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_ 정신 차려! 김탄! 너를 잃어버리면 안 돼!

-큰일이다. 바탈의 폭주는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다. 내가 없다면..-

아이신의 마음이 다급해졌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바탈인 김탄을 떠나 이 일대 모든 사람들이 그 힘에 의해 죽게 되기 때문이다.

그대로 점프를 해 옥상 난간으로 올라선 아이신.

“가자. 아 수하.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이건 바탈의 폭주가 확실해.”

말을 마친 아이신이 아래로 뛰어내리려 하자 갑자기 아수하가 그의 손을 잡고 막아 섰다.

아이신이 의아함에 돌아보자 잔뜩 겁을 집어 먹은 아수하가 웅얼거렸다.

“우리가 가도 괜찮을까? 박토가 화낼 텐데..”

“어쩔 수 없잖아. 급한 불부터 꺼야지. 박토와의 문제는 나중 문제야. 가자고.”

아이신의 설득에 고개를 끄덕이는 아수하.

그녀가 손을 놓자 아이신은 그대로 옥상에서 아래로 뛰어내렸다.

그의 뒤를 따라 아수하도 뛰어내렸다.

***

지금 오성 통신 IDC룸에는 정적만이 흐르고 있는 중.

이 모두 상황실에 있는 감시 모니터가 전부 다 시그널 오프가 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모니터만 오프가 된 것뿐만 아니라 나채국, 오강심 그리고 은비칼까지 영혼이 빠진 듯 영혼 오프 상태.

그들은 모두 귀신에 홀린 듯 놀란 표정이었고, 조금 다른 사람이 있다면 은비칼이 놀란 표정에 덧대어 멍 때리고 있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시그널 오프에 나채국이 얼이 빠진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실장님. 실장님도 보셨죠?”

“네. 봤습니다.”

대답을 한 은비칼이 잔뜩 인상을 구기자 나채국이 서둘러 둘러댔다.

“우리가 잘못한 게 아니에요. 저절로 끊긴 거죠.”

“압니다. 그런데 갑자기 왜 영상 데이터가 끊긴 거죠?”

“그거야 신호가 끊겼으니까 그렇죠.”

“그러니까 왜 신호가 끊겼냐는 겁니다.”

“그건 저도 몰라요. 실장님.”

괜히 물어본 은비칼.

성과 없는 질문에 괜히 입만 아프다.

큰일이다.

이대로 가면 김탄을 영원히 찾을 수 없게 된다.

다급한 마음에 혹시나 SNS 여신 오강심은 무언가 알고 있을까라는 생각에 그녀에게 물었다.

“인터넷이나 SNS에선 신우 프로텍 화재에 관한 정보가 없습니까?”

“그러잖아도 알아보고 있었는데 별다른 이야기나 정보는 없었습니다. 그냥 화재에 관한 이야기뿐이었어요.”

정말 대단하다.

그 짧은 시간에 모든 SNS를 훑어보다니..

다시금 오강심에게 감동 플러스 감탄을 한 은비칼.

하나 그것은 지금 전혀 도움이 되질 않는다.

다른 루트를 찾자.

“나 채국 씨. 타깃 지검 1KM 이내의 IP 카메라 영상 데이터를 확보하십시오.”

“벌써 알아 봤어요. 4KM 내 IP 카메라가 다 통신두절된 상태였어요.”

정말 대단하다.

자신보다 한 발 앞서 4KM 내 IP 카메라를 다 살펴보다니..

나채국의 능력에 탄복한 은비칼은 단지 그뿐이었다.

지금 그는 모니터 시그널 오프에 대한 정확한 이유를 알고 싶을 뿐이다.

그래야 대책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었다.

“폭발에 의한 전력망 손실인가요?”

은비칼의 질문에 비웃기부터 하는 나채국이 말도 안된다는 표정으로 정말 어이가 없다는 듯 대답을 했다.

“에이. 실장님도. 너무 가셨네요. 작은 공장 하나 폭파된 걸로 그렇게 광범위한 전력 차단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요.”

그렇지.

대한민국 송전망 시스템이 그렇게 허술할 리가..

그럼 대체 어떤 원인이 신우 프로텍 반경 4KM 이내 전력망을 손상시킨 걸까?

그 이유에 대해 은비칼이 골머리를 앓아 쌍거풀이 네개가 되었다.

그러자 갑자기 오강심이 무언가 알아낸 듯 소리쳤다.

“저는 고의적 전력 차단으로 생각됩니다!”

이건 또 무슨 생뚱맞은 소리?

김탄이 고의적 전력 차단을 그렇게 광범위하게 했다는 건가?

혼자?

어떻게?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 거죠? 오강심 씨?”

“김탄의 회사 또 집으로 가는 동선에 설치된 씨씨티비는 모두 고장이었습니다. 실장님. 그리고 방금 전 다시 재 가동되었던 신우 프로텍 입구 씨씨티비도 고장이 났죠.

즉 김탄이 이동하는 길목에 설치된 씨씨티비는 누군가에 의한 고의적 고장이었단 소립니다.”

“그럴 리가.. 김탄이 그럼 이동하기 전 씨씨티비를 미리 고장 냈다는 건가요?”

“아닙니다. 누군가의 협조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김 탄이 그랬다면 어디서든 단 한 번이라도 김 탄의 모습이 잡혔을 테니까요. 그래서 처음부터 김탄을 알고 있던 자가 분명합니다. 마치 그를 보호하는 것 같은 생각마저 드는데.. 저는..그렇습니다.”

일리 있는 오강심 말에 표정이 상당히 심각해진 은비칼이 손으로 제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심하기 시작했다.

만약 고의적 전력 차단이라면 IP 카메라를 훔쳐보고 있다는 걸 안다는 것이다.

IP 카메라는 사적인 용도로 많이 쓰이는 홈 씨씨티비의 일종이다.

드러나지 않고 숨겨진 장소에 있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IP 카메라를 무력화시키기 위해선 전력 차단만큼 좋은 방법은 없다.

그렇다면 만약 김탄에게 협조하는 세력이 있다면 그리고 그 세력이 고의적 전력 차단을 한 거라면 일반적인 사람이나 세력은 아니라는 말.

조직이다.

이런..

얼마전 형인 은비사에게 들은 파이온이라는 조직처럼 김탄에게도 어떤 조직이 붙은 것이다.

그 생각에 더욱더 마음이 다급해진 은비칼이 나채국에게 물었다.

“나 채국 씨. 우리 시스템에 해킹의 흔적이 있습니까?”

“없어요. 불가능하니까.”

“정말입니까?”

“해킹을 어떻게 해요? 4중 보안 시스템에 이 시스템을 해킹하려면 생체 인증까지 해야 하는데.. 말이 안 되죠. 해킹이란..”

괜히 물어봤다.

은비칼은 나채국의 말 때문에 머릿속이 더 복잡해졌다.

“그런데 우리가 IP 카메라로 훔쳐보는 건 김탄 측에서 어떻게 알았을까요? 고의적 전력차단이라면 그걸 안다는 뜻 아닙니까? 그러니까 그렇게 광범위한 전력차단을 한 것이겠죠?”

은비칼의 질문에 꿀 먹은 벙어리처럼 대꾸 없는 나채국.

은비칼의 말이 맞기 때문이다.

그는 할 말이 없었기에 은비칼을 보던 시선을 거두고 다른 곳을 쳐다보았다.

마치 '다시는 아무 것도 물어보지 마세요.'라고 하는 듯..

그의 태도에 오지게 실망하고 있는 은비칼.

지금 여기에 그 누구하나 절박하거나 다급한자는 없다.

있다면 오직 본인 뿐..

답답한 마음에 은비칼이 한숨을 훅 내쉬자 오강심이 입을 열었다.

“고의적 전력 차단이 아닌 것 같습니다. IP 카메라를 훔쳐본다는 걸 알 정도면 벌써 시스템이 박살이 났을 테니까요. 그건 이미 여기를 지켜보고 있다는 뜻이잖아요.”

그녀의 말에 은비칼의 가슴은 시커멓게 타들어갔다.

지금 그녀는 자신이 한 말을 번복하고 있는 중이다.

그럼 꺼내지지를 말던가..

대체 뭐하자는 건지?

지들이 좋아하는 것과 통신에 관한 걸 빼면 모두 허깨비 같은 그들과 함께 앞으로 이 난관을 헤쳐나갈 생각을 하니 은비칼은 가슴부터 먹먹해져왔다.

미궁에 빠진 은비칼은 지금 수학의 7대 난제를 푸는 기분이었다.

수포자의 눈에 보이는 수학의 공식처럼 난해한 지금 이 상황에서 그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은 여기 아무도 없다.

은비칼의 절박하고 급박하고 안타까운 마음 말이다.

아, 이로써 세계멸망은 막아내지 못하는구나~

애통함에 잠긴 은비칼이 천장을 보고 탄식을 할 때 갑자기 나채국이 난제를 해결한 듯 기쁨에 넘친 목소리로 외쳤다.

“우리 제시를 보내요! 실장님. 제시를 보내면 알 수도 있어요. 4분 57초면 돼요. 실장님. 네?”

이 빌어먹을 드론 성애자.

은비칼은 이 중차대한 시점에 그걸 기회삼아 드론 관제 시스템을 사용해보려는 나채국의 시커먼 속내에 짜증부터 났다.

그 때문에 얼굴이 확 일그러진 은비칼이 그 얼굴로 나채국을 향해 말을 씹어대며 뱉었다.

“승인을. 거부. 하.겠.습.니.다. 나.채.국. 씨!”

귀에 쏙쏙 꽂히는 은비칼의 목소리에 나채국은 지금 어이가 없다.

누가 들어도 현명하고 지혜로운 제안을 저렇게 거절하는 은비칼을 이해할 수 없었던 그가 화를 내며 물었다.

“아니. 왜요? 지금 중차대한 기로에 서 있는데 왜 이러시죠? 일부러 이러시는 건가요?”

“아닙니다. 이런 중대사에 사심이 금물이기 때문입니다. 영상 데이터를 다시 정밀 분석하는 걸로 방향을 틉니다. 그리고 그곳에 진짜 김탄이 있었다는 증거도 없지 않습니까?”

리더가 멍청하면 부하들이 고생이다.

낙하산 출신은 그래서 위험한 것..

제 실력으로 올라온 자리가 아닌 단순히 은비사의 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자리에 앉은 은비칼에게 환멸을 느끼고 있는 오강심과 나채국.

이들은 지금 신우 프로텍에 김탄이 있다는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나채국이 허탈한 듯 얼이 빠진 표정으로 오강심을 바라보았다.

그녀도 그처럼 상심에 젖은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

마치 사수가 멍청해서 하지 않아도 될 고생을 해야 하는 거니 그냥 네가 보살이 됐다는 마음으로 이해하라.

마치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은 오강심을 본 나채국의 입에서 아주 작은 분노의 웅얼거림이 튀어나왔다.

“하이고. 시부레.”

***

쿠오오오오오.

믿기지 않는 현실.

말 그대로의 판타지 실사판.

폭주가 시작한 김탄의 위력은 상당했다.

그걸 지금 직접 보고 있는 박토도 믿을 수 없다는 듯 연신 눈을 비비며 다시 쳐다봤지만 모두 사실이다.

김탄의 능력의 범위를 가늠할 수 없지만 지금 그가 내는 능력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니었다.

중력을 거스른 듯 공중에 떠오른 김탄의 몸.

그 몸에서 나오고 있는 붉은 오라는 마치 거센 아지랑이 처럼 주변의 풍경을 일렁이게 만들 정도였다.

쿠오오오오. 쏴아아아아.

음산한 소리가 휘몰아치며 김탄의 발 밑으로 바람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그 시작된 바람은 점점 커지며 주변의 기물과 바닥에 널려 있던 쓰레기들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그것 때문에 김탄이 일으킨 바람이 회오리 바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칼날의 현신 김탄.

그는 지금 그 신에게 잠식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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