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_ 나 정말 하기 싫어요. 그러니까 강요하지 마세요.

박월의 해법이 맘에 들었는지 박토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리고는 그 미소를 담은 얼굴로 김탄을 다시 설득하기 시작했다.

“맞아. 월이 말이 정말이야. 운동 신경은 정말 훈련으로 어떻게 될 거야. 머리 나쁜 건 어쩔 수 없지만..”

-아, 진짜 왜 저래? 어떻게 말을 저렇게 밉게만 하지?-

화가 난 박월이 박토를 홱 째려봤다.

분명이 박월이 그러는 걸 알고 있는데도 박토는 애써 무시하며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다.

겁에 질려 도망가던 바탈 아저씨를 다시 잡아놨는데 자꾸 이기죽거리는 삼촌 때문에 신경질이 잔뜩 난 박월은 지금 화가 나 폭발할 것 같았다.

대체 삼촌이 일은 제대로 하려고 하는 의지가 있는지도 의심스럽기까지 한 박월이 짜증난 듯 캐물었다.

“삼촌 아까부터 왜 그래?”

“내가 뭘.”

“이 아저씨 바탈로 만들려면 수락을 받아야 하는데 왜 자꾸 도망가게 만드냐고?”

“내가 언제. 김탄 스스로 그런 거지.”

분명 삼촌은 자신이 지목한 바탈을 계속 부정했었다.

게다가 부러 애쓰기까지 하며 김탄을 괴롭히는 느낌을 받았던 박월은 기분이 나빴었다.

대체 왜 자꾸 그러는지.

삼촌이 김탄을 바탈로 만들지는 않고 자꾸 방해하는 것 같다고 생각한 박월은 진짜 김탄이 스스로 도망을 간 건지 확인했다.

아니면 삼촌을 가만 두지 않겠다는 심정으로..

“바탈 아저씨. 정말 그런 거예요? 정말 스스로 도망간 거냐고요?”

.

.

.

“네.”

곧바로 나오지 않고 상당히 텀이 길었던 김탄의 대답.

뭔가 걸쩍지근 한 그의 대답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박월에 반해 박토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한편 김탄은 지금 외줄타기 하는 심정이다.

사실 박토와 박월이 무서워 도망간 게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했다간 박토의 후환이 두려웠던 김탄이 최선의 대답을 했던 것.

사실 그는 현관 입구에서 박토에게 도로 붙잡힌 후 모든 걸 포기했었다.

위성 GPS에서도 잡히지 않을 것 같은 산골 오지 마을.

인가가 드물게 있었지만 도대체 사람은 살고 있는지 조차 알 수 없는 황량한 이 곳.

도움을 구할 대도 또 도망갈 곳도 없다는 걸 깨달은 그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박토가 잡아 끄는 손에 이끌려 순순히 다시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바탈이 되는 걸 수락하라는 박토의 강압적인 언사가 아직도 귓속에 머물고 있는 듯 앵앵거렸다.

절대 바탈이 될 수는 없었던 김탄은 박토의 강압을 무조건 거절하다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김탄은 처음 봤을 때부터 윽박지르고 남의 전화기를 함부로 버리고 매사 맘에 안 든다는 듯 고까운 시선으로 자신을 쳐다보기만 하는 박토가 몸서리치게 싫다.

그렇다고 그 옆에 딸린 박월이 좋은 것도 아니다.

박월은 그냥 존재 자체가 무섭다.

-상냥하고 자상한 척 하지만 분명 처키 같은 이중성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 흉악한 박토가 지시를 따르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다. 이런 이 둘이 있는 이곳에 남아 바탈을 하라고? 절대 그럴 수 없다. -

그러나 이런 이유로 거절을 한다면 더 흉악한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김탄은 속마음을 감추고 순수한 자의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탈출을 한 거라고 거짓말을 했던 것.

김탄은 그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한 번 더 감추었다.

“죄송해요. 싫어서 그래요. 전 정말 바탈 하기 싫거든요. 왜 제가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하지만 김탄의 의도와 다르게 그의 말을 들은 박토와 박월의 표정은 차갑게 굳어졌다.

분명 기분 나쁘지 않게 거절 의사를 밝혔을 뿐인데 돌아오는 그들의 냉담한 반응에 김탄은 심장이 콩닥거리기 시작했다.

깁탄이 겁에 질린거에 반해 박토는 지금 애가 탔다.

‘바탈이 되겠다는 수락을 받아야 하는데.. 큰일이네.’

지금까지 그가 그의 진짜 성정을 눌러가며 힘겹게 또 어렵게 황당한 말을 했던 건 모두 김탄의 입에서 바탈이 되겠다는 서약 같은 수락을 받기 위해서였다.

이유는 바탈이 되는 사람 본인의 승인이 떨어져야 본격적으로 바룬족이 개입할 수 있는 규칙 때문이다.

오래 전부터 내려온 바룬족으로서의 의무이자 규칙이었다.

이런 것들이 없었으면 벌써 폭력을 써서라도 김탄에게서 바탈이 되겠다는 약속을 받았겠다고 생각한 박토는 속에서 천불이 일었다.

왜 매 번 항상 애매하고 힘든 건 자기 몫인지 억울하기도 했다.

그럼 아무도 모르니 억지로라도 수락을 받으면 되지 않겠냐며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해도 상관은 없다.

규칙? 그까지 것 어겨도 된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신검은 찾아오지 않는다...

이게 문제?

신검은 숨겨진 세 번째 예언을 지키는 자들이 가지고 있는 신물 중 하나이다.

파눔의 신묘한 세 가지 신물. 명두, 팔주령 그리고 신검.

명두는 바룬족이 소유하고 있고 팔주령은 오운족이 소유하고 있다.

신검은 그 누구도 본 적 없고 또 어떤 존재인지도 알 수 없는 가분족이라는 세력이 가지고 있다.

바탈이 될 후보가 스스로 승인을 하면 신검은 알아서 찾아온다.

한때 바룬족은 과거 한 바탈에게 강압적 승인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신검이 나타나지 않았었다.

결국 쓸모 없는 바탈을 만들어 버린 처참한 바룬족의 흑역사.

그 이유로 위와 같은 규칙이 생겼다.

신비의 세력 가분족이 어떻게 바탈의 서약이 자의인지 타의인지 알 수 있는지는 모른다.

다만 증명이 되었기에 무조건 김탄이 스스로 바탈이 되겠다는 신념 섞인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게 무조건 급선무다.

그래서 지금 박토가 애타게 김탄을 설득하고 있는 중.

쉽지만은 않았다.

“김탄. 이건 운명이라고 하는 거야. 운명이라는 게 뭐냐 하면 하기 싫어도 할 수밖에 없단 뜻이지.”

“아니요. 안 해요. 전 싸우는 것도 싫고 주변에 싸움 잘하는 사람도 없어요. 그런데 지금 저보고 바탈이 되어 다가 올 악마를 물리쳐야 된다고요?”

“응” “네”

김탄의 물음에 박월과 박토가 동시에 대답함에 그들의 절박함이 묻어 있었다.

-정말 진드기보다 악랄하다.-

하기 싫다는데도 해야만 한다고 끊임없이 부탁을 해대는 이들 때문에 진절머리가 난 김탄.

하지만 딱히 지금 이들이 제안을 거절할 해결책이 생각나질 않았다.

-하기 싫다는 거 말고 좋은 수가 없을까? 이런 식으로 거절하면 끝이 없을 것 같다.-

정말 이러다가는 세뇌까지 당할 것 같았던 김탄은 싫다는 말보다 강력한 한방이 필요했다.

“아, 맞다. 제가 왜 못하냐면요. 핸드폰 할부도 아직 남아있고 또 이번에 제가 진 빚이 있는데 그것도 갚아야 해요.

그리고 혼자 살지만 미래를 위해서 좋은 집도 사야 하고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제가 그렇게 한가한 사람이 아니에요.”

“풉~.”

-웃어?-

김탄의 말에 비웃기부터 하는 박토 때문에 순간 김탄은 당황했다.

그대로 시선을 돌려 박월을 쳐다보자 그도 훗하고 비웃었다.

대체 이들이 왜 비웃는지 알 수 없었던 김탄.

그대로 고개를 상화 좌우 최대로 회전할 수 있는 각으로 박토의 집을 둘러 보았다.

한 눈에 봐도 꼬질꼬질할 시골 집.

곧바로 화가 난 김탄.

‘왜 비웃는 거지? 나나 이 사람들이나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이는데?’

자신의 생계형 삶이 조롱당한 것 같아 기분이 상한 김탄은 표정부터 일그러뜨렸다.

그런데 박토는 마치 그가 그런 표정을 짓기를 기다렸다는 듯 음흉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그의 표정에 더욱더 얼굴이 일그러지는 김탄.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려 할 때 갑자기 박토가 입을 열었다.

“돈 걱정하지 마. 김탄. 바탈이 되면 다 해결되니까.”

잘못들은 건 아닐까 자신의 귀를 의심한 김탄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가늘게 뜨며 박토를 노려봤다.

그러자 박토가 아주 거만한 표정으로 또다시 말을 이었다.

“아, 그러니까 네가 걱정하는 그런 돈 걱정 따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소리야. 즉 네가 바탈이 되어 미래에 나타날 나쁜 악마를 물리치면 내가 아파트도 사 줄 게. 몇 평이면 되지? 강남에 있는 걸 원해? 응?”

박토의 말을 끝까지 다 들은 김탄은 숨부터 턱 막혀 왔다. 그와 동시에 등에까지 돋아나는 소름들.

김탄이 다시 박토의 집을 둘러봤다.

천정의 등 기구에는 거미줄이 쳐 있었고 그 옆으로 거미 한 마리가 미래의 먹이를 위해 숨어 있는 게 눈에 띄었다.

그가 천정에서 거실 옆 주방으로 시선을 옮겼다.

아이고, 이런.

얼핏 봤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가스레인지 기름때가 찌들어 있는 게 선명하게 잡혔다.

그 옆으로 냉장고 손잡이에는 손때가 묻어 시커멓게 변한 디테일이 살아 있었다.

살림을 제대로 하지 못해 지저분한 건 둘째 치더라도 주방 가구들이 참, 음.. 고전틱하고 후졌다.

아무리 봐도 박토가 말한 아파트를 강남에 사준다는 형편은 되어 보이지 않았다.

-가지고 노는 건가? 희롱?-

김탄이 다시 앞에 앉아 있는 박월과 박토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들은 정말로 강남에 아파트를 지금 당장이라도 사 줄 듯 당당한 포스였다.

‘뭐지? 진짜 정신병자들인가?’

이렇게 생각하는 게 김탄의 정확한 상황이다.

그러자 김탄의 눈알이 사정없이 돌아갔다.

그는 지금 깊은 사고를 하기 시작하는 중.

이건 의식적인 사고가 아닌 생존을 위한 무의식적인 사고였다.

김탄의 저 내면 깊숙이 잠재된 에고는 지금 공포에 휩싸여 있다.

그러니까 김탄이 판단했듯 바룬족 박토와 박월이 정신병자들이라면 이들은 그 유명한 영화 미저리의 미저리과 임이 분명했다.

처음엔 너무 논리적이고 멀쩡해 보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집착이 심하고 정신이상자의 말을 내뱉었기 때문이다.

정말 비슷하다.

그럼 큰일이다.

또 도망을 칠까?

해 봤자 팔다리가 잘릴 것이다.

이런 생각들로 오싹해진 김탄의 얼굴은 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이들에게서 탈출할 수 있는 길은 오직 설득을 통한 길밖에 없다.

김탄은 일단 그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한에서 다시 한번 거절의 의사를 공손하게 밝혔다.

“아니요. 아파트 같은 건 필요 없어요. 전 지금 제 생활에 만족해요. 많이 벌진 않지만 나름 기술을 가진 직업이고요. 여자 친구는 없지만 그렇게 외롭지도 않아요. 전 정말 행복해요.”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지어보며 배시시 웃고 있는 김탄을 본 박토와 박월은 그저 침묵만 했다.

더 설득 하지도 않았고 또 윽박지르지도 않았다.

그저 침묵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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