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_ 드디어 잡히기 시작한 살인 사건의 실마리

강석민이 부르는 소리에 대통령은 피로감에 지친 듯 움푹 파인 눈을 마지못해 뜨고는 그를 쳐다봤다.

그 모습에 뜨끔했던 강석민은 잠시 말하지 말까 고민하다 다시 입을 열었다.

“한 가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강석민이 무언가 뜸을 들이는 모양새다.

그걸 눈치 챈 임현은 뭔가 불안하다는 듯 더듬거리며 물었다.

“또 뭐.. 뭔가요?”

“양평 운석 도난 현장에 목격자가 있는 걸로 보입니다.”

“목격자?”

순간 등골이 묘연해진 대통령.

극비리에 진행된 운석 도난 사건에 목격자가 생겼다는 말은 또 다른 사건을 불러오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운석을 오성에서 가져간 걸 국민들이 알게 된다면 이 정권은 몰락하는게 불을 보듯 뻔했다.

간당간당 한 목이 똑 떨어지는 기분에 임현의 움푹 파인 눈에 순간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누구인지 압니까?”

“아직 모릅니다. IO가 정보를 제공한 자의 신원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계속 알아보십시오. 무언가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도난 현장을 목격한 자가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정보원에게 정보만 제공했다는 것은 보통 인물은 아니라는 뜻일 겁니다. 그와 대화를 해야겠습니다. 어쩌면 이야기가 통할 것 같군요. 하이고, 이런 참. 이번 사건은 비위에 관계된 게 아닙니다. 단지 국민을 지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비선(秘線)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비위(非違)가 되겠지요. 그렇게 되기 전에 무조건 그 자를 데려오십시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보를 제공한 자는 섣불리 움직이지 않는 자 같습니다.”

“숨었다는 얘긴가요?”

“그건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접촉하려는 걸 알게 된다면 숨겠지요.”

임현의 굳게 다문 입에 힘이 더 들어갔다.

마음의 불안이 무거운 만큼 그의 턱이 더욱 단단해져 가는 모습에 상당히 난처해 하고 있다는 걸 보고만 있어도 느낄 정도.

강석민은 괜한 얘기를 꺼내 그의 심기를 무겁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에 그 또한 표정이 무거워졌다.

또한 번민으로 가득 찬 임현에게 달리 해줄 말이 없었던 그는 그저 말없이 그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깊은 생각에 잠긴 임현의 표정에서 무언가 해결책을 세우기를 기대해 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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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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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생각을 마쳤는지 임현이 말을 걸었다.

“보고서를 쓴 아이오는 누구인지 아십니까?”

“양평 경찰서 정보과 김정구 경장입니다.

“접촉하십시오.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알아야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가 보십시오.”

임현의 말에 강석민은 그에게 가벼운 목례를 한 후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홀로 남겨진 대통령 임현.

지금 그는 천근의 쇠가 가슴을 누르는 듯 답답했다.

지금 상황은 말 그대로 첩첩산중.

그가 대통령이 된 후로 도무지 쉴 틈을 주지 않는다.

자신의 처지가 처량한 지 천장을 바라보다 깊은 한숨을 쉰 임현은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

그 후로 한참이나 그 상태로 있던 임현의 얼굴로 기울어 가는 햇살이 창문을 통해 비집고 들어와 그의 얼굴을 비쳤다.

그래도 눈을 뜨지 않는 임현.

깊은 잠에 빠진 것.

모두 빡빡한 일정과 머리 아픈 사고들이 그의 심신을 지치게 만들어 낸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가 대통령으로서 고달픈 여정을 피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

해질 무렵 보라매 병원.

응급실 앞으로 응급차가 급하게 정차를 했다.

응급 환자가 위독한 듯 구급대원들이 서둘러 차에서 내려 응급 환자를 이송 카트에 싣고는 응급실로 향했다.

응급실 안에서 그 모든 것을 지켜보던 왕종철의 그림자이자 운석 현장 경비 살해자 케이가 서둘러 문을 열어 주었다.

환자를 빨리 응급실로 들어오게 하려 한 그의 배려.

응급대원들이 그를 향해 고마운 눈빛을 보내자 케이가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수고가 많으십니다.”

그의 인사에 응급대원들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응하고는 이동을 계속했다.

그런 그들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케이가 이제 더이상 볼일 없다는 듯 문을 나섰다.

무언가 기분이 좋은지 연신 피식 피식 웃던 그가 갑자기 제 자리에 멈추어 선 후 한 손에 들려 있던 서류 봉투를 쳐다보았다.

그 봉투를 보자 더욱더 기분이 좋아진 듯 미소 짓는 케이.

그가 조심스레 봉투를 열고 CD 한 장을 꺼냈다.

CD에는 Biological signal EMR이란 글자가 쓰여 있었고 그 글자 위에 김탄이란 이름이 적혀있었다.

[김탄의 생체 신호 데이터를 확보하라. ]

은비사가 명령한 일.

그 일을 무사히 마친 케이는 지금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그는 정보를 얻을 때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과 달리 돈 몇 푼에 데이터를 넘긴 병원 관계자를 생각하자 다시금 웃음부터 나왔다.

너무 쉽게 마치게 된 이 일로 케이는 다시 조직에 필요한 자가 되었다는 생각에 나온 기분 좋은 웃음.

흐뭇한 표정으로 CD를 바라보던 케이가 다시 서류봉투에 CD를 넣었다.

그가 고개를 들어 주변을 보았다

기분이 좋으니 세상이 아름다워 보인다.

여느 때 같으면 지나칠 풍경이지만 지금 그의 눈에는 아름다운 동화 속 세상 같았다.

진료 마감 시간이라 그런지 병원 밖 주변으로 하루 일과를 마친 사람들이 집으로 향하느라 부산해 보였다.

모두 각자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느라 바쁜 걸음들이다.

케이도 그들처럼 그만의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다시 걸음을 옮겼다.

성과를 생각하니 세상이 온통 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즐거운 마음으로 고개를 돌리자 빌딩 숲 너머로 기울어가는 긴 햇살이 눈에 들어왔다.

눈이 따가웠던 케이는 재킷 안 주머니에서 선글라스를 꺼내 썼다.

그리고는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다. 기분이 좋을 때마다 나오는 휘파람.

그래서 그랬는지 그가 주차장을 향하는 발걸음마저 경쾌했다.

기울어 가는 해로 드리워진 그의 긴 그림자가 그의 신바람 난 듯한 걸음에 맞춰 땅에서 춤을 췄다.

조금 있으면 해는 완전히 사라진다.

그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듯 황혼의 끝이 붉게 물들며 어둠을 데려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케이 또한 차에 올라 탄 후 그의 앞날의 수직상승을 위해 시동을 걸고 병원을 나섰다.

***

해가 완전히 져 버린 어둑어둑해진 밤.

드문드문 불이 켜진 양평 경찰서 앞 주차장에 승용차 한 대가 정차했다.

차에서 한 사람이 내렸지만 어둑한 밤에 식별하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그 사람이 양평 경철서로 향하자 드디어 가로등 불빛에 드러났는데, 바로 이희수 형사였다.

씩씩한 걸음걸이로 경찰서 앞까지 온 이희수는 잠시 멈추어 선 후 경찰서를 한 번 둘러보았다.

지방 소도시의 경찰서라 그런지 오랜 된 듯 낡고 볼품 없었다.

그렇게 대충 한 번 훑어 본 그녀가 경찰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멀리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혹시, 영동 경찰서 소속 이희수 형사입니까?”

그녀가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짧은 스포츠 머리를 한 볼록한 배에 빈약한 팔다리를 가진 50대 초반의 남자가 복도 끝에 서 있었다.

“한대수 경사님?”

이희수의 물음에 그가 자신이 한대수가 맞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곧 바로 그의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간 이희수는 초면 인사로 손부터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한대수는 돌직구 같은 그녀의 행동에 잠시 살짝 당황했지만 이내 거두고는 손을 잡고 흔들며 입을 열었다.

“일단 저리로 가 앉으시죠.”

한대수가 다른 손으로 가리 킨 곳은 로비였다.

로비 창 가에 기다린 소파가 자리 잡았고 그 옆으로 음료 자판기와 그 앞으로 테이블 몇 개가 놓여 있었다.

이희수는 그녀가 맘에 드는 자리가 있다는 듯 성큼 걸음부터 옮겼다.

그러자 그 뒤를 한대수가 불안한 표정으로 뒤따랐다.

이희수는 자리에 앉자마자 한대수가 앉지도 않았는데 서류봉투에서 김정구 경장의 시신 사신부터 꺼내 탁자 위에 펼쳐 놓았다.

그걸 본 한대수는 인상을 잔뜩 찡그리고는 한마디 툭 내뱉었다.

“성격 급하시네요. 음료라도 뽑아 올 테니 잠시만 기다리시죠.”

한대수가 몸을 돌리고 난 후 음료 자판기를 향해 걸음을 옮기려던 찰나 이희수가 그의 팔을 잡았다.

당황한 한대수가 고개를 돌리자 이희수가 탁자에 늘어놓은 사진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다그쳤다.

“괜찮습니다. 일단 이게 급하니 확인 좀 해 주십시오.”

성격이 참 급한 여자 같다.

마지못해 다시 자리에 앉은 한대수 경사는 그녀가 늘어 놓은 사진 중 하나를 집어 들어 자세히 살폈다.

물 속에 오래 있었던 듯 훼손이 많이 된 사체였다.

그러나 누가 봐도 이 사체의 주인은 김정구 경장이었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 입 주변에 난 커다란 복점과 그 복점에 난 털이 사세가 김정구임을 더 명확하게 증명하고 있었다.

한 때 친밀한 관계를 가졌던 김정구 경장의 죽음은 한대수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물론 이미 소식을 통해 그가 죽었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선명한 김정구의 죽음의 증거를 마주함에 그는 어떤 묘한 상실감까지 느끼고 있었다.

“하이고. 이런.”

안타까운 듯 단말마를 내뱉은 한대수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서 자판기로 걸음을 옮기더니 음료를 하나 꺼내 벌컥벌컥 마셨다.

무언가 가슴에 얹힌 체증을 가라앉히려는 듯 조급하고 다급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한대수는 음료를 다 마셨는지 빈 캔을 휴지통에 툭 던지고는 심호흡을 길 게 한 번 했다.

그리고는 과거를 되새기는 듯 허공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이희수는 그런 그를 유심히 관찰했다.

그는 분명 무언가 믿을 수 없는 표정이었고 무언가 부정하는 심리로 가득 차 보였다.

그녀가 그를 그렇게 살피는 새 한대수는 무언가 결심을 한 듯 마른 침을 한 번 삼키고는 그녀를 돌아봤다.

결렬한 표정에서 느끼지는 걸로 봐서 분명 무언가 말할 게 있는 듯 보였다.

“이건 뭐. 증거는 아닙니다만.. 그냥 제 심경입니다.”

역시 그녀가 예상한 대로 무언가 더 있다.

이희수가 계속 말하라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이자 한대수는 대뜸 주머니에서 담배를 하나 꺼내 입에 물었다.

불안함이 가득하다는 뜻.

그가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이희수를 쳐다보며 말을 걸었다.

“실내에선 금연이지만 이번 거는 눈 감아 주십시오.”

이희수가 허락의 의미로 생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한대수는 담배 한 모금을 깊이 빨아들인 후 훅 내쉬었다.

그로 인해 마음의 준비를 다 마쳤다는 듯 그가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하면 김 경장은 자살할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이건 제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에요. 오랜 지인으로 지내왔기에 아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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