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_협상과 회유는 이렇게 하는 것

김탄이 당황만 하며 어쩔 줄 몰라 쩔쩔매기만 한 모습을 본 박토는 속부터 타들어갔다.

-눈치가 없는 건지. 그냥 바탈이 되겠다고 승낙하면 만사 해결되는 일인데..-

시가 10억짜리 문화유산보다 김탄을 바탈로 만드는 게 더 급했던 박토.

그가 힌트까지 줬는데 알아듣지 못하고 자꾸 엉뚱한 대답만 하는 김탄에게 박토는 교활한 마음으로 심리적 채찍을 꺼내 들었다.

“박물관에서 기증하라고 해도 안 했던 탁자야. 우리에겐 소중한 보물이었어. 조상님을 뵐 면목이 없는 상처를 받은 정신적 보상은 그렇다 치더라도 물적 보상은 받아야겠어. 배상치곤 아주 싼 거야. 김탄. 변상을 하던가 아니면 남아서 바탈이 되던가 네가 결정해. 강요하지는 않아. ”

박토가 김탄에게 원하는 답을 얻기 위해 또다시 몰아붙이자 이번에는 박월도 같이 합세했다.

“맞아요. 탁자는 우리 집안 보물이었어요. 가문에서 알면 난리가 날 거예요. 만약 할아버지가 돌아오시면 아저씨는 배상을 할 기회조차 없어질 거예요. 바로 감옥으로 보내실 분이거든요. 우리 할아버지 되게 무서워요.”

-정말 기특한 녀석. 초딩이지만 참 이럴 땐 참 쓸모 있다.-

박토는 참 잘했다는 시선으로 박월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썩은 미소부터 날리는 박월.

마치 이 정도쯤이야 라고 말하는 듯 턱을 추켜올리며 으쓱댔다.

지금 이 둘은 다 된 밥이기에 기쁘다.

이제 김탄의 입에서 바탈이 되겠다는 말만 나오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팔천만 원 때문에 막막했던 김탄은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이대로 꼴까닥 죽어버리는 건 아닌지 걱정도 됐다.

술집 사건으로 반장님께 진 빚이 천오백만 원이다.

그런데 불과 일주일도 되지 않아 팔천 만 원의 빚이 추가가 됐다.

빚이 늘어난 것보다 김탄의 가슴을 답답하게 했던 이유는 이 둘의 빚의 성질이 달랐기 때문이다.

바로 호의와 덫의 차이였다.

반장이 베푼 호의는 고마움이었지만 박토의 덫은 절망 그 자체였다.

그러니까 반장님에게 진 빚은 희망이었지만 바룬족에게 진 빚은 미래를 저당 잡힌 감옥 같은 것.

자꾸 말도 안 되는 헛소리만 지껄이는 미친 사람들 같은 이들과 함께 한다는 건 말 그대로 김탄의 모든 걸 걸어야 한다는 소리이다.

즉, 직업도 사라지고 친구도 사라지고 아직 사귀어 본 적은 없지만 앞으로 꼭 사귀게 될 미래의 여자 친구도 사라진다는 소리였다.

완전 일상이 무너진다는 뜻.

그렇다면 절대 바탈이 될 수 없다.

하지만 빚은 어쩐다……….

김탄은 깊은 고뇌에 빠진 듯 말이 없었다.

반가 사유상 혹은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저리 가라의 깊은 고뇌였다.

그런 김탄을 보고 있는 박토는 지금 애가 탔다.

빚을 안 갚겠다고 배째라면 큰일이다.

그럼 바탈이 되게 만들 방법은 없다.

강요는 금물이기 때문이다.

-그럼 겁을 주고 회유를 해야겠지?-

생각대로 실천하는 박토.

“변상하려면 제1 금융권에 빚을 내야 할 거야. 너는 아마 제2 금융권도 힘들지 않나? 그래 힘들겠지. 그리고 절도나 사기 같은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한 네가 구하기엔 엄청 큰돈이야. 하지만 바탈이 되는 게 그런 범죄를 저지르는 것보단 쉬울 거야.”

김탄은 지금 범죄를 저지르지도 않았는데도 박토의 말을 듣고 범죄자가 된 것 같아 깜짝 놀라 실성하기 직전.

호흡곤란마저 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김탄보다 더 깜짝 놀란 사람이 있다.

셋 밖에 없으니 당연히 박월이다.

박월은 지금 황당해서 어이가 없었다.

너무 너무 황당해 기절초풍 직전.

-말도 안 돼. 바탈이 범죄자가 되는 것보다 쉽다고?-

범죄자가 되는 것보다 히어로가 되는 게 더 어렵다는 건 유치원생도 안다.

범죄자는 이 세상에 드글드글하지만 히어로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기 힘들다.

따라서 박토의 말은 논리의 비약이다.

범죄자가 되는 게 히어로가 되는 것보다 쉽기 때문이닷!

참 어려운 거짓말을 저렇게 쉽게 하는 박토에게 실망한 박월은 그대로 쏘아 붙였다.

“삼촌! 그건 좀 아닌 것/”

순간 월의 입을 급하게 틀어 막는 손.

더 이상 입을 열지 못하게 한 박토의 처사였다.

그는 지금 알고 있었다.

박월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를.

당연히 히어로가 되는 게 범죄자보다 힘들다는 말일 것이라는 걸 알고 있던 박토는 그걸 김탄이 들으면 안되었기에 급하게 월의 입을 틀어막았던 것.

그런 그가 혹시나 김탄이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슬쩍 김탄의 눈치를 봤는데 역시나 그는 이상하게 생각한다는 듯 표정이 변해 있었다.

더 이상 그가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 안 된다.

그러다가 김탄이 히어로가 되는 게 범죄자가 되는 것보다 힘들다는 사실을 깨닫게 돼버리면 끝장이다.

“바탈이 되면 돈도 벌 수 있어. 미래가 불안해서 걱정하는 모양인데.. 우리가 악덕 사채 업자도 아니고 또 신체 포기 각서 같은 것도 요구하지 않아. 네가 바탈이 되면 정당하게 고용해서 쓸 거야. 월급을 줄 게. 약속할 게. 김 탄.”

박토의 말에 또다시 깜짝 놀란 김탄.

빚 때문에 죽을 것 같았는데 돈을 준다니..

희망이 샘 솟았지만 믿을 수가 없었다.

“정말 채무를 변제해 주고 월급을 준다고요?”

“그럼. 내가 헛소리를 할 거 같아? 정말 월급을 준다니까. 물론 바탈이 되면 말이야"

김탄은 일단 박토의 말로 봐선 바룬족에게 정말로 자신이 꼭 필요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협박에 회유에 이제는 돈까지 준다고 하는 걸 것이다.

-아뵤! 이게 왠 떡이냐?-

돈을 준다는 소리에 뛸 듯이 기뻤던 김탄이었다.

그러나 섣불리 승낙할 순 없었던 김탄은 박토 제안의 답을 뒤로 살짝 미루었다.

“잠시만요. 생각 좀 해보고요.”

솔직히 귀가 솔깃해지는 박토의 제안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미덥지가 않았던 김탄은 다시 박토의 집을 둘러보았다.

두 번 봐도 세 번 봐도 이들은 월급을 줄만한 형편은 안돼 보였다.

-그런데 어떻게 고용을 하고 월급을 준다는 거지? 돈 나올 곳이 없는 것 같은데 월급을 준다???..-

순간 김탄의 뇌리에 스친 생각.

천 년 넘은 왕건 친필 싸인 탁자.

김탄은 그대로 한 손으로 무릎을 탁 쳤다.

천 년 전 왕건 친필 싸인 탁자가 현재 시세로 10억이라 했다.

이걸 보아 집안 곳곳 값나가는 골동품이 있을 것이다.

게다가 박토가 가문이니 시조니 박달 박 씨니 뭐, 이런 소리를 자랑스럽게 늘어놨던 걸로 봐선 아마도 그가 종가 집 자손 같았다.

종가 집은 때때로 가문의 보물과 비기들을 가지고 있다고 뉴스에서 들었던 게 생각난 김탄은 여기저기 어딘가에 진짜 보물이 숨겨져 있을 거란 생각에 설레기까지 했다.

-역시 집만 허름했지 상당히 좋은 옷을 입고 있고 얼굴 또한 귀티가 나더라니.. 다시 보니 기품까지 흘러 넘쳐 보이네. -

생각했던 것과 다른 바룬족의 이면에 고심이 깊어진 김탄.

그는 박토 말대로 팔천만 원이라는 배상액을 구할 대가 없다.

그럼 채무도 변제해주고 월급도 준다는 박토의 제안을 따를 수밖에..

손해 보는 건 하나도 없는 거니까.

“좋아요. 그런데 제게 시간을 좀 주세요. 정리할 일이 있고 생각할 일도 있고.. 그리고 제가 이곳 채무 말고 다른 곳에도 좀 있거든요.”

김탄의 말에 박토는 정색부터 했다.

“다른 곳 채무도 변제를 해 달라는 얘기야? 그건 곤란해. 우리와 관계된 일이 아니니까.”

“아니에요. 단지 정리만 하려고요. 근데 그렇게 하려면 전화를 해야 해요.”

박토는 김탄의 말에 가자미 눈을 뜨고 쳐다보았다.

의심을 하고 있는 중이다.

“도망가려는 게 아니에요. 단지 연락을 해야 될 사람이 있어서 그래요.”

김탄의 진실함이 통했는지 박토는 의심의 눈초리를 곧바로 거두었다.

그리고는 박월에게 마치 전화를 가져오라는 듯 고개를 까닥거렸다.

말하지 않아도 척 알아들은 박월은 부리나케 안방으로 들어간 후 한참을 있다 나왔다.

“이거요.”

역시 골동품이 많은 집 같더라니..

박월이 김탄의 손에 쥐어 준 2G 폴더 폰을 본 김탄은 말이 없었다.

그러던 그가 그래도 박월이 손수 가져온 성의를 생각했는지 폴더를 열고 쳐다보았다.

나온 지 20년 도 더 돼 보이는 모델 같았다.

김탄도 솔직히 실물로는 처음 보는 모델이었다.

‘정말 월급을 준다는 게 사실일까?’

전화기를 가져다 줬으면 할 것이지 왜 처다만 보는지..

이해할 수 없는 김탄의 행동에 답답했던 박토는 바로 닦달을 했다.

“뭐해? 빨리 쓰지 않고!”

박토의 말에 난처해하는 김탄.

그는 2G 폴더 폰을 써 본적이 없다.

“그런데.. 저기 이거 어떻게 쓰는 거죠?”

김탄의 말에 숨부터 막혀온 박토.

휴대폰 메커니즘은 거기서 거기다.

-즉, 번호를 누르고 전송 버튼만 누르면 되는데.. 왜 모른다고 하는 거지? 장난하나?-

박토는 또다시 의심병이 치고 들어왔다.

분명 파눔의 심장 조각은 김탄을 바탈로 지목했다.

하지만 너무 어벙하고 비리비리한데다가 간단한 기계의 메커니즘도 알아내지 못한다.

‘또 다른 빚이 있다고 했던가? 설마 게임 때문에 진 빚은 아니겠지?’

신뢰 또는 믿음을 결정짓는 데에는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 왔는지에 대한 궤적이 상당히 중요한 요소다.

즉 빚쟁이는 신뢰할 수 없다는 뜻.

물론 전부 그렇지는 않지만 일반적으로 그렇다.

이 생각에 박토는 갑자기 현기증이 일었고 가슴에 돌덩이가 얹힌 것처럼 묵직해져 왔다.

히어로가 될 정의의 사도 김탄이 빚쟁이에 게임 중독에 겁쟁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바룬의 자손의 사명대로 김탄을 바탈로 각성시켜야만 하는 임무가 있는 박토는 지금 김탄을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막막함에 그도 모르게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한숨이 새어 나왔다.

“하아~”

박토의 한숨에 김탄은 눈치부터 봤다.

“정말 몰라서 그래요. 진짜 모르겠어요.”

“월아. 네가 지목한 바탈에게 전화기를 어떻게 쓰는지 가르쳐 줘.”

박토의 말에 박월은 촐랑거리며 김탄에게 다가왔다.

2G 폴더 폰으로 전화하는 법을 가르치지 위해.

숙달된 초딩의 가르침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는 김탄은 자꾸만 자신이 작아지는 것 같아 초라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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