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이 가져다 준 프로젝트 종료. 이제 살 것 같다.

-그렇다면 이 모든 건 계획된 작업이다. 분명 형과 연관되어 있는 게 분명하다. -

그 생각에 갑자기 은비칼은 수치심이 불쑥 치밀어 얼굴이 화끈거렸다.

-일단 이 문제에 대해선 더 이상 걸고 넘어가지 말자. 계속 파헤쳤다가 오강심 씨와 나채국 씨가 알게 되면 큰일이다.-

은비칼은 하고 싶은 말을 감추려 잠시 머뭇거리다 다른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아, 잘 됐습니다. 정말 잘 됐어요. 그럼 이제 더 이상 우리가 김탄을 찾지 않아도 되는 걸로 생각되는군요.”

은비칼의 말에 오강심이 걸려 들었다.

더 이상 야근과 밤샘은 없다.

김탄은 경찰이 찾아줄 것이기 때문이다.

오강심이 너무 초롱초롱해진 얼굴로 은비칼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그렇습니다. 실장님. 대한민국 공권력의 힘은 무섭습니다.”

오강심의 말에 나채국 또한 걸려들었다.

그도 지금 경찰이 너무 고마운 순간이었다.

“맞아요. 제 아무리 김탄이라도 경찰의 수사망을 피할 수는 없을 거에요. 전 국민의 감시망도 마찬가지고요. 대한민국에 이제 김탄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요.오늘 이후로 모든 사람들의 관심은 김탄에게 향할 거예요. 관심은 자유를 빼앗는 강력한 힘이 있죠. 그럼 이제 그 관심으로 김탄이 잡히는 일만 남은 거에요. 그리고 우리도 이제 밤샘 작업을 하지 않아도 되는 거죠. 그렇죠? 실장님.”

나채국의 말에 은비칼은 심히 공감한다는 듯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도 세상의 종말을 막기 위해 불철주야 김탄을 찾느라 상당히 지쳐있었던 터.

물론 일은 그의 부하들이 다 했지만 그도 정신적 고통으로 인해 피폐해져 있었다.

일을 시키는 것 또한 고된 일.

이제 그것에서 해방이 된다는 생각에 몸도 마음도 홀가분해진 은비칼이 환의에 차 입을 열었다.

“아, 예. 그렇습니다. 이제야 정상적인 근무 패턴을 되찾을 수 있게 되는군요. 그동안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나채국 씨. 오강심 씨.”

짝짝짝짝짝!

나채국과 오강심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모두 기뻐서 그랬던 것.

그들이 박수를 치자 은비칼도 덩달아 박수를 쳤다.

그러다 문득 갑자기 은비칼의 박수 소리가 느려졌다.

그가 무언가 석연치 않다는 듯 말을 뱉었다.

“그런데 말이죠. 왜 극비로 찾으라던 상부의 지시가 어째서 대공개로 전환됐는지 알 수 없군요. 만약 김탄의 능력을 알게 된다면 세상 사람들이 큰 혼란이 오게 되는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일 텐데 말이죠. 이상합니다.”

은비칼의 말에 나채국은 짜증부터 났다.

“어휴~ 너무 걱정이 많으시네요. 실장님. 생각도 많으시고요. 그냥 단순하게 생각하세요. 우리가 찾던 아님 누가 찾던 세상의 종말을 막는다는데 더 의의를 두면 되잖아요. 중요한 견 우리에게 저녁이 있는 삶이 오는 것이죠. 정말 기쁜 일 아닌가요?”

정말 행복해 하는 나채국이었다.

그의 행복에 오강심도 덩달아 행복해졌다.

“하. 저는 저녁이 있는 삶까지는 바라지도 않았습니다. 적어도 밤을 새우는 일이 없는 걸로 대만족! 그래도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간만에 이 프로젝트 팀에 화사한 기운이 넘쳐흘렀다.

이 모두 김탄 찾기로 인한 매일 반복되는 자정 너머의 퇴근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지치고 힘들었던 이들에게는 경찰이 대신 김탄을 찾는다는 일은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었다.

“정말 말도 안 되게 이번 프로젝트가 종료되었군요. 상부에서 연락도 받지 않았는데.. 아무튼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서 저도 참 기쁘군요. 하하하하.”

말을 마친 은비칼은 환하게 웃기 시작했다.

지금 그는 우연히 찾아온 프로젝트 종료에 감사한 마음뿐이다.

그런 그를 보고 있던 나채국과 오강심은 아무것도 한 것 없는 은비칼도 나름 고충이 컸던 모양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인정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저렇게 웃고 있는 걸로 봐선 정말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한 그들도 은비칼을 따라 웃기 시작했다.

지독하게 찾기 힘들어 악랄했던 김탄 찾는 일이 주는 스트레스.

거기에서 해방감을 맛 본 오성 아이디시 룸 특별 극소수 극비 프로젝트팀 일원인 은비칼, 나채국 그리고 오강심.

이들은 이 일을 맡은 이래로 이렇게 가장 행복하게 웃고 있는 중이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세 사람이 동시에 상황실 모니터 띄어진 김탄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지긋지긋한 얼굴. 이제 더 이상 보지 않아도 된다.-

세 사람 모두 회한에 잠긴 듯 웃음을 멈추고 말이 없었다.

모두 각자 김탄 찾기 때문에 힘들었던 일들을 회상하는 듯 보였다.

그러던 갑자기 나채국이 무언가 씁쓸하게 말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이럴 땐 실장님. 참 우리를 힘들게 했던 김탄이지만 어쩌면 그사람을 미워해야 하는 게 아니라 고마워해야 하는 게 맞는 거 같아요.”

나채국의 말에 살짝 놀란 은비칼이 그에게 물었다.

“아니, 왜죠?”

“저렇게 스스로 나타나 방화를 해 줬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김탄 찾는 일에서 벗어나게 된 거잖아요. 하지만 희생자가 있어서 안타까워요. 참, 누군가의 불행이 다른 누군가의 행운이 된다는 게··· 이런 걸 아이러니라 하겠죠?”

나채국의 말에 순간 모두의 얼굴이 침울해졌다.

말 그대로 아이러니.

죽음은 슬픈 것이다.

하나 그 죽음이 다른 어떤 이에게는 기쁨이 될 수도 있다.

희생은 고통이다.

하지만 그 희생이 어떤 이에게는 행복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

아니 행복을 불러온다.

어쩌면 세상은 이런 역설의 아이러니 속일지도 모른다.

“팀장님 말씀에 백 퍼센트 동의합니다. 신우프로텍 화재가 우리에겐 기쁜 일이지만 희생자에겐 슬픈 일이죠. 조금 전까지 해피해서 웃었던 게 좀 그렇습니다. 그런 의미로 잠시나마 희생자의 명복을 빌어야 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오강심은 손을 가슴에 얹고 두 눈을 감은 체 신우 프로텍 화재로 숨진 희

생자에게 명복을 빌었다.

그런 그녀가 이해가 가지 않았던 나채국.

-그저 그런 생각만 하면 끝이지, 굳이 저렇게 명복을 빌기까지 해야 하나? 우리 때문에 희생당한 게 아니지 않은가? 모두 김탄이 저지른 방화 때문이지.-

하지만 나채국은 자신의 생각을 믿지 않았다.

혹시나 자신의 생각이 잘못 됐을까 하는 생각에 그가 은비칼을 돌아보았다.

그도 오강심처럼 희생자들에게 묵념하고 있는지 확인해 보고 싶어 그랬던 것.

-이런, 그도 묵념 중이다. 그렇다면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자신이 틀린 거다. 인정할 순 없었지만 은비칼과 오강심 둘 다 그러니 따라 할 수밖에..-

나채국은 묵념을 하기 전 슬쩍 김탄의 사진을 째려보았다.

모두 그가 저지른 방화 때문에 일어난 참사.

가슴에 손을 올리고 눈을 감아 본 나채국.

아무 느낌이 없었다.

그냥 대충 묵념하곤 눈을 떴다.

주위를 둘러보니 은비칼과 오강심도 눈을 뜨고 있었다.

그럼 그들이 그가 묵념을 하고 있던 걸 봤다.

그래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나채국이다.

그러나 은비칼과 오강심은 나채국에 반해 여전히 심각한 얼굴이었다.

분명 신우프로텍 화재는 기쁜 일이지만 기뻐하지 못하고 있었다.

-잠시 남의 일이라 생각하면 끝인데 저렇게 까지 공감을 하며 마음을 아파하다니..-

나채국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아이러니라는 게 어떻게 보면 모든 일에 통용되는 일일지도 몰라요. 세상에 아이러니 없는 일이 어디 있을까요? 다만 그 치우침이 다를 뿐이지..”

나채국의 말에 은비칼이 맞장구를 쳤다.

“그건 마치 아군이었는데 알고 보니 적군이었다는 뜻 같군요. 혹은 적군이어서 제거를 했는데 알고 보니 아군이었다 뭐 그런 거겠죠?”

진진한 은비칼의 말에 나채국은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은 체 전면 상황실 모니터에 보이는 김탄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희생자에 대한 슬픔 때문인가?

오늘따라 유독 시크하고 지적이게 보이는 은비칼의 모습에 나채국은 심히 혼란스러웠다.

처음 보는 은비칼의 모습이었다.

게다가 가끔 흔들리는 그의 눈동자가 보여주듯 그의 머릿속이 복잡해 보였다.

또한 그로 인해 상당히 불안해 보이기까지 했다.

단지 희생자 때문에 저런 모습을 보이는 건 아닌 것 같다.

아무리 아이러니 속 상황이지만 남 일이기에 프로젝트 종료에 대한 행복감이 더 큰 게 맞는 상황.

어쩌면 지금까지 했었던 묵념 또한 그 행복을 만끽하기 위한 심리적 위안의 수단이었을지도 모른다.

정말 괴로워하고 있는 은비칼의 이질적인 모습에 나채국은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오강심을 쳐다보았다.

-실장님. 왜 저래? 마치 지가 죽인 것처럼? 나만 그렇게 생각하나? 강심아?-

그의 속마음을 캐치한 오강심.

그녀 또한 나채국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던 터.

하지만 이유를 알 수 없던 오강심은 그저 두 손을 위로 들어올리고는 어깨를 들썩거렸다.

전혀 모르겠다는 뜻.

성과가 없어 괜히 물어봤다고 생각한 나채국은 입을 한 번 삐죽거리고는 다시 은비칼을 쳐다보았다.

그는 간간히 짧을 한숨을 내쉬며 나직이 읊조리고 있었다.

“하. 아이러니라··· 하. 아이러니라.. 하. 아이러니라니..”

***

“이건 음모야.”

아이신의 말이 맞다.

음모.

김탄은 방화범이 아니다.

그 사실에 아수하가 화가 난 듯 투덜거렸다.

“그래. 맞아. 이거였어. 그들이 신우 프로텍을 폭파한 이유가 이거였다고. 바로 김탄을 방화범으로 몰려고 그런 거야.”

아수하의 말에 아이신이 절망에 빠진 표정으로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러던 그가 세상 무너지는 듯 깊은 한 숨을 내쉬고는 박토에게 성질을 냈다.

“토야. 이건 말이야. 경찰을 이용하겠다는 거야. 전국에 내려진 수배령으로 김탄은 완전히 갇힌 꼴이 된 거라고.. 이거 이거 이래서 그들을 이길 수나 있겠어? 안 그래? 박토.”

이제는 저들이 완전 기가 살았다.

조금 전까지 방바닥에 떨어질 뻔한 동그랑땡을 주워 먹던 오운족이 김탄이 뉴스에 나온 것으로 틈을 타 지금 큰 소리를 치고 있다.

그 모습에 박토는 배알이 꼴렸다.

“시끄러워! 빨리 꺼지기나 해!”

박토의 성화에 오운족은 그의 눈치를 다시 보고는 급 찌그러졌다.

다시금 주눅 든 그들의 모습에 만족한 듯 박토는 한 쪽 입을 올린 체 비웃었다.

그리고는 다시 티비 화면을 바라보았다.

지금 박토는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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