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_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김 탄.

이 모두 나채국이 스스로가 놀린 입방정 때문이다.

자기가 정말 잘났다는 자랑질을 하려 하다 얻게 된 불운.

그로 인해 나채국은 지금 속이 쓰리다.

“나채국 씨? 총 28분이 소요됐군요. 전 7분 정도 걸릴 거라는 나채국 씨의 말을 믿었습니다. 대당 1분이라고 하셨으니까요. 하지만 그걸 믿은 저의 불찰이군요. 시간이 너무 지체됐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하지 말 걸 그랬어요. 실망입니다. 정말..”

지금 정말 할 말 없는 나채국이었다.

이 또한 그의 입 방정 때문이라는 걸 잘 알고 있는 그였지만 자기 실력이 쓰레기 취급 받은 것에 그는 조금씩 분노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괜히 발끈해본다.

“쳇. 그러길래 우리 제시를 보내자고 했잖아요!”

“저도 드론에 대해서 좀 알고 있습니다. 나채국 씨에게 사줄 드론을 검색하다 알게 된 정보죠. 비행시간이 대략 30분 정도군요. 30분이 지나면 무용지물이 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은비칼의 조롱 섞인 비아냥에 다시 맞받아치는 나채국.

“그래도 타깃 지점엔 빨리 갈 수 있잖아요!”

“그렇죠. 그다음을 말하는 겁니다. 쓸모없는 코딱지만 한 드론으로 뭘 하겠다는 겁니까?”

순간 나채국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드론을 폄하하지 마세요!

드론에 대해 팩트를 얘기한 건데 마치 제 부모님을 욕한 것처럼 화내고 있는 나채국에게 은비칼은 무척 당황했다.

이게 정말 잘못한 건지 스스로 판단조차 서질 않았다.

그렇다면 제 삼자에게 물어보자.

은비칼이 심판관이 되라는 듯 오강심을 쳐다보자 그녀가 기다렸다는 듯 넌지시 말을 뱉었다.

“실장님. 사랑하는 대상을 나쁘게 말하면 화가 나는 법입니다. 그냥 이해하세요.”

-아! 부모님. 가족. 애인. 여자친구. 그 어떤 사랑하는 대상. 그것에 취미라는 것도 있구나..-

나채국의 취미를 폄하하진 않았지만 드론에게 애정의 대상화를 하고 있는 나채국을 배려하지 못했던 은비칼은 순간 미안함에 얼굴을 붉혔다.

-이런, 이런, 나란 사람. 계속되는 야근과 밤샘 작업으로 고생하는 나채국 씨에게 보상은 커녕 마음을 아프게 하다니..-

성과에 대한 보상으로 드론 하나 사줬지 회사 차원에서 보상은 없었다.

그런데도 불고하고 열심히 일하는 나채국의 마음을 아프게 한 은비칼.

그는 나채국의 마음을 달래고자 경직된 얼굴을 풀고 미소를 머금으며 삐쳐 있는 그에게 말을 걸었다.

“아, 나채국 씨? 암호 해독하는 데 28분이나 걸렸지만 그래도 아주 잘하셨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만약, 이번 일이 잘 끝나면 보상으로 오성 드론 관제 시스템을 한 번 사용해 볼 수 있는 허가권을 상부해 한 번 건의라는 걸 해 보겠습니다. 어떤가요?”

오잉?

생각지도 못했던 은비칼의 말에 지금 나채국은 얼이 빠져 있었다.

그가 지금까지 투덜거린 것과 삐쳐 있었던 것도 모두 제시에게 오성 드론 관제 시스템을 사용해 보고 싶은 마음 때문에 그런 것.

그게 불발이 되자 짜증이 나면서 동시에 화가 난 생떼 같은 걸 부렸던 것.

그런데

은비칼의 말로 인해 지금 나채국은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일을 잘 끝내면 오성 드론 관제 시스템을 사랑하는 제시에게 써 볼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채국의 눈빛이 돌변하기 시작했다.

그는 지금 자신을 잊어 버린 듯 갑자기 옆에 서 있는 은비칼의 허리를 확 끌어 안고는 얼굴을 비벼댔다.

“정말이요? 역시 실장님은 최고예요”

“나 채국 씨?”

은비칼이 부르는 소리에 사랑 가득한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는 나채국.

“왜요? 실장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고 눈은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터질 듯 촉촉이 젖어 있있다.

그 얼굴에 기분이 좋아 헤벌쭉 벌린 입 사이로 침이 고여 있는 걸 본 은비칼은 순간 온몸에 소름이 확 돋았다.

-대체 이 사람이 왜 이러는 것일까? 좋으면 그냥 좋아하면 되는 걸 왜 남의 허리를 끌어 안고 있는 것일까? 대체 왜? 왜?-

이유를 알 수 없었던 은비칼은 그저 이렇게 얘기할 수밖에 없었다.

“절 놔주십시오. 나채국 씨. 저는 조금 징그럽습니다.”

순간 화들짝 놀란 나채국.

그는 지금 그가 은비칼의 허리를 양 손으로 꽉 끌어 안고 있는 걸 인지해버렸다.

대체 내가 왜 이러고 있는 것이지?

이건 내가 한 게 아니야?

나는 남자의 허리를 끌어안지 않는단 말이다!

그러나 나채국은 지금도 은비칼의 허리를 끌어안고 있다.

당황한 나채국이 슬며시 은비칼의 허리에서 손을 풀며 오강심을 쳐다보았다.

-설마 오해하는 건 아니겠지?-

그러나 그의 바람과는 다르게 오강심은 마치 BL(BOY LOVE라는 독특한 마이너 장르)영화를 감상하는 듯 은은한 미소를 머금고 두 사람을 쳐다보고 있었다.

대리만족을 다 했다는 듯 그녀가 나채국을 보며 눈을 가늘게 뜨고는 턱을 한번 위로 추켜 올렸다.

마치 '다 알고 있으니 커밍아웃 하시지?'라고 말하는 듯 보이는 그녀.

곧바로 얼어 붙은 체 고개를 가로 젖는 나채국.

'오해하지마. 지금 이 상황은 네가 생각하는 그런 상황이 아니야.' 이런 뜻을 담고 성실하게 가로 저었다.

그러나 오강심은 '내가 그런 상상을 하건 말건 네가 상관할 일이 아니야'라는 듯 비열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오해하고 있는 그녀 때문에 난처한 나채국은 얼굴이 더 빨개졌고,

둘이 그런 마음의 대화를 주고 받고 있는지도 모르는 은비칼은 일을 시키기 위해 오강심을 불렀다.

“오 강심 씨?”

“네 실장님.”

“7개의 IP 카메라를 신우 프로텍을 중심으로 모두 돌려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실장님. 비엘~”

오강심의 말이 끝나자마자 진짜 깜짝 놀란 나채국이 은비칼을 올려다보았다.

설마 비엘이란 소리를 그가 들었을까 조마조마 하는 마음에 그랬던 것.

하지만 은비칼은 그 소리를 못 들은 듯 전방에 배치 된 상황 모니터를 주시하고만 있었다.

다행이라 생각한 나채국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어본다.

그러다 든 울컥한 마음.

오강심. 너 진짜.

나채국이 오강심을 확 째려보며 아주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야. 상상하지 마. 오강심. 그런 게 아니라니까. 진짜.”

“뭘요? 홍당무 같던데요?”

나채국이 당황해 하거나 말거나 지 혼자 즐기면 끝이라는 듯 오강심은 더 이상 말 걸지 말라며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졸지에 BL장르가 돼 버린 나채국.

억울한 모함을 받은 그는 참을 수 없다는 듯 다시 그녀에게 속삭였다.

“난 단지 드론 관제시스템 때문에 그랬던 거야. 나도 모르게 그렇게 한 거라고.”

“과연 그럴까요?”

“야. 오강심 너 정말. 네가 좋아하는 장르로 몰아가지 마. 진짜.”

대꾸 없는 오강심.

더 이상 나채국과의 대화를 원하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 철저하게 나채국의 말을 외면하고 있다.

그가 계속 누명을 벗기 위해 뭐라고 속삭이고 있지만 그녀의 귀엔 들리지 않는다는 듯 행동하는 그녀 때문에 속이 뒤집어질 것 같은 나채국은 눈물마저 나올 것 같았다.

-지가 좋아하는 장르로 몰고 싶은 거겠지. 그런다고 나를 BL물 주인공으로 만들어서 네가 얻는 이익이 대체 뭐냐? 오강심 나쁜 여자!-

졸지에 비엘 장르 주인공이 되어 버린 나채국은 억울함에 몸서리를 한 번 쳤지만 소용없었다.

낙인이 찍혀버린 나채국은 그대로 풀이 죽었고 몸에 힘도 빠져 버렸다.

그 후로 나채국은 자신이 완전히 삐쳤다는 듯 입이 대빨 나온 체 말이 없었다.

.

은비칼의 명령대로 나채국이 해킹한 아이피 카메라를 모두 신우프로텍 쪽으로 돌린 오강심은 슬쩍 나채국을 눈치를 살폈다.

그는 여전히 삐쳤는지 나온 입이 들어가 있지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만 좋으면 끝이다라는 듯 그런 그를 가볍게 무시한 그녀가 은비칼을 불렀다.

“실장님. 카메라를 모두 돌렸습니다.”

“모두 상황 모니터에 띄우십시오.”

“모두요? 벽만 비쳐지는 것도 있는데요?”

순간 얼어붙은 은비칼.

지금 그는 자신의 모지람에 몸둘 바를 모르고 있는 중이다.

카메라를 돌리면 모두 신우 프로텍을 비추게 될 거라는 그의 얄팍한 사고가 드러난 이 순간 은비칼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오강심을 쳐다보았다.

역시나 그의 예상대로 오강심은 의자에 거만하게 앉아 그를 조롱하는 듯 도도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마치 이런 것도 생각 못하고 있었나요? 리더라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듯 보였다.

지금 공간지각능력이 제로임이 증명된 은비칼은 낯 부끄러움에 오강심의 시선을 슬며시 피했다.

이럴 땐 모른 척 하며 회피하는 게 최선이다.

더불어 심각한 표정까지 지어주면 금상첨화다.

그런 은비칼은 아주 진지한 얼굴로 잠시 딴 생각을 하는 척 하다 오강심을 다시 쳐다보며 답을 했다.

“그럼 신우 프로텍만 비추는 카메라만 띄우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은비칼이 상황 모니터에 전송 될 ip카메라 화면을 보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갑자기 오강심이 소리쳤다.

“실장님! 3번 화면에 김 탄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포착된 것 같습니다!”

지금 너무 깜짝 놀란 은비칼이 다시 오강심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정말 대단하다.

자신이 모니터를 보기 위해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김탄을 찾다니..

그녀의 대다한 능력에 잠시 의기소침해진 비칼이 웅얼거렸다.

“그래요? 아니. 어떻게 이런 우연이..”

그리고는 문제의 3번 모니터를 보는데..

고개를 갸웃거리는 은비칼.

뭔가 의문이 가득하다는 몸짓이다.

분명 3번 모니터에 김탄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있다고 했는데..

대체 어디 있다는 건지..

한참을 찾아봐도 김탄으로 보일만한 사람이 없자 은비칼은 살짝 화가 나기 시작했다.

“김탄이 대체 어디 있다는 겁니까?”

그런데 은비칼의 말에 도리어 오강심이 화가 났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순간 은비칼은 잘 못 본 건 아닐까 3번 모니터를 다시 확인했지만 김탄은 없었다.

-놀리는 건가? 하지만 왜? 공간지각능력이 낮은 걸 들켜서?-

이유를 모르겠는 오강심의 놀림에 화가 난 은비칼이 굳은 얼굴로 오강심을 쏘아보았다.

그러자 오강심은 아예 자리에서 일어서 손가락으로 3번 모니터를 가리키며 외쳤다.

“저기.. 김탄으로 추정되는 머리칼이 진짜로 보입니다!”

저작권자 © 불교공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