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_ 김탄이 무단 결근을? 이건 해가 서쪽에서 뜰 일..

코피가 오지랖을 앞세운 궁금증에 깊이 빠져들기 시작할 때 반장이 갑자기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코피를 쳐다보았다.

마치 용의자를 취조하는 형사 같은 눈빛에 코피는 잘못한 것도 없는데 주눅이 들었다.

“어제 이 놈들 어디 간다고 하지 않았나?”

반장의 물음에 코피는 즉시 안도했다.

이유는 영식이 사고를 친 게 아니라 그의 지각에 대한 추궁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영식이 어제 사고를 친 거면 오늘 잔업은 확정이다.

다행히도 사고가 아닌 영식의 지각.

코피는 어제 그들의 행적에 대해 아는 대로 증언하기 시작했다. 물론 기쁜 마음을 담고.

“피씨방 간다 그랬잖아요. 영식이가 쏜다고 탄이 엄청 좋아했잖아요. 설마 어제 늦게까지 했나?”

그런데 맨날 늦는 영식이는 왜 찾으세요? 탄이야 항상 제시간에 오지만 영식이는 항상 늦잖아요. 기다려보세요.”

코피의 말에 더욱더 근심 어린 표정으로 변하는 반장.

그런 그에게 이상함을 느낀 코피가 물었다.

“왜 그러세요? 세상 다 잃은 것처럼.”

“영식이만 안 오면 내가 왜 이러겠어. 그 녀석 맨날 늦는 녀석인데.. 탄도 안 와서 그러는 거야.”

코피는 깜짝 놀라 되물었다.

“네? 탄이요?”

“그래. 그러니까 내가 이러지. 어제 분명 영식이랑 어디 간다고 했는데 그것 때문에 이러는가 싶네.”

“전화를 해 보세요.”

“했는데 받질 않아.”

“영식이도요?”

“아이고. 내 정신 봐라. 영식한테는 네가 해 봐.”

전화를 하기 위해 전화기를 꺼낸 코피.

그는 지금 믿을 수가 없었다.

김탄이 지각을 했다니.

코피는 신우 프로텍에 김탄보다 먼저 입사한 선임이었다.

그런 그가 김탄을 본 이래로 그는 단 하루도 지각하지 않았다.

항상 제 시간에 시계처럼 정확히 출근했던 김탄.

즉 오늘은 해가 서쪽에서 뜨는 것 같은 이변이었다.

-믿을 수가 없네. 정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아무리 영식과 어울려도 제 페이스는 유지하는 김탄인데.. 이렇게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다니.-

순간 그의 뇌리에 스친 한 생각.

“한참 어울려 다니더니 물들었나 보네. 으이그. 하여간 요즘 것들은 군기가 빠졌어.”

코피의 혼잣말을 주워 들을 수밖에 없었던 반장은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그가 평상시 우려한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김탄이 질 나쁜 영식과 어울리다 그처럼 변할까 걱정하던 반장은 김탄만 보면 영식과 어울리지 말라고 귀에 딱지가 않게 잔소리를 해댔었다.

그런데 결국 이렇게 되어버렸다.

김탄의 일탈.

김탄이 입사한 이래 첫 지각.

하늘이 노랗게 변한 반장의 얼굴이 죽상이 되어버렸다.

반장은 그가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정도로 예뻐하는 김탄이었다.

그래서 그를 무척 아꼈었다.

그런데 불량 영식과 같이 어울리며 드디어 변했다?

초록은 동색이요 가제는 게 편이라고 했었지?

김탄을 백로로 만들고 싶었던 반장은 그가 까마귀로 변했다는 사실에 가슴이 아파왔다.

또한 그가 아들같이 생각한 김탄이었기에 배신감과 함께 실망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코피의 추리 같지 않은 추리에 팔랑귀가 된 반장은 못마땅한 일을 겪었다는 듯 갑자기 끙 소리를 냈다.

그 소리에 깜짝 놀란 코피가 그를 쳐다보자 반장은 아까 전보다 더 찌그러진 얼굴로 변해 있었다.

지금 반장은 극 대노하고 있다는 뜻.

다혈질에 괴팍한 반장이 폭발해 그로 인해 불통이 자신에 튈까 걱정이 된 코피는 반장이 눈치채지 못하게 살금살금 게걸음으로 반장에게서 멀어졌다.

순간 걸음을 멈춘 코피.

그가 무서운 표정으로 회사 입구를 노려보았다.

그의 귓속으로 마영식의 것으로 추정되는 바이크 엔진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서 그랬던 것.

하지만 아닐 수도 있었기에 계속 노려보기만 했다.

바이크 엔진 소리가 점점 신우 프로텍과 가까워지자 코피의 입가엔 미소가 어렸다.

마영식이 맞아서 그랬던 것이다.

“호랑이도 제 말한다면 온다더니 저기 오네요.”

“누가?”

반장의 되물음에 코피는 확신에 가득 찬 표정으로 작업장 입구를 턱으로 가리켰다.

“저기 영식이요.”

뭐? 영식이?

반장은 곧바로 입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화려한 스포츠 바이크 한 대가 입구 쪽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 바이크에 탄 사람은 누가 봐도 마영식.

한 번 보면 절대 잊을 수 없는 복장을 하고 있다.

하지만 반장의 목적은 마영식이 아니다.

그는 그의 모든 관심사인 김탄을 찾고 있었다.

그러나 보이지 않았다.

같이 날을 샜다면 같이 출근해야 하는 게 당연지사.

반장은 영식이 혼자 오는 걸 보고 의아하기만 했다.

그렇지만 어차피 마영식을 추궁하면 김탄에 대해선 다 알게 될 일이니 영식이의 관심은 뒤로 하고 일단 다른 궁금함이 먼저 앞선 것 때문에 코피에게 말을 걸었다.

“그런데 코피 너.. 한국사람 다 됐네. 속담도 할 줄 알고 말이야. 허허허”

“에이. 반장님도 참. 제가 여기 11년째 살고 있어요. 그 정도야 우습죠. 헤헤.”

“11년 산다고 그렇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얼굴 가리고 말하면 진짜 한국 사람인 줄 알겠어.”

“어휴. 과찬이십니다. 반장님. 저도 제가 잘하는 건 알지만 뽐내지는 않아요. 뭐든 과유불급이라고 했잖아요.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했죠.”

반장은 코피를 말없이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한국 사람보다 더 한국 사람처럼 말하는 그가 상당히 어색했기 때문이었다.

코피는 어디서 배웠는지 1년 전부터 사자성어를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가끔 조선시대에서 온 듯한 사고방식과 말투도 썼다.

초콜릿 색 얼굴에 아주 심한 곱슬머리.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영식이 달려오고 있는 걸 쳐다보며 웃고 있는 코피.

누가 봐도 한국 사람의 모습과는 달랐다.

지금 그의 정체성에 심한 혼란이 온 반장이다.

그가 캐 묻듯 코피에게 물었다.

“너 진짜 세네갈에서 온 거 맞아?”

반장의 물음에 코피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항상 준비된 자처럼 지갑에서 외국인 등록증을 꺼내 반장에게 보여줬다.

국적이 세네갈이 맞았다.

농담 삼아 한 말에 진지하게 외국인 등록증을 보여주는 코피의 모습에 살짝 당황한 반장은 할 말이 없어 입을 꾹 닫았다.

그때 어느새 그들의 곁으로 다가온 마영식이 인사를 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헉헉.”

“맨날 늦는데 뭐가 죄송해!”

이렇게 버럭 소리를 지르며 마영식을 돌아 본 반장은 놀라 까무러칠 뻔 한 걸 가까스로 참았다.

아니 세상에.

김탄에게 맞아 멍이 든 마영식 눈이 하룻밤이 지나자 더 엉망이었다.

이게 사람의 눈인지 괴물의 눈인지 형체가 불분명한 모습에 적잖이 놀란 반장은 그저 할 말을 잃은 체 말없이 마영식의 눈만 바라보았다.

급하게 뛰어 온 듯 숨을 헐떡이며 반장의 시선에 주눅이 들어 제 손으로 부어 오른 눈을 살짝 어뤄만지는 마영식은 중얼댔다.

“어휴, 뛰어 오느라 혈압이 상승했는지 더 욱신거리네..”

그러고는 부끄러운 듯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잘하는 짓이다. 5살이나 어린 동생한테 얻어 맞고나 다니고..”

또다시 쏟아진 반장의 핀잔에 마영식은 기분이 상했다.

-오늘 따라 유난스럽다. 평상시 늦어도 별말 없던 반장이 오늘 왜 이렇게 까칠한 건지.-

안 그래도 다친 다리로 다급하게 뛰어오느라 무리까지 했는데 그 마음을 몰라주는 반장이 섭섭했던 마영식.

왠지 마음이 상하니 그 다리도 더 욱신거리는 듯했다.

초라하게 주눅들어 있는 마영식을 보고 있던 반장은 그가 그저 그냥 탐탁지 않다는 듯 입을 삐죽 내밀고는 본격적으로 그가 궁금해하는 것에 대해 마영식에게 탐문하듯 물었다.

“그런데 탄이는? 같이 안 왔어?”

반장의 물음에 마영식은 다짜고짜 깜짝 놀라기부터 했다.

“뭐라고요? 탄이 아직 안 왔다고요?”

반장은 대답 대신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영식이 서둘러 주머니에서 전화기를 꺼내자 반장이 말렸다.

“할 필요 없어. 받질 않아.”

“안 받아요? 이 새끼 웬 일 이래? 해가 서쪽에서 뜰 일이네..”

김탄이 지각을 한 건 이변이다.

말 그대로 해가 서쪽에서 뜰 일.

마영식은 '대체 무슨 일 때문에 김탄이 지각을 한 것일까?' 궁금함에 고개를 갸웃거리자 갑자기 코피가 가자미 눈을 뜨고 마영식을 쳐다보았다.

누가 봐도 의심이 가득해 보이는 표정.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던 마영식은 갑자기 너까지 왜그러냐는 듯 눈을 크게 뜨며 부라렸다.

물론 다치지 않은 한 쪽 눈만.

그런 그의 반응에 코피가 가소롭다는 듯 픽 웃었다.

누가 봐도 기분 나쁜 웃음.

“왜 그래? 코피 형. 내가 뭐 잘못한 거 있어?”

“그래. 너희들 밤 새 게임했지? 그러지 않고는 탄이 지각할 리가 없잖아. 야. 그것도 다 한때야. 내 나이쯤 되면 밤 새 뭘 하는 게 힘들어. 뼈마디가 삭는 것 같거든. 너도 얼마 안 남았어. 이제 철 좀 들어야지. 안 그래?”

하, 참.

왜 김탄의 지각에 대한 핀잔을 자신이 들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던 마영식.

그가 화가 나서 코피에게 따지려고 들던 찰나 갑자기 난데없이 반장이 영식에게 버럭 성질을 냈다.

“뭐? 밤을 새워서 게임을 했다고? 영식이 너 이 자식. 탄이 데리고 자꾸 쓸데없는 짓 할 거야? 요즘 계속 너와 어울리며 사고 치고 다니던데. 순진한 탄이 꼬셔서 자꾸 물들일 거야?”

이건 뭐 동네 북도 아니고.

김탄의 지각에 여기 저기서 얻어 터지고 있던 마영식은 참을 수 없음에 화가 났다.

하지만 화가 나도 지금은 참아야 한다.

그도 지각을 했기 때문이다.

또한 지금은 화를 내는 것보다 반장의 성급한 오해를 푸는 게 우선이다.

마영식이 절박하게 두 손을 휘휘 내저으며 변명을 했다.

“아.. 아니에요. 밤을 새우다니요. 어제 딱 한 시간만 했어요. 정말 딱 한 시간만 하고 헤어졌어요. 피씨방에 정전이 나서 한 시간밖에 못했거든요. 진짜예요. 아, 진짜라니까요.”

마영식의 말에 무반응인 코피와 반장.

지금 마영식의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저작권자 © 불교공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