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_남자보다 더 남자 같은 강력계 형사 이희수.

사건 조사차 내방한 신영준은 일단 근엄한 표정부터 짓고는 저수지 주변을 쓱 둘러보았다.

그러다 그의 눈에 띈 한 사람.

저 멀리 같은 경찰서 소속 직속 후배 수사관인 이희수가 있었다.

낚시꾼에게 사건 경위에 대해 묻는 듯 보였다.

그가 반가운 마음에 폴리스 라인을 넘어가다 앞으로 고꾸라질 뻔했다.

서두르는 바람에 뒷다리가 라인에 걸려서 그랬다.

아무튼 가까스로 위기를 넘긴 그가 혹시나 그 추태를 본 사람은 없는지 주변을 황급히 둘러봤다.

다행히 본 사람은 없다.

또한 그가 여기 왔다는 걸 눈치 챈 사람도 없어 보였다.

한바탕 혼자 코믹극을 치른 그가 그의 후배 이희수 곁으로 다가갔다.

그를 알아 본 경찰들이 가벼운 거수경례를 했지만 그의 목적인 이희수는 여전히 그가 온 지 모르고 있었다.

그녀는 사체 옆에 쭈그려 앉아 날카로운 눈매로 훑어보며 수첩에 무언가를 기록하고 있었다.

“이봐. 이 형사.”

낯 익은 목소리에 이희수가 고개를 들어 보니 선배 신영준이었다.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수첩을 서둘러 주머니에 넣고 일어서 가볍게 거수경례를 했다.

“오셨습니까? 선배.”

“그래. 왔다. 근데 이 시신, 양평 경찰서 정보과 김정구 경장이라며?”

“네. 팀장님.”

군기 바짝 든 이희수 모습에 장난기가 발동한 신영준이 잠시 대화를 멈추고는 눈을 지그시 내리깔았다.

거들먹거리는 그의 태도가 마치 그녀의 수사 실력을 한 번 보자는 듯 들떠 보였다.

“현장 감식 결과는?”

“외관상 타살에 대한 징후는 없었습니다. 단지 조금 이상한 점은 피해자가 신발을 한쪽만 신고 있던 점입니다.”

“저수지에서 유실될 수도 있지.”

신영준의 말에 이희수가 저수지 안에 들어가 있는 수색대원을 쳐다보았다.

“그래서 지금 찾고 있습니다. 보십시오.”

첫 수사인데도 상당히 잘 하고 있는 그녀.

그런 이희수에게 만족하다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이던 신영준은 한 손으로 턱에 손을 괴고 다른 손으로 팔꿈치를 받친 후 김정구 경장의 사체를 살펴보았다.

죽은 김정구는 평범한 아저씨들이 입는 면바지에 바람막이 점퍼를 입고 있었다.

그리고 한 쪽 발에만 신고 있는 운동화.

경찰의 신분을 속이고 정보를 수집하는 정보과 형사들의 평범한 차림새였다.

하지만 이 호수에는 어울리지 않는 복장이었다.

“낚시하러 온 건 아닌 것 같은데. 자살로 추정하나? 이 형사.”

“자세한 사인은 부검을 통해 알 게 되겠지만 현재로선 자살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특별한 사인이 보이지 않는 시신이라.. 더군다나 타살의 흔적은 없었다. 하지만 왜 그가 죽은 곳이 여기일까?-

무언가 석연치 않은 듯 신영준이 입꼬리를 아래로 쭉 잡아당기며 중얼거렸다.

“연고지도 없는 먼 곳으로 와 자살이라.. 흠..”

“왜요? 자살이 아닌 것 같나요? 팀장님.”

“이 사건 담당이 너지?”

원하는 물음에 답은 하지 않고 엉뚱한 질문을 한 신영준에게 이희수가 두 눈을 반짝였다.

사건 담당은 당연히 이희수이다.

그걸 모를 리 없는 신영준이 유독 그걸 강조한 걸 봐선 분명 무언가 더 있다는 뜻.

무속인 버금갈 정도의 형사로서의 촉이 발동한 이희수가 신영준의 코 앞으로 얼굴을 빼꼼이 들이밀었다.

“왜요? 선배. 뭐 감 잡으신 게 있나요?”

“음. 아니.”

그녀의 예상과 다른 신영준의 대답.

촉은 빗나갔다.

-그럼 뭐 하러 다 알고 있는 담당 형사를 물어본 걸까? 설마 장난치려고? 내가 초짜 형사라서?-

이 생각에 상당히 토라진 이희수가 입을 샐쭉거리며 투덜거렸다.

“낚시는 금물입니다. 팀장님.”

신영준은 그런 그녀가 귀엽다는 듯 빙긋이 웃기부터 했다.

그런 그의 모습에 이희수는 더욱더 입이 나왔다.

이는 분명 그가 놀리는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으이그.. 삐지기는. 잘 들어. 희수야. 그러니까 8년 전에도 이와 비슷한 사건이 있었어. 그때도 이 사건처럼 저수지에서 시신이 발견됐고. 물론 이 저수지는 아니지만 말이야.”

무언가 더 있다는 이희수의 감이 맞았다.

그러나 신영준이 그녀를 놀리려 낚시를 했다는 그녀의 생각도 맞았다.

이희수는 살짝 짜증이 났지만 신영준은 이 사건의 실마리가 될 정보를 가진 자이다.

그래서 을로써 그냥 정말 을로써 그녀의 성격과 위배되는 그녀의 애교가 시작됐다.

갑자기 이희수가 신형준의 팔을 두 팔로 잡으며 눈웃음을 치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아,, 선배. 소주 한 잔 살 게요. 더 말해 주세요.”

우락부락한 이희수가 부리는 어색한 애교보다 그녀가 잡고 있는 팔이 아파 더 싫었던 신영준.

-무슨 여자 손아귀가 이리 센 건지.-

그가 호들갑을 떨며 정색을 하곤 그녀의 팔을 뿌리쳤다.

“성추행 그만하고. 그리고 그런 눈으로 쳐다보지 마. 징그럽다. 희수야. 하나도 안 어울려.”

나름 애교 필살기를 부린다고 애를 쓴 이희수는 돌아오는 참변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내가 모할라꼬 이짓을 한 걸까? 그냥 물어보면 될 걸..-

다급한 마음에 그녀가 부린 애교참사를 자책하던 이희수는 마음이 삐뚤어지기 시작했다.

나름 친분이 두터웠던 신영준과 이희수다.

-꼴에 여자라고 애교 한번 장난 삼아 부려봤는데 죽자고 덤비는 꼴이라니.. 그렇다고 대놓고 징그럽다니. 섭섭하네..-

이희수는 마음에 생채기가 났다.

또 토라진 그녀.

이번에는 대놓고 신영준을 저격했다.

“선배는 제가 남자였어도 그 말을 하실 건가요?”

“아니. 네가 남자라면 내 몸에 손도 안 대지. 남자라면..”

“그럴리가요. 친분을 위한 스킨십인데.. 그런 의미에서 저를 여성으로 보아주지 말아 주시고 직장 동료로 생각해 동성 취급을 해 주십시오. 팀장님. 그리고 저 솔직히 머리가 짧으면 남자인 줄 알아요.”

말을 마친 이희수가 갑자기 팔 소매를 어깨까지 걷어 올렸다.

팔을 굽히고 힘을 주자 이두와 삼두의 박근들이 툭 위어나와 울퉁불퉁해졌다.

그걸 본 신영준은 얼굴부터 찡그렸다.

마치 못 볼 걸 봤다는 듯..

-그런데 얘가 왜 이래? 갑자기..-

신영준은 갑자기 훅 들어온 이희수의 이상한 말과 행동에 당황했다.

아무래도 그녀의 여성성을 폄훼한 것에 대한 상처의 발로인 듯..

얼핏 보면 긴 머리 남자 같은 이희수는 정말 남자 같았다.

그런 그녀가 다른 일반 여자들이 부리는 애교가 신영준에게는 정말 못 봐줄 수준이었다.

-너무 적나라하게 깠나? 그래도 여자라 속상했나 보네..-

이런 생각에 갑자기 이희수가 측은해진 신영준이었다.

“나보다 근육이 더 많네. 아무튼 알았다. 앞으로는 머리 긴 남자로 봐주겠어.”

“땡큐. 팀장님. 자 이제 말해 보시죠.”

“뭘?”

“8년 전 사건이요.”

“아. 맞다 그 얘길 하고 있었지.”

말을 마친 신영준은 잠시 생각에 잠긴 듯 먼 산을 바라보았다.

그러던 그가 무언가 생각난 듯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가볍게 두 번 튕기고는 다시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때 그 시신도 경찰이었어. 거긴 강력계 형사였지. 타살이 확실했지만 자살로 결론이 났고 다시 재수사를 했어. 자살이 아니라는 결론이 내렸지만 동시에 타살이라는 명백한 증거가 없어서 미제사건으로 분류된 사건이야.”

“미제 사건이라고요?”

그의 말에 상당한 호기심을 보인 이희수가 되묻자 신영준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러자 무언가 이상하다는 듯 미심쩍은 표정을 짓는 이희수.

“냄새가 좀 나는데요?”

“많이 나지? 하지만 너무 파지는 마. 미제사건이니까.”

“팀장님!”

“아이쿠. 깜짝이야.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말하다 중간에 갑자기 버럭 소리를 지른 이희수 때문에 당황한 신영준은 얼이 빠진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이희수는 무언가 실망했다는 듯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신영준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녀의 그런 행동에 이해할 수 없었던 신영준은 너 대체 왜 지랄이냐? 갑자기. 이런 의미로 눈을 치켜떴다.

빨리 그 이유를 말해 보라는 듯..

그의 무언의 질문에 이희수는 작심한 듯 침부터 꼴깍 삼켰다.

그리고는 힘겨운 표정으로 단호하게 말을 내뱉었다.

“정말로 팀장님이 강력계 형사가 맞긴 한가요?”

“그래. 맞는데 왜?”

“조금 수치스럽습니다.”

대뜸 수치스럽다고 말하는 이희수 때문에 신영준은 당황했다.

-말을 할 땐 조리 있게 말하는 게 좋다. 무슨 이유로 또 이러이러한 뭐, 상황 때문에 이렇다. 저렇다. 이렇게 말하면 좋지 않겠는가? 여자들 화법은 이런 것인가? 갑자기 감정부터 배설하는 것? -

이런 생각에 당황한 신영준은 어이가 없어 되물었다.

“아니. 갑자기 웬 수치?”

“그걸 몰라서 지금 되묻는 건가요?”

-아, 그거였구나. -

순간 신영준은 피식 웃음부터 나왔다.

그녀가 그를 자극시킨 정확한 저의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꾸 헛웃음만 나오는 신영준.

이희수는 강력계 2년 차 신참내기다.

세상의 모든 새내기들이 그러하듯 그녀도 열정이 넘쳤다.

못할 게 없었고 안 되는 게 없는 새내기.

10살 많은 신영준은 고참.

열정은 식었고 노련함과 나태가 공존했다.

못하는 건 못하는 거고 안 되는 건 안 되는 고참.

세상을 다 품을 수 있다고 혼자 착각하고 있는 새로움인 이희수에게는 신영준이 못마땅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형사로서 수치스럽다 느낀 것.

그것은 한때 신영준이 가졌던 모습이기도 했다.

신영준은 이내 자조적인 표정으로 변해버렸다.

잠시 그러고 있던 그가 그 표정을 지우고 이희수를 지그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희수야. 미제 사건이 왜 미제 사건인데. 할 수만 있다면 사건을 풀었지. 네가 신참이라 의욕이 왕성한 건 알겠는데 사건이 발생하면 백이면 백 다 해결하는 게 아니야. 수치라는 말은 좀 과한 것 같다.”

하지만 그의 말에도 이희수의 눈 속에 담긴 경멸은 가시지 않았다.

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그녀는 그저 신영준을 노려볼 뿐이다.

말과 글보다 더 큰 힘을 가진 경험.

온전히 그 속에 녹아 있는 진리를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

말은 가볍고 글은 피상적이다.

이희수는 아직 말과 글로 아는 자였고 신영준은 경험을 많이 해 본 자.

세상만사 뜻대로 되지 않고 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경험으로 알게 된 낡음이다.

그런 신영준이 독백처럼 쏟아낸 말.

“알아. 네가 어떤 맘인지. 하지만 너도 10년이 넘어가면 네 의지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도 있다는 걸 알게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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