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끼를 굶은 금수저의 비참함, 태어난 이래 처음 겪어 봄.

바탈에 대해 알아보다 발견한 그림 속의 여자 괴물.

그리고 이번에 잡은 여자 바탈.

모두 우연이 아니었다.

천 년도 넘은 그림은 이미 여자 바탈을 예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이런. 이래서 여자 바탈이 나타났구먼. 이게 바로 아수라가 말한 특이점이었어.진짜로 마지막 배달석이라는 게 진짜로 존재했었던 거야. 그 아이를 살려 뒀어야 했어. 이런 날이 올 거라는 걸 알았다면 말이야. 하아. 이를 어쩌나..”

왕종철이 오운족 아수라에게서 전해 들은 이야기.

하늘에서 운석이 떨어지면 바탈이 나타난다.

세 명의 바탈이 나타나는데 그 셋이 모일 때 떨어진 배달석이 마지막 배달석이다.

세 명의 바탈 중 한 명은 특이점이 있다.

그게 마지막 배달석이라는 명백한 증거다.

그 특이점은 바로 바탈 중 한 명이 여자였던 것.

시간차를 뒀지만 분명 세 명의 바탈이 나타났다.

한 명은 20년 전 죽었다.

그래서 이번에 두 명이 나타난 것.

현재 세 명은 동시에 존재하지 않지만 둘은 존재한다.

또한 특이점을 가진 여자 바탈 때문에 이번에 떨어진 운석에 든 배달석은 진짜 마지막 배달석이었다.

이 사실에 왕종철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이미 죽어버린 바탈 때문이었다.

셋이 하나가 되어야 열 수 있는 마지막 배달석.

한 명은 잡았고 또 한 명은 숨었다.

그도 곧 찾아낼 수 있게 된다.

물론 바탈의 생체 시그널이 배달석을 열 키가 된다면야 문제는 없다.

하지만 그 시그널이 키가 아니라면 배달석은 절대 열 수 없다.

그렇다면 더군다나 이미 죽어버린 바탈 때문에 두 명의 바탈로는 마지막 배달석을 열 수 없는 건 자명한 일.

그로 인해 왕종철의 시름은 깊어졌다.

“하아~ 이를 어쩐다..”

또다시 탄식을 넘어선 깊은 한숨이 창고에 울려 퍼졌다.

그 긴 한숨 소리를 잡아먹듯 이내 정적이 흐르고, 그 고적한 정적 사이로 제습기 돌아가는 소리가 윙윙거렸다.

그 후로 왕종철은 시간이 멈춘 듯 움직임이 없었다.

생명 없는 마네킹.

마치 그런 모습으로 힘없이 앉아 있던 그가 의자 팔걸이에 걸쳐 놓은 손가락 하나를 힘없이 들어 올렸다.

그대로 팔걸이에 탁 쳤다.

왕종철이 깊은 생각을 할 때 나오는 버릇인 손가락으로 두드리기였다.

제습기 가동 소리와 함께 그가 손가락으로 내는 소리가 합쳐져 이 공간의 적막함을 더욱 가증시켰다.

깊은 상념에 빠진 듯 초점 없는 왕종철의 눈은 뭇 죽은 자의 눈과도 같았다.

움직이는 유일한 손가락만이 그가 살아 있다는 걸 말해 주고 있었다.

그 손가락이 멈추자 그의 눈에 다시 초점이 돌아왔다.

그리고 그 얼굴에도 미소가 어렸다.

죽어 있던 회색 빛의 얼굴은 다시 살아난 듯 화색이 돌았고 그 기쁨에 겨운 듯 왕종철이 나직이 읊조렸다.

“흐흐흐. 이런.. 이런 걸 아마 운명이라고 하는 게지.. 어쩌면 그것이 원래부터 내 것이었는지도.. 그래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거야. 마지막 배달석은 반드시 열릴 거야. 왜냐하면 우연이 아니니까.. 그래, 그렇다면 생체 시그널이 정답이다. 그것 또한 나를 위한 운명인 거야. 내 말이 틀림없어. 바탈의 생체 시그널이 정답이야. 그래서 마지막 배달석은 내 것이야. 으흐흐흐흐.”

***

“내 거야!”

박월이 소리지르자 박토가 그를 노려보았다.

버르장머리 없는 자식.

삼촌한테 바락바락 대드는 통에 심기가 불편한 그는 지금 젓가락으로 동그랑땡을 집고 있었다.

그 젓가락을 박월이 포크로 막고 있었기에 박토가 화가 나 있던 것.

마지막 남은 동그랑땡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 식사 시간 동안 이 동그랑땡이라는 걸 단 한 번도 먹지 못했었다.

나름 어른이라 양보를 했었지만 마지막 남은 동그랑땡은 그가 정말 먹고 싶었기에 이렇게 집은 것인데..

그런데 이기적인 박월이 지가 먹겠다고 포크로 가로 막고 있는 상황이다.

절대 양보할 수 없었던 박토가 소리쳤다.

“무슨 소리야! 내가 먼저 찜 했어!”

“먼저 채 간 사람이 주인!”

박월이 말을 마치자 마자 포크로 박토의 젓가락을 툭 밀어내고는 동그랑땡을 푹 찍자 박토가 젓가락으로 잽싸게 막았다.

“아직도 젓가락질을 제대로 못하는 주제에.. 어딜 들이대?”

그래서 포크로 동그랑땡을 찍지 못한 박월은 지금 기분이 상당히 나쁘다.

그런데 젓가락질을 못한다 구박까지 하고 있는 삼촌에게 자존심이 상한 박월이 포크를 박토의 눈에 잘 보이게 들어올리며 소리쳤다.

“난 포크질이 더 좋아! 빠르잖아!”

“한국사람이면 젓가락질을 해야 돼. 젓가락질이 더 정교한 거 몰라?”

“그래도 난 빠른 게 좋아. 봐.”

말을 마친 박월은 그대로 재빠르게 포크로 동그랑땡을 찍어 자신의 입으로 가져갔다.

그 순간 젓가락이 다가와 포크가 박월의 입 속으로 들어가는 걸 막았다.

그래서 동그랑땡을 못 먹게 된 박월이 무척 당황해 박토를 홱 째려보았다.

“비겁하고 치사해!”

박월의 말에 정말 그렇다는 듯 비열한 미소를 짓는 박토.

그러던 그가 어이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예의도 없는 놈. 동그랑땡 7개 중에 6개를 네가 먹었어. 그건 비겁하고 치사하지 않아? 마지막 남은 동그랑땡이야.”

“아니. 난 치사하지 않아. 왜냐하면 난 성장해야 해. 삼촌은 다 컸잖아. 더 이상 많이 먹을 필요 없어!”

말을 마친 박월은 박토가 젓가락으로 막고 있던 동그랑땡을 입에 넣으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쉽지 않은 상황.

어른의 힘을 아이가 제압하기가 힘들자 짜증이 난 박월이 안간힘을 썼다.

그러자 박토가 포크를 잡고 있던 젓가락을 자신 쪽으로 잡아당기며 소리쳤다.

“이 자식이 그만 처먹어! 너만 먹니? 나도 먹어야지.”

“싫어. 내가 먹을 거야. 난 동그랑땡 진짜 좋아해.”

절대 동그랑땡을 뺏기고 싶지 않은 박월.

박토와의 힘 싸움에서 안 되는 걸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동그랑땡을 입에 넣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그러나 그런 아귀 같은 모습에 부화가 확 치민 박토.

맛 좀 보게 양보하면 안 되나?

나도 어른이지만 또 네 양육자이지만 맛있는 건 안다고!!

“나도 먹고 싶다고! 이 자식아!”

버럭 소리를 지른 박토는 그대로 팔에 힘을 주어 젓가락을 앞으로 잡아 당겼다.

점점 포크가 입에서 멀어지자 화가 난 박월이 악마 같은 표정을 지으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내가 다 먹을 거야! 이거 치워!”

“이 이기적인 자식이. 한국 사람이면 콩 한쪽도 나눠 먹어야 한다고 가르쳤잖아!”

“나는 글로벌 사람 할 거야!”

“글로벌 사람은 이기적인 거냐?”

“그래!”

이렇게 옥신각신하며 박토와 박월은 동그랑땡 쟁탈전을 계속 해댔다.

젓가락과 포크의 밀고 당기기.

시간이 지나자 진짜 전쟁을 치르는 듯 감정까지 폭발하게 된 두 사람.

“삼촌 나빠! 치사해!”

“어린놈이 싸가지 없기는!”

“어른이 무슨 욕심이 그렇게 많아! 돼지 같아! 삼촌!”

“상생과 나눔을 가르치려는 거야! 조그만 자식아!”

동그랑땡을 서로 먹겠다고 밀고 당기는 포크와 젓가락의 싸움은 멈추었다.

대신 검술로 변질됐다.

포크와 젓가락의 찌르고 막기.

그에 따른 금속성 소리가 식탁에 가득 울려 퍼졌다.

그러니 포크에 매달린 동그랑땡은 처절하게 너덜거리기 시작할 수밖에.

순간 포크에 단단한 속살에 꽉 잡혀 있어야 하는 동그랑땡은 너덜 해졌기에 포크와 젓가락의 부딪힘에 속절없이 포크에서 빠져 나와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날아오른 동그랑땡을 동시에 쳐다보는 박토와 박월.

허무함이 가득한 눈빛이었다.

분명 바닥으로 떨어질 터.

그 전에 잡기란 불가능한 상황.

바닥에 떨어진 걸 도로 주워 먹을 수 없었던 박토와 박월이 허무함에 사뭇칠 때 순간 누군가 슬라이딩을 하며 그 동그랑땡을 잡았다.

아이신이었다.

마치 펜스 밖으로 넘어가려는 야구공을 공중 점프해서 잡아낸 수비수가 된 듯 아이신의 얼굴에 기쁨이 흘러 넘쳤는데 왜 그의 입에선 침이 주룩 흘러내린 걸까?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박토가 그의 주접스러움에 두 눈을 감자 그의 귓속으로 아이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마워. 박토.”

그 소리에 눈을 뜬 박토가 아이신을 쳐다보니 그는 감격에 겨운 듯 입을 오물거리고 있었다.

지금 그는 동그랑땡이 흙 바닥에 떨어졌어도 주워 먹을 사람 같은 모습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신은 어제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박토와 박월의 아침 식사에 초대 받지 못한 오운족 아이신과 아수하는 그저 부엌 한 귀퉁이에서 그들의 식사를 말없이 구경하고 있었다.

바룬족은 오운족에게 식사를 하는 동안 단 한 번도 밥을 먹으라는 소리를 하지 않았을뿐더러 눈길조차 주지 않았었다.

그런 오운족에게 바닥에 떨어질 뻔한 동그랑땡은 신이 주신 기회.

그 기회를 놓치지 않은 아이신은 지금 행복하다.

평소 같으면 쳐다보지도 않았을 저급한 동그랑땡이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오성급 호텔 최고급 식사보다 달콤했다.

-고소하고 또 고소하고 또 고소하구나. 동그랑땡이란..-

아주 잘 사는 그는 서민 음식은 잘 먹어 보지 못했다.

냉동 동그랑땡은 태어나서 처음 먹어보는 것.

만약 가문에서 알았다면 억지로라도 토해내게 하고야 말 일이기도 했다.

동그랑땡을 맛본 이후 지금 그는 오운족에서 태어난 걸 원망하고 있었다.

-이렇게 맛있는 걸 이제서야 먹어보다니..-

그런 아이신을 보고 있던 아수하는 원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맛있는 걸 혼자 먹은 아이신을 보자 분노도 일었다.

그녀 또한 그와 함께 어제 저녁부터 굶고 있던 터.

그런데 그가 동그랑땡을 혼자 먹는 모습에 배신감이 든 그녀는 화가 났다는 듯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왜 입에선 침이 흘러내리고 있는 걸까?

'다시 한 번 동그랑땡 쟁탈전을 해 줬으면', 이런 마음으로 아수하가 식탁을 바라보자 순간 박토와 눈이 마주쳤다.

박토의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고 그가 왜 그런지 모르고 있기만 했던 아수하는 그저 애절하게 눈으로 말해본다.

-박토. 한 번만 더 해줄래? 이번엔 내가 먹게..-

한편 도대체 아수하가 왜 쳐다보는지 모르겠는 박토는 그녀의 시선이 부담스럽기만 했다.

-침은 대체 왜 흘리고 있는 거냐? 게다가 왜 눈은 왜 또 게슴츠레 한 거냐? 혹시.. 너도 아이신처럼 받아 먹고 싶은 것이냐? 훗, 그건 안 되지. 오운족은 바룬족 철천지원수다! 너희들은 어쩔 수 없이 머무르게 했지만 영원한 불청객일 뿐이다.-

한 집에 있는 것도 달갑지 않은 상황인데 밥까지 먹일 수는 없었던 박토는 아수하의 시선을 그대로 냉랭하게 외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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