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된 로맨스

주위에 흔히 있을 수 있는 그런 로맨스는 분명 아니었다. 끊임없이 솟구치는 삶의 냄새가 느껴지는 글이란 생각이 들어 다시 그녀에게 메일을 보냈다.

‘당신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좀처럼 의심을 풀 수가 없어요. 나에게 이런 글을 보여주면서 새롭게 써 달라는 당신의 속내가 무엇인지 말입니다. 그런데도 점점 당신에게 빠져들고 있다는 사실 앞에 스스로 놀라고 있습니다.’

나는 매일 그녀의 원고를 읽었다. 더욱 놀라운 일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그녀가 글 속에 보인다는 것이었다. 반짝이는 검은 눈빛이 마치 나를 지켜보고 있는 듯이, 느껴져 가끔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 내일 오전 11시에 클라라에서 기다리겠어요.’

그 날밤, 나는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키보드 좌판을 치는 듯한 소리를 언뜻 들었다. 컴퓨터가 부팅되어 있는 상태였다.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컴퓨터 앞으로 다가갔다. 가라앉아 있던 먼지가 풀썩 일어났다. 문득, 거미 인간 아난시에 컴퓨터가 점령당한 것 같아 알약 테스트 키를 돌렸다. 얼마 전에 거미처럼 생긴 로고를 단 해커들이 하드 속을 난도질한 적 있었다. 이곳저곳을 검색해봐도 모든 게 안전했다.

좀처럼 그녀는 메일을 열어보지 않았다. 해서 다음날 그녀와의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온종일 방에서 뒹굴다가 다시 그녀의 원고를 꺼내 들었다.

* *

집으로 가는 길은 어둡고 음습했다. 나뭇가지에 걸려 있던 물방울이 후두두 떨어졌다. 얕은 산길을 돌아나가자, 전재미 마을이 희미하게 드러났다. 예전의 집을 허물고 그 자리에 5층 빌라가 들어서 있었다. 건물 뒤편으로 지나고 있는 철길뿐이었다. 모든 게 낯설었다. 전재미 마을이 야트막하게 보이는 길모퉁이에서 택시를 세웠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나는 가방에서 선글라스를 꺼내 썼다. 혹여 동네 사람 중에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면 몹시 당혹스러워질 것 같아서였다. 이른 아침에 선글라스를 쓴 여자를 어떻게 봐주어야 할지 모르겠다며 한정수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겠다고 비아냥댔다. 생각해보니 정말 내 모습이 우스웠다. 무엇이 그렇게 겁나느냐 정정당당하게 고향 마을과 마주하라며 타이르는 한정수가 미덥기까지 했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고평오가 아니라, 적어도 나를 염려했던 사람들과 마주칠까 싶어서라고 구차스러운 변명을 했다. 사실 고평오와 마주가 칠까 싶어 매우 겁먹어 있었다.

천천히 전재미 마을로 접어들었다. 그런데 전재미 마을은 이미 다 헐리고 없었다. 그곳엔 5층짜리 연립이 지어져 있었다. 그간의 세월이 얼마인가. 아직도 그때의 건물이 남아 있을 것으로 예상을 하다니, 그런데도 무척이나 마음이 허전했다. 마을 어귀에 있던 느티나무도 이미 베어지고 없었다. 산천만이 그대로였다.

마을을 한 바퀴 돌아 나오는 길에 허물어질 것 같은 건물을 발견했다. 벽이 반쯤 무너지고 지붕마저도 내려앉은 집이었다. 기와가 흘러내려 지붕 속의 흙이 훤히 보였다. 문이 다 떨어져 나가고 없었다. 그곳은 무녀의 집이었다.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마치 무녀의 집은 수문장처럼 그 마을을 지키고 있었다. 마지막 힘까지 처마를 받치고 있는 주춧돌이 마냥 애처로워 보였다. 흉가와 다름없는 무녀의 집이 여태 허물지 않는 이유를 모를 일이었다.

“남은 흔적이라곤 무녀가 살던 흉가뿐이군요. 느티나무도 없어졌고, 다닥다닥 붙어 있던 판잣집도 없어요.”

“정말 을씨년스럽네요. 지언 씨가 이곳에서 자랐다니 믿어지지 않아요.”

이른 시간인 탓에 지나가는 사람이 없었다. 조심스럽게 무녀의 집으로 다가갔다. 누렇다 못해 거뭇거뭇한 벽지가 세월의 흔적을 나타내고 있었다. 법당이었던 방은 지붕에서 흘러내린 비 때문에 새까맣게 곰팡이가 슬어 있었다. 고여있던 악취가 곳곳에서 뿜어져 나왔다.

그곳을 막 빠져나오려는 순간이었다. 발라 출입구 쪽에서 인기척이 났다. 연립주택 정문에서 한 남자가 걸어 나오고 있었다. 나는 얼른 자리를 피해 그곳을 벗어났다. 큰길을 가로질러 가고 있을 때였다. 파란 픽업 한 대가 오고 있었다. 무의식중에 픽업에 타고 있던 남자의 얼굴을 봤다. 낯익은 얼굴이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다름 아닌 고평오였다. 쇠뭉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호흡이 빨라지고, 시야가 흐려졌다. 두 손을 가슴으로 가져갔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 파란 픽업이 사라지는 쪽을 바라보고 멍하니 서 있었다. 그 길은 성당으로 가는 길인 듯 싶었다. 빨간 벽돌로 새 단장이 된 성당이 멀리 산등성이에 있었다.

“그 자예요.”

떨리는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하룻밤을 같이 보냈다고 해서 내 과거를 친숙하게 말하는 내자신이 무척이나 작게 느껴졌다.

한정수가 다가와 내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 남자를 만나러 가요.”

“뭐라고요?”

“보상받아야지요?”

“보상이라니요? 그럼 위자료라도 받으란 말인가요. 곡 모리배 꾼 같은 말을 하는군요. 미안하지만 공소시효도 지났는걸요. 남의 일이라고 함부로 말하지 마세요.”

몹시 화가 났다. 내가 뭔가 착각을 하는 것이 아니냐고 그를 올려다 봤다. 그런데도 한정수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 표정이었다.

“내 말뜻은 사과받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너무 지언 씨가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 같아.”

나는 그의 팔에 이끌려 성당 쪽으로 걸어갔다. 엄마 손을 잡고 구호품을 받으러 가던 그 길이였다. 누렇게 퇴색한 나뭇잎들이 길 위에 떨어져 있었다. 양쪽 길 위에 피어 있는 보랏빛 구절초 꽃들이 부르르 떨고 있었다.

지난날 고평오의 체구가 단단하고 우람해서 몹시 위압적이었다. 그의 몸에서 날리던 비릿한 정액 냄새는 늘 후각을 마비시켰다. 보이지 않는 쇠사슬로 내 모든 의식을 꽁꽁 묶어 깊고 깊은 동굴 속으로 훅 밀어 넣어 버렸다. 그리고 나는 늘 어둠을 찾아 헤맸다. 입고 있는 옷과 신발, 가방 모두가 검은색이었다. 그래야만 숨을 쉴 수가 있었다. 마치 그 당시로 때의 되돌아간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몹시 두렵고, 몹시 불쾌한 느낌이 온몸에서 되살아났다.

성당 근처에 이르자, 파란 픽업은 성당 오른쪽으로 난 길을 향해갔다. 그들의 축사가 있는 곳이었다. 그는 축사 마당에 차를 받쳤다. 고평오가 틀림에 없었다. 아버지를 이어 돼지우리를 운영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괴성을 지르는 돼지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가축 분뇨 냄새가 열린 문으로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왔다. 돼지우리 입구에 이르자, 한정수가 안으로 들어가서 먼저 인기척을 냈다.

작달막한 검은 물체가 안에서 저벅저벅 걸어 나왔다. 고평오가 분명했다. 늘어진 눈가의 주름과 하얘진 머리카락을 빼고는 예전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고평오씨 되십니까?”

“그런데요?”

“잠깐 이야기를 좀 합시다. 나, 이지언 씨 남편이오. 지언 씨를 모른다고 하지는 않겠지요?”

“뭐라고요?”

나는 선글라스를 벗고 고개를 돌려 고평오를 쳐다봤다. 순간 고평오의 얼굴이 새파래지더니 몸을 사시나무 떨 듯했다.

“아주, 잘 사시네요. 당신도 아버지처럼 성당에선 모범적인 가톨릭 신자로 행동하겠지요?”

나를 멍하니 지켜보던 고평오는 아무 말도 못 한 채, 진땀을 흘렸다.

“생각 같아서는 쇠고랑이라도 채우고 싶은데….”

한정수가 거들었다.

“그땐, 내가 너무 어렸고. 술기운 탓에 그만 그런 짓을 저질렀던 거고.”

고평오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구차스럽게 변명을 이어갔다.

“핑계를 대고 그럴 거야. 어서 무릎을 꿇고 지언 씨한테 빌어.”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고평오는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몹시 겁에 질린 눈빛이었다. 나의 어린 시절을 송두리째 앗아간 그 얼굴을 정면으로 내려다보고 있으려니 눈앞이 어질어질했다.

“나는 한시도 너를 잊은 적이 없었어. 그런데 아직도 호의호식하며 잘살고 있었다니 기가 막히는군. 죄를 짓고도 순한 양의 탈을 버젓이 쓰고 살고 있었다니.”

그를 향해 거친 말을 쏟아내는 동안 입술을 부르르 떨었다. 나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안간힘을 쓴 채 버텼다.

“정말 너한테 죽을죄를 지었어. 이렇게 무릎을 꿇고 빌게. 그동안 나도 죄책감에 살았어. 널 만나면 용서를 빌고 싶었어. 이제 새사람 된 지 오래야. 모든 걸 용서해 줘. 흑흑….”

고평오가 정말로 눈물을 흘렸다. 그에게도 눈물이 있었는가를 잠시 생각했다. 눈이 붉게 충혈되도록 눈물을 흘리는 고평오를 뒤로하고 그곳을 걸어 나왔다. 요셉 신부가 있었던 사제관에는 유치원이 들어서 있었다.

가슴이 서서히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뭉클하고 내려앉기 시작한 빛살에 녹아내리고 있었다. 용서라니, 그 한마디에 그동안 켜켜이 쌓인 앙금과 상처가 씻겨질 리 없었다.

나는 천천히 그 길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고평오의 흐느낌을 외면한 채였다. 나는 무거운 걸음으로 되돌아서고 말았다. 고평오와의 얽힌 고리를 풀어버리고 싶은 마음이야 더할 나위 없었지만, 그동안 내가 고통 속에서 허우적댔던, 어쩌면 평범하게 살지 못했던 이유가 마치 고평오와의 관계 때문이란 피해망상증으로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한정수도 담배 연기를 길게 뿜어대며 뒤따라왔다.

“지언씨, 그자의 뺨이라도 후려갈기지 그랬어요.”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어요. 그저 허탈감뿐이었어요.”

전재미 마을을 떠나 읍내로 발길을 돌렸다. 낯익은 흔적이 군데군데 남아 있었다. 가로수로 심어놓은 감나무 이파리가 고개를 들어 올려 봐도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무성했다. 주렁주렁 걸려 있는 감들이 길거리마다 가득했다. 전재미 마을도 감나무가 유난히 많았다.

는개가 모두 걷히고 햇살이 기차역 마당 가득 퍼지고 있었다. 엄마가 마을 사람들 틈에 끼어 소나무 껍질을 끌어모았던 그 자리가 분명했다. 광장은 코발트로 잘 정리되어 있었고, 현대식으로 잘 지어져 예전의 흔적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양심이란 것이

한정수가 공항이 있는 대구로 가자고 했다. 그래서 기차표를 매표소에서 샀다. 출발하려면 40분이나 기다려야 했다. 그와 나는 역사 앞에 있는 식당에서 따뜻한 음식을 먹기로 했다. 역 광장을 가로질러 걸어 식당을 향했다. 그러다 한쪽 구석에 노란색 페인트칠을 한 자전거를 발견했다. 푯말에 붙어 있는 ‘양심이 자전거’라는 명칭이 이색적이었다. 뜻 있는 지방 유지들이 돈을 모아 자전거를 마련해서 거리마다 배치했다는 그 양심 자전거의 노란 색이 자꾸만 눈에 거슬렀다.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다가 다른 보관소에 갖다 놓으면 된다는 설명서를 읽어봤다.

“양심이 있는 자전거, 아이디어는 좋은데 잘 지킬 수 있을까요? 저도 짐만 아니면 한 번 타 보고 싶네요.”

자전거 거치대 안에 몇 대의 자전거가 받쳐있었다. 자전거마다 기증자의 이름이 쓰여 있다. 그런데 고평오의 이름이 발견되었다. 헛웃음이 나왔다. 철저하게 위장하고 살았을 고평오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자전거를 타 보고 싶단 생각이 싹 가셨다.

식당에서 올뱅이 국밥을 주문했다. 국물을 마시자, 속이 따뜻해져 왔다. 온몸이 나른해지면서 졸음도 몰려왔다. 기차 시간이 임박해서 식당을 빠져 나왔다. 막 역사 입구에 들어서려는데 요란하게 오토바이의 굉음이 광장을 뒤흔들었다. 세 대의 경주용 오토바이가 우리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고평오였다. 그가 그렇게 쉽사리 물러날 사람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 집요하게 따라다니던 스토커가 아니었던가. 한정수와 나는 역사 안으로 얼른 들어갔다. 일단은 피하려고 했다. 우르르 몰려든 서너 명의 무리가 우리를 따라와 에워쌌다.

“그렇게 쉽게 떠날 수 있다고 생각했나?”

고평오의 얼굴은 이글거리고 있었다. 노기에 가득 찬 두 눈은 예전 그대로였다. 작달막한 키는 불어난 살 때문인지 더 작아 보였다.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는군. 그 가면을 벗어버리고 내게 달려들어. 예전처럼 짓밟아 봐.”

나는 적개심으로 활활 타올랐다. 역사 안에 있던 사람들의 우르르 모여들었다.

“내 몸을 짓밟아 놓고 버젓이 살았으면 됐지! 예전처럼 날 폭행 해봐! 이젠 그렇게 쉽사리 당하지는 않을 거야!”

나는 목까지 차 있던 울분을 토해냈다.

“조용히 나가서 얘기하자.”

고평오가 모여드는 사람들을 의식했는지 처음과는 달리 주눅이 들었다. 오히려 함께 온 패거리들이 붙어버리자고 들썩였다.

“아니, 이곳에서 해. 관람객이 많으니까 더 신이 나잖아!”

벌컥벌컥 억눌렸던, 가슴에 묻어 두었던 말이 일제히 쏟아져 나왔다. 한정수가 다가와 그만 됐다고 어깨를 토닥거렸다.

“그만 끝내. 아까 당신이 모든 걸 용서해달라고 무릎을 꿇었을 때 끝난 거 아니었어.”

“형씨는 나설 것 없어. 꼭 한마디 해두어야 할 게 있어. 네, 아버지가 죽어서 돌아왔을 때, 국유지라서 이곳 묻을 수가 없었어. 내가 손을 써서 네 엄마 옆에 묻어주었지. 너는 지금 내가 이곳에서 어떤 인물인지 잘 모르는 모양인데, 문둥이 자식 소리 안 들었던 것도 다 우리 아버지가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어.”

“지금 무슨 소리야. 아버지 무덤은 뭐고, 문둥이는 또 뭐야!”

“네 아버지가 왜 떠났는지 아무도 말해 주지 않았나 보지? 너희 아버지는 문둥이였어.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네 가족을 문둥이 보듯 했던 거고.”

“믿을 수가 없어.”

“그래서 우리 집안이 너를 반대했어. 요셉 신부가 네 아버지의 장례를 집전했다고. 사실은 너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어.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을 뿐이야.”

내 아버지가 그런 병에 걸려 있었다니, 두 다리가 후들거렸다. 겨우 의자에 앉아 몸을 기댔다. 주위에 몰려들었던 사람도 모두 떠나가고 없었다. 한정수가 커피를 뽑아왔다. 고평오는 같이 온 일행을 돌려보내더니, 한정수가 건네는 커피를 받아 들었다.

아버지가 전재미로 돌아왔다.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머리가 몹시 혼란스러웠다. 감쪽같이 모르고 살았다니,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아버지가 이곳에 묻혔는데도 전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니…….예리한 칼끝이 마구 가슴을 찔러대는 것처럼 통증이 엄습해왔다.

“언제부터 우리 아버지의 비밀을 알았어?”

고평오는 말이 없었다. 나는 입술을 바들바들 떨었다. 순간 내 손이 고평오의 뺨을 세차게 쳤다.

“문둥이 딸이래서 함부로 했니?”

고평오가 눈을 동그랗게 치켜들고 나를 노려봤다. 적개심으로 불탔던 그 눈빛이 차츰 물빛으로 어렸다.

“몇 살 때부터 모르지만 마을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를 들었어. 너도 알다시피 난 양공주의 아들이었잖아. 사실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는 사생아였어. 내가 너에게 못된 짓을 한 후, 나도 무척 괴로웠어. 그리고 믿을 수 없겠지만, 속죄하려고 너를 찾아다닌 적도 있고.”

고평오는 말을 잊지 못하고 울먹였다. 그를 뒤로하고, 기차를 타기 위해 개찰구 쪽으로 걸어갔다.

한정수와 난 대구 공항에서 제주행 비행기에 올랐다. 한시라도 빨리 요셉 신부를 만나서 모든 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모든 것이 허상, 그 자체였다. 그림자놀이를 나 혼자서 하고 있었단 생각마저 들었다. 술래가 없는 그림자놀이 말이다.

이경

1997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오라의 땅’으로 등단

2002년 동서문학상 단편소설 대상 당선 ‘청수동이의 꿈’

2022년 직지소설문학상 중편소설 최우수상 수상 ‘달루에 걸린 직지’

*저서: 장편소설 『는개』, 『탈의 꽃』, 단편소설집 『도깨비바늘』, 『아름다운 독』,『달루에 걸린 직지』에세이집『아난다가보내온 꽃씨』 출간

*메일 imk08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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