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_ 21세기 노비 같은 직장 생활.

종교는 없었지만 신에게 감사한 마음이 가득했던 은비칼.

그는 나채국과 오강심에게 자장면을 기다리는 배고픈 손님에게 배달하러 가는 배달원의 심정으로 재빠르게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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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따닥 딱딱 딱 따닥.

그러던 그가 갑자기 아무도 없다는 듯 방정맞게 촐싹거리며 탭 댄스를 추기 시작했다.

춤선이 살아 있는 그의 동작을 보자니 왜 여기 아이디시 룸에서 커피 셔틀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

아무튼 그는 신명이 춤을 춘다.

그렇게 자아를 상실한 체 혼자 댄스 스텝을 밟던 그가 최절정에 도달했다는 듯 경직된 체 멈추어 섰다.

황홀한 그의 표정은 지금이라도 저 멀리 하늘로 날아갈 듯 한 모습.

그가 마치 다른 어쩐 존재에게 빙의라도 된 듯 색다른 표정을 지으며 오른쪽 뒷다리를 턴 아웃된 상태로 90도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커피를 든 손은 뒤로, 다른 손은 앞으로 우아하게 쭉 벋어 올렸는데..

이것은 발레 동작 중 가장 난이도가 높은 아라베스크였다.

한때 발레를 전공했던 은비칼이 그도 모르게 자세를 잡았던 것.

지금 그는 그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것 같다.

그 무아지경 속 아라베스크는, 발레를 오래 쉰 탓에 뒷다리 근육이 당기는 바람에 지탱하던 다리가 후들거리며 그에 따라 몸이 휘청거리는 바람에 그만 두게 되어 버렸다.

“오랜만이라 힘들군..”

한때는 무난하게 하던 동작이지만 지금 너무 힘들다.

은비칼은 자세를 풀었는데도 근육이 당겨오자 주먹으로 허벅지를 두드렸다.

그러던 그가 다시 나채국과 오강심에게로 향했다.

그들은 은비칼의 아라베스크 방정을 일에 집중하는라 보지 못했다.

그 사실에 무척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은비칼은 만약 만약 오강심과 나채국이 이걸 봤다면 하루 종일 비웃었을 생각에 아찔해져 식은땀도 살짝 났다.

-이야, 이 사람들 보게.-

은비칼은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갔는데도 여전히 모니터를 보며 미동조차 안하고 일하고 있는 나채국과 오강심에게 지금 감동하고 있는 중이다.

-정말 대단한 몰입이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느낌이겠지?-

은비칼은 일생 저렇게 몰입 해 본 적이 없다.

다시금 그들의 그 집념과 집중력에 감탄해 본다.

은비칼은 그 몰입을 방해하지 않으려 깨금발로 살금살금 걸으며 티 테이블에 커피를 소리 나지 않게 내려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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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나서 그렇게 기다린 5분.

-저렇게 몰입하다가는 정신을 놓을지도 몰라.

갑자기 영화 샤인이 떠오르는 건 왜지?-

호주 출신 피아니스트 데이빗 헬프갓이 연주에 너무 몰입해 정신을 놓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아무튼 이 주인공처럼 나채국과 오강심 또한 그렇게 될 수도 있을꺼란 생각에 살짝 걱정돼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열심히 집중하는 것도 좋지만 잠깐 쉬었다 해도 괜찮습니다. 여러분”

그러나 대꾸조차 없는 오강심과 나채국.

그들은 진짜 일에 빠져 있었다.

내심 걱정했지만 그런 그들에게 다시 뿌듯함을 느낀 은비칼은 지금 그들에게서 마더 테레사와 같은 인류애까지 느꼈다.

지구의 종말을 막기 위해 헌신과 몰입하는 그들을 보며 숙연함까지 느낀 은비칼은 그냥 그들을 내버려두기로 결정했다.

-아무튼 김탄을 빨리 찾는 게 급선무다. 아마도 생각했던 것보다 빨리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그 생각에 함박 미소까지 어린 은비칼의 얼굴.

나채국과 오강심의 뒤통수를 바라보는 모습이 참 사랑스럽다.

그런데 해맑게 웃고 있던 은비칼의 표정이 갑자기 굳어졌다.

심각하게 변한 그의 얼굴에서 중대한 사안이 발생했다는 걸 알 수 있을 정도.

진짜 그렇다는 듯 혼자 앉아 기다리던 그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다.

지금 그의 눈에 포커스 인 된 모니터 하나.

벽면에 나열되어 있는 여러 개의 모니터 중 꺼진 것이었다.

단지 꺼졌기 때문에 그가 이렇게 심각한 건 아니다.

그 꺼진 모니터는 바로 집중 감시 대상지의 송출 화면이기 때문이다.

바로 신우 프로텍 입구에 달린 씨씨티비였다.

은비칼이 그 꺼진 모니터에 대한 오만 가지 이유를 생각하며 나채국과 오강심에게로 다가갔다.

“오 강심 씨. 나 채국 씨. 저기 저 화면은 왜 나오지 않는 겁니까?”

은비칼의 물음에 여전히 대답 없는 두 사람.

순간 무언가 이상함에 꺼진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고 나채국과 오강심을 돌아보았다.

곧바로 확 얼굴이 일그러지는 은비칼.

나채국과 오강심 둘 다 앉은 체로 자고 있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었다.

인류애는 개뿔.

그건 순전히 은비칼만의 착각!

그가 너무 염원하는 나머지 혼자 상상하던 일이 단순한 헤프닝과 매치 됐던 것.

지금까지 그들에게 가졌던 좋은 생각과 감정은 배신으로 치환됐다.

그러니 은비칼의 얼굴은 더욱더 굳어졌고 백지장처럼 하얀 얼굴은 화가 났다는 듯 붉게 변하기 시작했다.

진짜 화 내는 모습을 그 누구도 본 적 없다는 은비칼이 지금 화를 내기 시작했다.

“나 채국, 오 강심 씨!”

버럭 소리를 지름과 동시에 화가 가라앉은 은비칼.

이상하다.

단지 이름 한 번 크게 불렀을 뿐인데..

화가 사라진 은비칼의 마음은 시간이 지나자 애잔함으로 바뀌었다.

연민이었다.

계속되는 야근.

그에 따른 나채국과 오강심의 밤샘 작업.

은비칼의 눈에 피로에 지친 그들이 앉은 상태로 잠들어 있는 모습이 마치 불가에서 앉은 자세로 입적한 고승들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그에 따라 그 연민은 슬픔으로까지 확대 되었고 비정한 상사라는 자신의 정체성에 심한 자괴에 빠져 버린 은비칼은 지금 심히 마음이 아프다.

그러나 현실은 현실.

현실은 냉혹하고 잔인하며 척박하다.

세상을 구하기 위해 그들을 꼭 반드시 깨워야만 하는 은비칼은 가슴이 미어지는 고통이 엄습했지만 세상을 구하기 위해 어쩔수 없이 그들을 깨우기로 굳게 마음 먹었다.

김탄이 다니던 회사 입구를 감시하는 모니터가 꺼진 지금 이 시점.

은비칼에게는 나채국과 오강심이 절실하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모두 김탄을 잡아 세상의 종말을 막기 위한 일.

그 대업을 생각하자 다시금 사명감에 벅차오른 은비칼이 자고 있는 나채국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택배 왔어요. 혹시 드론 시키신 분..”

잠귀가 밝은 건지 눈을 번쩍 뜬 나채국.

은비칼을 보자마자 소스라치게 놀란 듯 허우적거리더니 의자와 함께 뒤로 넘어졌다.

그가 그러는 새 오강심의 곁으로 재빠르게 간 은비칼은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아니. 저런. 저기 대박 소년단 멤버인 박 망개 군이 길을 가다 넘어졌습니다.”

오강심도 잠귀가 밝은 건지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다.

하지만 눈은 감고, 입은 웃고 있었다.

순간 그런 그녀가 좀비 같다고 생각한 은비칼의 몸에 약간 소름이 돋을 때,

그녀가 눈을 번쩍 뜨더니 누군가를 찾는 듯 미친 사람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분명 그녀의 최애, 박망개군을 찾고 있는 것일 것이다.

한편 오강심은 '여기가 대체 어디냐?'는 듯 자신이 일하는 일터라는 것도 망각한 모습이었다.

열심히 박망개 군을 찾고 있던 그녀가 순간 은비칼과 눈이 마주쳤다.

갑자기 안면몰수하는 오강심.

화사하던 그녀의 얼굴이 영혼 없는 표정으로 바뀌는데 단 1초도 걸리지 않았다.

마치 중국 가면술인 변검처럼 순식간에 표정을 바꾸는 그녀의 모습에 겁이 덜컥 난 은비칼.

모두 그가 한 거짓말 때문이었다.

“망개 군은 대체 어디 있죠? 실장님.”

“미안해요. 뻥입니다.”

은비칼의 대답에 오강심은 더 이상 말은 하지 않았지만 독기 어린 눈으로 째려보았다.

희망에서 절망으로 바뀐 마음 때문이다.

다 박망개 탓이다!

그런 그녀에게 해맑은 미소를 지어 보이는 은비칼.

하지만 그의 미소 마법에도 그녀의 화는 풀리지 않았다.

박망개를 볼 수 있다는 희망이 사라진 그녀는 인정할 수 없다는 듯 주먹을 꽉 쥔 손은 바들바들 떨었지만, 시간이 지나 현실을 인정한 듯 힘없이 의자에 도로 털썩 주저앉았다.

하지만 은비칼을 노려보던 시선은 거두지 않았다.

그녀의 소리 없는 분노에 겁을 집어 먹은 은비칼은 그대로 몸을 돌려 나채국을 보았다.

그러는 중에도 지금 그는 등 뒤에서 느껴지는 오강심의 따가운 시선 때문에 불편하다.

한 편 의자와 함께 넘어진 나채국은 그 자세 그대로 누워 있었다.

마치 서울대를 가겠다며 5수를 하고 떨어진 수험생처럼 모든 걸 자포자기한 모습.

그의 눈에 택배로 도착한 드론이 보이지 않아서일 거다.

“이제 일어나시죠. 나채국 씨.”

은비칼의 말에 나채국은 바닥에서 일어나 의자를 도로 세우며 투덜거렸다.

“아이. 진짜. 짜증 나.. 진짜인 줄 알았네.”

분명 은비칼이 사주기로 한 드론이 없다는 것에 대한 분노의 중얼거림 같았다.

또 그게 맞다는 듯 그가 의자를 일으켜 세우는 몸짓에선 분노의 기운이 그대로 내비쳐 거칠고 투박했다.

그런 그의 모습에 겁을 살짝 먹은 은비칼은 재빠르게 게걸음으로 나채국 옆으로 비켜섰다.

그러고는 그대로 벽면에 설치된 상황 모니터에 집중하는 척 하며 나채국과 오강심을 외면했다.

그대로 정적이 흘렀지만 은비칼은 안다.

둘 다 뒤에서 아주 따가운 시선으로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또 그의 예상대로 진짜로 나채국과 오강심은 은비칼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렇게 그들이 내뿜는 분노의 오라는 은비칼을 위축시켰다.

보이지 않는 감정의 힘.

하지만 그런 불편한 감정 따위야 신경 쓸 수 없다.

왜냐하면 인류를 구하기 위해서다.

은비칼은 나채국과 오강심을 통솔하고 지휘하는 역할을 가진 이곳의 총책임자이며 관리자인 실장이다.

그래서 냉혈한이 되어야 한다.

마음 먹은 대로 하기 위해선 다시 그들을 마주해야 하는 은비칼.

심히 두렵다.

하지만 반드시 해야 하는 일.

마음속으로 그들이 화를 내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오강심과 나채국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러자마자 쏟아지는 비난 같은 불만.

“실장님! 어떻게 뻥을 쳐도 그렇게 심한 뻥을 치실 수가 있죠?”

나채국이 화가 났다는 듯 버럭 소리를 지르자 오강심도 덩달아 찢어진 눈으로 말을 뱉었다.

“가슴 깊이 동의합니다. 실망입니다.”

기분 나쁜 그들의 말에 일단 할 말을 잃은 은비칼.

모두 그가 한 거짓말 때문이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근무시간에 잠이나 처 잔 그들이 잘못한 거다.

이 생각에 그들을 단호하게 책망하려던 은비칼은 그걸 하려다가 그냥 그만 두었다.

화가 났다는 듯 팔짱을 낀 체 앞에서 노려보며 씩씩거리고 있는 나채국과 오강심에게 책망은 통하지 않을 것 같다.

외려 화를 더 돋을 상황.

김탄을 집중 감시하고 있는 모니터가 꺼진 이 중차대한 시점에 이들을 화나게 해선 안 된다.

지혜롭게 대처하자.

“나채국 씨. 오강심 씨. 피곤해서 근무시간에 살짝 주무신거 애석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구의 종말을 막기 위해 조금만 더 희생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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