 스톤에 변화가 없자 조바심이 난 듯 책임 연구원이 입을 뗐다.

“반응이 없습니다.”

“아닙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보십시오.”

명백한 테스트 실패지만 인정하고 있지 않는 은비사였다.

그런 그 때문에 연구원들은 그저 말없이 반응 없는 바탈 스톤을 바라보기만 했다.

상당한 시간이 흐른 후.

은비사가 체념한 듯 말을 뱉었다.

“그만.”

그와 동시에 실험실에 울려 퍼지는 음성.

“타입 B. Biological signal. Test. Exact. False!”

이내 여기저기에서 아쉬운 탄식의 소리가 쏟아졌다.

실험의 실패에 대한 쓰디쓴 안타까움의 소리였다.

지금까지의 실험에서 첫 번째 성공했던 주파수는 이미캐의 생체 신호였다.

오성 알앤디 지하에 깊숙한 곳에 있는 실험실에서 직접 수집한 데이터였다.

그러나 두 번째 주파수는 김탄이 죽었던 병원 응급실에서 확보한 생체 신호 데이터였다.

심전도, 호흡, 맥파 같은 생체 신호 모듈에서 측정한 데이터를 이곳 실험실에서 재구성한 주파수.

같은 생체 신호였지만 반응은 달랐다.

그렇다면 측정 방법과 장소 때문이다.

그 사실에 불안함을 느낀 듯 은비사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다시 한번 투사해 봅시다. 타입 A가 한 번에 성공했던 건 운이 좋아서였을 겁니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뭔가 구성에서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책임 연구원의 말에 은비사는 흥미를 느낀다는 듯 두 눈썹을 추켜올렸다.

그러자 마저 말하는 책임 연구원.

“단일 데이터 값으로 변경해서 주사하겠습니다. 하나씩 제거하면 어떤 게 진짜 열쇠인지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일리 있는 말이다. 여기서 주저하는 것보다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렇게 하는 게 현명하다. 그리고 김탄을 잡는 것보단 빠르다.-

은비사는 책임 연구원의 말대로 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곧바로 부산하게 움직이기 시작한 연구원들.

미캐의 생체 신호와 김탄의 생체 신호의 다른 값을 찾으려는 듯 보였다.

상당한 시간이 흐른 후.

단일 데이터 값을 들고 온 연구원들은 다시 바탈 스톤을 열기 위한 실험을 재개했다.

“타입 B. Biological signal. Test. Exact. False!”

“심전도 데이터 값이 아닙니다.”

책임연구원이 실망한 듯 읊조리자 은비사의 얼굴도 굳어졌다.

실패다.

“그럼 다음 데이터 값으로 테스트해 보죠. 자, 모두들 집중합시다.”

김탄의 맥파 데이터 값으로 재구성한 주파수를 바탈 스톤에 투사했지만 그 어떤 변화도 없었다.

미련이 남은 듯 실패를 인정한지 않던 연구원들은 계속 기다려 봤지만 한참의 시간이 흘러도 바탈 스톤은 변화가 없었다

공간에 에코가 울려퍼젔다.

“타입 B. Biological signal. Test. Exact. False!”

“이런, 호흡 데이터도 실패입니다. 이것도 아니군요. 비사님.”

“포기하지 마십시오. 김탄의 모든 단일 생체 데이터를 투사하십시오. 그러면 어떤 결론이 도출되겠지요. 분명 방법은 있을 겁니다.”

지루한 실험 과정에서 은비사의 격려는 연구원들을 더욱더 부산하게 만들었다.

격려 차원에 한 말이지만 그 말 속에는 그의 집요한 성정이 들어 있었다.

즉 오늘 이 실험을 절대 멈추지 않을 거라는 의지의 발언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생각대로 매끄러운 실험이 진행되지 않아 변해 버린 은비사의 굳은 얼굴은 그걸 더욱더 말해주고 있었다.

연구원들의 부산한 틈 사이로 혼자 움직임이 없는 은비사는 지금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예언에 등장하는 바탈.

김탄과 이미캐.

이 둘의 생체 시그널이 바탈 스톤을 여는 열쇠라는 가정이 맞아떨어졌다.

하지만 하나는 성공했고 하나는 실패했다.

단지 이 이유만으로 은비사가 고민에 빠진 건 아니다.

그가 깊은 생각에 잠긴 건 무조건 실패하는 게 아니라 무조건 성공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

그 이유는 오직 은비사만 알고 있는 비밀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의 동생 은비칼도 예언 속에 등장하는 바탈이라는 사실.

세 개의 생체 신호가 있어야 열 수 있는 바탈 스톤.

그는 이미 두 개를 확보한 상태였다.

그러나 현 시점에 그것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

그는 동생 은비칼을 무조건 보호해야만 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일단 지금 김탄의 생체 신호 중 바탈 스톤을 여는 부분을 알아낸다면 다음은 일사천리다.

그렇다면 모든 게 해결이 되는 것.

문제는 김탄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은비칼의 생체 신호를 드러낼 수는 없기에 그가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

그래서 그는 반드시 김탄을 찾아야만 한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르는 김탄을 찾아야만 한다는 생각에 은비사는 살짝 초조해졌다.

무조건 김탄의 생체 신호 중 개별 데이터 값으로 주파수를 재구성하는 게 맞아 떨어져야 한다.

그가 조바심이 난 듯 연구원들의 작업을 지켜보고 있을 때, 갑자기 전화기 진동벨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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