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_ 절대 도망갈 수 없어. 먼저 놔주지 않는다면..

기물손괴 행위를 아무 죄책감 없이 늘어놓는 박토를 보며 옆에 앉아 있는 박월은 잘했다며 박수까지 치고 있었다.

그렇게 좋아하는 박토와 박월과는 다르게 김탄의 입에서는 절박한 소리가 튀어나오는데.

“아니.. 약정이.. 아직.. 할부금도..”

제3자가 듣고만 있어도 안타까운 말이었다.

박토가 강 속으로 집어 던진 김탄의 스마트 폰은 그가 소유한 물건 중 유일하게 초 고가의 물건.

당연히 초 고가였기에 할부로 구매를 했고 그에 따라 약정도 걸려있었다.

즉 갚아야 할 빚이라는 소리.

-세상에. 아직 30개월이나 남았는데..-

지금 김탄은 이런 스토리를 가진 자신의 전화기를 마음대로 버려버린 박토에게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평상시 얌전하고 순하지만 한 번 화가 나면 지랄 맞은 김탄은 지금 눈에 뵈는 게 없다.

“저한테 대체 왜 이러시는 거죠? 전 도에 관심 없고 종교에도 관심 없어요! 부모가 누군지도 몰라 제사 같은 것도 안 지내죠! 보시다시피 조상복도 없어 무지 가난한데 왜 제 휴대폰을 마음대로 버리신 거죠? 돌려주세요! 당장.”

세상 무서울 것 없다는 듯 눈을 부라리며 소리친 김탄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는 박월과 박토.

정상이 아닌 것 같다.

그렇게 심드렁한 표정으로 팔짱을 낀 체 무표정으로 김탄을 바라보고 있는 박토에게 그의 옆에 앉아 있던 박월이 무신경하게 말했다.

“삼촌. 저 아저씨 우리가 그거.. 뭐지? 사이버 종교 뭐 그런 걸로 아나 봐? 그렇지?”

“그래. 그런 것 같다. 그리고 월아. 사이버가 아니라 사이비라고 하는 거야. 알았지?”

“응. 사이비. 알겠어.”

이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김탄의 등골은 오싹했다.

보통 이런 상황이면 사과를 하고 배상에 대한 얘기를 하는 게 정상.

하지만 이게 대체 무슨 어느 나라 대처법이지?

로마법도 이러지 않겠다.

박토와 박월의 황당한 대화에 김탄이 지금 내린 결론.

‘도망쳐야 해! 정말 미친 사람들이야!’

이 생각에 김탄은 그대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 현관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도망을 쳐야겠다는 생각처럼 도망을 가면 좋은데 왜 생각처럼 되지 않고 다리가 후덜거리고 비틀리는 걸까?

지금 김탄은 필사적으로 도망을 치고 있지만 남들이 볼 땐 그냥 허우적거리고 있는 중.

누가 보면 장판 피겨나 허공 수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는 그의 동작에 웃음이 터진 박토와 박월.

“푸하하하하하하. 저것 봐! 삼촌.”

“크크크크크크크. 웃을 일이 아닌데 웃기네.”

등 뒤에서 들리는 그들의 웃음 소리가 귀신보다 무서웠던 김탄은 그대로 스텝이 꼬여 앞으로 푹 고꾸라졌다.

완벽하게 탈출에 실패했다.

절망에 사로잡힌 그의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가 요란했다.

-이대로 끝낼 수는 없어. 여기에 갇혀 저 정신병자들과 함께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도망치다 죽는 게 나을 거야. 다시 시도하자.-

방바닥에 누워 있는데도 바룬족이라는 그들이 잡으러 오지 않는다는 사실에 약간의 희망이 생긴 김탄은 죽을 힘을 다해 일어서 다시 현관으로 내달렸다.

그렇게 현관 문 앞에 도착한 김탄.

-이 문을 열면 해방이다. 아직 저들은 날 잡으러 오지도 않고 있다.-

분명 박토와 박월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김탄은 설마하는 마음에 뒤를 돌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왠지 바로 등 뒤에 식칼을 들고 서 있을 것만 같아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다.

‘살려주세요.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신 님들.’

이렇게 마음속으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신에게 기도를 하며 현관문을 벌컥 연 김탄.

그때까지도 바룬족은 잡으러 오지 않았다.

순간 그의 눈에 들어온 안타까운 풍경.

그건 현실이었다.

“이건 뭐야? 대체. 시부레.”

지금 김탄은 숨이 막혔고 몸이 굳어 있다.

그의 눈에 보이는 세상 때문이다.

말 그대로 대 자연.

그의 눈앞으로 펼쳐진 첩첩산중이 마치 신선이 살 것 같은 도원처럼 보였다.

지나가는 바람 소리가 들릴 정도로 고요한 이 곳.

순간 김탄은 지금 이곳이 꿈속은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가 재빠르게 눈알만 돌려 주변을 탐색했다.

아주 산골인 것 같은데 저 멀리 인가 같은 게 보였지만 사람이 살지 않는 폐가 같았다.

그 풍경에 등골이 더 서늘해진 김탄은 식은땀마저 흘렸다.

빡! 빡! 빡!

누가 정권 수련이라도 하는 듯 돌에 주먹을 치는 소리 같은 게 들려 김탄이 소리가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마당 한 구석에서 흑염소 두 마리가 박치기를 하고 있었고 그 주변에서 놀던 닭들이 날개를 퍼득이며 날아다니고 있었다.

-이건 대체 뭐냐? 흑염소와 닭이라니..-

동화 속 전원 풍경에 김탄이 자신이 처한 현실을 까맣게 잊고 있을 때 순간 그의 어깨를 커다란 손이 억세게 움켜 쥐었다.

소스라치게 놀란 김탄은 소리도 내지 못할 정도.

돌아보지 않아도 박토가 확실하다.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김탄이 뒤를 돌아보자 역시 어느새 다가온 박토가 그를 보고 웃고 있었다.

웃는 모습이 이렇게 공포스러울 때도 있다는 사실에 색다름을 느낀 김탄은 온몸에 소름이 확 돋았고 정신마저 혼미해졌다.

“왜? 집에 가려고?”

박토의 목소리에 다시 정신이 돌아온 김탄은 스위치를 켠 듯 눈에 눈물이 아른거렸다.

도저히 눈 앞에서 웃고 있는 박토를 마주하기 힘들었던 김탄은 그대로 다시 고개를 돌려 그를 외면했다.

-눈 앞에 펼쳐진 첩첩산중이 창살로 보이는 건 착각이겠지?-

김탄이 이렇게 산을 보며 한탄스러워할 때 갑자기 그의 볼에 느껴지는 박토의 숨결.

분명 박토가 김탄 얼굴 쪽으로 그의 얼굴을 붙인 것이다.

하지만 쳐다 볼 수 없었던 김탄.

그저 지금 이 현실이 꿈이기를 바라며 눈물만 글썽일 뿐.

“김 탄. 여긴 들어오긴 쉬워도 나가기는 어려운 곳이야. 자, 이제 우리와 함께 두 번째 바탈인 늑대를 찾아 앞으로 다가올 악을 물리쳐야지.”

귓속으로 파고드는 박 토의 속삭임에 김탄은 눈에 머금고 있던 눈물이 방울 져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

박토가 꼭 찾으러 가야 한다고 말한 두 번째 바탈인 늑대.

사실 진짜 늑대가 아닌 사람인 이미캐는 오성 알앤디 센터 실험실에 지금 누워 있다.

물론 처음 잡혔을 때처럼 의식을 잃은 상태.

그녀는 차갑고 딱딱해 보이는 실험 장비들이 가득한 실험실 한편에 마련된 침대 위에 온몸이 결박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녀 옆으로 하얀색 가운은 입은 연구자 한 명이 미캐의 팔에서 채혈을 하고 있었다.

이미 많은 양의 피를 뽑았다는 걸 보여주듯 연구원 옆에 있는 책상 위에 놓인 렉에 많은 양의 혈액 샘플들이 꼽혀 있었다.

채혈을 마친 연구원이 샘플 튜브를 흔들며 소리쳤다.

“뮤턴트 A-0! 혈액 샘플 채취 완료!”

마지막 채혈인 듯 연구원이 샘플을 렉에 꼽고 자리에서 일어서자 황량한 실험실 안으로 한 음성이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졌다.

“뮤턴트 A-0. 혈액 샘플 시료 한 세트 더 채취하십시오.”

소리에 깜짝 놀란 듯 연구원이 고개를 돌려 위를 올려다보았다.

천고가 높은 실험실 위로 유리로 된 커다란 창이 달린 상황실이 있었다.

유리 너머 서 있는 은비사.

목소리의 주인공은 그였다.

처음부터 모든 과정을 지켜본 듯 무표정한 표정으로 연구원을 내려다보고 있는 은비사를 보고 연구원이 머뭇거리자, 은비사는 자신의 명령을 강행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종용했다.

-여기서 더 하라고? 미친 거 아냐?-

연구원은 은비사에게서 시선을 돌려 이미캐를 쳐다보았다.

이미 많은 양의 피를 빼앗긴 듯 창백해져 있는 그녀를 본 연구원이 꺼림칙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던 그가 책상에 부착된 버튼을 눌렀다.

버튼은 마이크 버튼.

이제 연구원의 음성은 상황실로 전달이 되기 시작했다.

“저. 비사님 그러면 채혈 허용량이 초과 되게 됩니다. 뮤턴트가 쇼크를 유발할 수도 있으니 회복기를 거쳐 다음에 하는 것이 좋을 듯 싶습니다.”

“그럼 쇼크 전까지 채혈하십시오.”

예상과 다른 은비사의 말에 연구원은 또 한번 깜짝 놀랐다.

상급자라 이런 행동을 하면 안되지만 연구원은 대체 왜 그러냐는 뜻으로 은비사를 다시 올려다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무표정했던 은비사의 표정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이건 계속 자신의 뜻을 강행하라는 뜻.

냉정하고 냉혹한 은비사의 태도에 연구원은 다시 미캐를 쳐다보았다.

흔들리고 있는 연구원.

미캐는 한 눈에 딱 봐도 앳된 아이였다.

여기서 더 채혈을 하다 쇼크로 죽게 된다면 살인자가 된다.

그 생각에 쉽게 채혈을 시작하지 못하고 있는 연구원이 말없이 주저하며 머뭇거리기만 하자 또다시 실험실 스피커를 통해 은비사의 음성이 들렸다.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정말 사람이 아닙니다.”

미캐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연구원은 은비사의 말에 잠시 생각을 하는 듯 보였다.

그러던 그가 책상 한 편에 놓여 있던 트레이를 집어 들었다.

트레이를 뒤집어 그 안에 놓여 있던 물건들을 떨어뜨리고는 그대로 미캐의 얼굴로 가져가 덮었다.

그러자 또다시 실험실 스피커를 통해 은비사의 음성이 들려왔다.

“칼에 찔려도 죽지 않는 괴물인 거 모릅니까? 사람의 탈을 쓴 괴물인 것을 절대 잊지 마십시오.”

연구원도 알고 있었다.

미캐는 칼에 찔리지 않는 사람 아닌 사람이라는 것.

즉 괴물.

괴물은 인간 세계에 공존할 수 없다.

사람 같은 아니, 완전 사람과 똑 같은 미캐의 모습은 그의 양심에 죄책감을 일으키고 있었다.

하지만 괴물은 사람이 아니기에 인간의 인간적인 마음을 주어서는 안 된다.

사람과 괴물은 공존할 수 없는 게 규칙이다.

이로 인해 조금은 마음의 짐이 풀린 연구원.

지금 그는 자신의 행위에 대한 정당성이 확보됐다.

즉, 여기서 더 채혈을 하게 돼 어린 여자 아이의 생명을 빼앗는 살인가가 되는 것이 아닌 사람에게 위협이 되는 괴물을 죽이는 게 됨으로 모든 것에 유예가 된 것.

-뭐, 어차피 모든 책임은 은비사에게 있으니까.-

더 이상 걸리 게 없다고 생각했는지 아님 스스로 타협점을 확보했는지 연구원이 다시 마이크를 켰다.

“뮤턴트 A-0. 혈액 샘플 한 세트 더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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