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자 선상에서 수배령으로..

“잔말 말고 삼촌이 그러라면 그렇게 해!”

“하지만/”

“그만! 한 마디만 더 하면 진짜 화낼 거야!”

박토가 윽박지르자 그대로 입을 닫은 박월은 삼촌이 정말 치사해 죽을 것만 같았다.

그는 억울하고 화가 났지만 도로 자리에 앉아 포크를 들었다.

말없이 다시 밥을 먹기 시작한 박월은 지금 삼촌인 박토에게 대단히 실망하는 중.

삼촌인 박토는 원래 그가 생각하기에 자상하고 인자한 성격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름 정의로운 말과 행동을 간혹 했었기에 잘 따르기도 했던 박월.

이렇게 치졸하고 치사한 모습에 심히 괴로웠던 박월이 참다 참다 결국 불만이 가득한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바룬의 자손이면서 계속 도와주자고 하면 쩨쩨하게 학습지로 공격하겠지?”

“뭐라고?”

잘 못 들은 박토가 되묻자 갑자기 아수하가 박월 대신 대답했다.

“쩨쩨하게 먹는 걸로 그런다고..”

아수하의 말에 박토는 얼굴부터 일그러뜨렸다.

모두가 자신을 나쁜 사람으로 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 집안을 몰살시킨 집안의 자손에게 어떻게 밥을 먹일 수 있는가? 이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 모두 핏줄을 무시하는 박월 때문이다!-

정말 화가 난 박토는 학습지로 박월에게 복수하고 싶은 마음에 굳어진 얼굴로 박월을 쳐다보았다.

순간 눈이 마주친 박월.

그런데 그가 갑자기 박토의 시선을 피하는 척 다른 곳을 보더니 갑자기 귀신을 본 듯 화들짝 놀랐다.

이 모두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얄팍한 수라는 걸 간파한 박토는 그저 코웃음만 나왔다.

그런데 박월이 또 아까보다 더 놀란 얼굴로 변하더니 화들짝 놀라며 소리를 쳤다.

“어? 삼촌! 저기 탄 아저씨가 나오는데?”

-뭐라고? 의식불명 김탄이 깨어났다고? 이렇게 기쁜 일이..-

김탄이 방에서 나왔다는 박월의 말에 박토는 로또 일등에 당첨이라도 된 듯 기쁜 마음으로 안방 쪽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방문은 닫혀 있었고 김탄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속았다는 생각에 박토가 언성을 높이며

“어디 있는데? 아무 데도 없잖아?”

이렇게 물어보자 박월이 이렇게 대답했다.

“TV 속에 있어.”

그 순간 흐르기 시작한 정적.

박토는 지금 황당하다 못해 어이가 없었다.

하다 하다 사람이 TV 속에 있다는 말로 이 상황을 모면하려는 초딩의 발상의 전환 때문이다.

-이 모두 학습지 공격에 대한 선 방어일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물러서지는 않는다. 박월.-

“뭐라고? 월이 이 자식이.. 너 거짓말 한 거야?”

갑자기 둘의 대화에 아이신이 불쑥 끼어들었다.

“진짜야. 월이 맞아. 김탄이 TV 속에 있어.”

그도 김탄이 TV 속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다.

“뭐?”

얼토당토않는 억측에 박토가 되묻자 아이신이 턱으로 거실 쪽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저길 봐. 진짜 티비 속에 김탄이 있으니까.”

아이신의 말이 끝나자 아수하도 거들었다.

“진짜야. 티비 속에 김탄이 있다니까..”

박토는 순간 지금 엿을 먹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해 봤다.

-모두가 나를 배고픈 자에게 먹을 걸 나눠주지 않은 몰염치한 사람으로 몰았다. 그런데 지금은 모두가 김탄이 티비 속에 있다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거야 말로 빅 엿이 아니겠나?-

이 생각에 차마 거실 쪽으로 고개를 돌릴 수 없었던 박토는 그저 아이신과 아수하를 노려보기만 했다.

“진짜야. 삼촌. 진짜 탄 아저씨가 티비에 나오고 있어.”

월의 말을 듣는 순간 박토는 알았다.

티비 속에 김탄이 있다는 말이 진짜 티비 속에 김탄이 들어 있다는 말이 아니라는 걸.

그가 고개를 돌려 거실 끝에 있던 티비를 바라봤다.

티비가 켜져 있었다.

음량은 작게 설정 되었는지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켜져 있는지도 몰랐던 것.

티비 속에선 앵커가 나와 뉴스를 설명하고 있었다.

그걸 본 박토는 불길한 느낌이 들어 자리에서 일어서 티비를 향해 걸어 갔다.

그가 티비 쪽으로 가까이 갈수록 그의 얼굴은 심하게 일그러졌다.

긴급 속보.

화면에 띄어진 타이틀.

신우 프로텍 화재 사건 용의자 김탄이란 글자가 그의 눈에 확 들어왔다.

-방화 용의자? 김탄이?-

그 사실에 깜짝 놀란 박토는 박월이 소파에 내팽개친 티비 리모컨을 들어 볼륨을 높였다.

<사망자 3명과 경찰 추산 3억 원의 재산 피해를 입은 구로 신우 프로텍 화재 사건은 방화에 의한 화재로 밝혀졌습니다.>

아나운서 멘트가 끝나자 화면이 전환되며 김탄의 사진이 크게 띄어졌다.

아까 이걸 보고 박월이 김탄이 티비 속에 있다고 말한 것 같다라고 생각한 박토는 어이가 없어 살짝 코웃음이 나왔다.

<현재 용의 선상에 오른 인물은 이 회사에서 근무하던 김 모 씨로 현재 긴급 공개 수배령을 내린 상태입니다.>

-수배령이다. 전국에 김탄의 수배령이 내려졌다. 모두 그들의 짓이다.-

박토가 예상했듯 그들은 이미 김탄의 존재도 알고 있을뿐더러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두려움에 박토의 얼굴에 긴장이 흘렀다.

뻣뻣해진 목을 풀기 위해 고개를 돌리다 어느 새 티비 앞으로 다가온 아이신과 아수하, 월이 보였다.

그들 또한 모두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티비를 보고 있었다.

김탄이 저지르지도 않은 신우 프로텍 화재.

그 범인으로 김탄이 지목이 됐고 전국에 수배령이 내려진 지금, 바룬족 박토와 박월 그리고 오운족 아이신과 아수하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서로를 번갈아 보며 쳐다보기 시작했다.

모두 누군가 그 이유에 대해 정확한 설명을 해주기 바라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 이유에 대해 설명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

“김탄이잖아!”

오강심은 깜짝 놀랐다.

단지 스마트 폰으로 뉴스를 보고 있었는데 어느 새 와 있었는지 나채국이 바로 귀 옆에서 소리를 질렀기 때문이다.

어찌나 크게 질렀는지 귀가 따가웠던 그녀는 손으로 귀를 막고는 나채국을 한심한 표정으로 노려보았다.

“야, 강심아. 김탄이야. 김탄이 뉴스에 나왔다고!”

“압니다만..”

“그런데 너는 왜 놀라지 않아?”

“이게 놀란 겁니다.”

“손으로 귀를 막고 있는 게?”

할 말이 없어진 오강심.

모두 방정맞은 나채국의 말과 행동 때문이었다.

-남이 스마트 폰으로 보는 컨텐츠를 훔쳐 보는 예의가 없던 사람이 더욱더 예의 없게 바로 귀 옆에서 소리까지 지르다니..-

매사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 노력하는 오강심으로서는 그를 이해할 수 없는 걸 떠나 혐오감마저 들었다.

그녀의 얼굴이 일그러지자 어디선가 은비칼이 허겁지겁 다가와 물었다.

“아니, 김탄이 나타났다고요? 신호가 잡힌 겁니까?”

사오정도 아니고..

나채국의 그렇게 큰 목소리를 은비칼은 제대로 듣지 못한 것 같다.

분명 뉴스에 나왔다고 소리를 쳤는데 신호를 물어보고 있는 은비칼에게 오강심은 더욱더 일그러진 얼굴로 그의 물음에 대답했다.

“아니요. 실장님!”

“나타난 게 아닙니까? 분명 나채국 씨가 나타났다는 소리를 한 것 같은데..”

“그것은 맞습니다. 단지 신호가 잡힌 게 아니라 뉴스에 나온 겁니다”

은비칼이 오강심의 말에 깜짝 놀라 되물었다.

“아니, 왜요? 다른 데서 잡은 건가요?”

은비칼의 물음에 오강심은 스마트 폰 화면을 그의 얼굴에 들이밀며 입을 열었다.

“아니요. 실장님. 김탄에게 긴급 공개 수배령이 내려졌어요. 그래서 뉴스에 나온 겁니다.”

“하아~ 다행이군요.”

은비칼의 말에 나채국과 오강심은 혼선이 왔다.

잡아야만 하는 사람을 잡지 못했는데 다행이라니..

도대체 여기 실장인 은비칼이 왜 저런 말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나채국과 오강심은 그가 그 이유를 말하라는 듯 동시에 그를 노려보았다.

한편 멀뚱히 쳐다보는 오강심과 나채국에게 당황한 은비칼은 그들의 모습은 은비칼에게 무언가 답을 요구하는 모양새였기에 생각을 했다.

-생각해보자. 분명 이들이 알고 있는데 내가 모르는 게 있는 것 같다. -

순간 그의 머리에 번뜩이며 스친 생각.

동시에 그는 정말 깜짝 놀랐다.

“그럼 여러분들이 신우프로텍에서 찾아낸 그 사람이 정말 김탄이었단 말인가요?”

어 이게 아닌데..

은비칼의 입에서 원하는 말이 아닌 엉뚱한 말이 쏟아졌지만 상당히 의미 있는 말에 오강심과 나채국은 그 이전의 궁금함은 새카맣게 잊어버렸다.

“그러니까 김탄에게 수배령이 내려졌겠죠. 신우 프로텍 방화범으로요. 거기 현장에 진짜로 있었다니까요. 아직도 실장님은 믿지 못하시는 것 같네요.”

나채국의 말에 은비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대로 아직도 믿지 못하겠다는 뜻이었다.

“맞아요. 그 머리칼과 흰 운동화의 일부분이 김탄이란 확실한 증거가 없었습니다. 뭐, 나채국 씨와 오강심 씨는 일반인이 아닌 초인의 힘을 지녔다 주장해 그 작은 단서만 보고 김탄이라고 기정사실화 시켰지만, 이제 보니 여러분들의 말이 맞는 것 같군요.”

저작권자 © 불교공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