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_ 용의자 X

솔깃한 한대수의 말에 이희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한대수 앞으로 와 그의 손에 들린 담배 갑을 달라는 듯 손을 내밀자 한대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담배를 넘겼다.

그녀는 건네 받은 담배 갑에서 담배 하나를 꺼내 입에 물고 말을 뱉었다.

“한대수 경사님을 눈 감아주는 대가로 저도 눈 감아 주십시오.”

얕은 미소를 짓는 한대수.

이희수가 비흡연자일 거라는 그의 예상이 엇나갔기 때문이다.

담배를 태우기 시작한 이희수는 담배 연기가 싫은 지 인상을 썼다.

그런 그녀의 표정에서 의아함을 느낀 한대수가 그녀를 빤히 쳐다보자, 그녀는 담배 한 모금을 깊이 빨아들인 후 휴지통으로 가 한대수가 먹고 버린 음료 캔을 꺼내 그 속에 꽁초를 집어넣었다.

치직 담뱃불 꺼지는 소리가 들렸다.

겨우 두 모금만 빨고 담배를 꺼버리는 그녀의 행동에 의아했던 한대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자 그녀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우리는 공범입니다. 아셨죠?”

순간 너털웃음을 짓는 한대수.

“하하하하. 담배를 피지도 않는데 일부러 피신 겁니까?”

“아니요. 필 줄 아는 데 끊은 지 오래됐어요.”

“아 그렇습니까?”

이 사건으로 둘 사이에 어색한 초면의 기류가 가시게 되었다.

어떤 묘한 동질감을 느낀 듯 이들을 다시 테이블로 가 자리에 앉았다.

그 이전과는 다른 친밀감도 있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뜬금없는 이희수의 질문에 한대수는 두 눈만 끔벅거렸다.

잠시 그녀의 질문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던 그는 시간이 조금 지나자 조금 전 자판기 앞에서 나누던 대화의 연장선임을 깨달았다.

-성격이 참 급하고 저돌적인 여자다.-

이 생각에 웃음이 난 한대수는 살짝 웃으며 그녀의 물음에 답을 하기 시작했다.

“그 사람 아파트 대출 상환금 때문에 힘들어 하긴 했지만 그런 걸로 자살까진 하지 않을 사람이에요. 그것보다 더한 상황에서도 늘 웃고 쾌활한 모습을 잃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한마디로 멘탈이 강한 사람이죠. 그 외에 김정구 경장이 걱정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제가 아는 한에서는 말이죠.”

이희수는 지금 한대수가 하는 말을 미리 꺼내 놓은 작은 손수첩에 끄적거리고 있었다.

괜히 신경이 쓰인 한대수는 그녀의 노트를 흘낏 쳐다보았지만 도무지 알아볼 수 없는 필체였다.

외모만 남자 같은 게 아니라 필체까지 남자 같다.

그녀가 펜을 쥐고 있는 손등에 굳은 살이 눈에 들어왔다.

원 펀치 쓰리 강냉이의 파급을 낼 정도의 주먹이었다.

살짝 겁에 질린 한대수가 그녀의 손에서 시선을 떼고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왜 말을 멈췄냐는 듯 그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당황한 한대수가 어물쩍거리다 다시 말을 이었다.

“김 경장이 인기가 없는 분과지만 나름 성실히 근무하고 있었고 가정생활도 원만히 잘하고 있었죠. 그런데 뭐가 아쉬워서 자살을 합니까? 그래서 저는 자살이 아닌 것 같다고 말씀 드린 겁니다.”

“그렇군요. 저도 그 점 때문에 이렇게 찾아 뵌 것입니다. 자살로 치부하기엔 좀 미심쩍은 부분이 있어서요.”

순간 한대수가 무언가 생각난 듯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탁 쳤다.

그 바람에 깜짝 놀란 이희수가 그를 쳐다보자 아까와는 다른 흥분된 어조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아. 맞다! 게다가 김 경장이 쓴 보고서가 BH로 직행을 했다며 조금 있으면 승진할 거라고 입에 귀에 걸릴 정도로 웃고 다녔거든요. 이건 잔치를 벌일 경사지 않습니까? 그런데. 참. 자살이라니.. 믿기지 않습니다. 아마도 승진을 했다면 활짝 핀 무궁화를 달았을 텐데 말입니다.”

그의 말을 받아 적던 이희수의 표정이 굳어졌다.

-보고서가 청와대로 직행을 할 정도의 파급이 있다.. 그런데 자살이라니.. -

대어 같은 정보였다.

그러나 무엇이든 쉽게 믿지 않는 이희수는 그의 말을 그렇게 달가워하지는 않았다.

그녀가 잠시 한대수를 살펴봤다.

정말로 그는 김정구 경장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듯 보였다.

갑작스러운 예고 없는 죽음을 경험한 자들과 표정이 비슷했다.

허탈함과 절망 그리고 믿기 힘든 부정의 감정의 표출들.

그는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아 보였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다른 사람이 있습니까?”

이희수의 질문에 한대수가 당황하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보고서에 관한 일은 저밖에 모릅니다. 저도 우연히 알게 되었으니까요. 정말 막역한 사이였습니다. 요즘 들어 소원해졌지만..”

“왜죠?”

“모르겠습니다. 언젠가부터 김경장이 저를 피하더군요. 저도 그 이유를 생각해 봤는데 제 직급이 올라간 때부터였습니다. 아마도 자격지심에 저와 소원해진 거라 판단했죠.”

“원한 관계는 아니라는 말씀이죠?”

“아니요. 무슨.. 정말 마음이 쓰이는 친구였습니다. 그 친구가 잘 되길 바랐죠. 그런데 이렇게 허무하게 가버리다니.. 그 친구 승진을 하게 되면 저보다 직급이 높아지는데.. 그럼 저야 좋죠. 빚을 진 마음이 조금은 사라질 테니까요. 친구라는 게 그렇지 않습니까? 같이 가면 좋은데 한쪽이 일방적으로 처지면 힘들어지는 거..”

말을 마친 한대수는 마음이 정말 울적했는지 살짝 눈시울을 붉혔다.

“이렇게 가버리는 거 알았으면 먼저 손을 내밀고 잘해줄 걸 그랬습니다. 사람 일이라는 건 정말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상상도 못 했어요. 그 친구가 이리 가버릴 줄은..”

그렇게 희미하게 말문을 닫은 한대수는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한때 친구였던 김정구 경장의 죽음을 애도하는 듯 보였다.

죽음을 대하는 사람들의 모습.

그것은 모두 같을 수는 없다.

어떤 이에게는 슬픔을 동반하지만 어떤 이에게는 후련함을 남기기도 한다.

또 어떤 이에게는 그저 냉담함을 불러온다.

죽음에 관계된 사람들.

죽음에 관계되지 않은 사람들.

나 그리고 타자와 분리된 세상 속에서 죽음은 그저 하나의 지나가는 사건일 뿐이다.

나와 분리된 어떤 결계의 연속성.

타인의 죽음은 나를 그들과 분리시킨다.

김정구 경장의 죽음에 두 가지 분리가 생겼다.

하나는 상실을 통한 슬픔으로 분리된 한대수의 감정이다.

그는 지금 김정구 경장의 죽음을 통해 자신의 생명 연장에 대한 확인으로 안도하고 있었다.

또다른 하나는 그의 죽음으로 드러나게 된 또 다른 사건에 대한 환희였다.

엉겁결에 한대수가 입에서 쏟아낸 청와대란 단어 때문이었다.

이희수는 지금 단순한 김정구 경장의 죽음을 넘어 거대한 음모론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금 들떠 있었다.

예로부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거대 권력엔 언제나 죽음이 드리웠다.

청와대는 대한민국 최고 권력.

그리고 김정구 경장의 자살과 연결고리가 있다.

단순한 사건에서 시작했지만 어쩌면 그 사건이 거대 권력과 어떤 모종의 연관이 있다는 생각에 이희수는 몸이 살짝 떨려왔다.

“정말로.. 김 경장의 보고서가 청와대로 직행한게 사실입니까?”

“네. 김 경장이 직접 얘기했으니까요. 그 일로 신이 난 김경장에게서 술도 한 잔 얻어 먹었는걸요. 그런데 이렇게 시신이 되어버렸으니 황망하기만 합니다. 젠장할..”

“혹시.. 보고서의 내용이 어떤 건지 알고 계십니까?”

이희수의 질문에 한대수는 무언가 기억을 해내려는 듯 눈알을 이리저리 굴려가며 손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한참을 그러던 그가 무언가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저도 정확히는 잘 모릅니다. 그 사람 특급 정보라고 떠벌리고 다녔지 내용은 얘기하지 않았으니까요.”

한대수의 대답에 이희수는 아쉽다는 듯 입을 모아 한 번 쭉 내밀고는 눈을 아래로 내리 깔았다.

상당히 실망한 모양새.

그렇게 상심에 잠겨 있던 그녀가 무언가를 눈치챈 듯 두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특급 정보라고 떠벌리고 다녔다고요?”

“예. 그랬어요. 어찌나 신이 나 하던지. 사실 보고서를 쓸 때 살짝 엿보긴 했지만 자세한 내용은 저도 모릅니다. 단지 불곡리, 운석이란 단어만 살짝 봤죠.”

“불곡리.. 운석.. 청와대.. 보고서라.. ”

힘없이 중얼거린 이희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운석이라는 단어의 등장에 그녀의 머릿속이 복잡해졌기 때문.

‘운석과 관계가 되어 있다. 그런데 자살이라.. 운석과 김정구의 자살 관계는 불충분하다.’

운석과 청와대를 연결할 고리는 없다.

이번 운석이 떨어진 것에 김정구가 자살을 했다는 것..

그것에 청와대 개입에 대한 이유는 운석과 타당하지 못했다.

그럼 자살이라는 소리.

하지만 미심쩍은 구석이 한 둘이 아니다.

김정구의 자살로 결론 짓기엔 의구심이 너무 많이 들었던 이희수가 다른 연결고리를 찾을 만한 단서를 위해 한대수에게 또 질문을 했다.

“혹시 김정구 경장이 자살 전 누굴 만나거나 연락받은 사항을 알고 계신 게 있습니까?”

“저도 잘 모릅니다. 원체 입이 무거운 사람이고 또 나랑은 별로 친하지도 않았어요. 사실 친했다가 멀어진 사이라고 말씀 드렸잖아요.”

“그렇다면 혹시 주변에 김 경장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 만한 사람이 있을까요?”

한대수가 잠시 생각을 하는 듯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였다.

이희수는 그걸 봐선 정말 그의 말대로 김정구와 한대수의 둘 사이의 관계가 소원해졌다는 말이 사실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가만 보자.. 아, 그렇지. 경인 일보 양평 지사에 조진우 기자라고 하나 있는데 둘이 호형호제하는 사이죠.”

이희수가 즉각 호기심을 보였다.

“경인 일보 조진우 기자 사무실이 어디에 있습니까?”

“양평 시내 사무실이 하나 있긴 한데 가도 볼 수 없습니다. 말만 사무실이지 다른 용도로 쓰이는 곳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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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음을 멈춘 이희수.

눈 앞에 한 건물이 보였다.

주변을 둘러보자 그 건물 옆으로 그리 높지 않은 상가 건물들이 쭉 연결되어 있었다.

양평의 번화가 치곤 주변의 건물들이 상당히 허름했다.

게다가 작은 소도시라 그런지 지나가는 행인들도 드물었다.

양평의 중심가치고는 그렇게 활기를 띠는 곳은 아니다.

그렇게 주변을 둘러보던 이희수가 다시 그녀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의 건물을 바라보았다.

4층짜리 상가 건물 2층 맨 끝으로 작고 초라한 불 꺼진 경인 일보 지사 간판이 보였다.

저곳이 한대수에게 들은 김정구 경장의 지인 조진우의 사무실이다.

한쪽 끝으로 출입문 없이 트인 입구 쪽으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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