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_ 차별하면 상처가 나요.

김탄은 자신의 대답에 무조건 황망하다는 듯 말을 못하고 쳐다보기만 하는 반장에게 지금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는 죽어도 앞으로 그가 무슨 일을 하게 될 건지에 대해 사실대로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계속 대답을 안하고 어물쩍거리면 분명 반장은 화를 낼 것이다.

하지만 김탄은 그래도 절대 말할 수 없었다.

[저는 히어로가 되야 해요. 히어로가 되어 미래에 나타날 악을 처단해 세상을 구해야 해요. 그래서 만 년 전부터 파눔의 예언을 지킨 바룬족에게 취직했어요.]

김탄이 차마 절대 말할 수 없는 그의 이직에 관한 비밀.

그래서 대충 둘러댔던 것이었지만, 그게 반장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어 버렸다.

그렇게 불편한 표정으로 말없이 김탄을 바라보기만 하던 반장의 눈초리가 순간 가늘어지더니 고개를 홱 돌려 작업장 입구 쪽을 흘겨보았다.

아마도 박토를 생각하고 있는 중일 것이다.

그게 맞다는 듯 반장이 김탄에게 물었다.

“혹시 아까 같이 왔던 그 사채업자랑 관련이 있는 거야?”

“아, 네. 마.. 맞아요. 그.. 그래서 그러는데 저번에 빌려주신 돈. 그걸 조금 늦게 갚아야 할 것 같아요. 이번 달부터 조금씩 갚으려고 했는데 일이 이렇게 돼서 정말 죄송해요.”

“됐다. 어차피 받을 생각도 없었어. 그래서 그렇게 말도 없이 짐부터 다 옮긴 거야? 미리 말을 해줬으면 좋았을 것 아니냐?”

반장의 말에 김탄은 화들짝 놀랐다.

“집에 가보셨어요?”

“그래. 아무것도 없어서 깜짝 놀랐다. 야반 도주한 것처럼 짐이 아무것도 없었으니 말이다.”

천천히 표정이 굳어지는 김탄.

그의 짐을 모두 없앴다는 박토의 말을 사실로 확인하는 순간이어서 그랬다.

진짜여도 아니길 바랐던 김탄.

그 작은 희망의 마음이 산산조각 나버리자 그도 모르게 입에서 작은 분노의 웅얼거림이 튀어나왔다.

“박 토. 이 인간이 진짜..”

그걸 또 주워들은 반장이 제대로 못 들었는지 되물었다.

“뭐라고 중얼거려?”

“아.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또 대충 얼버무린 김탄.

그런 그에게서 무언가 숨기는 게 있다고 생각하는 반장은 지금 마음에 의심투성이다.

-사채업자 때문이고만.. 저번에 진 빚에다 또 빚을 지게 됐으니 저러는 거겠지. -

제멋대로 생각한 반장은 김탄을 다른 회사로 보내기 싫었던지 김탄이 사채를 얼마나 끌어다 썼는지 모르지만 그걸 전부 다 갚아주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김탄을 잡고 싶었지만 분명 김탄은 거절할 게 분명하다.

그 생각에 더 애가 타 들어가는 반장은 그저 묵묵히 한숨만 쉴 뿐이었다.

-신세를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라.. 그 성격을 무시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냥 이대로 보낼 수는 없고..-

이러지도 못하겠고 저러지도 못하겠고 속이 뭉그러지던 반장이 고심 끝에 한 번 말이라도 꺼내볼까 탄을 불렀다.

“저기.. 탄아..”

탁!

김탄에게 어려운 말을 꺼내기 위해 초 집중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 산통을 깨는 소리가 들려 반장이 돌아보니, 테이블 위로 검은색 비닐봉지가 놓여 있었고 그 옆으로 코피가 해맑게 웃고 있었다.

정황상 시커먼 비닐 봉지는 분명 영식에게 사오라고 시켰던 음료수가 들어 있는 것 같은데..

헌데 왜 영식이 서 있는 게 아니고 코피 왜 네가 서 있는 것이냐?

반장이 그 이유가 궁금해 의아한 표정으로 코피를 쳐다보자, 그런 반장을 본 코피는 음료수를 꺼내라는 뜻으로 알아듣고는 비닐봉지 안에서 음료수를 꺼내 테이블 위에 나란히 펼쳐 놓았다.

일렬 횡대로 나란히 놓아 둔 음료수를 바라보는 코피는 아주 만족한 듯 얼굴에 미소까지 머금고 있었다.

아마도 스스로 참 잘했다 속으로 생각하는 중일 것이다.

그렇게 혼자 착각에 빠져 있던 코피가 갑자기 음료수에서 시선을 떼고 김탄을 째려보며 나무랐다.

“야. 탄아. 반장님이 너 때문에 어제오늘 하루 종일 한숨만 쉰 거 아냐? 나도 그것 때문에 너무 힘들었어. 너도 알잖아. 같이 일하는 데 누구 하나라도 기운이 처지거나 기분이 안 좋으면 신경 쓰여 일이 잘 안 되는 거.”

코피의 대뜸 지적질에 그저 미안한 표정만 짓는 김탄.

“어? 그.. 그랬어?”

그리고는 반성한다는 듯 김탄이 고개를 숙이자 코피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반장을 쳐다보았다.

마치 그는 회사 선임으로 김탄의 잘못을 지적하고 또 바로잡으려는 자신을 칭찬해 주길 기다리는 사람처럼 설레 보였다.

그러나 칭찬은 하지 않고 말없이 코피를 쳐다보기만 하는 반장.

그의 행동에 코피는 김탄한테 한 지적질이 조금 모자랐다고 생각했는지 또다시 김탄을 나무라기 시작했다.

“그뿐만이 아니야. 영식이는 어제 여자 친구랑 약속도 펑크 났어. 반장님이 퇴근하고 너네 집에 데리고 갈 때까지 영식이가 엄청 짜증만 내더라. 너도 알다시피 네 집 도어락 번호 영식이가 알잖아. 희생양이 된 거야. 네 무단결근 때문에 희생자가 얼마나 많이 나온 줄 알아? 다시는 그러지 마라. 선임으로서 얘기하는 거니까 잘 새겨들어.”

코피가 말을 마치자마자 반장이 그를 나긋하게 불렀다.

“코피야.”

드디어 나온 반장의 반응.

낮게 코피의 이름을 부르는 데에서 칭찬이 돌아올 거라 확정한 코피가 흐뭇한 표정으로 반장을 돌아봤다.

-어라? 그런데 왜 저럴까?-

무언가 대단히 화가 난 듯 반장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또 찌그러져 있었다.

순간 무언가 잘못됐다 생각한 코피.

그가 불안함을 느끼기 시작하려 할 때 반장이 못마땅하다는 듯 코피에게 버럭 소리를 쳤다.

“아까 퇴근하라고 했잖아!”

“탄이 걱정돼서 할 수 없었어요.”

“쓸데없는 소리 할 거면 빨리 퇴근해!”

“예. 알았어요.”

칭찬을 바랐지만 화를 받은 코피.

시무룩해진 그가 퇴근을 하기 위해 힘 없이 몸을 돌리자 뒤에서 반장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그런데 잔돈은?”

-아! 잔돈 때문에 화나셨구나. 이런 나의 실수.-

음료수만 꺼내 진열하면 되는 줄 알았던 짧은 생각이 패착이다.

드디어 반장의 칭찬을 받지 못한 이유를 알게 된 코피는 잔돈을 찾기 위해 서둘러 비닐봉지 안을 살폈다.

없었다.

당황한 코피가 봉지를 뒤집어 털어 봤지만 잔돈은 나오지 않았다.

“없는데요?”

“뭐? 없어?”

“네.”

코피의 대답이 끝나자마자 번개 같은 속도로 테이블 위의 음료수를 살피는 반장.

캔 음료 4개와 병 음료 3개가 전부였다.

개수를 확인한 반장은 심각해진 얼굴로 저절로 고개가 기울어졌다.

그가 하고 있었던 계산이 틀렸기 때문이다.

“오만 원어치가 이것밖에 안되나? 코피야. 영식이 어디 갔어?”

“잠깐 화장실 다녀온다고 저한테 전해주라고 주던데요?”

이건 명백히 횡령이다.

반장은 그가 우려하던 영식의 삥땅을 마주한 지금 무척 화가 났지만 화를 내지는 않았다.

지금은 코피를 쫓아내고 김탄에게 하려던 말을 마저 하는 게 우선이다.

“그래? 그럼 있다가 가지고 오겠지. 뭐. 코피 너는 퇴근해야지 이제.”

“설마 영식이 이 자식이 삥땅 친 건 아니겠죠?”

가라는데 가지는 앉고 계속 오지랖을 부리고 있는 코피 때문에 갑자기 짜증이 확 몰려온 반장.

이 모두 반장이 힘들게 김탄에게 말을 꺼내려고 했던 게 가로막혀서 그런 것.

“아니, 뭐가 그렇게 궁금한 건데!”

반장이 버럭 성질을 내자 깜짝 놀란 코피는 지금 당황했다.

“영식이가 삥땅을 쳤다고요. 반장님. 그리고 영식이는 사라졌고요. 화 나지 않으세요?”

코피의 말에 이제는 오만상을 쓰기 시작하는 반장이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듯 코피에게 분노를 폭발했다.

“아니! 빨리 가기나 해. 그런 것까지 뭐 하러 신경 써! 영식이가 삥땅을 치던 말던 내버려 둬! 잔 돈 그까짓 거 얼마나 한다고 그냥 쓰라고 해!”

그렇게 코피에게 화풀이를 했는데도 성질이 덜 풀렸는지 반장이 음료 캔 하나를 거칠게 집어 들어 캔 뚜껑을 거칠게 따는데 그 소리가 참으로 요란했다.

“반장님.”

타는 속에 음료라도 들이부으면 식을까 마시려던 찰나 코피가 부르는 소리에 다시금 화가 치솟은 반장이 그를 홱 돌아보며 버럭 성질을 냈다.

“왜? 빨리/”

순간 말문을 닫은 반장.

코피의 초콜릿색 볼 위로 눈물이 두 줄 흘러내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생각하지도 못한 코피의 눈물에 당황한 반장이 김탄을 쳐다보자 김탄도 그가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천천히 가로저었다.

텁! 텁! 텁! 텁! 텁!

갑자기 무언가 억울한 소리가 들리자 그곳을 바로 쳐다보는 반장과 김탄.

코피가 허공을 쳐다보며 주먹으로 가슴을 쳐대고 있었다.

억장이 무너질 정도로 억울할 때나 하는 행동.

반장은 지금 그런 코피 때문에 상당히 의아했다.

평상시 화를 내도 웃기만 하던 코피.

아까 반장이 화를 낸 건 화 축에도 들지 못했다.

단지 그것 때문에 코피가 저러는 거라면 뭔가 말이 되지 않는다.

뭔가 더 있다.

그게 뭘까?

반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반장과 마찬가지로 김탄도 그 이유에서 지금 의아하다는 듯 갸웃거리자 그렇게 억울해하던 코피가 스스로 울음을 삼켰다.

손등으로 힘겹게 눈물을 훔치고는 무언가 억울한데 불합리하게 참아야만 살 수 있다는 듯 그가 감정을 꾹 눌어가며 입을 열었다.

“반장님. 그런데 왜 저한텐 심부름시키실 때 십 원까지 따지셨어요? 끅. 영식이는 왜 그냥 넘어가시는 거죠? 끅. 혹시 지금 제가 외국인이라고 차별하시는 건가요? 끅. 만약 그렇다면 전 너무 섭섭합니다. 끅.”

뻑!

이것은 반장의 뒷골이 뻐근해지는 소리.

그가 손으로 뒷목을 잡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이고~ 이거 원 참.”

지금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코피.

모두 영식이 삥땅 친 잔돈 때문이다.

그 때문에 화가 더욱더 치밀어 오른 반장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시끄러워! 빨리 퇴근이나 해!”

반장은 그 잔돈 때문에 코피가 오해한 것에 화가 났지만 단지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 보다는 김탄과의 대화를 방해하는 코피 때문에 더욱더 화가 났던 것.

왜 편애를 하냐고 따졌던 코피는 되려 반장의 역정에 마음이 상해 그대로 밖으로 달려가듯 뛰쳐나갔다.

그가 나가면서 뭐라고 웅얼거린 걸 잘 듣지 못한 반장이 혹시나 김탄은 들었을까 그에게 물었다.

“뭐라고 하는 거냐? 저 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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