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_ 비서실장의 은밀한 방문

한대수의 말은 즉각 김 정구의 마음에 비수를 꽂았다.

정말 정보과 형사들도 인터넷을 보고 정보를 찾는 게 사실이었으니까 말이다.

물론 오랜 된 관행상 외근을 나가지만 그건 존재 가치를 유지하기 위한 허울 뿐.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한대수였지만 이렇게 대놓고 저격이라니..

그에따라 그는 침울해진 표정이 되어버렸다.

존재 가치가 사라지는 건 쓸모가 없어지는 것과 같다.

운동 능력을 상실한 운동선수, 더 이상 노래를 부를 수 없게 된 가수 등.

필요가 없어 사라져 가는 직업군의 사람들같이 더 이상 가치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더 이상 인정받지 못하는 가벼운 존재가 된 것 같은 두려움이 불러온 고통으로 인해 느끼는 감정은 사람들을 지옥으로 빠뜨려버린다.

김정구는 나름 자신이 소속된 분과의 가치를 설파했지만 돌아온 건 현실직시와 기분 나쁜 비아냥과 조롱뿐이었다.

정말 정보과는 이제 경찰서에서 가치가 크게 없었다.

이 모든 건 통신과 인터넷의 발달에 의해 사라져가는 가치였다.

인터넷의 발달은 세상의 비밀을 모두 드러냈다.

끊임 없이 흘러 들어오는 정보의 홍수 속.

그 세상 속에서 나오 정보들로 변하고 있는 세상.

기자들이 인터넷을 뒤적이자 현장 르포는 사라졌다.

스파이가 하는 정보 수집은 해커와 컴퓨터가 대체했다.

쉽고 빠른 정보 보고인 인터넷 세상.

시대에 발 빠르게 적응한 사람들은 그걸 잘 활용했지만 때로는 그 흐름에 도태되는 사람들도 있었다.

또한 그 변화의 물살을 온 몸으로 받고 있었지만 애써 부정하며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사람들 중 하나인 김정구는 마치 사라져가는 가치를 지키고 싶었다는 듯 다시 한번 그 변화를 거부하는 열변을 토했다.

“인터넷이 못하는 일도 있어. 두고 보라고. 이 보고서가 A급 보고서가 될 테니까. 바로 BH(blue house)로 직행이란 소리야!!

바로 내 두 발과 두 눈으로 얻은 정보니까. 그게 아니었다면 이런 A급 보고서는 나오지 못해!!”

-뭣이라? 청화대로 직행이라.-

한대수는 김정구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래서 서둘러 감추었구나.

그렇다면 김정구가 쓰는 보고서는 인터넷이 대체할 수 없는 두 발로 뛴 고급 정보가 맞다.-

한대수가 믿을 수 없다는 듯 김정구를 쳐다보자 그는 나직이 말을 뱉었다.

“인터넷 뒤지다 어쩌다 걸린 게 아니야. 직접 보고 들은 거니까. 이건 사람만 할 수 있는 거란 소리야.”

그가 한 말은 거짓말이기도 했지만 사실이기도 했다.

운석 도난 정보는 김정구의 지인 조진우 기자가 직접 현장을 보고 목격한 정보였다.

또한 한대수가 직접 구한 정보는 아니지만 그였기에 얻은 정보였다.

김정구가 한대수에게 이러는 이유는 모두 가치 증명 작업 차, 인정 받고 싶었고 또 자신이 속한 정보과의 존재의 이유를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 말들이었다.

김정구의 말은 한대수에게 변화를 불러왔다.

더 이상 조롱은 없었고 마치 자신이 대어를 낚은 듯 흥분하기까지 했다.

그러던 그가 진지해진 표정으로 웅얼거렸다.

“정말 특급인가 보네..”

의기소침해진 듯 말 끝을 흐린 한대수 경사에게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낀 김정구 경장.

그가 자신감 가득 확고한 표정으로 속삭였다.

“그래. 특급이야 특급. 잘하면 경위까지도 갈 수 있지.”

“저.. 정말이야?”

“두고 봐. 깜짝 놀랄 일이 벌어질 테니까.”

그대로 입이 떡 벌어진 한대수는 얼어 붙었다.

김정구는 그런 그에게 보고서를 마저 써야 한다며 정보과 밖으로 쫓아냈다.

쫓겨난 한대수는 오지랖 부리다 잊어 먹고 있던 자신의 할 일이 생각났다.

그가 그 일을 하기 위해 경찰서를 나서는 중, 복도 끝 벽에 붙은 심벌이 눈에 들어왔다.

참수리 밑에 활짝 핀 무궁화가 있는 CI.

평상시 보이지도 않던 심벌이 오늘따라 왜 이렇게 눈에 들어 오는지..

그 앞으로 다가가 걸음을 멈춘 그가 고개를 돌려 자신의 어깨에 달려있는 계급장을 쳐다보았다.

직급에 맞게 무궁화 봉오리 4개의 계급장.

그가 그 계급장을 보며 중얼거렸다.

“활짝 핀 걸 달 텐데.. 비웃지 말걸 그랬나?”

그렇게 한참 자신의 계급장과 벽에 달린 심벌을 번갈아 쳐다보던 한대수는 그의 할 일을 하기 위해 양평 경찰서를 씁쓸한 표정으로 나섰다.

***

경기도 남양주의 한 전원주택.

한 남자가 서두르듯 책상 위의 집기와 서류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는 한국대 비교종교학 명예교수인 이상현이다.

그는 지금 그의 평소 생활 습관의 결과인 듯 여기 저기 널브러진 책과 잡것들을 치우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다.

그가 이렇듯 개인적 게으름의 사공간을 분주히 치우는 데에는 전원생활의 느긋함과 여유로움을 깨는 손님이 찾아올 예정이었기 때문이었다.

손님맞이 하기엔 서재가 너무 지저분했던 이상현은 지금 서재 정리하느라 분주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의 귀로 차가 정차하는 소리가 들렸다.

분명 이상현의 손님.

그의 집은 숲 속 외딴 곳에 있었기 때문에 차 소리가 날 일은 손님이 오는 경우 밖에 없다.

-다 치우지도 못했는데..-

이상현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서재를 둘러보다 예고됐던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출입문으로 향했다.

그 와중에도 아쉬운 듯 뒤를 돌아보는 이상현은 너저분한 서재 모습에 눈살을 찌푸렸다.

출입문에 다다르자마자 노크 소리가 들렸다.

벌컥 문을 열자 서 있는 한 남자.

대한민국 최고 서열 임현 대통령을 보좌하는 비서실장 강석민이었다.

하지만 이상현은 그런 그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다.

그를 보좌하는 수행원 없이 홀로 서 있는 모습 때문이었다.

그의 당황한 표정을 읽은 비서실장 강석민이 서둘러 인사를 건넸다.

“초면에 실례가 많습니다.”

둘은 서로 잘 알고 있었지만 대면한 건 처음.

강석민의 방문 요청을 받은 이상현은 인터넷으로 그를 탐색했었다.

예상 못한 일이었기에 대비하고 싶은 마음에 그랬던 것.

그는 하루 종일 그가 방문하는 이유에 대해 궁금함으로 가득했었다.

이상현만 지금 대면하고 있는 상대에 대해 알아 본 건 아니다.

강석민 또한 이상현에 대해 모든 정보를 숙지하고 있었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또 가족 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등등..

둘 다 초면이지만 서로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는 기묘한 만남.

하지만 둘은 서로 그렇게 잘 알고 있어도 어색했다.

-왜 수행원 없이 홀로 자신의 집에 방문했을까?-

사적인 방문이거나 혹은 비밀스러운 만남이기를 원하는 것 같다고 생각한 이상현은 강석민의 인사에 어색하게 답했다.

“어. 마..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안으로 들어.. 오.. 오시지요.”

넙죽 서재 안으로 들어서는 강석민의 눈에 들어 온 건 너저분한 서재 풍경 사이로 급하게 치운 듯 깨끗한 책상이었다.

아마도 그의 방문에 서둘러 치우고 있던 모양.

“정말 죄송합니다. 예정 시간보다 빨리 와서 난처하셨죠?”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저쪽으로 앉으시죠. 차는..”

“그냥 물 한 잔 주시면 됩니다.”

이상현이 강석민에게 음료를 제공하기 위해 서재 한 편에 마련된 간이 부엌으로 향하자 강석민은 창가 앞에 마련된 소파에 가서 자리를 잡았다.

전면이 유리로 된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그의 눈에 그대로 들어왔다.

이 서재에서 제일 좋은 자리였다.

우거진 숲 속에 자리한 이 서재에서 가장 좋은 뷰를 볼 수 있는 자리에 앉은 강석민은 깊은 심호흡을 했다.

제법 싹들이 많이 돋아 난 나무들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초록색들의 향연들이 펼쳐졌다.

그 모습을 본 강석민의 마음은 지금 평화로움으로 가득 찼다.

복잡한 국정 운영에 대한 스트레스가 한 방에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힐링을 받은 강석민은 그 마음을 드러내듯 그의 표정도 한껏 여유로워졌다.

자연이 이토록 아름다운 이유이다.

그가 그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있는 사이 이상현 교수가 손수 만든 차를 가지고 소파 쪽으로 왔다.

물이 아닌 차를 본 강석민이 화들짝 놀라 말했다.

“어이구. 이런, 물 한잔이면 되는데 굳이..”

“제가 작년 가을에 직접 따러 말린 감국입니다. 한 번 드셔 보세요.”

이상현의 정성에 강석민은 찻잔을 보며 빙그레 웃고는 한 모금 마셨다.

향긋한 향이 입안에 가득 찼다.

살짝 달큰함도 느껴지는 감국차의 감동을 느낀 듯 강석민이 감탄했다.

“정말 좋습니다. 교수님.”

“다행입니다. 허허. 감국은 봉오리가 활짝 피면 맛이 없어요. 필 듯 말 듯한 상태가 가장 향이 좋습니다.”

“하. 그렇습니까?”

강석민은 말없이 다시 차를 마셨다.

본격적인 대화를 하기 전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하는 모습 같아 보였다.

그런 그를 이상현은 차를 마시는 척 넌지시 살폈다.

강석민은 사진과 혹은 영상과는 많이 다른 느낌이었다.

굳게 다문 입 옆으로 오래전부터 이를 악 문 습관 때문인지 턱이 두터웠다.

사진 보다 실물은 더 강인한 인내를 가진 얼굴이었다.

-비서실장 이전에 변호사였던 강석민.

약자 편에 서서 봉사를 겸한 변호사로서의 삶을 살다 임현 대통령의 비서실장이 된 그가 왜 여기 온 것일까?-

“그런데.. 이 누추한 곳까지 어찌..”

“아. 그게..”

이상현의 물음에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는 강석민이 난처한 듯 어물쩍거리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 편지 봉투 하나를 꺼냈다.

그걸 이상현에게 내밀자 받아 든 이상현은 의문이 가득한 눈빛으로 물었다.

“이게 무엇입니까?”

“열어 보십시오.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편지 봉투를 바라보던 이상현이 조심스레 봉투 안을 보았다.

종이 한 장이 들어 있었다.

분명 A4지를 접어 넣은 거였다.

종이를 꺼내 펼쳐 든 이상현은 그 문서를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그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갈 때마다 표정이 난처한 듯 흙빛으로 변하자 비서실장 강석민의 눈빛도 점점 매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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