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_ 열심히 일하는 자는 관리자를 춤추게 만든다.

이야, 그런데 눈치 없는 나채국 씨.

지금 그런 은비칼의 속마음도 모르고 그는 그의 사랑하는 제시를 은비칼에게 들이밀며 그가 일생 단 한 번도 떨어보지 않아 본 애교라는 걸 부리기 시작했다.

“허락해 주세용. 칠땅님. 네? 오성 시스템에서 개발한 드론 관제시스템을 우리 제시에게 써 보고 싶어용. 네?”

그렇게 말을 하고 나서 왜 그런 것인지는 모르지만 두 눈을 크게 두 번 깜박이는 나채국.

그런 다음 최대한 귀여운 표정을 지어본다.

한편 그를 바라보던 은비칼은 나름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그게 더 이상 힘들었는지 눈 밑 근육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러나 나채국은 그것도 캐치 못하고 계속 귀여운 표정으로 은비칼을 쳐다본다.

결국 은비칼이 참을 수 없었던지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입을 열었다.

“오 강심 씨. 신우 프로텍 인근 아이피 대역 범위 내 오성 통신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하는 가입자 중 ip 카메라를 쓰고 있는 곳이 몇 군데인지 확인해 주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대화 대상은 나채국이었지만 은비칼은 오강심에게 말은 해버렸다.

이건 대놓고 무시하겠다는 것이지만 티 나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마치 깊은 생각에 빠진 것처럼 계속 눈을 감고 있다.

.

.

.

눈을 감은 상태로 심각하게 고민하는 척 있었던 은비칼은 '이 정도면 나채국이 포기했겠지. 자 이제 눈을 떠도 되는 거야'라고 생각하고 살포시 눈을 떠 봤다.

눈 앞에 여전히 나채국의 얼굴이 보인다.

그는 여전히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은비칼을 바라보고 있었다.

제시에 대한 답을 기다리고 있는 것.

상당히 집요한 사람이다.

다시 눈을 감기엔 너무 속이 보였던 은비칼은 나채국의 얼굴을 바라보는 척 하며 눈의 초점을 이동시켰다.

그러니까 은비칼의 눈은 분명 나채국을 보는 것 같지만 진짜로 보는 건 나채국의 정수리였다.

어울리지도 않는 눈웃음을 치며 제 드론을 오성 통신 관제 시스템에 써보고 싶어 아양을 부리는 나채국을 차마 볼 수 없었던 은비칼의 처절한 처사였다.

애잔하다.

시간이 지나도 눈치 없이 계속 쳐다보는 나채국을 저리 치워버리고 싶은 은비칼이 순간

“나 채국 씨.”

이렇게 그를 부르자 나채국은 가슴부터 뛰기 시작했다.

분명 좋은 말 일거다.

부리지 못하는 애교까지 떨며 아양을 부린 보상이 은비칼의 입에서 나올까 설렌 나채국은 지금 콩닥거린 가슴 때문에 얼굴까지 빨개졌다.

그런 그가 은비칼의 부름에 씩씩하게 대답하는데..

“네. 실장님.”

“ip 카메라의 비번을 알아내는 데 대략 시간이 얼마나 걸립니까?”

순간 나채국은 실망으로 가득 차 어두운 얼굴로 변해버렸다.

기대했던 말이 아닌 일을 시키려는 말이기 때문이었다.

-제시를 신우 프로텍으로 보내는 허락이 아니었네. 젠장할.. 그런데 왜 갑자기 해킹에 대해 물어 본 거지?-

알 수 없었던 나채국은 그가 원하는 게 아닌 다른 것을 준 은비칼 때문에 크리스마스에 혼자 선물을 못 받은 아이처럼 힘없이 대답을 하기 시작했다.

“그거야 뭐. 대당 넉넉잡아 평균 1분이 되는데. 뭐, 운 좋으면 3초 만에도 풀 수도 있고요. 그런데 그건 왜 물어 보시죠?”

은비칼은 나채국의 물음에 대답은 하지 않고 노려보기만 했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걸 믿으라고 강요 받은 사람처럼.

그러니까

팥으로 메주를 쓴다 라는 말이 참이다! 라고 하는 걸 인정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렇게 머릿속에서 논리와 싸우던 은비칼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뻥 치지 마십시오! 나채국 씨.”

단호한 말투 속에 분노까지 담겨 있었다.

그런 은비칼의 말에 나채국은 정색을 하곤 어이없다는 듯 픽 웃기부터 했다.

그런 그가 허탈한 표정으로 허공을 쳐다보며 뭔가 인정할 수 없다는 듯 두리번거리다 갑자기 눈을 치켜 뜨고 은비칼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걸 받은 은비칼은 냉정하게 그의 시선을 외면했다.

-아니, 비번 해킹을 3초만에 할 수 있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분명 나채국이 저러는 데에는 모두 드론을 써 먹지 못한 자존심을 세우기 위한 편협한 아집 때문이다.-

이 생각에 되려 나채국을 무시하고 싶은 은비칼.

가만이 있어도 온몸에 그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나채국은 지금 자존심이 잔뜩 상해 있다.

'IT'의 'I'자도 모르는 낙하산 출신 관리자 은비칼의 무시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그런 IT에 대한 기술보다 나채국에 대한 무시를 은비칼이 한다는 것에 자존심이 상한 그는 순간 화를 이기지 못하고 발끈해 버렸다.

“제 실력이 진짜인 걸 증명하면 어쩌실 거죠? 실장님!!”

나채국을 말없이 쳐다보기만 하는 은비칼.

갑자기 미소를 지었는데 평소 그가 흘리고 다니는 보기만 해도 녹아 버릴 마법 미소가 아닌 썩은 미소였다.

그의 미소에 소름까지 돋은 나채국.

은비칼을 알고 지낸 이래로 처음 보는 가장 비열한 미소였다.

-실장님도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구나. 색다른 면도 있었네.-

이렇게 나채국이 생각하는 동안 은비칼은 그런 얼굴로 나채국에게로 가까이로 다가왔다.

그래서 서로 마주 보게 된 두 사람.

나채국 보다 머리 하나 더 키가 큰 은비칼이 내려다보자 나채국은 그대로 얼어버렸다.

조롱이 가득한 눈빛.

비열하다 못해 치졸함까지 어린 미소.

은비칼이 그 얼굴을 나채국의 얼굴 가까이로 들이밀며 나직하게 속삭였다.

“증명하시면.. 오성 드론 관제시스템을 사용해 볼 수 있는 허가권을 얻어오겠습니다.”

지금 나채국에게 팥으로 한 번 메주를 써보라는 은비칼.

그러나 나채국은 그걸 증명할 수 있다는 듯 눈빛부터 돌변했다.

나채국은 집념과 오기, 그리고 고집으로 똘똘 뭉친 얼굴로 변해있었다.

그가 가운데 손가락으로 안경을 추켜올리며 은비칼을 노려보았다.

'할 수 있다!'라는 나채국의 무언의 몸짓이었지만 그걸 본 은비칼은 지금 무언가 기분이 나쁘다.

-설마 가운데 손가락이 우연일까? 그렇다면 이 사람이..-

왠지 나채국이 엿 먹이는 것 같아 은비칼이 살짝 기분이 나빠지려 할 때쯤 나채국이 버럭 소리를 쳤다.

“강심아! 스톱워치 켜!”

그리고는 그대로 자신의 컴퓨터 쪽으로 몸을 돌려 신들린 듯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두드려댔다.

미덥지 않지만 그런 그를 보는 은비칼은 이상하게 기분 나쁜 마음이 사라지고 이상하게 흡족한 마음이 들었다.

열심히 일하는 자는 관리자를 춤추게 한다.

마치 그런 것처럼 그를 바라보는 은비칼의 얼굴에 미소까지 떠올랐다.

****

<카운트 시작. 3, 2, 1.>

카운트가 끝나자 숲 속 한가운데 정차해 있던 트럭의 화물칸 뚜껑이 열리기 시작했다.

위이이이잉..

기계 구동음이 적막한 숲 속에 울려 퍼지며 화물칸 아래서 시커먼 무언가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푸른 하늘의 창공을 닮은 하늘 색으로 위장 도색된 커다란 날개가 달린 드론이었다.

일반 장난감 같은 드론이 아닌 진짜 리얼 군용 드론.

멋지고 날렵하고 매끈하며 미래지향적이다.

전장 길이 2미터 정도 되어 보이는 그 드론은 일종의 킬러 봇.

순전히 공격용 드론인 그것의 이름은 자이언트 호넷.

오성 그룹 자회사 HTD 시스템에서 자체 개발한 차세대 군용 무기였다.

자언트 호넷이 그 위용을 화물칸 위로 완전히 드러내자 시스템이 켜지며 그대로 수직 이륙을 했다.

그렇게 트럭 위에 체공하고 있는 자이언트 호넷.

마하의 속도로 치솟아 오르려는 듯 에너지가 흘러 넘친다.

“수직이륙 성공.”

<고도 테스트를 시작하겠다. 3. 2. 1.>

교신이 끝나자 그대로 고도를 상승하는 자이언트 호넷은 조용한 살인 무기답게 바람처럼 이동했다.

그렇게 하늘의 한 점이 될 때까지 올라간 자이언트 호넷이 갑자기 예고 없는 비행을 시작하자 깜짝 놀란 남자가 다급하게 교신을 시도했다.

“고도 테스트 중 경로 이탈.”

<이탈이 아니다. 테스트 내용이 바뀌었다.>

교신을 했던 남자가 옆에 서 있던 동료 남자를 쳐다보았다.

-예고 없는 테스트 변경?-

이상함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남자들.

고개를 들어 자이언트 호넷이 사라져버린 하늘을 쳐다보며 말이 없었다.

***

“아니 다른 데로 간다는 거야? 갑자기 이게 웬 말이야? 회사를 옮기다니..”

반장이 깜짝 놀라 되묻자 김탄은 도저히 그를 쳐다볼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숙인 체 대답했다.

“네. 그렇게 됐어요.”

-겨우 할 말이라는 게 회사를 옮기겠다는 말이라니.. 그래서 계속 어물쩍 말도 못하고 있었구나.-

회사를 옮기면 옮기는 거지만 김탄의 급작스러운 통보에 반장은 속이 답답해 천불이 날 것만 같다.

품에서 담배 하나를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

“후우우~”

담배 연기를 내뿜는 반장의 소리에 천장이 무너질 것 같다.

지금 그는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김탄이 회사 직원으로서 아까운 인재라 잃어버리기에 아까워 그런 게 아니다.

그는 김탄을 아들처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 밖에 없었던 아들을 15년 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낸 신우 프로텍 총괄 생산 매니저인 김성식 씨.

그는 그의 아들과 묘하게 닮은 김탄에게 호감을 느껴 왔었고, 같이 일하며 지켜보는 동한 애틋한 감정까지 쌓인 상태였다.

더군다나 김탄이 고아였기에 더욱 더 기뻤다.

잘 꼬드겨 아들이나 삼아볼까라는 생각도 하고 있던 터.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회사를 옮겨버리면 어떡하란 말인가?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데..

애정하는 김탄과의 관계가 서먹해지는 건 불을 보듯 뻔한 일.

평소 생각해 뒀던 계획에 차질이 생긴 반장은 그래서 지금 속에서 천불이 나고 있었다.

떠나는 걸 잡겠다고 당장 매달리지도 못하겠다.

지금 당장 내 아들 하자고 말하기도 어려운 반장.

만약 일방적인 짝사랑이 돼 듯 김탄이 거절을 하면 회복하기 힘든 상처가 될 것 같던 반장은 그 말도 쉽게 꺼내지 못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가버린다니..

서둘러 양자 입적을 하기 위해 많이 꼬셔두지 못한 게 억울할 뿐이다.

그런 자신에게 화까지 나는 반장은 괜히 김탄에게 퉁명스럽게 물었다.

“어떤 회사야? 무슨 일을 하는 건지 말해 봐.”

“그건 저도 아직 정확히는 잘 몰라요.”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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