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을 위로해주는 따뜻한 목소리

정신없이 일을 하고, 돈을 벌고, 살아내기 위해 살다보면 너무 일찍 어른이 되어버린 경우가 많다. 병약한 부모를 위해, 어린 동생들을 위해, 자기만 믿고 살아가는 아내와 자식들을 위해 그렇게 살다가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대한민국에는 유난히 많다. '소년소녀가장', '개천표 용'이라는 꼬리표를 마음에 품고 살아야 하는 그들은 더 이상 소녀가 아니고 그들을 둘러싼 환경도 더 이상 개천이 아니지만 그네들의 가슴 속 어딘가에는 여전히 가장으로 살고 있는 소녀가 존재하고, 승천을 통해 개천을 황금 연못으로 바꿔야 하는 숙명의 이무기가 존재한다.

 

고아 같은 심정으로 살면서 고아인 줄도 모르는 사람들.
아픈 것을 모르거나 아프다고 말할 줄 모르는 사람들.
하루를 끝내고 자리에 누울 때면
그저 눈 뜨지 않고 가면 좋겠다 생각하면서도
자명종이 울리면 어김없이 일어나 일터로 달려가
웃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

흔히 만날 수 있고,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우리가 그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은 딱히 없고, 제도적으로 이들을 보호할 장치를 만들 수도 없다고 여긴다. 누구도 이 사람들을 구제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김희재 작가는 이런 사람들에게 상처를 조금만 밖으로 꺼내라는 말을 건네기 위해 펜을 들었다. 세상을 바꿀 수는 없어도 조금의 온기는 더할 수 있을 것 같아 시작했다는 노력의 결과물이 바로 이번에 출간된 에세이 「그래 괜찮아 미안해」다. 이 안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평범해 보이지만 말 못할 상처 한두 개씩은 가슴에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래서 더욱 나의 모습 같고, 친구 또는 동료의 이야기 같아 더욱 가슴이 뭉클하게 다가온다. 그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위로할 수 있는 일상 속 처방전은 스스로를 위한 선물이 되기도 하고, 주위 사람을 돌보는 의사로 만들어주기도 한다. 한 권의 책이 만들어낼 수 있는 변화와 감동이란 게 어떤 건지를 잘 보여주는 것이 「그래 괜찮아 미안해」일 것이다.

이해와 공감을 잃지 않는 매력적인 이야기꾼

김희재 작가는 대한민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시나리오 작가 중 한 사람으로 <공공의 적> <실미도> 등 웅장하고 화려한 스케일 속에서도 잃지 않던 '사람의 냄새'는 그녀가 쓰는 책들 속에서도 진하게 느껴진다. 전작 <죽을 때까지 섹시하기>를 통해서는 부모 세대와의 공감을 이야기했고 이번 <그래 괜찮아 미안해>에서는 거울 속 자신, 친구, 이웃 등과의 소통, 교감이 무엇인지를 차분하게 보여준다. 스크린 속 배우들을 통해 보여주던 것들과는 달리 하얀 종이 위의 까만 글자들을 통해 보여주는 색다른 매력은 그녀가 뛰어난 시나리오 작가이기 이전에 '따뜻한 마음을 지닌 사람'이며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이야기꾼이라는 점을 깨닫게 해준다.

지은이: 김희재 / 분야: 비소설 / 펴낸이: 시공사

 

저작권자 © 불교공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