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_ 여기서 빨리 빠져 나가야 해!

바탈인 김탄은 바룬족 소관이다.

그런데 왜 오운족이 오지랖인 거냐?

박토는 꺼지라고 하는데 꺼지지는 않고 마치 제 가문의 일인 것처럼 설쳐대는 아이신과 아수하 때문에 갑자기 배앓이 꼴려왔다.

“그건 너희들이 신경 쓸 일이 아니지. 빨리 꺼지기나 해!”

악성 갱년기 장애를 앓는 것도 아니고 웃었다가 화를 내는 박토에게 당황한 아이신과 아수하는 그대로 입을 꾹 닫아버렸다.

그런데 어딘선가 갑자기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란 바룬족과 오운족은 모두 그곳으로 재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분명 차는 맞는데 라이트가 꺼진 상태였다.

도대체 무슨 차 이길래 라이트를 끄고 오는 것일까?

저렇게 대놓고 오는 걸로 봐선 적은 아닌 것 같다.

하나 그냥 방심해선 안 된다.

바룬족과 오운족은 잔뜩 경계를 하곤 무기를 꺼내 들었다.

그런데 차는 상당히 느릿느릿 기어오다시피 했다.

무언가 두려워하며 또 조심성이 많은 자가 운전하는 모양새였다.

차가 점점 가까워지자 하늘에 뜬 달빛에 그 형체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걸 본 아수하와 아이신의 입이 그냥 딱 벌어졌다.

엥?

웬 고오급 스포츠카?

상당히 비싸 보이는 차였다.

이름만 대면 감탄사가 절로 나올 그런 차.

아무튼 이게 무슨 경우인지 알 수 없었던 오운족이 박토를 쳐다보자 그는 얼굴을 잔뜩 찡그린 체 불만 가득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저게 왜? 설마..”

박토의 중얼거림을 주워 들은 아이신이 궁금해 그에게 물었다.

“아는 차야?”

“그래.”

“누구.. 찬데?”

“내 거야.”

“뭐?”

“내 차라고.”

박토의 대답에 아이신은 의아한 표정부터 지었다.

박토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박토의 차라면 물론 그 주인은 여기 있지만 그 차를 운전하는 다른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박토가 여기 올 때 혼자 오지 않았다는 뜻.

그런데 아무리 어두운 밤이라지만 분명 운전석엔 사람이 없었다.

무심히 그 차를 바라보고 있던 아이신의 쌍둥이 여동생 아수하가 순간 무언가 깨달은 듯 소리쳤다.

“자율주행? 태슬라?”

“아니야.”

박토의 대답에 고개를 갸우뚱대는 아수하는 그녀가 틀린 답을 내 놓았다는 사실에 실망하는 중.

그런 그녀가 이번엔 진짜 답을 알았다는 듯 또 소리쳤다.

“그럼 원격조종?”

박토가 인상을 확 구기며 대답했다.

“그것도 아니야.”

“그럼 뭔데? 혼자 움직이지?”

아수하의 말에 대답 없는 박토였다.

그저 그는 냉담한 표정으로 그들에게 다가오고 있는 차를 바라볼 뿐이었다.

원격 조종도 아니고 자율주행도 아닌 신묘한 차의 등장에,

대체 그 차는 어떤 원리로 움직이는 지 알 수 없었던 아이신과 아수하가 골머리를 앓고만 있을 때 결국 그들 옆으로 도착한 박토의 소유의 차.

조금 시간이 지나자 저절로 운전석 쪽 창문이 천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걸 본 아이신과 아수하는 다시 한 번 놀랐고 창문이 중간쯤 내려가며 사람 머리 같은 게 보이자 급 실망한 그들.

대충 그 머리의 주인이 누군지 짐작했기 때문이다.

결국 창문은 다 내려갔고 그 머리의 주인인 박월의 얼굴이 보였다.

그가 박토에게 해맑은 표정으로 말을 뱉었다.

“빨리 타. 삼촌. 경찰이 움직였어.”

월의 말에 박토는 더욱더 인상을 구겼다.

아이신과 아수하는 역시 그들이 예측한대로 어렴풋이 그 존재만 알고 있던 무단 박월이라는 사실에 신기한 듯 동시에 물었다.

“네가 박월이야?”

그런 그들을 향해 자신이 그 박월이 진짜 맞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박월.

그는 지금 너무 행복해 보였다.

이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갑자기 박토가 산통을 깨는데..

“월이. 너 이 자식 운전석에서 빨리 안 나와!”

지금 박토는 박월이 운전을 해 완전 화가 나 있었다.

그런 박토의 화에 마음이 상한 박월은 입을 삐죽거리며 슬그머니 조수적 쪽으로 옮겨 가 앉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제 초등학교 1학년 주제에 겁도 없이 차를 몰 생각을 하다니.. 그것도 3억 5천이나 하는 차를..-

박토는 조수석에 앉아 풀이 죽어 있는 박월을 보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화가 무지 났지만 그래도 시간을 절약해 줘 고마웠던 박토는 더 이상 그를 나무라지 않았다.

이제 김탄만 데려가면 된다.

박토가 김탄을 향해 몸을 돌리자마자 화들짝 놀라버렸다.

어느새 갔는지 아수하와 아이신이 김탄을 양쪽에서 부축하며 걸어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 여름 엿가락처럼 축 늘어진 김탄은 여전히 의식이 없어보였다.

-그나저나 저것들이… 저것들이 저런 짓을 하는 저의가 대체 뭐냐?-

의심 대마왕이 된 박토는 지금 오운족이 몸소 김탄을 데려오는 행동을 고깝게 보지 않았다.

하나 나무라지는 않았다.

박토가 할 일을 대신 해주는 건 고마웠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말 고깝지 않았기에 팔짱을 낀 체 가자미 눈을 뜨고 그들을 불만스러운 눈으로 쳐다봤다.

그가 그러거나 말거나 내 일 아니라는 듯 아이신과 아수하는 김탄을 차까지 데리고 와 뒷좌석에 태웠다.

그러자마자 그들을 보고 불같이 화내는 박토.

“누가 너희들 보고 그런 거 하래? 당장 꺼져!”

화를 낼 거면 일을 다 하기 전에 내던가..

나름 박토에게 잘 보이려고 애를 쓴 행동이지만 형국상 이용당한 게 되어버린 오운족 아이신과 아수하는 토라져 입을 삐죽거렸다.

“이제 볼 일 다 봤으니 당장 꺼져.”

또다시 박토의 성화에 아이신과 아수하는 군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원하는대로 꺼져주겠다는 뜻.

예상못한 오운족의 고분고분함에 박토는 살짝 당황했지만 뭐, 상관없다.

그들이 사라져주기만 하며 된다.

더욱이 사라져준다는 확답도 받았으니 이대로 김탄을 집으로 데리고 가면 끝이다.

박토는 가벼운 마음으로 차에 탔다.

그리고 기어를 변속하고 악셀을 밟고 출발을 했다.

그런에 무언가 뒤에서 섬뜩한 기운이 느껴졌다.

설마 김탄이 깨어난 건가?

박토가 잔뜩 경계를 하곤 룸미러로 뒷좌석을 흘낏 쳐다봤는데..

순간 화들짝 놀란 그가 급 브레이크를 밟고 뒤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대체 언제 탄 거야?”

차에 몰래 탄 아수하가 웅얼거렸다.

“우리 오운족이잖아.”

그녀가 웅얼거리자마자 차에 몰래 탄 아이신도 박토에게 웅얼거렸다.

“알잖아. 우리 소리 없이 나타나서 소리 없이 사라지는 거..”

이 둘의 웅얼거림을 들은 박토는 절 입구를 지키는 사천왕보다 더 무서운 표정으로 변했다.

그런 그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안 내려!”

하지만 차에서 내리지 않는 아이신과 아수하.

버팅기려는 심산 같다.

그런 그들을 억지로라도 끌어내리겠다는 듯 박토가 차 문을 벌컥 열자 갑자기 아이신이 서러운 듯 입을 열었다.

“치사해. 박토. 바탈의 폭주를 막느라 아수하가 다리를 다쳤는데 한 번만 봐주라.”

말을 마친 아이신이 눈물을 글썽이자 누가 쌍둥이 동생 아니랄까봐 같이 눈물을 글썽이는 아수하가 최대한 연약하고 힘 없는 목소리로 박토에게 사정을 했다.

“미안해. 박 토. 나는 지금 너무 아파. 부탁해.”

그러고는 다리가 정말 아프다는 듯 손으로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그러나 이들의 처절한 몸부림에도 박토는 기어코 이들을 쫓아내겠다는 듯 밖으로 나가려 한 발을 땅에 내딛었다.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조수석에 앉아 있던 박월이 그의 팔을 잡아 막아세웠다.

박월을 홱 째려본 박토는 순간 마음이 사정없이 흔들려 버렸다.

박월이 마치 장화신은 고양이처럼 서글서글 촉촉히 젖은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귀여운 모습에 혼이 나갈 것 같은 박토가 눈을 질끈 감자 박월이 입을 열었다.

“삼촌. 사이렌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어. 빨리 가야 해. 그리고 삼촌이 어려운 사람들은 서로 도와가며 사는 거라고 그랬잖아. 그거 뻥이었어?”

살포시 눈을 뜨는 박토.

그러는 와중에 눈가가 사정없어 떨려와 난처했다.

지금 그가 그러는 건 모두 그가 어려운 사람들은 서로 도와가며 사는 게 진짜 사람이라고 귀에 딱지가 앉게 박월에게 해댔던 말 때문이다.

어폐를 하고 있는 자신의 행동에 살짝 부끄러웠던 그의 무의식이 그가 원하지 않았는데도 눈가를 떨리게 한 것.

순간 부끄러움에 박토는 그대로 박월에게서 시선을 떼고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그러던 그가 하기 싫은데 어쩔 수 없이 타협한다는 듯 제길이라고 낮게 중얼거리고는 차 문을 도로 닫고 다시 악셀을 밟았다.

그렇게 박토의 차는 신우 프로텍을 유유히 빠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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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아주 멀리서 이 모든 걸 지켜보고 있었던 마영식.

김탄의 납치를 목격한 지금 그는 분노로 얼룩져 있었다.

“개X끼들.”

멀리서 신우 프로텍을 빠져 나가고 있는 박토의 차를 보고 욕설을 내뱉은 그가 거칠게 헬멧 실드를 내렸다.

마치 상남자 중에 상남자인듯 행동하는 그는 또 그걸 증명하려는 듯 성난 황소처럼 악셀 그립을 몇 번 당겼다 놓았다.

부앙! 부앙! 부앙!

투우사에게 돌진하려 소가 발굽을 땅에 치대는 것 같은 웅장한 엔진음.

그 엔진음과는 다르게 마영식은 천천히 전조등을 끈 체 아주 천천히 박토의 뒤를 밟기 시작했다.

1부 1막 끝.

*다음화부터는 1부 2막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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