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_감쪽같이 사라진.. 어디 시간 여행이라도 갔소?

***

“여기가 맞는 거야?”

반장의 물음에 마영식은 머리를 긁적이며 대꾸했다.

“맞으니까 도어락을 열었죠.”

“그런데 왜 아무것도 없어. 탄은 없어도 살림은 있어야 할 것 아니야?”

“저도 모르겠어요.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반장은 지금 어이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마영식도 마찬가지.

이들이 보고 있는 김탄의 방엔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진짜 개미 한 마리도 없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래..-

반장은 아연실색한 얼굴로 김탄의 방을 계속 두리번거리며 쳐다보기만 했다.

반장은 김탄의 무단출근에 걱정이 되어 그의 집을 찾아 온 것.

혼자 올 수 없었던 것 포함, 김탄의 집 도어락 비밀번호를 아는 영식이를 대동하고 탄의 원룸으로 온 것이다.

처음 초인종을 눌렀을 때 아무런 기척이 없어 혹시나 저번 회사에서 쓰러졌던 것처럼 방에서 쓰러진 게 아닐까 급하게 비번을 누르고 방으로 들어온 순간부터 지금까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 반장.

정말 여기에는 방의 주인인 김탄뿐 아니라 살림에 필요한 집기며 가전제품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아무도 살지 않았던 것처럼.

“잘못 찾아왔나?”

반장의 나지막한 구시렁거림에 영식이 현관 밖으로 후다닥 뛰어 나갔다 다시 들어왔다.

“맞는데요? 맞아요. 탄이 원룸.”

“뭐 하러 나갔다 와? 맞으니까 도어락 연거라며..”

쓸데없이 문 밖으로 나갔다 온 영식은 멋쩍어 그냥 한 번 배시시 웃었다.

분위기 전환 차 그랬지만 반장의 얼굴엔 여전히 근심이 그득하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상황.

반장은 그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원룸 옵션인 옷장을 열었다 닫았다 했다.

혹시나 사라진 김탄이 마법처럼 나타날까 기대하는 듯.

그런 반장의 등 뒤에서 마영식이 구시렁거렸다.

“이게 뭔 일이래요? 이건 이사를 한 거잖아요. 대체 왜 탄이 말도 없이 이사를 간 거죠?”

영식의 말에 반장도 그 이유를 알고 싶은 마음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질 않는 김탄의 행적이었다.

절대 이렇게 아무 말도 없이 야반 도주하듯 이사 갈 김탄이 아니다.

무언가 이상했다.

하지만 단서가 없었다.

반장은 답답했는지 창가로 발길을 옮긴 후 창문을 확 열여 젖혔다.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고 라이터로 불을 붙일 때 저 멀리 옷 가게 입구에 사다리를 걸친 체 사람이 올라가 있는 게 보였다.

“저기도 씨씨티비가 고장 난 건가?”

“여기 일대 다 고장인 거 같더라고요. 우리 회사 근처도 다 고장 났고요. 회로가 다 타 버렸데요. 불량인 것 같아요. 동시에 그러는 걸 봐선..”

영식의 대답에 반장은 아니꼬운 표정을 지었다.

“전국에 있는 씨씨티비를 한 회사 걸 쓴데?”

“그거야 제가 모르죠.”

지금 이것도 이상했다.

김탄의 동선에 관계 된 모든 씨씨티비의 고장이라..

불길함에 반장의 얼굴은 더욱 더 어두워졌고 불안한 듯 연신 답배를 빨아댔다.

반장은 담배를 끝까지 다 피우는 것도 모르던 걸 영식이 말해줘 서둘러 껐다.

애가 타 담배를 피워 봤지만 소용이 없었는지 담배 한 개비를 더 꺼내 입에 문 반장이 라이터로 불을 붙이려 하자 갑자기 요란한 트로트 음악이 들렸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화들짝 놀라는 두 사람.

영식이 반장의 점퍼 주머니로 시선을 옮기자 반장이 주머니에서 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아직도 이런 번호 쓰는 사람이 있나?”

반장의 말에 영식이 궁금했는지 곁으로 와 반장의 스마트 폰을 쳐다보았다.

011로 시작되는 번호로 수신된 전화였다.

“이거 광고예요. 받지 마세요.”

“그래?”

화들짝 놀란 반장이 수신 거절을 했다.

그러자 다시 울리는 트로트 음악.

“아까 그 번호로 또 오는데?”

“아, 씨. 진짜 집요하네. 개X끼가..”

요즘 보이스피싱 사기가 성행한다는데, 그런 류의 전화 같아 짜증이 난 반장은 그대로 수신 거절을 하기 위해 손가락을 액정화면에 가져다 대다가 순간 멈칫했다.

그대로 시간이 멈춘 듯 미동 없는 반장.

말 없이 트로트 음악이 울리는 전화기를 바라보는 그의 모습은 마치 염력으로 전화기를 불태우려는 듯 안광이 서려 있었다.

그러던 그가 무슨 마음의 심경이 있었는지 영식이 받지 말라던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저예요. 반장님.>

김탄의 목소리.

반장은 너무 놀라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떨어뜨렸다.

마영식은 그가 떨어뜨린 담배꽁초에 장판이 상할까 깜짝 놀라 잽싸게 집어 창 밖으로 던졌다.

귀신을 본 듯한 반장의 얼굴에 의아했던 영식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반장이 입을 열었다.

“아니, 탄아. 너 어떻게 된 거야?”

탄에게 온 전화라는 사실에 깜짝 놀란 마영식.

그대로 입을 쩍 벌린 체 웅얼거렸다.

“이 새끼가 전화도 바꾼거야? 011로? 왜?”

그런 마영식의 말에 더 불길함을 느낀 반장은 김탄에게 다그쳤다.

“대체 어떻게 된 거냐고?”

<죄송해요.>

“내가 병가 처리는 해 놓았다만 이런 식으로 하면 못써. 그래. 지금 어디 있는 거야?”

<죄송해요. 지금은 말할 수 없어요.>

“뭐? 아니 대체 무슨 일이야? 난처한 일이라도 생긴 게야? 내가 그리로 갈까?”

<아니요. 그러지 않으셔도 돼요. 지금 아주 멀리 있거든요.>

“어딘데?”

김탄은 반장의 물음에 박토의 눈치부터 살폈다.

어디 있는지 말한다면 박토가 또 감금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대답할 수 없었던 김탄.

조용히 웅얼거렸다.

“모.. 몰라요.”

<뭐? 아니, 이게 무슨..>

김탄은 전화기를 통해 느껴지는 반장의 걱정 가득한 목소리에 마음이 쓰였지만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다.

그저 답답한 마음 뿐.

이 와중에도 박토는 자꾸 앞에서 손으로 목을 쳐댔다.

빨리 통화를 끊으라는 뜻.

이대로 전화를 끊으면 반장님을 다시 보게 될 때 난처하겠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김탄이 쩔쩔매자 박토의 얼굴은 험악하게 변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손으로 목을 쳐댔다.

진짜 빨리 안 끊으면 죽이러 가겠다는 듯.

어쩔 수 없다.

통화를 마무리 지어야만 무사할 것 같았던 김탄.

“아. 저기 자세한 건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빨리 끊어야 해서.. 내일 찾아뵐게요. 죄송해요. 죄송해요.”

뚝.

통화가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종료되자 반장은 귀에서 전화기를 떼고는 전화기만 쳐다보며 어이없어 했다.

그가 허망함에 혀를 끌 차자 마영식은 전화 대상이 김탄임을 알고 있음에도 되물었다.

“탄이에요?”

“그래?”

“어디래요?”

“모른다는데?”

“이 새끼. 대체 어디 있는 거야? X팔”

항상 예의 바르고 정직한 김탄의 일탈.

이변이자 붕괴였다.

기존 김탄에 대한 생각이 와해된 반장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걸려온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곧바로 들린 음성.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이오니 다시 걸어주시기 바랍니다.>

안내 멘트에 소스라치게 놀란 반장은 겁에 질린 얼굴로 마영식을 쳐다보았다.

“왜 그런 표정을 지으세요? 무섭게..”

반장은 영식의 물음에 답 대신 떨리는 손으로 전화기를 내밀었다.

전화기를 귀에 댄 마영식.

인상을 확 쓰고는 짜증을 냈다.

“아 씨. 잘못 거셨잖아요.”

“아니야. 걸려 온 번호로 다시 건 거야.”

걸려 온 번호가 없는 번호라니..

마영식 또한 깜짝 놀라 전화기 화면을 쳐다보았다.

믿을 수 없는 일.

“이게 가능한가요?”

“그러니까 어이가 없다는 거야.”

확실히 이건 이상한 일이다.

요즘 왜이리 김탄에게 이상한 일만 일어나는 걸까?

죽었다 살아나더니 소리 없이 야반도주를 하고, 없는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일반적이지 않은 일이다.

“대체 탄이 어딜 간 걸 까요?”

마영식의 목소리는 떨고 있었다.

대답해 줄 수 없는 영식의 물음에 반장은 그저 말없이 그를 쳐다볼 뿐.

그 역시도 마영식처럼 불안한 듯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영식은 재차 반장에게 걸려온 전화번호로 발신을 시도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번호가 없다는 안내 멘트뿐.

그걸 지켜보는 반장은 초조한 듯 손가락을 가만두지 못했다.

***

“이거 놔! 이거 놔! 나도 갈 거야.”

어린 여자 아이가 어딘가로 가려는 듯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하지만 갈 수 없기에 소리를 지르고 있던 것.

한 남자가 아이를 아무데도 못 가게 꽉 끌어안고 있었기에 아이의 몸부림은 처절할 정도로 절박해 보였다.

그런 요란한 아이의 발악 속에서도 멈추지 않고 있는 건 그녀가 머문 시선.

아이의 눈은 몸부림치는 것과는 다르게 정적이며 고요했다.

그녀의 시선이 머문 곳엔 한 여자가 서 있었고 그녀의 한 손엔 커다란 짐 가방이 들려 있었다.

그녀는 문을 열면 사라질 것처럼 현관 문 앞에 서 말없이 아이를 보고 있었다.

문을 열면 사라진다.

싫어.

아이의 몸부림이 더욱더 격해졌다.

“같이 가! 혼자 가지 마!”

현관 앞에 선 여자는 아이의 목소리에 눈물을 흘리더니 그대로 몸을 돌려 현관 문 손잡이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걸 본 아이가 화가 난 듯 고개를 홱 돌려 자신의 몸을 잡고 있는 남자를 향해 소리쳤다.

“아빠 나빠! 싫어! 아빠 나쁜 사람이야. 진짜 싫어! 싫어!”

아이의 아빠는 그대로 아이의 시선을 피하려는 듯 고개를 돌렸다.

“아아아아악! 아아! 아아아아아악!”

뜻대로 되지 않아 화가 난 아이는 악을 쓰기 시작했다.

더욱더 격해지는 발버둥과 몸부림.

하지만 아이가 아무리 애를 써도 아빠의 품을 벗어날 수 없었다.

현관 문 앞에 서 있던 아이의 엄마가 손잡이를 돌렸다.

열면 그대로 사라진다.

그 순간 아이의 몸부림과 발버둥은 멈췄다.

대신 아이의 눈에 솟구치는 눈물.

“나도.. 나도 데려가. 엄마.”

애절한 아이의 울먹임도 소용 없는 듯 현관문이 열리고 밝은 빛이 흘러나왔다.

빛이 엄마를 집어 삼키며 그대로 사라질 거라는 생각에 불안했던 아이는 다시 몸부림을 쳤다.

하지만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한 아이.

그 와중에도 사라지려는 엄마를 보려 했지만 너무 밝은 빛 때문에 눈이 부신 아이는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손가락 틈 사이로 바라보던 엄마는 밝은 빛 속을 천천히 걸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몸부림이 더욱 심하게 치던 아이는 빛에 엄마의 몸이 작아지자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으아아아앙.

저작권자 © 불교공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