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_믿을 수 없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건 정말 불편한 일이야.

박토가 말하는 것보다 박월의 소리가 더 소름 끼치게 무서웠던 김탄은 레버를 잡아당기는 속도가 빨라졌다.

그가 공포에 젖어 그러거나 말거나 박토는 박월에게 사과부터 했다.

“알았어. 미안해. 월아. 그런데 차일드 락은 풀 수가 없어. 절대로.. 김탄이 도망갈 수도 있잖아.”

순간 김탄은 차 문을 열기를 포기했다.

-어쩐지 열리지 않더라니.. 이들은 절대로 나를 풀어주지 않는다.-

이 생각에 김탄은 절망마저 맛보는 중.

지금 그는 납치당하는 자의 공포까지 알 것도 같았다.

-세상에.. 살다 살다 별 결 다 겪어 보는구나. 대체 전생에 내가 무슨 죄를 지은 거지?-

알지도 못하는 전생까지 되짚어본 김탄은 저 멀리 차창 밖으로 보이는 자연의 고요함과 달리 마음 속에선 폭풍이 일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지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신세.

그가 모든 걸 내려놓듯 도망치기를 포기하며 고개를 돌렸는데 조수석에서 고개를 돌려 김탄을 쳐다보고 있던 박월과 눈이 마주쳤다.

그 때문에 잠시 얼어 붙어 있던 김탄은 잠시 그를 쳐다보다 그대로 무시하고는 고개를 돌려 다시 창 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와 동시에 그의 머릿속에 든 생각.

-저 꼬마가 대장이 확실하다. 모든 결정과 명령은 저 아이가 내리는 게 분명. 무섭다.-

정말 무서웠던 김탄은 온몸에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그가 팔에 난 소름을 문지를 때 그의 귀속으로 월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기.. 바탈 아저씨.”

상당히 귀여운 목소리.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상냥한 말투.

이런 목소리와 말투로 무언가 불가능한 그 어떤 요구를 요구한다면 그래도 들어줄 수 밖에 없는 목소리.

하지만 김탄은 무시했다.

사람의 말과 외모에 속으면 안 된다는 진리를 태어나서 19년만에 알았기 때문이다.

두 번 다시 속지 않겠다고 다짐한 그는 망부석처럼 움직이지 않고 계속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

“저기.. 아저씨?”

정말 귀여운 목소리.

귀엽지만 정말 포기를 모르는 아이 같다.

김탄은 여전히 박월을 무시했다.

그러자 또다시 들린 월의 목소리.

“저 좀 보세요. 아저씨.”

보통 이런 상황이면 포기를 하거나 아님 무시했다고 삐쳐서 화를 내야 하지만 월은 그러지 않았다.

대신 아주 절박한 듯 목소리가 떨렸었다.

그 때문에 마음이 살짝 흔들린 김탄.

그 기세를 읽었는지 박월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아저씨. 저 좀 봐 주세요. 네?”

또다시 들린 박월의 목소리에 마음이 무너진 김탄.

-빌어먹을 여린 마음.-

독하고 냉정하며 매몰차지 못한 심약한 김탄이었기에 자신을 부르는 애절한 목소리에 그는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순간 깜짝 놀란 김탄은 그도 모르게 입에서 비명 같은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아, 깜짝이야!”

-대체 왜 네가 여기 있는 것이지?-

김탄은 지금 눈 앞에 보이는 박월 때문에 혼이 빠질 지경이었다.

그가 어느 새 소리 없이 안전 벨트까지 푼 상태로 뒷좌석 쪽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상반신 전체를..

그 때문에 박월의 얼굴은 김탄의 코 앞에 와 있는 상태.

겨우 10cm 정도 떨어진 상태로 마주보기가 왜 이렇게 힘든지..

그 때문인지 김탄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순간 그런 김탄을 바라보던 박월이 씨익 웃었다.

누가 봐도 교활한 웃음.

하지만 박월이기에 귀여웠다.

그러나 그의 실체를 정확히 알고 있는 김탄은 절대 흔들리지 않았다.

무표정한 김탄의 얼굴 때문인지 시간이 조금 흐르자 박월의 미소가 사라졌다.

아마도 상처를 받고 있는 중.

그러던 그가 심각해진 얼굴로 갑자기 주먹을 휙 내밀었다.

그런데 그 순간 경기를 하듯 눈을 감고 몸을 움찔하는 김탄.

아마도 박월이 주먹으로 때린다고 착각한 듯..

한편 박월은 그런 김탄의 무의식적인 행동에 무척 당황하고 있었다.

‘이 아저씨 내가 무서운 거야? 진짜 삼촌 말대로 겁쟁인 거야?’

시간이 지나도 몸을 움츠린 체 눈을 뜨지 않는 김탄.

그가 단단히 오해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 박월은 실망한 마음도 들었지만 오해부터 풀고 싶었다.

-난 정말 무섭지 않아요. 초딩이 힘이 있어봤자 얼마나 있겠나요? 사실 전 바탈의 광팬이라고요. 전 바탈인 김탄 아저씨가 너무 좋아요.-

이렇게 말하고 싶음 마음이 굴뚝 같았던 박월.

하지만 그도 꼴에 남자라고 먼저 고백하는 것에 가오가 서질 않았다.

그런 그는 그저 그의 진심을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아주 자상하게 달래듯 김탄에게 말을 걸었다.

“바탈 아저씨. 때리지 않아요. 눈 떠 보세요.”

김탄은 지금 눈을 뜰 명분을 얻었다.

솔직히 본능적으로 나온 방어 행동에 약간 쪽 팔렸었다.

그도 눈을 질끈 감고 몸을 움츠린 것에 스스로도 놀라고 있던 터.

겨우 초딩의 주먹에 이렇게 겁쟁이 같은 모습을 보였으니 나는 남자도 아니다.

뭐, 이렇게 마음으로 자학을 하고 있었던 그에게 박월의 말은 구세주와 같은 거였다.

김탄이 조심스레 눈을 떴다.

여전히 박월은 그의 코 앞에 있었고 주먹을 내밀고 있었다.

그런 그를 눈만 끔벅거리며 쳐다보고 있는 김탄에게 박월은 주먹을 펴 보이며 웅얼거렸다.

“이거..”

박월의 손으로 시선을 옮기는 김탄.

그의 손바닥엔 박토의 집에서 그를 희롱하던 파눔의 심장 조각이 놓여 있었다.

분명 가지라는 뜻?...

의아함에 김탄이 물었다.

“내게 주는 거야?”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는 박월.

더욱더 그를 알 수 없었던 김탄.

대체 무슨 꿍꿍이지?

또 나를 골탕 먹이려 수작을 거는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에 김탄은 의심을 가득 담고 박월에게 다시 물었다.

“왜 주는 거지? 아직 바탈이 된다고 하지 않았는데?”

“믿으니까요. 아저씨는 바탈이 될 거거든요. 정말 멋진 히어로가 될 거예요. 전 믿어요. 진짜로..”

진심 같았다.

하지만 김탄은 섣불리 그 심장 조각을 집어 들지 않았다.

그는 지금 많은 갈등을 하고 있는 중.

바탈이 되어볼까 생각은 했었지만 정말 하고 싶지는 않았던 김탄.

그런 마음 때문인지 마치 박월의 손바닥에 놓인 파눔의 심장 조각을 집어 들면 다시는 예전의 생활로 돌아가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에 쉽게 받아 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저 그는 그 조각을 심각하게 바라볼 뿐..

그 모습에 박월의 표정이 침울해졌다.

정말 훌륭한 바탈이 될 것 같았고 또 진짜 바탈이 좋아 굳이 주지 않아도 되는 파눔의 심장 조각을 김탄에게 주려던 박월은 지금 민망하다.

속상함에 편 손을 다시 주먹을 쥐려는 찰나 부르르 떨기 시작하는 파눔의 심장 조각.

마치 김탄에게 데려다 달라는 듯 몸부림 치는 듯 보였다.

“보세요. 아까부터 아저씨한테 가고 싶어서 난리도 아니에요. 얼른 가져가세요. 제 주머니에 있어봤자 자꾸 아저씨한테 간다고 부르르 떨기만 해서 저도 좀 불편해요.”

-그게 내 탓인가? 내가 지명 된 바탈 후보자라? 별게 다 내 책임이네. 쳇.-

김탄은 박월의 성화에 마지못해 그런다는 듯 억지로 파눔의 심장 조각을 집어 들더니 바지 호주머니에 대충 쑤셔 넣었다.

그제야 밝은 표정으로 웃는 박월은 좋아하는 사람에게 선물을 주는 뭐, 그런 표정이었다.

그런 박월이 상당히 귀엽고 예뻤지만 절대 흔들리지 않는 김탄은 박월을 가볍게 무시하고 운전을 하고 있는 박토에게 퉁명스럽게 말을 했다.

“일단 집으로 데려다주세요.”

“왜?”

“가서 정리할 게 있으니까요.”

“그거라면 갈 필요 없어!”

이게 뭔 소리야? 대체.

김탄은 박토의 독선 가득한 말에 당황해 그에게 되물었다.

“왜죠? 제가 가고 싶다는데 왜 그걸 박토 씨가 정하죠?”

“가도 아무것도 없으니까. 머리카락 한 올도 없다고.”

-진짜 미친 사람 같다. 아님 정신병자거나.-

지금 김탄은 어이가 가출 중.

마치 박토가 자신의 집에 다녀온 것처럼 말하는 것에 김탄은 그가 정말 제정신이 아닌 듯 느껴졌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이죠? 아무것도 없다니..”

김탄의 물음에 바로 대답하지 않는 박토.

그는 가끔씩 눈치를 보듯 룸미러로 김탄의 동정만 살폈다.

그것을 모를 리 없는 김탄.

“말 하세요. 가도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 무슨 뜻이죠?”

김탄의 말을 듣자마자 한숨부터 내쉬는 박토.

무언가 켕기는 게 있어 보였다.

“미안해. 김 탄. 네 짐은 저번에 내가 다 버렸어. 총격전이 있던 날 네가 회사에 갔을 때 버렸다.”

“무슨 말이에요? 뭘 어쨌다고요?”

“흘러내리 원룸 302호 도어 락 비번 을 누르고 네 방에 들어가 네가 가지고 있던 모든 짐을 다 쓰레기봉투에 넣어 버린 후 네 생물학적 흔적과 물리적 흔적을 모두 지웠다는 말이야.”

남의 물건을 허락도 없이 마음대로 버렸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박토에게 환멸을 느낀 것과 동시에 깜짝 놀란 김탄.

-만약 그가 말한 게 사실이라면 집 주소는 그렇다 치더라도 대체 도어 락 비번은 어떻게 안 거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김탄은 박토의 뒤통수를 확 째려봤다.

그런데 그의 뒤통수에서 느껴지는 진실.

박토가 뱉은 말이 허언이 아니라는 사실.

하지만 김탄은 믿기 싫었다.

그의 마음을 어떻게 알았는지 박토가 무심히 한 마디 내뱉었다.

“1013 *.“

이것은 김탄의 원룸 도어 락 비번.

한 달에 한 번 비번을 바꾸는 김탄이다.

원래 없는 살림이지만 좀도둑이 들까 도어 락을 신뢰하지 않는 그가 최대한 도둑이 들지 못하게 예방 차원에서 그렇게 한 것.

그런데 최근에 바꾼 비밀번호를 박토가 안다고?

그 사실에 김탄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시간이 지나자 화가 났고 또 시간이 지나자 화가 북받쳤고 또 시간이 지나자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뭐라고요? 제 물건을 버리셨다고요! 아니, 대체 자꾸 저한테 왜 그러시는 거죠?”

“왜냐고? 그건 너는 사라져야 되는 사람이니까.”

'이게 대체 뭔 소리냐? 사라져야 되는 사람이니 물건을 함부로 버렸다는 게 말이 되는 것임? 이대로 가만 있을 수는 없다.'

화가 잔뜩 난 김탄이 또다시 소리를 쳤다.

“미쳤어요? 어째서 제 물건을 맘대로 버린 신 거죠? 그 물건들은 제 보증금을 뺀 전 재산이라고요! 정말 미친 사람들 같아요!”

그렇게 소리를 친 김탄은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는다는 듯 씩씩거리며 박토의 뒤통수를 째려봤다.

순간 룸 미러에 비친 박토의 미소.

마치 비웃은 것 같은 그의 미소에 김탄은 지금 폭발하기 직전.

그때 박토가 슬쩍 말을 건넸다.

“재산치곤 쓸만한 것도 없던데..”

박토의 말에 김탄은 허탈한 한숨부터 나왔다.

하아아아아아아~

저작권자 © 불교공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