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_ 증명된 알리바이. 내가 범인이 아니라고!

거짓말쟁이로 낙인찍히면 진실을 말해도 소용없다.

영원한 양치기 소년이 되는 것.

이것은 평상시 거짓말을 밥 먹듯하는 영식이었기에 받는 당연한 처사였다.

하지만 그걸 모르는 마영식은 자신의 결백을 알아주지 않는 반장과 코피에게 서운한 감정까지 느꼈고 급기야는 서러움이 북받쳤다.

계속 되는 반장의 따가운 시선과 불신의 감정은 그대로 마영식의 마음으로 파고들었다.

불편하고도 짜증 나는 상황.

마영식이 그 상황에 안절부절 못하고 있을 때 갑자기 불 난 데 부채질하듯 코피가 기름을 확 들이부었다.

“뭐라고 하는 거래? 지금 딱 한 시간이라고 그랬냐? 영식아. 거짓말을 해도 믿을 만하게 해라. 누가 그 소리를 믿겠냐?”

불 난데 기름을 확 들이 부었으니 불길이 치솟는 건 불변의 이치.

코피의 말은 반장의 얼굴을 더욱더 험악하고 굳어지게 만들었다.

그의 모습에 마음이 더 불편하고 불안해진 마영식.

그는 지금 억울하다.

이건 모함이자 중상이다.

밤새 게임을 한 건 사실이 아니었다.

순간 마영식의 뇌리에 떠오른 한 생각.

이 모든 불편한 상황을 끝낼 수 있는 것이었다.

바로 밤을 새우지 않았다는 증거.

증거는 사실관계를 확고히 하는 힘이 있다.

증거를 제시함으로 영식은 이 모함에서 벗어나는 알리바이를 확보하게 되는 것.

마영식이 주머니를 뒤적여 손바닥만 한 로또 용지를 꺼냈다.

그리고는 두 사람의 면전으로 내밀었다.

그가 승률 100% 변호사의 눈빛으로 회심의 미소를 짓고는 코피와 반장에게 소리쳤다.

“자! 여기 보세요! 어제 산 로또. 몇 시에 샀는지 한 번 보세요. 제 말이 진짜라는 게 증명될 테니까!”

19시.. 22분.. 29초.

코피가 로또 용지에 쓰인 시간을 읽어 내려가자 반장의 표정의 누그러졌고 코피의 목소리는 기어들어갔다.

마 영식의 알리바이는 확실했다.

이제 전세 역전.

기가 살은 마영식은 지금까지의 모함이 억울하다는 듯 눈을 부라리며 반장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마치 모함에 대한 사과를 하라는 듯.

그러나 반장은 침묵을 선택했다.

솔직히 그는 아몰랑. 아니면 그냥 여기선 내가 법이야! 라는 독재자의 심보로 마영식을 계속 밀어붙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김탄이 지각한 건 마영식과 어울려 안이해졌기 때문이며 그렇게 김탄을 변하게 만든 마영식이 싫었던 이유에서 그러고 싶었는지도.

하지만 그러는 걸 그만 두기로 마음 먹었다.

만약 반장이 여기서 멈추지 않으면 그건 그냥 감정의 배설을 위한 폭력이자 또 그가 마영식을 지독히도 싫어하는 게 확정되는 것이다.

반장은 속내를 들키지 않는 연륜이 있는 자였다.

갈 때와 멈출 때를 아는 유연한 사고를 삶의 질곡으로 터득한 그는 그대로 고개를 돌려 옆에 멀뚱히 서 있는 코피에게 갑자기 성질을 내기 시작했다.

“밤 새 한 게 아니래잖아!”

“제가 언제요? 밤샌 것 같다 그랬죠. 벌써 보청기 끼실 나이가 되셨나 보네요. 흐흐.”

“코피 너 혹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게냐?”

이거야말로 모함이다.

게다가 협박까지 하고 있다니.

깜짝 놀란 코피는 심장이 덜컹 내려앉다 못해 죽을 것만 같았다.

그는 절대 지금 이대로 세네갈로 돌아갈 수 없었다.

가족을 위해 먼 타국살이를 선택한 코피였다.

그는 지금 모함을 당해도 협박을 받아도 참아야 한다.

모두 고향에 두고 온 가족을 위해..

말 한마디에 모든 게 물거품이 되면 안 된다.

정말 이곳에서 쫓겨나면 끝이다.

왜냐하면 반장은 이 작업장 최고 서열.

그의 눈밖에 나면 안 된다는 것은 11년째 한국에서 살아오며 터득한 코피의 나름의 타국 살이 노하우.

또한 그는 이 모든 걸 해결할 실마리를 잘 알고 있었다.

딱 한마디만 하면 모든 문제와 불편이 사라지게 된다는 걸..

이 신우 프로텍 작업장의 거룩한 평화와 자신의 안정을 위한 코피 입에서 흘러나온 희생의 한 마디.

“잘 못 했어요. 반장님.”

코피의 단 한 마디에 모든 게 해결된 이 순간.

그리고 찾아 온 평화.

반장은 지금 코피의 희생이 너무 고마웠다.

역시 코피는 한국말만 잘하는 줄 알았는데 눈치도 9단이었다.

영식을 오해한 것으로부터 잃게 될 그의 권위를 생각한 반장은 명백히 잘못은 했지만 섣불리 영식에게 사과할 수 없었다.

모두 그의 자존심 상 그랬던 것.

애꿎은 코피에게 모든 잘못을 떠넘겼지만 그가 이렇게 잘 받아 칠 줄은 몰랐다.

그런 코피에게 감동 받은 반장.

그가 다시 코피의 눈치 9단 실력을 믿고 혀를 끌끌 차며 투덜거렸다.

“다음부턴 말 좀 똑바로 해. 자꾸 오해를 하게 되잖아. 애먼 영식이만 잡을 뻔했네. 참.”

“죄송해요. 다음부턴 조심할게요.”

반장이 코피를 보고 고맙다는 듯 빙긋이 웃자 코피도 괜찮다며 빙긋이 웃었다.

말과 마음이 따로 노는 진풍경.

분명 화를 내고 꾸중을 듣고 있었던 두 사람은 지금 웃고 있다.

마영식은 그것도 모르고 걱정 한가득 말을 뱉었다.

“이 새끼. 어디 아픈가?”

그의 말에 반장의 얼굴엔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그의 눈치를 살피던 코피가 또 한 번의 희생을 자처했다.

“저기.. 제가 지금 탄이 집에 갔다 올까요? 반장님이 너무 걱정이 많으신 것 같아서..”

호기심을 보인 반장.

순간 그걸 캐치한 마영식.

합법적 땡땡이를 칠 수 있는 기회였다.

절대 놓칠 수는 없지.

“제가 갔다 올 게요. 탄이 집 도어 락 번호 알아요. 반장님.”

마영식의 말에 반장은 잠시 생각을 했다.

둘 중 누굴 보내는 게 합리적이고 현명한 것일까?

마영식을 보내자니 맘에 들지 않는다.

김탄과 친하게 지내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어락 비번과 그가 소유한 바이크 때문에 코피보다는 마영식을 선택한 반장.

“영식아.”

반장이 이름만 불렀는데도 영식은 기쁨으로 충만한 나머지 입이 귀에 걸렸다.

-일 하는 시간에 외출을 하다니. 그것도 김탄의 집으로..-

이 생각에 영식은 가슴마저 뛰었다.

“영식이 네가 갔다 와. 만약 점심시간까지 탄이 오지 않으면 그때 갔다 와라. 오도바이 타고 가면 빨리 갈 수 있지?”

반장의 말에 기쁨에 넘치던 마영식의 얼굴은 흑색으로 변했다.

-황금 같은 점심시간을 쪼개서 김탄에게 다녀오라니.-

그 생각에 온몸이 무거워지며 뒷골마저 당긴 마영식은 이 난관을 어떻게 극복할지 머리를 굴렸다.

물음에 답하지는 않고 그나마 성한 한쪽 눈 속의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려대는 마영식에게 답답증이 치밀은 반장은 성질이 난 듯 채근을 했다.

“왜 대답을 안 해! 점심 시간에 잠깐 다녀오라니까!”

난처한 얼굴로 머뭇거리던 마영식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어. 아이고 어쩌죠? 전 점심때 약속 있거든요. 정말 중요한 약속이에요. 코피 형이 간다고 했으니 코피 형을 보내세요.”

마영식의 거절에 반장이 코피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왜 코피는 그의 얼굴 색이 하얗게 떠 있는 걸까?

게다가 이마엔 식은땀까지.... 그를 본 반장이 소리쳤다.

“넌 또 왜 그래? 어디 체했어?”

“아이고 아, 이걸 어쩌나. 저도 점심시간에 약속이 있는데.. 큰일이네. 송구스러워서 어쩌죠? 탄이 집엔 반장님이 다녀오셔야 할 것 같아요. 특별히 아끼시잖아요. 아들처럼.. 헤헤헤.”

순간 마영식과 코피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한 반장.

그의 얼굴이 화가 난 듯 험상궂게 일그러지며 입에서 거친 소리가 튀어나왔다.

“이 녀석들이. 가서 빨리 일이나 해! 작업 물량 채우기도 바쁜데 틈만 나면 내뺄 생각만 하지. 원”

영식과 코피는 반장의 불호령에 재빠르게 도망치듯 자신들의 작업 공간으로 달려갔다.

그런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한심한 듯 혀를 끌끌 차며 바라보던 반장.

이내 걱정과 염려로 가득한 듯 낯빛이 어두워졌다.

이 모두 아직 회사에 오지 않은 김탄 때문이었다.

“이 녀석 며칠 전에도 큰일을 당했는데 괜찮을까 모르겠네. 쯧.

아무튼 끼니는 거르지 말아야 할 텐데.. 쯧.”

***

맛있는 한 끼를 먹기 위한 오성 통신 구내식당.

수많은 테이블 중 한 테이블에 올려진 식판.

유독 눈이 가는 이 식판은 다른 테이블에 올려진 다른 식판과 상당히 달랐다.

여러 음식을 담아내는 구역이 분명 존재하는 대도 그 식판엔 오로지 밥과 소 불고기만 수북이 쌓여 있었다.

눈에 띠는 그 모습은, 그러니까 위태롭게 쌓아 올린 소 불고기는 조금이라도 건들면 아래로 우수수 떨어질 기세였다.

그 산더미 같은 소 불고기로 갑자기 포크가 나타나 마구 마구 찍어댔다.

포크 사이로 더 이상 소 불고기가 들어갈 데가 없을 때까지 불고기 더미를 찍어대던 포크가 갑자기 멈추고는 살포시 고개를 들어 올리듯 위로 들어올려지는 포크.

포크의 형체는 어디 갔는지 사라지고, 하나의 커다란 고깃덩어리에 삐죽 튀어나온 쇠 손잡이 같은 모습의 포크는,

그러니까 아무튼 이 포크에 달린 고깃덩어리는 그대로 포크를 쥐고 있는 나채국의 입 안으로 들어갔다.

소 불고기를 입 안 가득 넣은 나채국은 쉴 새 없이 입을 움직이며 고기를 분쇄시켰다.

그 꽉 찬 입 사이로 어떻게 소리가 새어 나오는지 신묘하다.

연신 고기를 씹어대는 나채국은 신음 소리 같은 감탄사를 연발해댔다.

음. 우허. 으우. 음. 냠. 어흑. 헉. 어음. 흐억.

그렇게 나채국이 밥을 먹으며 섹슈얼한 소리 같지 않은 소리 같은 요상한 소리를 내는 것에 반해 그의 앞에 앉아 밥을 먹고 있는 오강심은 돌부처 같았다.

한 치의 움직임 없는 그녀는 한 손으로 젓가락을 잡은 체 다른 손으로 스마트 폰을 보고 있었다.

보나마나 대박 소년단의 동영상이다.

밥 먹는 것보다 동영상 시청이 중요한 그녀의 식판은 온통 풀 투성이다.

풀로 무슨 에너지를 낼 수 있겠나.

그나마 에너지 생성을 위한 음식으로는 풀 옆에 고명처럼 놓여 있는 밥 한 숟가락이 전부.

뚱뚱한 몸을 유지하기 위해 쉴새 없이 먹어대는 나채국에 반해 어디 살 뺄 대라고는 보이지 않는 빼빼 마른 오강심의 다이어트 식단은 참 이질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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