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_ 이게 뭐냐고요? 이건 그냥 개고생이었잖아요!

“이런. 먼저들 식사를 하고 계셨군요.”

어디서 많이 듣던 목소리가 들리자 오 강심과 나 채국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뒤 늦게 나타나 식판을 들고 해맑게 웃고 있는 은비칼이 보였다.

그의 등장으로 나채국과 오강심의 설전은 께름칙하게 강제 종료되었다.

“조금 늦으셨네요. 배고파서 먼저 먹고 있었어요.”

오강심 때문에 기분이 상한 나채국은 은비칼을 환대하지 않았다.

그의 퉁명스러운 말투는 은비칼을 의아하게 만들었지만 언제나 친절한 그는 그런 그를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래요. 그러셨군요. 상부의 연락을 받느라 조금 늦었습니다. 이해해 주세요.”

그러나 은비칼의 자상한 말에도 대꾸 없는 두 사람.

또 티격태격한 모양이다.

뭐, 오강심과 나채국 둘이 붙어 있을 땐 늘상 있는 일이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은비칼은 나채국 옆자리로 가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숟가락을 들어 국을 떠 먹으려 고개를 숙이려는 찰나 오강심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기.. 실장님. 오늘은 안 하시나요?”

은비칼이 고개를 들어 오강심을 보자 그녀는 손가락으로 그의 앞머리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차. 내 정신 좀 봐.”

오강심의 일러준 말에 은비칼은 밥 먹을 때마다 하는 습관을 거른 걸 깨달았다.

그가 바로 주머니에서 파란색 별 모양 핀을 꺼냈다.

그리고는 그 핀으로 그의 앞머리 중 유난히 긴 한 가닥의 머리카락을 돌돌 말아 미간쯤에서 멈춘 후 고정시켰다.

그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 지에 대해선 오강심과 나채국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를 처음 봤을 때부터 은비칼이 국 먹을 때마다 하던 행동이었다.

아마 국에 머리카락이 빠지는 게 싫어서 그런 듯.

그렇다면 유독 긴 한 가닥의 머리를 잘라 버리던지.

왜 저런 불편함을 감수하고 저러는 걸까?

뭐, 이런 생각을 평상시 하고 있었던 나채국과 오강심이었지만 그 소리를 한 번도 입 밖으로 꺼낸 적은 없었다.

다 제 멋에 사는 것이다.

아무튼 은비칼이 그런 행위를 마칠 때까지 그저 바라보기만 했던 오강심과 나채국이었다.

그들이 밥은 먹지 않고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만 보고 있자 뻘쭘해진 은비칼은 두 손을 비비며 촐싹거렸다.

“자. 맛있게 먹읍시다.”

그리고는 열심히 밥을 먹기 시작한 은비칼.

하지만 그에 반해 이상하게 나채국과 오강심은 밥을 먹지 않았다.

지금 그들은 은비칼에게서 무언가 눈치채고 있었다.

나채국이 ‘너도 실장님이 지금 이상한 것 같지 않아’라고 물어보듯 오 강심을 쳐다보았다.

그 무언의 말을 들은 듯 오강심도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은 지금 은비칼이 미소를 머금으며 밥을 먹는 행위 속에 숨어 있는 그의 불안을 육감으로 느끼고 있었다.

또한 그가 밥 먹을 때마다 하는 핀 꼽기 행위를 거른 것은 그 육감을 더욱더 견고하게 만들었다.

또한 촐싹대며 손을 비비며 뱉은 은비칼의 어색한 말투에서 불길한 미래도 본능적으로 느낀 나채국과 오강심.

그들은 무언가 꿰뚫어 보겠다는 듯 예리한 시선으로 은비칼을 노려보듯 쳐다보자,

그들의 송곳으로 찌르는 것 같은 따가운 시선을 느낀 은비칼은 지금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

이 말을 신뢰하고 있는 은비칼이 다시 그들의 시선 따윈 아랑곳 하지 않는다는 듯 묵묵히 꿋꿋하게 계속해서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러나 오강심과 나채국은 은비칼을 향한 따가운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그런 그들 때문에 신경 쓰인 은비칼은 순간 밥 먹다 목에 걸려 짜증이 났다.

“왜 저를 계속 쳐다보시는 거죠? 나 채국 씨. 오 강심 씨.”

나 채국이 기다렸다는 듯 운을 떼는데.

“저기.. 실장님.”

곧바로 말을 끊어버리는 은비칼.

“하. 저는 오늘 식단이 맘에 드는데 나 채국 씨는 별로인가요? 불고기 좋아하시잖아요.”

“아니요. 아주 맛있어요.”

“그럼 정말 다행이군요. 맛있는 게 나왔는데 계속 식사하시죠. 나 채국 씨.”

대화는 원천 차단되었다.

할말이 없어진 나채국은 밥을 한 숟갈 떠 입에 넣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그의 시선은 은비칼에서 한시도 떠나지 않았다.

그런 상태로 조금 시간이 흐르고..

갑자기 나채국이 밥을 씹으며 은비칼을 향해 웅얼거렸다.

“그런데 휴가는 언제..”

“켁. 켁. 크헉. 컥. 켁.”

느닷없이 이유 없는 사레에 들린 은비칼은 연신 기침을 해댔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나채국과 오강심은 안쓰러워하기는커녕 기분이 나쁘다는 듯 인상을 썼다.

이 둘은 지금 은비칼이 사레 들린 모습을 보고 무언가 확실하게 잘못됐다는 걸 직감했다.

식스 센스.

육감.

심리 오감 이외의 감각으로 일반적으로 도무지 알 수 없는 어떤 사물이나 현상의 본질을 직감적으로 포착하는 능력.

그 육감으로 은비칼에게서 무언가 부정을 읽은 그들은 조만간 그들의 미래에 불행이 닥칠 것이라는 걸 느끼고 있었다.

“말해 보세요. 대체 휴가는 언제 주는 거죠?”

나채국의 불안한 물음에 은비칼은 기침을 해 대느라 잠긴 목소리로 힘겹게 입을 열었다.

“아니. 그게.. 저.. 김 탄을.. 놓쳤습니다. 여러분. 그래서 오늘부터 다시 비상근무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이거 정말 면목이 없네요. 하하 하하.”

역시 나채국과 오강심이 느낀 육감은 정확했다.

다시 비상근무면 정시 퇴근은 힘들다는 소리.

또한 나채국과 오강심이 밥 먹으면서 싸웠던 휴가 계획은 의미가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그럼 휴가는 취소가 됐다는 말씀이시군요. 실장님.”

오강심의 차가운 목소리에 무안했던 은비칼은 히죽히죽 웃으며 답했다.

“아.. 아닙니다. 무기한 보류가 됐을 뿐입니다. 휴가는 김 탄을 잡으면 가실 수 있습니다.”

은비칼의 말에 오강심과 나채국은 절망한 듯 고개를 떨구었다.

은비칼의 말을 뒤집어 보면 김탄을 잡을 수 없다면 휴가도 물 건너간다는 소리.

한숨만 나오는 이 상황에 또 다른 불안함을 느낀 나채국이 은비칼에게 다시 물었다.

“그럼 보너스 인상은요? 휴가는 김 탄을 잡으면 보내주시는 거고 보너스 인상은 즉각 이루어졌으면 좋겠는데요?”

그의 물음에 은비칼은 답을 하지 못하고 식은땀만 뻘뻘 흘렸다.

얼굴만 봐도 결과는 뻔하다.

하지만 부정하고 싶은 나채국과 오강심은 희망 가득한 눈으로 은비칼을 바라보는데 그는 그런 그들을 향해 은비칼이 어물쩍거리다 결국에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아이고.. 여러분 정말 죄송합니다. 급박한 상황이라 안타깝게 건의조차 못했습니다. 정말 타이밍이 애매했거든요.”

그럼 그렇지.

회사 임원급이나 받는 휴가와 보너스를 말단 사원 나부랭이에게 줄 턱이 있나.

얼마 전 치열한 베팅으로 협상한 요구 조건들이 불발이 되자 나채국은 화가 나기 시작했다.

탁!

나채국이 젓가락을 식탁에 내려놓은 거친 소리에 심장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았던 은비칼.

입 속에 든 밥을 목구멍으로 넘기기가 왜 이렇게 힘든 걸까?

그가 목에 걸린 밥을 꿀떡거리며 위 속으로 넘기려 애를 쓸 때 갑자기 그의 귓속으로 나채국의 분노의 목소리가 꽂혔다.

“크으으으으으으으으..”

괴물이나 내는 그르렁 소리에 깜짝 놀란 은비칼이 나채국을 쳐다보자 그의 얼굴은 아주 험악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얼마나 화가 났으면 살이 쪄 포동포동한 볼까지 쭈글쭈글해져 있는 나채국.

게다가 벌겋게 달아오른 체.

마치 그의 얼굴은 화산 폭발 직전, 에너지 응집 같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끓어오르는 그의 분노는 결국 임계점에 다다랐다는 듯 폭발했다.

“너무해요! 실장님! 아직도 전 그날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어요!”

나채국이 소리를 지를 때마다 활성화 된 화산의 화산재처럼 밥풀 들이 입 속에서 분출하고 있었다.

사방에 흩뿌려지거나 말거나 그는 다시 포효하기 시작했다.

“그동안의 수면 부족으로 베타 아밀로이드 펩타이드를 청소하지 못해 제 뇌에 플레이크가 응집되는 바람에 인근 뇌신경세포와 신경회로가 손상돼 아직도 회복을 못하고 있어요. 이렇게 가다간 전 결국 치매에 걸릴지도 몰라요!”

그렇게 입 속에 든 밥을 뿜어 낸 나채국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두 손으로 제 머리를 감쌌다.

그러고는 마치 머리에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어 댔다.

“으아아아아 아! 제 뇌가 죽어가고 있다고요!!”

그의 모습에 영혼이 털린 듯 멍 때리고 있던 은비칼이 구원의 눈길로 오강심을 바라보자 그녀는 잠시 생각을 하는 듯 눈을 감고는 말이 없었다.

'아마도 그의 상사 나채국 팀장의 주접스러움에 부끄러워 그렇겠지'라고 생각한 은비칼의 예상과 다르게 갑자기 오강심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저는 부교감 신경 기능이 떨어져 우울증 초기 증상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우울합니다. 실장님.”

그녀는 나채국의 주접에 회피했던 게 아니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것.

그들은 지금 협상의 불발에 대한 불만을 피력하느라 구내 식당에서의 쪽팔림을 무릅쓰고 있었다.

이 난관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

은비칼은 처참한 마음으로 다시 나채국을 쳐다보았다.

커다란 육식 공룡이 내려다보는 것 같은 나채국의 모습에 은비칼은 주눅이 들었고,

그가 나채국의 시선을 피하려 고개를 돌리려는 찰나 나채국이 다시 이빨을 드러내며 포효하듯 소리쳤다.

“맞아요! 우울증! 제가 살이 찌는 게 다 실장님이 밤샘 작업을 시켜서 그런 거라고요. 책임지세요!”

나채국의 입 속에 밥이 얼마나 많이 들어 있던 건지 아직도 뿜어져 나오는 밥풀 들.

그 밥풀들은 은비칼의 얼굴에까지 날아와 붙어버렸고 얼굴 반 밥풀 반인 것처럼 그의 얼굴이 변하자 오강심이 물티슈를 내밀었다.

애잔한 표정이었다.

물티슈를 받아 든 은비칼은 일단 얼굴에 묻은 밥풀을 닦았다.

나채국의 입에서 한동안 머물며 침과 섞여 분쇄된 밥풀 알갱이들은 풀처럼 끈적여 잘 닦이지 않았다.

왠지 나채국의 침 냄새까지 나는 것 같아 찝찝했던 은비칼은 지금 서글프다.

그러나 뭐라 말은 못하고 그저 묵묵히 물티슈로 얼굴을 닦는 은비칼.

어찌나 많이 붙었는지 다 닦느라 한참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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