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_진심어린 마음을 알기란 너무 어려워...

“갑자기 임신한 것도 아닌데 왜 구역질이 나올까.. 아까 저녁에 먹은 햄버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오강심의 참으로 절묘한 임기응변이었다.

처녀가 임신까지 들먹이며 상황을 모면한 지금 은비칼은 그녀가 비웃었음에도 더 이상 왈가불가할 수 없었다.

게다가 햄버거 때문에 속이 안 좋아 헛구역질을 했다니..

몸이 안 좋은 부하직원을 나무랄 수 더욱 더 없는 터.

오강심에게 완전 원천 차단 당한 은비칼은 자존심이 조금 상했지만 그냥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나채국이 촐랑대며 말을 걸었다.

“실장님. 바보예요? 그 정도 추론은 유치원생도 할 걸요? 김탄이 숨었다는 건 옹알이를 시작한 아이도 알 정도죠. 그것 말고 분명히 뭔가가 더 있어요.”

은비칼은 순간 상당히 당황했다.

자신의 추리를 무시 받은 지금 그는 마음마저 상했다.

하지만 티를 낼 수 없었던 그는 그저 태연하게 행동했다.

-어차피 늘 있는 일이다. 조금 모자라고 멍청한 내가 관리직을 맡은 업보이니 내가 참아야지. 다 잘 되면 좋은 거니까.. 뭐, 내가 무시 받고 조롱을 당해도 나 하나면 참으면 끝이다.-

이렇게 생각해도 은비칼의 가슴에 맺히는 싸르르한 통증.

그 때문인지 그의 얼굴이 초라하고 처량하게 변하자 오강심이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통신을 끊는 법을 알아낸 것 같습니다. 팀장님. 실장님도 알고 계셔서 그렇게 말씀하신 거죠?”

“아하. 예. 맞아요.”

병 주고 약 주고, 아주 지랄들이다.

그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은비칼은 지금 김탄을 찾는 게 급선무다.

숨었는데 통신을 끊는 법을 알고 있다라..

묘책을 강구하는 듯 은비칼은 그대로 깊은 생각에 잠겨 말이 없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그가 입을 열었다.

“나 채국 씨. 신우 프로텍 입구 주변 씨씨티비는 모두 복구가 됐습니까?”

“네. 물론이죠.”

은비칼의 입에서 뭔가 더 나와야 하는데 나오지는 않고 표정이 굳어지는 그를 본 나채국과 오강심도 덩달아 표정이 굳어졌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지금 은비칼의 표정은 그가 항상 그들에게 무리한 일을 시킬 때 나오는 표정이라는 걸.

그러니 굳어질 수밖에..

그런 그들을 바라보던 은비칼이 무언가 결심한 듯 침을 한 번 꼴깍 삼키고는 최대한 오강심과 나채국의 눈을 피하며 말을 하기 시작했다.

“자, 모두들 제 말에 집중해 주십시오.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여러분들 지금부터 플랜 B를 가동합니다.”

뭣이라?

플랜 B?

나채국은 처음 들어보는 플랜 B란 소리에 눈을 치켜뜨고 되물었다.

“그게 뭔데요? 실장님.”

그의 질문에 표정부터 비장해지는 은비칼은 마치 지구에 침공한 외계인들을 소탕하는 우주함대의 총대장 같다.

은비칼은 그렇게 평상시와 다른 백치미를 뺀 지적인 얼굴로 나채국과 오강심을 번갈아 꽂아 보며 엄숙하게 플랜 B가 무엇인지 설명했다.

“플랜 B란 바로 김 탄의 회사 및 거주지를 포함 주변 인물 관계를 파악해 집중 감시하는 겁니다. 주변 인물에 관한 신상은 오늘 내로 처리해 주시기 바랍니다.”

정말 급조된 플랜 B.

누가 들어도 어설프고 조악했다.

어쨌거나 그러거나 상사로부터 명령이 내려진 지금 나채국과 오강심은 시계부터 보았다.

오후 9시 30분.

하, 참..

이건 또 밤을 새우란 소리였다.

도파민 얘기를 괜히 했나?

아직 직접적으로 보상을 받은 건 아니지만 확실한 보상에 너무 기뻐한 게 화근이었다.

이렇게 쉽게 밤을 새우는 일을 시키다니..

앞으로 밤을 새우는 일이 많아질 거라는 은비칼의 말이 이렇게 빨리 이루어질 줄은 전혀 예상 못한 나채국과 오강심은 절망에 빠진 얼굴로 변했다.

그러던 그들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서로 얼굴을 마주보았다.

나채국이 오강심에게 눈빛으로 물었다.

‘이건 거절해야 하는 일이 아닐까? 아직 드론을 못 받았는데?’

그러자 오강심도 눈빛으로 대답했다.

‘예, 전적으로 동감이고 저도 팀장님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일심이체.

합의가 끝난 이 둘은 은비칼에게 밤샘 작업을 거절하기 위해 그를 쳐다보았다.

어디 갔나?

눈 앞에 있어야 할 은비칼이 보이지 않아 당황한 두 사람.

서둘러 그를 찾아보는데..

저~어기 아이디시 출입문을 열고 있는 은비칼이 보였다.

분명 이 방을 빠져나가려는 모습.

그가 어떻게 나채국과 오강심이 텔레파시로 소통하고 있는 새 그 출입문까지 갈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나채국과 오강심.

그러니까 은비칼이 10미터 거리를 5초안에 갔다는 사실에 놀란 두 사람은 평상시 모든 행동이 느릿느릿한 은비칼이었기에 더욱더 이해가 가질 않는 상황이었다.

“실장님!” “실장님!”

나채국과 오강심이 동시에 다급하게 은비칼을 불렀으나 그렇게 큰 소리도 못 들었다는 듯 은비칼은 출입문을 열고 유유히 빠져나갔다.

그 순간 허탈해진 두 사람은 한참을 은비칼이 사라진 출입문을 바라보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동시에 몸을 돌렸다.

일 하러 가기 위해 책상 쪽으로 몸을 돌린 것.

그들은 책상으로 가 앉은 다음 축 처진 어깨로 은비칼의 명령인 플랜 B를 수행하기 위해 키보드를 두드리며 마우스를 클릭해 댔다.

“브리핑만 끝나면 집에 갈 줄 알았습니다.”

오강심이 뭔가 억울하다는 듯 중얼대자 나채국이 힘 빠진 목소리로 대꾸했다.

“이게 다 너 때문이야. 아무리 실장님이 바보 같다고 그렇게 웃으면 어떡해.”

“아니요. 이건 팀장님 때문이에요. 팀장님이 실장님께 바보냐고 그러셨잖아요.”

“내가 그랬었나?”

“네 그랬습니다.”

이들이 은비칼을 조롱하지 않았어도 플랜 B는 내려질 일이었지만 이들은 지금 서로를 탓하고 있었다.

보상을 받게 돼 기분은 좋았지만 이렇게 빨리 밤샘 작업을 다시 시킬 줄은 몰랐던 두 사람.

무언가 엿을 먹은 느낌에 아마도 그들이 실장인 은비칼을 조롱해 밤샘 작업을 시킨 게 아닐까라는 억측이 불러온 서로에 대한 나무람이었다.

어쨌거나 이들이 서로 네 탓이네 내 탓이네 원망해봤자 일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것을 잘 알고 있었던 그들.

말없이 은비칼이 준 일을 하기 시작했다.

.

.

.

.

시간이 상당히 흐른 후..

갑자기 나 채국이 주먹으로 책상을 쾅 치며 소리쳤다.

“강심아. 도저히 안 되겠어! 너도 알다시피 난 여기가 시간이 많이 남아돈다고 해서 지원한 곳이야. 바로 여유를 선택한 거라고. 하지만 이건 아니잖아!”

그의 분노에 동조한다는 듯 오강심 또한 소리를 쳤다.

“예, 저도 그렇습니다! 팀장님. 저도 여유를 선택한 거라고요!”

순간 나채국이 무언가 결정한 듯 벌떡 일어나더니

“이대로는 도저히 못 참겠어. 관둘 거야.”

라고 말하자 오 강심도 벌떡 일어서며 결연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저도 그러고 싶습니다.”

지금 서로 눈을 마주친 두 사람.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두 사람은 서로 몸은 달랐지만 마치 텔레파시로 소통하고 있는 듯 동시에 출입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정말 다 때려치우겠다는 듯 주먹은 불끈 쥐고 걸음걸이는 힘이 넘쳐 흘렀다.

그 둘이 출입문에 다다르자 삐빅 거리며 잠금을 해제하는 소리가 들렸다.

통제 구역인 이곳을 열 수 있는 건 관계자뿐.

대체 어떤 관계자인지 두 사람이 확인을 하려 할 때 은비칼이 해맑은 표정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커피 사 왔어요. 여러분. 그리고 조금 있으면 치킨도 배달 올 거예요. 분명 보상이 있다고 했죠? 그런데 여러분은 둘 다 어딜 가시려고 하나요?”

은비칼의 말에 나채국은 은비칼의 손부터 쳐다보았다.

정말 테이크 아웃 커피가 들려있었다.

그 커피를 본 나채국의 눈이 커졌다.

이유는

그 커피는 회사 1층 매장에 있는 커피숍의 커피가 아닌 회사 앞 맛있기로 유명한 커피숍의 커피였기 때문이었다.

그냥 1층에 있는 커피숍에서 사 와도 되는데 굳이 횡단보도까지 건너며 사 온 건가?

이 생각에 나채국은 은비칼의 손에서 시선을 옮겨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급하게 다녀온 건지 그의 이마에 송골송골 맺혀 있는 땀방울보니 정말 은비칼의 말대로 정성이 가득한 보상이었다.

나채국은 그대로 고개를 돌려 오강심을 쳐다보았다.

“어? 강심아. 넌 왜 여기 있는 거야? 난 화장실 가려고 나서는 참인데..”

“아. 팀장님도 그렇습니까? 저도 화장실을 가려고 나서던 참입니다.”

“그래? 어떻게 이런 우연이 있을 수 있지?”

“그러게 말입니다. 정말 신기하군요. 옆에 계신지도 몰랐어요.”

이들은 지금 조금 전까지 회사를 때려치우겠다는 마음이 씻은 듯 사라졌다.

모두 은비칼의 정성이 가득한 보상 때문이다.

그래서 급하게 둘이 만담식 생쑈를 했던 것.

그러나 아무것도 모르는 은비칼은 그저 이들의 이런 기묘한 우연을 신기해하고 있었다.

“아니, 모를 수가 있죠? 신기하네요. 어쨌든 두 분 다 급하신 것 같은데 어서 다녀오십시오.”

“네.” “예.”

은비칼의 말에 동시에 대답한 두 사람.

그들은 곧바로 화장실에 가고 싶지도 않은데, 갈 필요도 없었는데도 출입문을 열고 사라졌다.

얼마나 정신이 없었으면 둘이 같이 있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했을까?

이런 생각으로 은비칼은 출입문 밖으로 사라져버린 나채국과 오강심에게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모두 그가 힘들게 일을 시켜서 그런 것.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에게 그만하라고 할 순 없었다.

참으로 지구의 종말이 걸려 있으니 안타깝다.

미안해요. 나채국 오강심 씨.

세상을 위해서 조금만 힘내 주세요.

은비칼은 그들에게 작은 위로를 마음으로 건넨 후 그들의 책상 앞으로 다가와 섰다.

정말 치열하게 일한 듯 책상 위는 잡다한 기물들로 어지럽혀 있었다.

정리할 시간도 없이 일하는 그들에게 보상을 주고 싶은 은비칼.

“나 채국 씨는 아이스 카러멜 마키아또. 오 강심 씨는 아이스 라떼.”

듣는 사람도 없는데 혼자 콧노래를 흥얼거리듯 말을 내뱉으며 손에 들린 커피를 나채국과 오강심의 책상에 올려놓으려다 순간 멈칫했다.

그리고는 주변을 둘러보다 오강심 책상에 있던 티슈를 발견하곤 몇 장 꺼낸 다음 고이 접었다.

그 티슈를 나채국과 오강심의 책상에 각각 내려 놓고는 그 위에 각자의 취향에 맞는 커피를 올려 놓았다.

커피 컵 표면에 맺힌 물방울이 책상에 흘러내려 그들을 번거롭게 할까 염려된 마음으로 나온 배려.

그 커피를 바라보는 은비칼의 표정은 행복으로 가득한 듯 미소가 어려있었다.

‘다시 한 번 어쩔 수 없이 고난을 준 걸 미안하게 생각해요. 하지만 그에 따라 저도 열심히 보상을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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