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_진짜 진절머리 나는 찰 거머리 같은 인간들.

붕 부앙~

-이렇게 높은 엔진 토그 값의 아름다운 엔진 소리를 듣고도 어떻게 외면할 수 있는 건지.-

이 정도로 어필하면 분명 뒤를 돌아봐야 되는데 마치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뒤를 돌아보지 않는 김탄 때문에 속이 상한 박월은 박토에게 재잘거렸다.

“삼촌. 저 바탈 아저씨 귀가 안 들리나 봐.”

“아니야.”

“그런데 왜 뒤돌아보지 않지? 경적을 울려 볼까?”

“잡힐까 봐 무서워서 안 돌아보는데 경적을 울리라고? 우리를 무서워하는 거 못 느꼈어?”

“느꼈지만 그래도 계속 걸으면 다리가 아플 텐데..”

“그거야. 월아. 삼촌이 다리가 아플 때까지 기다리는 거였어. 제갈공명도 울고 갈 계락이라고. 그게 무슨 뜻이냐 하면 김탄이 먼저 손을 내밀게 만들어야 한다는 거야.”

“그래도 우리가 먼저 손을 내미는 게 낫지 않아? 우린 바룬족이잖아. 바탈을 보호하는 사람.”

“아니, 지금 그딴 거 따질 때가 아니야. 바탈을 하기 싫어하는 저 김탄의 기부터 죽여야 한다고. 그리고 삼촌 계략이 맞다는 걸 확인하게 될 거야. 삼촌만 믿어. 월아.”

말을 마친 박토는 중립 기어에 놓고 악셀을 밟았다.

부앙~

부앙~ 부앙~

또다시 김탄의 귀로 들려오는 시끄러운 엔진 소리.

-짜증 나! 진짜. 분명 갚는다고 했는데. 믿지 않는 모양이다. 설마 내가 집에 갈 때까지 따라오는 건 아니겠지?-

김탄은 계속 무시하며 계속 길을 걸었다.

그런데 또다시 들려오는 엔진 소리.

그 전보다 주기가 짧아졌다.

그에 따라 더욱더 얼굴이 일그러지는 김탄.

‘그거랑 비슷한 거 같아. 다단계. 빚을 지게하고 구속하는 거. 벗어날 수 없겠지?’

김탄은 지금 뉴스에서나 보던 남일이 자신에게 일어났다는 사실에 화까지 났다.

왜 하필 나인가?

왜 하필 가난한 사람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날까?

이런 생각에 불러온 화.

그래도 그는 그냥 무시하며 길을 재촉했다.

그런 김탄에게서 지독함을 엿 본 박토.

그가 손목에 찬 시계를 보며 중얼거렸다.

“한 시간이 지났어. 이제 슬슬 피로가 올 시간이야.”

“하지만 바탈 아저씨는 도움을 구하지 않는 걸?”

“자존심이 센 놈이야. 그럴 땐 자존심을 세워줘야 하는 법.”

“어떻게?”

박월의 물음에 교활한 미소부터 짓는 박토.

“바로 이렇게.”

말을 마친 그가 차 창문 밖으로 고개를 빼꼼이 내밀었다.

“야! 타!”

갑자기 등 뒤에서 박토의 목소리가 들리자 김탄은 온몸에 소름부터 돋았다.

역시 그의 예상대로 뒤에 따라오는 차는 박토가 탄 차가 맞았다.

지금 김탄은 악덕 사채업자에게 쫓기는 채무자의 심정을 공감하는 중.

정말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나을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하며 더욱더 빨리 걸음을 재촉하는데..

“빨리 타라고! 김 탄!”

또다시 박토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이제는 심장마저 덜컥 내려앉은 김탄은 왜 채무자들이 우울증과 신경쇠약에 시달리는 지 알 것도 같았다.

전화 독촉도 정말 스트레스가 심하다 들었는데 이렇게 따라 다니며 독촉을 당한다면 악몽보다 끔직할 것이다.

진짜 사채업자에게 빚을 진 것도 아닌데 김탄은 그 채무자의 공포와 절망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또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이번에는 박토의 목소리가 아닌 박월의 목소리가 들렸다.

“빨리 타요. 바탈 아저씨. 벌써 한 시간이나 걸어서 다리가 아프지 않아요?”

박토만 따라온 게 아닌 박월도 따라왔다는 사실에 기분 나빠진 김탄.

솔직히 그는 박토 보다 박월이 더 싫었다.

박월은 박토에게 김탄을 감금시키라고 한 주도자.

아이처럼 아니 천진난만한 아이라고 곧이 곧대로 아이로 생각하면 곤란하다.

그는 김탄을 고난에 빠트렸던 모든 핵심적인 명령을 내린 바룬족 최고 권력자였다.

김탄은 지금 박월을 저 악랄한 박토를 수하처럼 부리는 마치 처키 같은 사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니 싫을 수밖에.

또한 박월은 김탄이 배달석에 시달려 난처해 할 때 제일 재미있어 하며 웃었던 아이였다.

인성은 개뿔, 예의도 모르는 발칙한 땅꼬마 녀석.

가까이 하기엔 고난이 끊이지 않을 것 같은 불운 덩어리!

그래서 박월이 박토 보다 싫었던 김탄은 더욱더 걸음을 재촉했다.

그러자 또다시 들려오는 박월 목소리.

“아저씨. 힘드니까 빨리 타세요. 다리가 아프잖아요. 데려다 줄게요.”

이렇게 김탄을 위하는 척 말해도 김탄은 그를 절대 믿지 않는다.

박토보다 더 교활한 땅꼬마 녀석.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김탄은 박월이 아무리 천사 같은 목소리로 염려의 말을 뱉어도 자신을 조롱하고 있는 악마 같다고 느낄 뿐이다.

확 기분이 상한 김탄.

차라리 박토처럼 대놓고 조롱하면 버럭 화라도 내던지.

더 이상 바룬족와 아무 상종도 하고 싶지 않았던 김탄은 걷는 속도를 뛰어넘어 거의 뛰는 속도에 가깝게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박월이 아닌 박토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 김탄. 네 다리가 쓸데없이 고생하고 있잖아! 너는 네 다리가 불쌍하지도 않아?”

-뭐? 내 다리가 불쌍하다니? 이게 말이야 방구야?-

순간 걸음을 멈춘 김탄은 그도 모르게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지금 극대노하는 중.

그런 그가 참을 수 없다는 듯 그제야 뒤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잖아요! 아 씨. 진짜!”

말을 뱉음과 동시에 순간 깜짝 놀란 김탄

그대로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아니 왜 인터넷 광고에서나 보던 아파트 전세 가격과 맞먹는 고급 스포츠가 서 있는 거지? 여기가 진짜 현실이란 말인가?-

김탄이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자 풀과 나무들이 제멋대로 자라난 시골.

그곳에 어울리는 비포장 도로에 서 있는 비싼 스포츠카가 참 이질적이다.

-종갓집에는 숨겨진 보물이 있다는 내 생각이 맞았어. 아니면 저렇게 비싼 차를 어떻게 타지? 유지비도 만만치 않을 텐데.. 어쩐지 허름한 집이었지만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치더라. 다 여유가 있으니 나오는 거겠지?-

김탄은 지금 반전 같은 이 상황에 넋이 나가 있었다.

꼬리꼬리 한 시골집에 사는 사람이 저렇게 좋은 차를 타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잠시 잠깐 박토가 카푸어이지 않을까 생각했었지만 카푸어가 타기엔 너무 비싼 차다.

그 순간 박토가 월급을 준다는 말을 떠올린 김탄.

살짝 가슴이 콩닥거렸다.

“빨리 타세요. 데려다 줄 게요.”

창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김탄을 유혹하는 박월.

그 순간 김탄의 몸은 본능적으로 움찔했지만 바로 이성이 제압해버렸다.

그는 고급 스포츠카는 타보고 싶었지만 바룬족과의 동행은 죽어도 싫었다.

갑자기 왜 똥 자존심이 치고 나오는지..

그런 김탄은 마음에도 없는 말을 그들에게 내뱉었다.

“됐어요. 그냥 걸어갈래요.”

그리고는 몸을 돌려 가던 길은 재촉하는 김탄.

그런 그를 박토는 어리석다 생각하고 있었다.

눈 한 번 딱 감고 자존심을 누르면 몸뚱아리가 되게 편한데 왜 저러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박토.

그가 좀 전에 박월이 한 것처럼 차 창 밖으로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는 김탄에게 소리쳤다.

“이봐! 김탄! 그냥 타! 괜히 자존심 세우지 말고! 무엇보다 지금 네가 걸어온 시간 말고도 앞으로도 1시간 반을 더 걸어야 버스 타는 곳이 나온다고! 게다가 버스도 4시간마다 1대가 지나가는 데 나 같으면 이 차를 타겠다! 더 끔찍한 사실은 그 막차가 이미 지나갔다는 사실이야.”

이렇게까지 얘기했는데 김탄은 들은 척도 안 한다.

그저 묵묵히 제 갈 길을 갈 뿐.

박토는 그런 김탄 때문에 조바심이 났다.

그의 말대로 정말 막차는 지나갔다.

그럼 이런 식으로 계속 김탄의 뒤를 쫓아야 한다는 생각에 현기증마저 일었는데..

갑자기 박월이 무언가 다급하다는 듯 김탄에게 소리쳤다.

“삼촌 말이 맞아요! 바탈 아저씨! 진짜 막차는 떠났어요! 그리고 아저씨가 잘 곳이 길 밖엔 없는데 뱀도 막 나와요! 지금 나오는 뱀은 독이 올라서 잘 문다는 데 괜찮겠어요?”

정말 눈치 빠르고 요긴한 초딩 녀석.

삼촌을 항상 깔아보는 조카지만 가끔 이럴 땐 구세주 같았다.

박토가 박월의 장단에 얼씨구나 지화자 추임새를 넣었다.

“그래. 월이 말이 맞아! 게다가 여긴 오지라 돌아다니는 뱀들은 거의 다 살모사라고! 아주 지천에 깔려 있어! 살모사는 아주 사나운데 괜찮겠어? 김탄!”

그 소리에 걸음을 우뚝 멈춘 김탄.

그대로 뒷걸음질로 재빠르게 박토 차 쪽으로 다가왔다.

뒤로 걷는 속도가 저렇게 빠를 수도 있구나.

김탄의 신묘한 기술에 바룬족 모두가 깜짝 놀라 얼이 빠져 있을 때 순식간에 차 뒷좌석으로 다가 온 김탄은 그대로 문을 열고 시트에 앉은 다음 안전벨트까지 맸다.

뱀에 물리기 싫었던 김탄은 지금 자존심이고 뭐고 다 필요 없는 듯.

김탄의 행동에 모든 게 자신의 뜻대로 된 것 같아 기쁜 박토는 너무 기분 좋다는 듯 흐뭇한 표정으로 김탄을 돌아봤다.

하지만 눈을 마주치지 않는 김탄은 마치 바룬족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눈을 지그시 내리깔고는 무시하고 있었다.

박토는 그의 태도에 살짝 기분이 나빴지만 그래도 좋다.

도망갈까 봐 두려웠던 마음을 잠시 접어둬도 되는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그래. 잘 생각했어. 김 탄. 명심해. 이제부터 우린 한 몸이야. 어딜 가든 같이 가야 한다고. 영원히..”

미저리 같은 박토의 말.

상당히 집착이 심한 케이스 같아 보인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김탄은 박토의 말이 끝나자마자 무섭게 안전벨트부터 풀었다.

그리고 차 문을 벌컥 열었는데..

어라?

열리지가 않았다.

당황한 김탄은 문을 열기 위해 재차 레버를 당겼지만 역시 작동하지 않았다..

“왜 이래? 이거!”

턱 턱 턱 턱 턱!!

그 뒤로 차 안은 김탄이 차 문을 열기 위해 레버를 잡아당기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단순한 이 소리가 정말 처절할 정도로 절박하다.

그때 갑자기 박월이 박토에게 소리를 치는데..

“아이. 삼촌! 아저씨가 무서워하잖아. 지금 또 도망가려고 하는 거 안 보여! 제발 이상한 소리 좀 그만해. 내가 다 찾아낼 수 있는데 왜 이래? 하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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