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_조용한 킬러, 말벌이 움직이다.

“전 달라요. 전 10년이 넘어도 포기하지 않을 거거든요.”

“아이고. 과연 그럴까?”

신영준의 단호한 확언같은 비아냥에 이희수는 감정이 상한 듯 표정이 굳어졌다.

이어지는 둘 사이의 냉기가 살벌하게 흘렀다.

그렇게 차가운 공기 속에 갑자기 수색대원 한 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요!”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동시에 돌린 신영준과 이희수.

풀 숲에서 손을 흔들며 서 있는 수색대원이 보였다.

그가 신영준과 이희수에게 다시 소리쳤다.

“여기 시신의 유류품으로 보이는 물건을 찾았습니다”

이희수가 신영준보다 먼저 선수치며 재빠르게 수색 대원 쪽으로 달려갔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던 신영준의 얼굴에 순간 미소가 어렸다.

풋풋한 새로움을 향한 부러움이었다.

수색 대원 옆으로 다가간 이희수는 그가 가리키는 곳을 쳐다보았다.

커다란 바위 옆 풀 숲에 운동화 한 짝이 숨어 있었다.

곧바로 스마튼 폰을 열어 김정구 경장 사체 사진을 검색한 그녀는 그 운동화가 김정구 경장이 신고 있던 한 쪽 신발과 일치함을 확인했다.

증거에 한 발 더 다가간 이희수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녀가 스마트 폰으로 그 신발을 촬영하자 그녀에게 어느새 다가온 신영준의 목소리가 들렸다.

“8년 전 형사 자살 사건이랑 비슷하네.”

호기심을 보이며 신영준을 돌아보는 이희수.

의아한 표정으로 눈만 끔벅거리자 신영준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사건 때도 이렇게 바위 옆에서 신발이 발견됐었거든.”

“네?”

이희수의 되물음에 신영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런 그의 행동에 이희수는 의아한 듯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그 후로 신영준은 깊은 생각에 잠긴 듯 신발만 쳐다보았다.

그러던 그가 한 손을 들어올려 턱을 쓸 듯 만지작거렸다.

그걸 본 이희수가 갑자기 신영준 앞을 가로막자 시야가 가려진 신영준이 당황했다.

그때 이희수가 무서운 표정으로 제 턱을 만지고 있는 신영준의 손을 덥석 잡았다.

“이 버릇 뭔가 수상할 때 나오는 거잖아요? 선배?”

이희수의 물음에도 대답 없이 그녀를 지그시 내려다보기만 하는 신영준.

그런 그의 눈에 들어온 호기심으로 똘똘 뭉친 이희수의 눈이 날카롭게 빛나자 그가 다른 손을 들어올려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이희수의 손을 턱 잡았다.

이희수는 무언가 진지한 그의 표정에서 무언가 대박 정보가 나올 것 같은 그런 분위기에 설렌다는 듯 얼굴에 홍조까지 띠었다.

그런 그녀의 잡은 손을 신영준이 억지로 풀어 낸 후 아래로 지그시 누르듯 내리며 말을 뱉었다.

“성추행 그만하라고 이형사야. 하이고. 이거 귀찮은데 말할 수밖에 없네.”

“빨리 말하세요. 궁금하니까.”

“8년 전 그 사건 전단팀에 나도 있었거든.”

“이 사건과 연결고리가 있다는 건가요?”

“아니. 그건 아닌 것 같아. 하지만 패턴이 비슷하네.”

“신발 때문인가요?”

“그래. 하지만 단정 짓지는 마. 우연일 수도 있어.”

두 사건의 공통점.

한 쪽 신발만 신고 있는 시신.

그리고 바위 옆에서 발견 된 신발 한 짝.

우연치곤 절묘하게 비슷했다.

그 사실에 이희수의 눈이 유독 반짝였다.

지금 그녀는 사건을 풀 수 있다는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신영준은 그런 그녀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녀가 그의 수사팀에 들어온 이래 단독으로 맡은 첫 사건.

의지도 강렬했고 열정도 가득했다.

반드시 해결하겠다는 희망의 마음으로 가득한 이희수에게 미소를 보내는 신영준은 지금 그녀를 지지하고 있었다.

***

차 한 대 간신히 지나갈 수 있는 임도(林道).

그 끝으로 인적 없는 나무가 빽빽한 산이 펼쳐져 있었다.

산 중턱에 누가 벌목 작업을 했는지 잘린 나무가 군데군데 쌓여 있었다.

조용한 그 산속에 바스락 거리며 오래된 낙엽을 밟는 소리가 확성기를 통해 들리듯 울려 퍼졌다.

등산 코스도 아닌 길을, 또 길도 없는 곳을 걸어가고 있는 두 남자.

그들이 벌목 작업을 해 논 곳을 거슬러 올라간 후 언덕 위로 편편한 공터가 나오자 걸음을 우뚝 멈추었다.

검은색 등산모에 검은색 등산복을 입은 그들은 처음 산에 온 것인지 입고 있는 옷과 신발이 모두 새것이었다.

남자 둘이 처음 등산이라.

무언가 평범하진 않아 보였다.

그들 중 한 명이 누가 보는 사람이 없는지 살피는 것처럼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자 갑자기 공터 밖에 있는 소나무 중 가장 키가 큰 소나무 밑으로 다가갔다.

그러던 그가 곧바로 나무를 기어오르자 같이 온 일행인 다른 남자가 주머니에서 조그만 기계를 꺼내 땅을 향하게 하고는 걸음을 걸으며 무언가 확인하며 대조하기 시작했다.

순간 걸음을 멈춘 그 남자.

주머니에서 작은 래커를 꺼내 땅에 표시를 했다.

그런 다음 다시 그 기계를 들고 걸음을 옮겼다.

또 기계와 무언가 일치한 듯 땅에 표시를 하는 남자.

마치 좌표를 측정하는 듯 보였다.

한편 소나무 끝까지 올라간 남자는 신고 있던 승족기로 나무를 찍어 지탱한 다음 안전벨트를 나무와 고정시켰다.

그리고 품에서 빨간 깃발을 꺼내 나무에 묶은 다음 나무 밑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에 확연히 들어온 공터 한가운데 빨간색 엑스표.

그걸 본 남자가 귀에 꽂혀있는 인이어를 터치하며 입을 열었다.

“말벌 집 작업 완료. 이제 말벌을 보내라.”

<말벌을 보내겠다. 대기하라.>

교신을 받은 남자가 다시 나무 밑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공터에 있는 다른 남자와 합류한 후 다시 주변을 살폈다.

마치 누가 지켜보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처럼..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그들은 안심을 하는 게 아니라 더욱더 긴장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초조한 듯 손목에 찬 시계와 임도 끝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마치 무언가 애타게 기다리는 듯 보였다.

.

.

시간이 조금 흐르자 숲 속 저 멀리 차소리가 들렸다.

두 남자가 임도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 끝으로 탑 트럭 하나가 들어서고 있었다.

그때 한 남자가 인이어를 터치하며 교신을 시도했다.

“케이스가 보인다. 포인트 지점으로 유도하겠다.”

<알았다. 말벌이 안착하면 보고하라.>

임도 끝으로 트럭을 향해 두 남자가 손짓을 하며 유도를 했다.

트럭이 벌목을 한 언덕을 올라 간 후 공터 끝에 올라섰다.

그러자 한 남자가 수신호를 하며 트럭을 유도하기 시작.

트럭의 화물칸이 아까 전에 표시해 둔 엑스표 교차점과 만나자 수신호는 멈췄다.

따라서 정차한 트럭.

“케이스는 무사히 안착했다.”

<알았다. 대기하라.>

교신을 마친 두 남자들이 누가 보는 이가 없는지 살피는 것처럼 다시 주변을 돌아다니며 살폈다.

멀리서 보는 영락없는 등산객.

하지만 검은 옷 색과 검은 탑 트럭이 참 이질적이다.

***

신우 프로텍.

퇴근 시간 15분 전.

여기 생산 근무자들은 퇴근 시간에 맞춰 하나둘씩 기계를 종료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직 작업을 마무리 짓지 못한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먼저 집에 갈 준비를 마친 한 사람.

바로 마영식.

그는 지금 집에 가기 위해 가방을 어깨에 매고 반장이 어디 있는지부터 살폈다.

-아이고, 저기 있네.-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있으면 부리나케 작업장을 나서려던 마영식의 눈에 멀리 코피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반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자 그가 어깨에 맨 가방을 살포시 밑에 내려놓으며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투덜거렸다.

“아이 씨. 조금 기다렸다 가야겠네. 짜증 난다. 짜증 나.”

일단 그는 반장의 눈에 띄기 쉽지 않게 기계 뒤에 몸을 숨겼다.

그리고 꺼내 든 스마트 폰.

채팅 앱부터 켰다.

<오빠. 오늘은 좀 늦음. 야간 잔업. 미안. 순정아.>

마영식이 그의 여자 친구 고순정에게 메시지를 보내자 곧바로 답신이 왔다.

<아이. 진짜. 짜증 나. 거긴 맨날 잔업임?>

메시지를 읽자 마자 피식 웃는 마영식.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다시 문자를 쳤다.

<하루가 멀다 않고 잔업임. 오늘은 아닐 줄 알았는데 역시나 내 예상이 빗나갔음. 때려치우던지 해야지 진짜.>

“때려치우려고?”

갑자기 들린 목소리에 몸부터 얼어버린 마영식.

그가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반장의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분명 가까이서 들린 목소린데? 뒤에 있는 건가? 대체 언제 온 거지?-

반장인지 확인 차 천천히 고개를 뒤로 돌리는 마영식은 고개가 다 돌아가기도 전에 화들짝 놀랐다.

그의 예상대로 어느새 왔는지 반장은 마영식의 어깨 너머로 그의 스마트 폰을 보고 있었다.

그걸 인지한 순간 더 깜짝 놀라 허겁지겁 스마트 폰을 밑으로 내리며 숨기는 마영식이 반장에게 다급하게 물었다.

“보.. 보셨어요?”

“그래.”

“아유. 진짜. 이런 건 보여도 보시면 안 돼요. 사생활 침해니까..”

“눈에 보이는 걸 어떻게 안 봐?”

“그래도 무시하는 게 에티켓이니까..”

마영식은 지금 두렵다.

그가 순정에게 보낸 마지막 메시지를 반장이 봤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그런데 다행히 반장은 보지 않은 것 같다.

그의 후속조치가 나오지 않아서였다.

만약 마지막 메시지를 봤으면 벌써 머리를 한 대 쥐어박고도 남을 반장이다.

-다행이다. 못 본 것 같아서. 그런데 왜 때려치울까라고 말했을까?-

마영식이 안심을 하고는 반장의 눈치를 살피자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오늘 잔업은 없는데. 투 잡 하니? 영식아.”

-이런....다 봤네.-

지금 반장이 마지막 메시지를 본 걸 확인한 마영식은 똥줄이 타들어갔다.

잔업이 없는데 잔업이 있다고 회사를 탓하며 때려치운다고 거짓말을 했으니 그는 지금 반장을 보기에 면이 서지 않았다.

-그렇다면 사실대로 이실직고 할 수밖에..-

살아야 하니 어쩔 수 없이 입을 여는 마영식.

“아.. 아니요. 투잡이라뇨.. 다니는 회사가 여기밖에 없는데.. 그게.. 저.. 순정이가 의심이 많아서.. 그러니까 저 반장님. 제가 오늘 저녁에 동호회 친구랑 약속이 있는데 그걸 순정이가 싫어해서 어쩔 수 없이 잔업 핑계를 댔는데 순정이한테 비밀로 해주시면 안 될까요?”

마영식의 말에 반장이 화를 낼 거라는 예상과 달리 그는 화를 내지 않았다.

단지 조금 깊은 생각을 하는 듯 허공을 바라보더니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교활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 더 불안하고 무서운 마영식.

평소와 다른 반장의 태도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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