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허스님은 선암사 주지를 할 때는 삼전(三殿)에,선원장을 할 때는 칠전(七殿)의 한 전각인 달마전(達磨殿)에 계셨다.

칠전은 호남제일선원이라 쓴 편액이 입구에 있다.

응진전,달마전,조사전 등 일곱 전각이 있다 해서 칠전이라 하지만 사실은 매우 좁은 방들이 있을 따름이다. 원래 중국 선 사찰 선방은 부처를 모시지 않았다.

전각이라 해도 방인 것이다. 칠전은 북보현 남선암이라 할 수 있는 유명선당이었다. 방,전각이 넓어서 유명한 것이 아니라 도인이 나와야 이름이 높다고 한다. '산이 높아서가 아니라 범이 살아서,물이 깊어서가 아니라 용이 살아서 이름이 높다는 말처럼 우리네 사찰도 그래야 한다'고 지허스님은 말씀하셨다.

 

요즘 선암사 칠전은 아쉽게도 수각이나 가장 좁다 할 산신각이 특이하게 느껴질 것이다. 출가해서 큰절 선암사에 깃들 때부터 차선일미의 선차(禪茶) 만들고, 불조께 공양 올리고 도반들과 마시는 차향의 그윽한 맛을 높이 산 삶이었다.

세세동점의 시기 뭘 알지 못하던 무인들이 동남아시아의 원주민들이 치유제로 마시던 찻잎 삶은물의 효능을 보고 그들의 왕,황제에게 바치려고 큰 배에 실어서 가지고 갔다. 그 시절 몇 달 흐른 세월에 발효한 차를 우려 홍차가 되었다.

"재료를 수탈해 가 팔러온 그들을 보고 일본에서 만든 것이 색깔 대비 녹차지. 사실 녹차는

말차이고 한국인들이 녹차라고 마시는 잎차, 덖음차는 갈차라고 할 수 있지.여러 사람의 손을

거쳤겠지만 내가 선을 배우며 차도 덖던 시절의 선곡스님 등 어른스님들이 징광사 등에서 마셨던 침굉선사의 차를 그리며 공양 올리며 선기를 기른 차가 가마금 잎차라네."

이렇게 말하는 스님의 차 이야기를 들으면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해도 시간이 잘 흘렀다.

"특히나 아직도 잘 보존되어있는 칠전의 차부뚜막은 내가 늘 차덖어 도인들께 올리던 곳인데

주인을 만나야 조사스님들 뵐 낯이 있는데..."하며 담장 밖을 올려다 보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선사가 그리던 침굉선사는 확철대오하여 그 지역 종장으로 여러 절 조실 역할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많은 이야기들이 전하지만 "열반한 뒤 징광사 뒷산에 법구를 두어야지 답ㅣ하면 철천지 원수"라는 열반설법을 하셔서 그렇게 했다고 한다.

그 법구가 생시처럼 생생해서 짐승들은 물론 사람들도 놀라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육신보살

이야기를 담은 <살아있는 부처>라는 책 침굉현변 편에 운제(이영무)스님의 글로 실려있다.

지허선사의 말씀하길 "6조이신 대감혜능선사 때부터 형성된 선가의 전통법맥은 건당(建幢)

법회의 의식을 통해 이어(相續)지고 건당한 이는 법호,당호라는 새 이름을 스승(法師)으로부터

받지.건당식에서 설법은 깨쳐서 새로 법사가 된 건당상좌가 상당설법(上堂說法)으로 선 수행방법 또는 수행 결과 얻어진 소식(境地)를 드러내 후학들에게 전해왔네. 이름이 둘인 까닭이네.

그 뒤 법을 전한 스승은 그저 자기를 살필 뿐 설법하지 않는다네. 이곳 칠전은 상(上)선원으로

구참들이 수행하는 곳이고 심검당(深劍堂)은 하선원으로 신,중참들이 수행하지. 설선당은 설법하는 곳이지. 옛 선종 사찰에서는 수행처인 선당과 설법처인 법당이 있었고 불상은 모시지 않았지. "라고 하셨다.

요즘 건당을 하는지,건당한 이가 설법하는지 궁금하다.

차선일미는 잘 모르지만 '차를 올려야 차례'라 하며, 건당하면 이름이 둘이고 즉설해야 하지만 미리 마련한 말이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 새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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