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허스님은 선암사 주지 소임을 살면서 여러 불사를 하였다.

해우소라 불리는 뒷간(깐ㅅ뒤) 수리불사가 기억난다.

그 때 정부기관인 문화부 차관이 도와주려고 돈믈 많이 배정했으니 좋은 새 나무를 써서 확 뜯어고치시라고 말했다.

지허스님은 그 말을 듣고 차관에게 말했다.

"선생께서 이렇게 도우시는 말씀 아주 기쁩니다.

하지만 저는 저희 선배스님들을 따르고 싶습니다."

"아! 누가 따르지 못하게 했나요?"

"저희 윗대 스님들은 이 산 곧 조계산 장군봉 나무를 그대로 쓰고자 했습니다.

빈 집이 오래 가지 못하고 사람 사는 집이 오래 갑니다.

이 산 나무로 집을 지어야 오래 보존되고 아름답습니다.

그러니 썪고 비틀어진 부재만 깎아내고 있던 나무는 잘 지켜줘야 합니다."

그렇게 주장하고 제안해서 지금까지도 그윽한 시설로 이어지고 있다.

그 앞에 흐르는 물통 곧 절구통 세숫대야 같은 물통은 같은 것은 아니지만 엄청난 이야기가 깃든 편의시설이다.

뒷일을 잘 보아야 하고 뒷수습도 잘해야 한다.

깐ㅅ뒤에서 뒷일 보고 나온 비구가 쓸모없는 일이라 생각하여 늘 비치되어 있는 손 씻는 물그릇을 씻어서 뒤집어 놓지 않는 잘못을 저지른데서 한 지역 비구들이 거의 다 휘말려 크게 싸웠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가 전해진다.

자세한 전말은 기록되지 않아서 율장에 있는 내용을 중심으로 내가 사유해서 짐작해본 말이다.

그 비구는 아마도 뒷일을 안 보았을 거라 나는 추측해본다. 그래서 씻을 까닭이 없었고 물그릇을 뒤집을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계율조항 곧 승려들의 규칙조항의 쓰임새와 합리성에 관한 살핌 역시 촘촘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지허큰스님처럼 선암사가 자리 한 조계산 장군봉의 말 없는 가르침 곧 모든 존재가 한 뿌리에서 비롯하였다는 연기의 가르침을 선대 선배스님들로부터 받아서 후대에 이어주고 있는 스님들에 의해서 그 어느사찰보다 생태적인 사찰로 보존되어 있는 사찰이 선암사라고 많은 전문가들이 생각한다. 

그런 선암사에 관한 좋은 느낌이 지구촌 가족들 중  유네스코 문화유산 평가위원들에게도 전해져서 선암사가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 과정에 기여한 많은 이들 속에 함께한 이웃종단 조계종 승려들께도 고마운 마음이다.

오늘 지허큰스님 영결,다비식에 참여하는 분들과 나중에라도 선암사에 가는 분들이 선암사 전각들을 자세히 살펴볼 때 조금 더 사랑스런 마음으로 보면 찾아낼 것들이 많다.

해우소 기둥들 그리고 모든 전각과 전각들의 높낮이도 함께 보면 무엇인가 선암사 특징이 보일 것이다.

이웃 전각들이 만나는 담장들이 꼿꼿하게 만나지 않고 높낮이가 앙징맞은 아이들이나 소탈한 어르신들이 기울러진 어깨를 마주대고 있는 것처럼 높낮이가 서로 다른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거의 모두가 뒷산,옆산 봉우리와 어우러지고 높낮이 다른 담장들과도 딱 부러진 높이가 아닌 맘써 어깨동무한 아이, 어른들의 어깨처럼 따스하게 느껴질 것이다.

칭굉현변스님처럼 자연에 모시는 시절이 아니므로 불가의 전통에 따라 다비식을 모시지만 지허큰스님이 강조하셨던 자연과 다른이와 내가 어울림은 자연스럽고 계율과 수행은 올곧게 함이 바남직하다는 말씀을 이 아침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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