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_다시 돌아온 김탄. 그런데 사채업자를 달고 왔네?

-행여나 이 사실이 순정이의 귀에 이 사실이 들어가면 죽음이다. 저 교활한 미소를 봐선 반장은 내편을 들어주지 않고 순정에게 고자질할게 분명하다. 아, 오늘 나는 죽는구나. -

이런 생각에 허탈해진 마영식.

그런데 갑자기 반장이 그런 그의 어깨를 한 손으로 턱 잡고는

“알았다. 비밀로 해줄 게. 나도 남자인데 그 맘 알지. 우리 마누라도 친구들 만나는 거 싫어하거든.”

이렇게 말하자 입부터 찢어지는 마영식.

오월춘추, 동병상련이라 했던가?

어려운 처지에 없는 사람끼리 서로 가엾게 여긴다는 아름다운 마음.

그 마음을 느낀 마영식은 지금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었다.

“역시 남자는 남자의 맘을 안다니까요. 남자들끼리 서로 지켜주는 게 미덕이죠.”

“허허허허허허허허.”

왠 일로 마영식의 말에 반장이 껄껄 웃어댔다.

마영식은 자신 때문에 반장이 저렇게도 웃을 수 있구나 라는 새로움에 가슴까지 선덕거렸다.

그도 그의 웃음에 화답하듯 따라 웃었다.

“하하하하하하하하.”

한 동안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그렇게 웃던 반장이 갑자기 원래대로 꼬장꼬장한 표정으로 되돌아왔다.

이제 웃을 일은 없다는 듯.

그리고는 갑자기 마영식을 향해 무섭게 핀잔을 주었다.

“이 녀석. 그래도 아무리 퇴근 시간이 가까워졌다고 이렇게 농땡이를 피면 못써.”

마영식은 반장에게 혼나 기분이 상한 것보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진 것에 신경이 쓰였다.

벽에 걸린 시계를 번개 같은 속도로 흘깃 보니 퇴근 시간 3분 전.

순간 짜증이 확 난 마영식.

지금 그는 바닥을 쳐다보며 얼굴을 붉혔지만 그건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퇴근 시간이 거의 다 되었기 때문에 짜증이 나서였다.

-그냥 집에 보내주지. 잔소리 되게 심하네. 겨우 3분 남은 거 가지고. 짜증 나 진짜!-

반면 반장은 그런 그를 보고 흡족했다.

나름 반성은 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에게 기특한 마음이 든 순간 코피가 다가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어라? 저 자식 봐라. 반장님. 지금 영식이가 시계 본 거 보셨어요?”

코피의 말에 두 눈에 힘부터 들어가는 반장.

화가 났다는 뜻.

그가 그렇게 힘이 들어간 눈을 치켜뜨며 코피에게 되물었다.

“뭐라고?”

“못 들으셨어요? 영식이가 빨리 집에 가고 싶은 모양인가 봐요. 자꾸 시계를 힐끔거리더라고요. 어휴. 참. 요즘 애들은 다 저렇다죠?”

괜한 오지랖을 부리는 코피 때문에 난처한 마영식은 얼굴부터 구겼다.

반장의 시선은 계속 따가웠고, 어차피 정시에 퇴근할 건데 왜 이렇게 잔소리를 해대는지 그냥 넘어가도 될 일을 부러 부스럼 만든 코피가 원망스러웠던 마영식.

그가 화가 나 코피를 확 째려보자 코피가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퇴근 시간 정시에 퇴근하는 건 말이야 나 때는 그런 건 꿈도 꾸지도 못 했어. 세상 많이 좋아진 줄 알아라. 영식아.”

-아우 씨. 짜증 나! 반장의 잔소리도 지겨운데 코피 형까지 지랄이네. 도대체 언제적 라떼를 시전이냐? 겨우 3분 남은 상황에서..-

마영식은 지금 회사를 확 때려치우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잠시 접어두고 다시 벽에 걸린 시계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런데..

-하! 퇴근 시간 1분 전. 이야호!-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했어. 코피 형. 요즘엔 정시에 출근해서 정시에 퇴근하는 게 법이야.”

마영식이 코피에게 복수하는 심정으로 말하고 나서 잽싸게 가방을 들쳐 매자 옆에서 그 모든 걸 듣고 보았던 반장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러나 그렇다고 뭐라고 잔소리는 하지 않았다.

단지 고까운 시선으로 마영식을 쳐다볼 뿐.

마영식은 이제 더 이상 회사에 종속되지 않는 시간을 가져 행복하다는 듯 그런 반장의 시선을 가볍게 무시하며 스마트 폰을 보며 중얼거렸다.

“퇴근 시간 다 됐으니 퇴근해야지. 법이니까.”

<나 때는 말이야. 저런 말은 입에도 담지 못했어. 세상이 망하려니 요즘 것들이 되바라진 것 같아. 이런. 쯧쯧쯧..>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하고 가슴에 묻어둔 반장의 속마음.

출근 시간 10분 전에 출근하고 퇴근 시간 10분 후에 퇴근하는 대한민국 불문율을 깨고 있는 마영식이 그것을 아주 당연하게 여긴다는 생각에 반장은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이런 놈들이 가득하면 나라가 망할 것 같다는 생각에 어질어질해진 반장은 손으로 이마를 살짝 감쌌다.

그때 갑자기

“영식이 형! 반장님!”

예상치 못한 김탄의 목소리가 들리자 영식과 코피, 그리고 반장이 동시에 깜짝 놀라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죽은 자가 다시 살아 돌아온 듯 김탄이 회사 입구에 서 있는 걸 본 반장은 소리부터 질러댔다.

“대체 어디 갔다 이제 온 거야!”

반장의 핀잔에 머쓱해진 김탄은 잠시 머뭇거리다 그대로 재빠르게 반장 쪽으로 달려왔다.

이 신우프로텍에서 가장 좋아하는 그런 김탄을 본 반장의 표정은 화사해졌다

또한 그가 그에게 오기까지 기다리는 모습은 너무 설렌다는 듯 아이처럼 변해 있었다.

그때 치타 같은 속도로 반장을 스쳐 김탄에게 달려나가는 마영식.

그런 그에게 묘한 질투를 느낀 반장도 곧바로 따라 나섰다.

덩달아 깍두기처럼 서 있던 코피도 따라 갔다.

결국 가장 먼저 김탄에게 다가간 마영식은 그를 와락 껴안기부터 했다.

너무 반가운 나머지 그도 모르게 나온 행동이다.

“탄아 고맙다. 넌 역시 나의 구세주 같은 존재야.”

언제나 반장과의 불편한 관계에서 정말 구세주처럼 나타나 구해주는 김탄.

어찌 마영식이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그렇게 김탄의 품에서 행복해 하던 마영식의 어깨를 누군가 우악스럽게 잡아 끌었다.

-아, 씨, 누구야? 짜증나게.-

영식이 화가 나 뒤돌아보니 역시나 반장이다.

얼굴을 확 일그러뜨린 마영식이 더 이상 김탄과의 회포를 방해하지 말고 이거 놓으라는 듯 어깨를 부르르 털었다.

그러나 반장은 손을 놓지 않고 그대로 마영식의 잡은 어깨를 뒤로 홱 젖혔다.

그 바람에 김탄의 품에서 강제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마영식.

반장에게 확 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서열 높고 성격 지랄인 반장에게 대들었다간 돌아오는 건 안 봐도 비디오다.

한 편 김탄의 앞을 차지한 반장은 두 손으로 그의 양 어깨부터 움켜쥐었다.

그런 그가 애절한 듯 한숨을 훅 쉬더니 푸념을 했다.

“야 이 이 녀석아. 결근을 할 거면 미리 말했어야지. 오늘도 무단결근인 건 알고 있냐?”

난처한 김탄.

일단 사과부터 하고 본다.

“죄송해요. 어쩌다 보니 일이 그렇게 됐어요.”

“아니 얼굴이 왜 이렇게 핼쑥한 거야? 밥은 먹고 다닌 거야? 이틀 새 말도 못 하게 야위었구나.”

“그래 보여요? 밥은 잘 먹었는데.. 사실 신경 쓸 일이 좀 있었거든요.”

아니, 밥을 잘 먹었는데도 핼쑥해지다니..

그런 일은 불가능한 일이다.

반장이 깜짝 놀라 되물었다.

“아니. 무슨 일이길래?”

반장의 물음에 머뭇거리기만 하는 김탄.

무언가 말 할 게 있지만 말을 못하는 사정이 있어 보였다.

말을 해줬으면 좋겠는데 말을 못하고 있는 김탄에게 답답함을 느낀 반장이 한숨을 훅 내쉬자, 어디선가 김탄의 어깨에 올려놓은 두 손을 잡는 손이 느껴졌다.

깜짝 놀라 그 손의 주인의 정체를 확인하는데, 왠걸 처음 보는 낯선 남자가 김탄의 등 뒤에 서 있었다.

그 미스터리한 남자가 김탄의 어깨에 올려놓은 반장의 두 손을 살포시 거두었다.

마치 내거니까 건드리지 마. 뭐, 이런 느낌 같았다.

순간 김탄이 말을 잇지 못하고 어물쩍거리는 모양새와 핼쑥한 얼굴 그리고 며칠 행방불명 된 사건, 이 모든 것이 이 미스터리한 남자 때문에 일어난 일임을 알아차린 반장.

그가 박토를 의심의 눈초리로 쏘아 보자 박토가 의식을 했는지 서둘러 김탄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이봐. 김 탄. 뜸 들이지 말고 빨리 말해. 시간이 없어. 늑대를 잊은 거야?”

조용히 혼자 해결하고 오겠다고 했는데 악랄하게 따라온 박토 때문에 미칠 것만 같은 김탄.

또다시 쏟아내는 이상한 말을 혹여나 반장이 들었을까 봐 노심초사 했지만 다행히 아무 반응이 없는 걸로 봐선 못 들은 것 같다.

-제발 꺼져 줬으면..-

이렇게 애가 타는 김탄은 조바심이 난 듯 식은땀을 뻘뻘 흘리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표정을 살피던 반장은 다시 낯선 남자인 박토를 쳐다보았다.

멀끔하게 잘생긴 그 남자는 여전히 김탄을 마치 지 남자친구인냥 신주단지 모시듯 손으로 잡고 있었다.

-도.. 동성애인가? 새로 생긴 애인이어서 말을 못하고 안절부절 했던 건가?-

둘의 미심쩍은 관계를 상상하던 반장은 도저히 참지 못하겠다는 듯 박토에 대해 캐묻기 시작했다.

“탄아. 이 사람은 대체 누구냐?”

반장의 물음에도 여전히 말 못하는 김탄은 상당히 당황한 듯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반장은 지금 그가 생각하는 그게 그러니까 둘 사이가 동성끼리의 사랑이 맞다는 판단이 든 순간.

하늘이 노래지는 것 같다고 느낀 그가 손으로 뒷덜미를 잡자, 갑자기 박토가 처음 만난 애인의 부모에게 인사를 하는 것처럼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반절을 했다.

엉겁결에 같이 고개를 숙여 맞절을 하는 반장.

지금 그도 그가 왜 그러는지 모른다.

다만 김탄의 애인이라 판단한 박토가 너무 예의가 바라 그랬던 것.

드디어 상견례 같은 인사를 마친 반장과 박토.

할 말은 많은데 서로 탐색하는 듯 말을 못하고 있던 그 둘 중 시간이 조금 흐르자 박토가 먼저 입을 뗐다.

“처음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김탄의 채권 추심자입니다.”

박토의 인사에 대꾸를 하지도 못하고 눈만 엄청 커진 반장.

아주 아주 깜짝 놀란 것.

소리를 지르지도 못할 정도로 깜짝 놀랐던 반장은 그 상태로 김탄만 쳐다보다 시간이 조금 흐른 후 갑자기 뒤늦게 소리를 쳤다.

“채권? 아니. 탄아! 너 혹시 사채를 쓴 거야?”

“아.. 아니요! 아니에요. 그런 거.”

반장의 오해에 김탄이 당황해 손으로 마구 아니라는 듯 내두르고 있을 때 박토가 갑자기 또다시 끼어들었다.

“맞습니다. 비슷한 거라고 보시며 됩니다.”

박토의 말을 들은 반장은 아연실색, 대경실색 그런 단어를 다 담은 듯 표정이 변하기 시작했다.

한편 사채를 쓴 걸로 오해를 하고 있는 반장 때문에 김탄은 지금 상당히 무색하다.

-그게 아닌데..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박토 때문에 난처해진 김탄은 화가 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회사에 무단결근하게 한 주범.

게다가 사채까지 끌어 쓴 빚쟁이로 만들어버린 지금.

김탄은 더 이상 간섭하면 입 속의 혀를 뽑아버리겠다라는 듯 박토를 확 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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