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_ 종말에 관한 예언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서류를 읽던 이상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강석민에게 입을 열었다.

“아니. 이것은.. 종말에 관한 예언이 아닙니까? 당최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비서실장님 같이 바쁘신 양반께서 왜 이런 걸..”

“그냥 취미생활일 뿐입니다. 제가 이런 쪽에 관심이 좀 많은 편입니다.”

“허허허 허. 농이 지나치십니다.”

갑자기 이상현 교수의 입에서 폭소가 터져버렸다.

예언을 연구하는 취미라니..

그런데 공인된 사람에게 조언을 구하러 왔다....

누가 들어도 황당한 소리였다.

그래서 웃음이 터진 이상현 교수 때문에 쩔쩔매고 있던 강석민은 어색하게 에둘러댔다.

“아이고.. 농이 아닙니다. 정말 취미 생활입니다.”

-취미가 예언을 수집하는 것이라고?

뭐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대통령을 보좌하는 최측근인 비서실장이라는 사람이 그 말을 하니 신빙성이 없다.-

이상현 교수의 웃음은 그 뒤로도 계속 끊이지 않았다.

결국 그렇게 웃어대던 이상현 교수의 웃음은 그의 목마름으로 끝냈다.

그가 말라버린 입을 축이느라 차 한잔을 마신 뒤 다시 손에 들린 종이를 은근히 바라보았다.

심각해 보였고 또 진지해 보였다.

이상현은 지금 어이가 없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단지 그는 지금 왜 종말에 관한 예언 구를 대통령의 비서실장인 강석민이 가져왔는지 그 저의가 궁금할 뿐이었다.

취미라는 사적 호기심이 아닌 게 분명해 보였다.

그랬다면 강석민이 혼자 직접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참을 예언 구를 쳐다보던 이상현이 조심스레 종이를 탁자 위에 내려 놓고 강석민을 똑바로 직시했다.

친절하고 온화한 표정은 아니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비서실장님.”

사람을 꿰뚫어 보는 시선과 또 이상현의 말 너머 느껴지는 의심의 감정을 느낀 강석민은 대뜸 얕은 미소부터 지었다.

난처함을 감추기 위해 본능적으로 나온 미소였기에 상당히 어색했고 불안해 보였다.

그렇게 말 못하고 머뭇거리는 강석민에게 이상현이 아이를 달래듯 차분하게 채근했다.

“물어 보십시오. 뭐든지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그냥. 아시는 대로 전부 다 말해주셨으면 합니다.”

순간 표정이 굳은 이상현.

그의 추측이 들어맞았기에 그랬던 것.

진짜로 예언 구를 들고 온 이유인 비서실장의 취미생활은 사실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사적 방문이 아닌 공적인 방문.

이상현은 정말로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가 다시 종이를 들어 예언 구를 살폈다.

그가 아는 지식을 총 동원하는 듯 심사 숙고하는 모습이었다.

한편 그를 지켜보는 강석민은 조바심이 났다.

그래서 그랬는지 입이 바짝바짝 마르고 손에선 식은땀도 살짝 베어 나왔다.

그가 긴장을 풀기 위해 탁자에 놓인 찻잔을 들어 차를 마셔봤지만 풀리지는 않았다.

한참의 생각이 끝났는지 이상현이 도로 탁자에 종이를 내려 놓고 강석민을 다시 쳐다보았다.

조금 전까지 그가 보이던 자상함이나 배려는 눈을 씻고 찾아 봐도 찾아 볼 수 없었다.

침묵으로 일관하는 이상현 교수에 강석민이 지레 겁을 먹고 마른 침을 꼴깍 삼켰다.

그러는 그와는 달리 이상현은 차분하게 입을 열기 시작했다.

“이 예언은 처음 들어보는 예언입니다.”

“그렇습니까?”

“하지만 이 예언을 읽어 보니 전설이 하나 생각나는군요.”

순간 강석민의 눈이 반짝였다.

그가 여기 이상현 교수의 집으로 직접 방문한 목적.

이상현 교수가 왕종철이 전한 예언을 제대로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지 않을까라는 가정이 맞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강석민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전설이요? 무엇인지 말씀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백두산에 관한 전설입니다. 백두산 자락 흑룡담 아래 작은 마을에 태어난 쌍둥이 삼 형제에 관한 전설입니다. 해를 훔친 흑룡을 신비한 재주로 물리쳐 다시 찾아오는 이야기죠. 그리곤 밤하늘로 올라가 태양을 지키는 삼태성이 되었다는 전설입니다.”

“3이라는 숫자와 예언 구의 흑룡이 해를 삼키는 건 비슷하지만 나머지는 완전히 다르군요.”

“전설과 예언의 차이이기 때문이죠. 전설은 말 그대로 전해져 오는 이야기입니다. 과거에 실재하는 것이었던 아님, 상상의 산물이던 아무튼 전설이라는 건 시간적 존재이자 또 다른 형태의 문화입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뒷받침 하는 증거물이나 기념물이 있었기에 오랜 시간 사람들이 믿고 듣고 말하며 오랜 세월을 함께 했습니다. 또한 그 세월을 거치며 변이도 많았죠. 하나 지금 제 손에 들려 있는 건 종말에 대한 예언입니다.

즉, 미래에 대한 이야기죠. 백두산 삼 형제와 비슷한 내용은 있지만 이 예언을 믿기는 힘들어요. 이걸 입증하거나 어떤 증거가 될만한 것이 없으니까요.”

이상현 교수의 말을 다 들은 강석민은 표정이 굳어졌다.

그가 원한 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 강석민에게 무언가 더 있다는 걸 간파한 이상현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혹시 이 예언을 믿으십니까?”

“아.. 아닙니다.”

“비서실장님. 단도직입적으로 종말론은 전부 다 허구입니다. 노스트라다무스니, 마야 종말론이니 다 예상과 빗나가지 않았습니까?”

“아, 예. 그렇지요. 그렇습니다.”

강석민은 이상현 교수를 반박할 증거는 있었지만 그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

운석이 떨어진 것과 예언이 일치하는 시점 그리고 왕종철이 예언 구를 가지고 청와대로 찾아 온 것은 이상현 교수가 알면 안되는 비밀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현재까지 예언은 사실이라는 쪽에 무게가 더 실려있다.

왕종철 보다 더 예언의 해석에 대한 우의를 선점하고 싶었던 강석민은 지금 실망 그 자체였다.

조그만 실마리라도 알았으면 좋으련만..

우리나라는 비교적 종교학 및 민속학의 대가에게 찾은 성과가 없었다.

게다가 그에게 실없는 사람으로 비쳐진 것만 같아 무색해지기까지 한 강석민은 그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표정으로 드러나 버렸다.

그의 표정을 읽은 듯 이상현의 입에서 말이 쏟아졌지만 그마저도 강석민이 바라는 말은 아니었다.

“종말론이란 본디 사회의 불안이 야기된 군중심리가 세기말적 분위기에 편승해 만들어낸 환상일 뿐입니다. 더군다나 지금은 세기말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 그렇지요.”

지금 이 대화에서 어색하기만 했던 강석민.

21세기에 미신이나 믿는 모지리로 전락한 것 같아 몸둘 바를 몰랐다.

그런 그를 약간은 한심하게 쳐다보던 이상현이 갑자기 몸을 소파 등받이 쪽으로 젖히며 허공을 응시했다.

깊은 회상에 잠긴 듯 멍한 눈빛이었다.

그러던 그가 무언가 생각난 듯 피식 얕은 미소를 지었다.

“맞아요. 20세기 말도 떠들썩했었지요. Y2K다 뭐다 엄청 혼란스럽지 않았습니까? 그때 대중문화도 한 술 떠 공포감을 더욱 확대시켰기에 더욱더 시끄러웠죠. ”

“허허허. 그랬지요.”

“그 당시 우자(愚者)들은 세상에 종말이 진짜 오는 줄 알았지만 망한 사람들도 여럿 있었습니다. 사실이에요.”

이상현의 말이 끝나자마자 강석민은 얼굴에 붉은 기운이 화끈거렸다.

우자(愚者)라는 단어가 자신을 지칭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가 할 수 있는 건 실없이 웃는 것뿐.

“아, 예. 맞습니다. 허허허 허.”

“어떻게 보면 인류가 멸망하기 전까지는 종말론이 사라지는 일은 절대 없을 거라 생각되기도 한답니다.”

“아마도 미래를 알 수 없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강석민의 말에 이상현은 맞장구를 치듯 무릎을 탁 쳤다.

“일리가 있는 말씀인 것 같군요. 허허허 허.”

“허허허허. 그럼 이 종말에 관한 예언도 허상이란 얘기겠군요.”

“그렇습니다. 예언이란 그 말 뜻 그대로 예언이어야 하지요. 하나 보십시오. 그 많은 예언서들은 항상 일이 벌어지고 난 후 에야 끼어 맞춰지지 않았습니까? 즉, 예언이라는 본래의 말 그대로의 뜻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지요.”

“예언이 사실이지만 제대로 해석을 못해서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요?”

강석민의 말에 갑자기 이상현의 표정이 굳어졌다.

농담 삼아 한 이야기에 강석민이 너무 진지하게 들어왔기 때문이다.

바로 이 순간 이상현은 이 예언이 허황되지 않음을 깨달았다.

“예.. 예언이 사실이었군요?”

비서실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해석하실 수 있겠습니까? 교수님. 지금까지 저와 나눈 이야기는 엄비여야 합니다.”

공적인 일이었다.

명세기 대통령의 비서실장이 허무맹랑한 얘기를 들고 오지 않았을 거라는 이상현의 막연한 추측이 사실이 되어 버렸다.

이상현은 대답으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종말의 예언.

과학으로 모든 게 설명되는 이 시대에 종교적인 색채가 강한 어떤 예언이 사실이라니..

믿고 싶지 않았고 또 믿을 수도 없었지만 전설과 예언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은 들었다.

하지만 자신은 없었다.

만약 잘못된 해석을 내놓게 된다면 그로 인한 잘못된 결과는 모두 이상현 자신에게 돌아오게 되는 것.

모든 걸 걸어야 하는 일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손을 놓을 수도 없는 일.

종말은 반드시 막아야 하는 게 맞다.

“해석은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누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그 내용이 판이하게 달라지는 게 예언입니다.”

“비문(祕文)으로 쓰였기 때문이겠죠?”

이상현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강석민이 다시 말을 이었다.

“괜찮습니다. 적어도 가만히 있는 것보단 나으니까 말이죠.”

“부담이 되는군요.”

이 대화를 끝으로 둘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둘 다 깊은 생각을 하는 듯.

각자의 생각에 집중하고 있는 이 둘은 지금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조금이라도 예언 구의 답을 알고 싶었던 강석민은 그 답을 찾지 못했고, 조용한 전원생활을 즐기며 노후를 보내고 싶었던 이상현에게는 어깨가 무거운 일이 생겨버렸다.

이상현이 다시 탁자에 놓인 종이를 들고 예언 구를 살피자 강석민이 입을 열었다.

“예언을 쓴 사람만 정확한 내용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예언을 남기는 걸까요? 굳이 기록으로 남길 필요가 없을 텐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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