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_ 구내 식당에서의 살벌한 식사 타임.

이런 이들의 점심 시간.

나채국은 이 세상에 자신과 소 불고기만 존재하는 듯 무아지경, 오강심은 이 세상에 자신과 대박 소년단 만이 존재하는 듯 무아경 속이었다.

그 무아경 속에서 오강심은 식판 위 주 메뉴 데코레이션처럼 혹은 잔치국수에 올리는 지단 고명을 올려놓 듯 한 숟가락의 밥 한 톨을 젓가락으로 집어 들었다.

분명 먹기 위해서 그런 것일 터.

밥 한 톨로 무슨 맛을 느낄 수 있겠냐마는 그녀는 그 한 톨을 아주 맛있는 표정으로 씹어먹으며 스마트 폰을 보며 웃기 시작했다.

대박 소년단 멤버 중 그녀의 최애 박망개 군이 나와 웃었던 것.

소리 없이 웃는 그녀는 지금 아기들이나 구사하는 표정 언어를 짓고 있었다.

그녀는 박망개 군이 웃으면 따라 웃었고 또 박망개 군이 놀라면 따라 놀랐다.

자세히 관찰하면 오강심의 표정은 상당히 웃긴다.

다 큰 성인이 아기나 짓는 소리 없는 표정을 짓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 구내 식당에서 그녀의 그런 표정을 눈여겨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바로 앞에 앉아 있는 나채국은 오로지 처 먹는 거에만 집중하고 있었고 옆 테이블의 사람들은 모두 오강심처럼 스마트 폰으로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 오성 통신 구내 식당은 마치 애니메이션 월-E에 나오는 인간들의 프리퀄 버전 같았다.

그렇게 그들이 식사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사이 현저히 떨어진 속도가 있었다.

나채국의 먹는 속도였다.

이는 그가 초반 극도의 허기를 달래자 나타난 현상.

배고픔에 대한 욕구의 만족을 느낀 나채국은 소 불고기에 대한 초 집중이 사라졌고 그제야 주변 세상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의 눈에 들어 온 오강심.

그녀의 식판을 본 그는 인상부터 찌푸렸다.

맛없는 풀떼기를 보아서 그랬던 것.

저런 걸 돈 주고 사먹는 인간들이 이해가 가지 않는 나채국이었다.

매사 깐족거리고 말 많은 성격이었던 그는 제 버릇 개 못 준다는 듯 변함없이 오강심을 향해 깐족거리기 시작했다.

“강심아. 이번에 휴가 받으면 뭐 할 거야?”

나채국의 질문에 인상부터 쓰는 오강심이었다.

그런 그녀가 '밥이나 처먹지 왜 말을 걸고 이 지랄이야.'라는 표정으로 나채국을 쏘아보았다.

“또 대박 소년단 보고 있냐? 본 거 또 보고 또 보는 거 지겹지 않아?”

나채국의 말에 오강심의 눈이 가늘어졌다.

기분이 상했다는 뜻.

그녀의 표정 변화에 지레 질겁한 나채국.

“아니. 그렇다고 그렇게 무섭게 쳐다보냐? 무슨 말을 못하겠네. 됐고. 너 이번 휴가에 뭐 할 거냐고?”

지금 오강심은 나채국과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밥 먹는 시간까지 쪼개 망개 군을 보고 있는데 쓰잘데기 없는 나채국의 말시비를 상대하고 싶지 않았던 그녀가, 이번 대답을 끝으로 더 이상 멀 걸지 말라는 듯 나채국에게서 시선을 떼고 다시 스마트 폰을 쳐다보며 대답했다.

“저는 이번 휴가를 우리 대둥이들을 위해 쓰려고 합니다만.”

“뭐? 너 정말 한 달 동안 아이돌 덕질만 하겠다는 거야? 의미 없이? 너 정말 바보/”

아이고, 이런.

생각 없이 말을 내뱉은 나채국.

그의 주특기지만 이번엔 그도 아차 싶은 마음에 그대로 말문을 닫았다.

하지만 이미 쏟아 진 말.

주워 담을 수 없는 그 말로 인해 오강심에게선 무언가 분노의 오라가 나오는 것 같았는데..

그게 맞다는 듯 서슬 퍼런 표정으로 나채국에게로 서서히 시선을 옮기는 그녀.

마치 공포 영화 속 귀신이 고개를 돌리는 모습을 지금 이 현실에서 마주한 것 같아 나채국은 그대로 몸이 얼어버렸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마음이 불안해진 나채국이 그도 모르게 포크를 쥔 손이 소불고기를 마구 찍은 다음 입에 욱여넣었다. 불안을 달래기 위한 그의 본능적인 움직임이다.

그는 그녀의 분노의 이유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모두 그녀의 덕질에 대한 무시의 말 때문이라는 걸.

하지만 그녀의 덕질은 이해할 수 없었다.

겨우 아이돌 덕질에 황금 같은 휴가를 낭비하다니..

오강심이 한심해 보이기까지 한 그는 지금 솔직히 그녀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어떤 생산적이거나 창의적인 결과를 도출하는 취미를 가져보는 건 어때? 네 덕질은 그냥 잉여의 삶일 뿐이잖아?’

평소 같으면 분명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말했을 나채국이지만, 지금 그는 서늘한 눈으로 째려보는 오강심이 무섭다.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는 욕구불만 때문에 더욱 불한해진 나채국은 또 한 번 입에 소불고기를 욱여넣었다.

'그만 쳐다봤으면....'

계속되는 오강심의 노골적인 시선에 나채국은 되레 화가 났다.

하지만 명백히 나채국이 잘못이 크다.

타인의 관심사나 취미는 존중해줘야 맞다.

그걸 잘 알고 있는 나채국은 이상하게 사과는 하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그녀가 그의 부사수였기에 생긴 알량한 자존심 때문인지도 모른다.

다만 그는 지금 마음속으로 빌기만 했다.

'그냥 그녀가 무시하고 넘어가길....'

그런데 그냥 넘어갈 수 없었던건지 오강심이 칼날 같은 말투로 나채국에게 버럭 쏘아 붙였다.

“아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하시죠? 팀장님! 그동안 바빠서 못 본 팬 쳇, 그리고 리액션 비디오들을 보기에도 한 달은 너무 빠듯하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리고 우리 대둥이들은 그냥 아이돌이 아닌 뮤지션입니다. 겉모습만 보고 내실을 못 보는 섣부를 판단을 하지 말아 주십시오.”

“풉!”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온 나채국.

그와 동시에 입 속에 들어 있던 소불고기가 뿜어져 나오는 걸 손으로 잽싸게 틀어막아 간신히 막았다.

아까운 고기를 공중에 뿌릴 수는 없다.

그가 입 속에 든 고기를 오물거리고 씹고는 꿀떡 삼켰다.

“야. 뮤지션이면 아이돌이라고 안 하지. 대박 소년단은 아이돌이 확실하잖아. 그리고 너 올해 나이가 몇이지?”

“25세 입니다만. 무슨 문제 있습니까?”

나채국이 오강심의 말에 이기죽거렸다.

“아니. 그냥 너의 미래가 살짝 걱정되기 시작했어. 아이들도 아니고 무슨 아이돌임? 흐흐흐.”

'아니. 저 꿀돼지 같은 인간이. 지는 10덕 드론 성애자 주제이면서 감히 우리 대둥이를 무시해?'

나채국의 비아냥에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른 오강심은 지금 진짜 화가 많이 났다.

'그래, 오늘 너 죽고 나 죽자. 어차피 처음부터 맘에 들지 않았던 나채국 팀장. 뚱뚱하고 못 생긴 데다가 잘난 체나 드럽게 하는 드론 덕후! 네가 하는 덕질은 우아하고 내가 하는 덕질은 시간낭비냐? 이 드론에 미X 놈아. 네가 내 걱정을 한다는 게 어불성설이다.'

이건 지금 오강심이 머릿속으로 나채국을 향해 하고 싶은 말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말 했다간 회사 생활은 끝이다.

그렇지만 이대로 넘어갈 수 없었던 오강심.

그녀가 복수의 칼날을 갈은 듯 나채국에게 또박또박 힘주어 말을 뱉어냈다.

“그럼 팀장님의 이번 휴가는 아주 빈틈없이! 시간이 정말 아깝지 않게! 잘 계획되고 있겠군요?”

분명 비꼬는 말인데 나채국의 표정은 화사하게 변했다.

휴가 계획의 청사진을 떠올린 그는 지금 너무 행복해 앞 뒤를 구분 못하고 있었다.

“그럼 당연하지. 이번 내가 계획한 안티 드론 프로젝트의 프로토 타입을 개선하려고 해. 휴가 기간 동안 3번에 걸쳐서 해야지. 그리고 내 27번째 드론이 될 안드레를 위해 ** 시뮬레이션 대회에 참가하려고 해. 우리 안드레에게 경험치를 쌓게 해 줘야지. 그리고……”

말을 하다가 오강심의 질문의 본질을 깨달은 나채국은 그대로 말끝을 흐렸다.

-아, 진짜 내 휴가 계획이 궁금해서 물어본 게 아니구나. 이런, 나도 결국 휴가를 덕질로 보내는 거네..-

자기도 모르게 온통 드론 얘기만 쏟아냈던 나채국은 그의 휴가도 오강심처럼 대상만 다를 뿐 덕질로만 채울 계획이었다.

말을 하다 스스로 깨달은 나채국은 너나 나나 피차 별반 다를 것 없구나 라는 듯 오강심의 심기를 살피며 눈치를 봤다.

그녀는 '그래, 너도 별거 없는데 밥 먹다 말고 왜 태클을 걸고 지랄이냐'라는 표정으로 쳐다보자, 그 모습에 다시금 불안해진 나채국은 그대로 불고기를 입에 욱여넣었다.

“아니, 잘 계획된 휴가 계획을 얘기하시다가 갑자기 왜 그렇게 침울 지는 겁니까?”

“어? 그게..”

“왜요? 팀장님의 미래도 장미 빛은 아니라고 생각이 드십니까?”

“어? 아니.. 그런 건 아닌데..”

탁!

거칠게 식탁에 젓가락을 내려 놓은 오강심.

그 모습에 기가 눌린 나채국은 또다시 불고기를 입에 욱여넣었다.

“그렇게 어떤 물건에 지나칠 정도로 탐닉하시기 때문에 팀장님이 아직도 솔로인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덕후는 여자들한테 인기가 없거든요.”

켁. 켁. 컥. 컥.

오강심의 말에 순간 사레들려 기침을 해대는 나채국.

그녀의 말은 정말로 정곡을 찌르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가 연신 해대던 기침이 잦아들자 바로 오강심에게 버럭 발끈하며 소리쳤다.

“야. 오 강심! 네가 나한테 그런 소릴 한다는 게 좀 우습다고 생각하지 않냐? 너도 남친은 없잖아!”

하지만 그의 도발에 이상하리만치 초연한 오강심.

그녀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훗. 전 선택적 솔로입니다.”

“뭐?”

“선택적 솔로라고요. 즉, 팀장님처럼 못 사귀는 게 아니라 안 안 사귀는 겁니다. 저는 케이스가 다른 겁니다.”

“오강심. 너..”

무슨 아무 말이라도 내 뱉고 싶었던 나채국은 지금 말문이 막혔다.

정말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껏 여자를 사귀어 본 적 없는 그는 그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지적한 그녀가 미웠다.

나는 못 사귄 거지만 너는 일부러 선택한 솔로라니.

지금 자괴감마저 든 나채국은 심리적 고통으로 인해 몸마저 부들부들 떨려왔다.

고통스러움에 그가 또다시 입으로 불고기를 욱여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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