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_ 예언을 정확히 해석하는 자들

“허허. 그러게나 말입니다. 기록된 예언이 이용당하는 두려움이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하지만 기록됐다는 것에 집중해 보면 그 예언을 정확히 해석할 수 있는 자가 있기 때문에 남긴 게 아닐까요?”

“흠.”

강석민은 낮은 신음을 내뱉으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의 마음처럼 바람이 일어 나뭇잎을 흔들고 있었다.

예언을 남긴 당사자 말고 정확히 해석할 수 있는 자가 있을 수도 있다라니..

그렇다면 왕종철이 확실하게 해석하는 자 일수도 있다.

어쩌면 예언을 정확히 해석하는 자 왕종철.

정말로 그 자일지도 모른다.

그랬으니 확실한 증거로 예언이 사실임을 확인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주도권은 왕종철에게 있는 것이다.

대통령 임현의 생각이 맞았다.

그러니 이번 운석에 관한 일은 왕종철만 주도할 수 있는 일이었다.

아직은 예언에 대한 것을 가장 잘 아는 자가 왕종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석민은 그를 믿을 수가 없었다.

이상현의 해석보다 왕종철의 말이 더 정확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정확성의 이면에 왕종철의 사심이 들어갈 수도 있다는 가정.

그 사실에 창문 밖을 바라보는 비서실장의 눈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

파눔의 예언을 지키는 자 바룬의 직계 자손 중 하나인 바탈 파인더 박 토.

그는 지금 심각하다.

그의 앞에 누워 있는 김탄 때문이었다.

박토는 총격전이 일어난 날 밤, 의식을 잃은 김탄을 데리고 집으로 와 여기 안방 이부자리에 뉘였다.

하지만 하룻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었는데도 일어날 기미가 없다.

-설마 뇌를 다쳐 이대로 깨어나지 못하는 건 아니겠지?-

이런 생각에 마음이 초초해져 심각했던 것.

더군다나 그의 옆엔 이 집안 서열 1위인 박월이 앉아 있다.

박월은 김탄이 머리를 다친 건 몰랐다.

박토가 집으로 그를 데려오기 전 자신의 속옷까지 버리는 수고를 마다 않고 말끔하게 수습했기 때문이다.

정말 김탄은 겉으로 봐선 아무 이상이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옆에 앉아 있는 8살짜리 서열 1위의 얼굴에 의심이 서리기 시작했다.

그는 그런 눈으로 말없이 김탄만 뚫어져라 보고만 있었다.

사실 박월은 아침에 동이 트자마자 바탈을 깨우자고 박토를 졸랐다.

하지만 박토는 그건 바탈에 대한 예의가 아니니 스스로 일어날 때까지 기다리자며 뜯어말렸다.

만약 김탄을 흔들어 깨웠다가 일어나지 않으면 그게 더 큰 문제.

가까스로 박토가 박월의 마음을 돌렸지만 그가 갑자기 김탄을 흔들어 깨울까 노심초사하느라 식은땀마저 날 것만 같았다.

이렇게 박토는 잔뜩 긴장한 체 옆에 앉아 있는 박월을 주시하며 또 기절한 김탄이 빨리 깨어나기를 바라며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시간은 왜 이렇게 안 가는지.

빨리 흘러 박월이 학교에 가는 버스가 왔으면 좋겠는데..-

박토가 머릿속으로 기도를 하고 있을 때 옆에 앉아 있던 박월은 계속되는 기다림이 무료했는지 갑자기 말을 걸어왔다.

“때렸어? 삼촌.”

순간 심장이 덜컹 내려앉은 박토.

그가 당황하듯 의미 없이 되물었다.

“뭘?”

박토의 되물음에 대답 없이 손가락으로 기절한 김탄을 가리키는 박월.

그런 상태로 한참을 의심의 눈초리로 박토를 쏘아보던 그가 다시 물었다.

“이 바탈 아저씨 삼촌이 때렸지?”

깜짝 놀라 내려간 심장보다 더 덜컹 아래로 내려 앉은 박토의 심장.

그는 말을 잇지 못하고 멀뚱히 박월만 쳐다만 보았다.

-미래를 보는 능력을 지닌 박월. 그런데 과거까지 보는 건가?-

이 생각에 상당히 흥분했던 박토는 도대체 월의 능력이 어디까지 성장할지 가늠하기가 힘들었다.

-어쩌면 바룬족 역사상 가장 위대한 무단이 될지도..-

한때 박토도 무단이었지만 월만큼 신통하지는 않았다.

자신이 무단이었기에 무단에게는 속일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는 박토가 답을 했다.

“어떻게 알았어? 진짜 비전으로 본 거야?”

“아니, 그냥 그럴 거 같아서 말해 본거야.”

그대로 박토는 인상이 구겨졌다.

박월이 과거를 보는 능력을 깨쳤다는 생각은 그만의 착각이었기 때문이다.

순간 박월에게 희롱을 당한 것 같아 기분이 나빠진 그가 투덜거렸다.

“안 때렸어. 때린 건 아니야. 그냥 저 쪽으로 가 있으라고 발로 살짝 밀었던 거지.”

“그건 때린 게 아니야? 바로 폭력.”

“아.. 아니야. 살짝 민 거야.”

월이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똥그래졌다.

“말도 안 돼. 살짝 밀었는데 저기 저 아저씨 계속 어떻게 누워 있을 수 있지?그리고 처음부터 기절해 있었잖아. 설마, 발로 아주 세게 뻥 찬 건 아니겠지? 사실이면 할아버지한테 되게 혼날 텐데..”

보지도 않았는데 그때 일을 마치 본 것처럼 주저리 주저리 늘어 놓는 박월 때문에 박토는 순간 숨이 멎었다.

어젯밤 그가 했던 행동을 생생하게 묘사하자 박토는 혹시 박월이 비전을 보고 안 보는 척 하는 게 아닐까라는 의심까지 들었다.

하나 그게 사실이어도 지금 인정하면 안 된다.

그러면 즉시 교활한 저 꼬마 녀석이 작은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고자질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무조건 아니라고 우겨야지.

박토는 강력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나 월은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며 더욱더 의심을 했다.

“뻥 찾을 거야. 그러고도 남지. 삼촌은. 그리고 이 아저씨 맘에 안 들어했잖아. 혹시 이 아저씨 옆에 있던 할아버지가 바탈이 아니라서 화풀이한 거야?”

속내를 들킨 박 토.

솔직히 박토는 진짜 김탄이 맘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그때 더욱더 세게 찾는지도 모른다.

아니 찼다.

하지만 인정하면 안 된다.

그가 지금 이 순간을 무마할 수 있는 건 바로 양육자로서의 횡포.

말문이 막히거나 혹은 할 말이 없을 때 그가 월에게 자주 하는 말.

“이 자 식 이…”

박토가 입을 떼자마자 박월이 주머니에서 잽싸게 스마트 폰을 꺼냈다.

“할아버지랑 영상통화 해야겠다. 삼촌이 괴롭히면 전화하라고 했었는데..”

바룬족 집안 서열 1위는 박월.

서열 2위는 월의 할아버지.

박토는 서열 막내.

가문의 보배인 박월을 괴롭히면 작은 아버지가 가만두지 않는다는 걸 저 교활한 박월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하지만 박월은 모르고 있었다.

박토는 월이 모르는 사실을 비웃음 짓듯 뱉었다.

“로밍 안 하셨어. 이 바보야.”

“알아. 그래서 촬영 중이야. 나중에 돌아오시면 보여 줄 거야. 계속 해. 삼촌.”

“으이그. 진짜. 아니라고.. 안 때렸어. 우리 집안 명예를 걸고 맹세 해!”

“그래? 진짜?”

“그렇다니까!”

“그래, 그럼 믿어 줄게.”

박월은 박토의 말을 믿는 눈치였다.

그래서 그녀는 더 이상 흥미가 없다는 듯 박토를 촬영하고 있는 걸 멈추고 유튜버 앱을 실행시켰다.

그녀의 행동을 유심히 보고 있던 박토

-훗~ 또 나의 크래프트라는 게임 때문이겠지.-

그 예상에 맞게 역시 나의 크래프트 게임 방송 채널이었다.

그 동영상을 박월이 열심히 시청하기 시작했다.

박토는 곁눈질로 월의 스마트 폰을 슬쩍 훔쳐보았다.

역시 네모난 얼굴에 눈, 코, 입이 달린 캐릭터가 깡총거리며 뛰어다녔다.

그 게임 캐릭터를 아바타로 사용하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쟁쟁거렸다.

초딩 수준에 맞게 시끄럽고 산만했다.

그것에 환장하고 있는 박월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박토는 박월의 얼굴을 지그시 쳐다보았다.

자아를 상실한 듯한 표정.

혼을 잃어버린 눈동자.

벌어진 입.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또 여기가 어디인지 잊어버린 모습이었다.

순간 피씨방에서 마주했던 김탄의 모습과 데쟈뷰 되는 건 억지가 아니겠지?

박토는 박월이 미래의 김탄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불쑥 화가 났다.

하지만 지금 보지 말라고 윽박지르는 건 역효과다.

설득을 위해선 마음을 움직여야 하는 법.

박토는 박월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입을 열었다.

“이봐. 조카. 너 저번에 국어시험 20점 받았던데..”

순간 박월이 영혼이 돌아 온 눈동자로 바뀌었다.

가상 세계에 빠져 있던 그녀가 이질적인 현실의 박토의 목소리와 말을 들어서 그랬던 것.

하지만 왠지 기분이 나빴던 박월은 동그래진 눈으로 박토를 쳐다보았다.

“갑자기 그 얘기가 왜 나와? 삼촌.”

“아니, 그냥. 근데 너 어제 숙제 했어?”

박토의 말에 더욱더 눈이 커진 박월.

지금 아주 놀라는 중이다.

-아차, 이것을 어쩌지? -

박월은 어제 밤 말로만 듣던 바탈의 등장에 숙제가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전설 속에 등장하는 바탈을 실제 마주하면 누구나 그럴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만 년의 시간 동안 예언을 지키는 자 바룬의 후손이라면 더욱더.

박월은 초등학생 직업 말고 바룬족 후손으로 사는 것도 직업으로 인정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비밀리에 세상을 구하는 직업은 이렇게 고된 거구나. 차라리 토니 스타크처럼 까발리면 편할 거야.

하지만 증명되지 않은 추레한 신분으로 세상을 구하는 일을 한다고 하면 과연 믿어 줄까? 거짓말쟁이나 망상쟁이가 되는 일 밖에 없을걸?-

박월은 지금 이렇게 숙제를 하지 못한 것에 대한 프로세스를 작성 중.

하지만 그런다고 선생님이 내준 숙제는 사라지지 않는다.

월은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아직.. 안 했어.”

“초등학생으로서 본분을 지켜야지. 학교 가기 전에 빨리 가서 숙제 해. 다음 시험은 30점은 넘어야지. 100점 만점이던데.. 너는 20점이었잖아.”

이건 명백히 화가 나라고 한 말이다.

수치심을 건드려 자존심이 상한 월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정말 치사한 공격이야! 치사해!”

하지만 박토는 지금 살짝 기분이 좋았다.

뭐 이런 소시오패스 같은 인간이 다 있을까?

박토는 화가 나 어두운 얼굴로 토라져 있는 박월에게 희열감마저 느꼈다.

오랜 세월 집안 막내 서열로 살며 당한 설움이 싹 사라지는 순간이어서 그랬을 듯.

아까도 말했듯 박월은 바룬족 서열 1위.

어린 놈이 권력을 가졌다고 매사 29살 먹은 삼촌을 부려 먹고 놀려 대는 통에 박토는 심히 가슴이 많이 아팠었다.

그런데 이렇게 한 번의 공격에 무너지다니.

이상하게 박토는 그를 또 한번 공격하고 싶었다.

“눈 감고 찍어도 50점은 받을 수 있겠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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