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_ 두 개의 살인 사건

방에 있던 추적자들이 방을 나서는 것과 동시에 비사가 케이에게로 다가왔다.

걸음걸이가 빠르고 성급하며 분노로 얼룩져 있었다.

그가 왜 그러지는 케이는 이미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돌이킬 수 없는 그의 실책.

그는 김탄을 놓친 것에 대한 주범이었기 때문이었다.

케이에게 점점 다가오는 은비사의 표정은 일그러져 있었고 눈은 광기에 사로잡힌 듯 번뜩였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본 케이는 그 다음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푹 숙였다.

그 순간 주먹이 들어와 케이의 안면을 강타했다.

케이는 그대로 벽에 부딪힌 후 바닥에 나뒹굴었다.

그 뒤로 한동안 은비사의 주먹질은 계속됐다.

주먹으로 때리는 소리와 살이 짖이기는 소리 그리고 고통을 참기 위한 신음소리가 휘몰아쳤다.

결국 케이의 얼굴이 그 본래의 형체를 알아보지 못할 만큼 뭉게지고 나서야 은비사의 주먹질은 멈추었다.

은비사는 분노한 감정의 분풀이가 어느 정도 사그라졌다는 듯 처음 이 방에 들어왔을 때보다는 조금 차분해져 있었다.

그가 품에서 손수건 하나를 꺼내 손등에 묻은 피를 닦았다.

그리고는 그 손수건을 케이의 얼굴에 집어 던지듯 툭 던졌다.

“닦아.”

케이는 얼굴을 덮고 있던 손수건을 집어 들고는 피를 닦을 필요가 없다는 듯 옆으로 툭 치웠다.

“분풀이는 하고 싶은 대로 해. 대신 회장님에게 말하지 말아 줘. 부탁이야. 미안하다. 은비사.”

은비사가 소리쳤다.

“그러길래 넌 이번 일에서 빠지라고 했잖아!”

“그렇게 될 줄 몰랐어. 하지만.. 나도 잘하려고 그런 거야.”

“제길. 그래서 내가 신중해야 한다고 했잖아!”

맞는 말이었다.

케이의 실수는 은비사의 말대로 그의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케이는 할 말이 없었다.

침묵이 흘렀다.

차라리 은비사가 폭언이라도 계속하던지 아니면 때리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의 무거운 침묵이었다.

그 침묵의 시간은 케이의 마음을 헤집어놨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이번 실수로 인해 조직에서 배제될 것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말 그대로 김탄은 다 잡은 물고기였다.

그 물고기를 일부러 놓아준 꼴로 만들어 버린 케이.

그에게는 치명적인 실수였고 만회할 길은 없었다.

그저 난감하기만 했고 대책도 없었다.

“공을 세우고 싶은 거였겠지.”

비사의 정곡을 찌르는 말에 케이는 그대로 고개를 떨구었다.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경솔했어. 그 정도로 명사수일 줄은 꿈에도 몰랐어.”

비사가 눈이 순간 번뜩였다.

“명사수?”

“그래. 백발백중 명사수.”

은비사가 호기심을 보였다.

“자세히 말해 봐.”

“현장에 스나이퍼 포함 7명의 추적자를 보냈어. 그런데 모두 죽었어. 스나이퍼까지.”

“얘기하지 않았던가?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라고!”

케이가 갑자기 피식 웃었다.

상황에 맞지 않는 케이의 행동에 은비사가 의아한 듯 물었다.

“뭐야? 지금 그건.”

“이봐. 김탄이 군대도 안 다녀온 미필 주제에 총이나 쏴 봤을 것 같아? 나도 처음엔 김탄 작품인 줄 알았어. 하지만 이 정도 실력이면 전문 킬러라는 얘기야. 이제 겨우 20살 된 보육원 출신이 킬러 훈련을 받았을 리가 없잖아?”

“설마...”

“그래. 김탄 말고 한 명이 더 있었단 얘기야. 그래야 얘기가 명확해지지. 그리고 그 한 놈이 대단한 실력을 가졌다는 거야.”

말을 마친 케이가 끙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얼굴에 뭍은 피를 손등으로 훔치고는 바디백 쪽으로 다가갔다.

그가 천을 확 젖히자 이마에 관통상을 입은 시체의 얼굴이 드러났다.

“6명이 모두 이마에 총알이 뚫고 지나갔어. 딱 한 명만 빼고 말이야. 9mm 탄으로 추정해. 권총 아니면 자동소총이겠지.”

시신을 본 은비사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러자 케이가 옆 바디백의 천을 벗겼다.

이마에 관통상을 입지 않은 시체였다.

케이가 주머니에서 라텍스 장갑을 꺼내 손에 끼고는 시체의 왼쪽 목의 상처를 헤집으며 입을 열었다.

“자상이야. 단도 같은 짧은 칼로 급소가 찔렸어. 억 소리도 못하고 죽었을 거라고.”

그걸 본 은비사가 케이 옆으로 다가와 섰다.

그리고는 칼에 찔린 상처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은비사가 나직이 입을 열었다.

“칼이 아니야.”

케이가 의아해하며 쳐다보자 은비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김 탄과 함께 있었던 그놈은 분명 여섯 발만 장전되는 권총을 썼을 거야. 저격수를 죽일 땐 탄이 떨어졌겠지. 여분도 없었을 거야. 그건 스나이퍼를 죽일 때 총으로 죽이지 않았으니까. 이 상처는 던져서 생긴 상처야. 무기는 양쪽에 날이 서있고 일반 칼보다 두께가 있지.”

“칼이 아니면 뭐지?”

“수리검.”

“수리검?”

“그래. 수리검.”

비사가 품에서 수리검을 꺼내 케이 눈앞에 보였다.

그걸 본 케이의 눈은 호기심으로 가득찼다.

“허. 단도랑 비슷하다. 던지는 단도라. 이거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네.”

“정확히 급소만 노리고 암기에 능하다. 뭐 생각나는 거 없어?”

“설마 오운족?”

“불가침 조약을 맺었는데 그럴 리가 없잖아?”

“그렇지. 맞아. 조약을 깨면 다 죽게 될 텐데 그럴 리가 없지. 흠.”

말을 뱉고 난 케이의 입에서 얕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긴장이 풀렸던 탓인지 은비사에게 맞아서 난 상처가 욱신거렸기 때문이었다.

은비사에게 맞았던 걸 다시 되새긴 케이가 은비사의 눈치를 슬쩍 살폈다.

은비사는 깊은 생각을 하는 듯 죽은 추적자의 시신을 바라보기만 했다.

그의 눈빛은 이미 범인을 알아챘다는 눈빛이었고 그게 맞는지 재차 확인하는 듯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지금 케이는 수리검을 던진 범인이 오운족이 아닌 20년 전 멸족한 바룬족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었다.

두 세력 모두 암기에 능한 암살자로 이루어진 세력.

그가 혹시나 하는 생각에 은비사에게 물었다.

“혹시 나랑 같은 생각이야?”

역시 그와 생각이 같다는 듯 은비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바로 수긍하지 못하겠다.

케이는 이상하게 가슴 깊이 반작용처럼 부정의 마음이 솟구쳤다.

“그럴 리가 없잖아. 바룬족은 모두 멸족했는데.”

“아니, 어쩌면 우리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건지도 몰라. 멸족하지 않았어. 숨어 있었던 거야.”

“그럼 김탄을 도와준 그놈이 설마.. 바룬족이라는 거야?”

케이의 말에 은비사가 눈을 번뜩였다.

“그래. 그래야 이야기가 돼지.”

바룬의 개입이 확정되는 순간 케이는 눈앞이 아찔했다.

김탄을 다시 잡는 일은 미궁으로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또한 김탄을 놓친 책임은 전적으로 케이에게 있었다.

회피는 불가능.

만회할 확률 또한 0%.

그걸 모두 깨달은 케이는 표정이 더욱더 굳어졌다.

그와 마찬가지로 은비사 또한 표정이 굳어졌다.

모두 멸족한 바룬족이 살아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로 인해 그의 갈 길이 생각대로 순탄하지 않을 거라는 예감 때문이었다.

***

“뭐라고? 한 사람이었다고? 두 사람이 아니고?”

머리를 노랗게 염색한 단발머리의 한 30대 남자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옆의 남자에게 물었다.

질문을 받은 남자는 특유의 40대 답게 유독 배만 두드러지게 뽈록 나온 김정구였다.

그는 여기 양평 경찰서 정보과 경장이다.

“아 그렇다니까 글세.”

퉁명스럽게 말한 그가 만사 귀찮다는 듯 몸을 비틀고는 두 손을 뒤로 뻗어 지탱하며 몸을 뒤로 젖혔다.

그 모든 건 그의 불거져 나온 배 때문에 바른 자세로 앉아있기 곤란했던 것.

다짜고짜 사건이 터지자마자 찾아와 해대는 질문 공세에 그는 지금 짜증이 조금 나 있었다.

질문 대마왕인 듯 질문만 해대는 단발머리 남자는 직업이 기자인 조진우였다.

그의 타이틀은 양평지역신문 기자이자 경인일보 양평지사장이었다.

그래서 특유의 직업병을 가진 듯 질문이 많았던 것.

그는 또 오랜 직업 특성으로 가진 습관인 듯 눈알을 이리저리 사정없이 돌리며 의심의 의심의 또 의심의 꼬리를 무는 듯 머릿속으로 온갖 질문을 만들고 있었다.

김정구의 눈에는 그런 조진우가 무언가 석연치 않은 듯 혼란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러던 조진우가 갑자기 주변을 조심스럽게 둘러봤다.

누군가 사람이 있는 듯 없는 듯 살피는 모양새였다.

그들이 지금 앉아 있는 곳은 양평 경찰서 바로 옆에 마련된 야외 휴식처.

그 한가운데 커다란 나무 밑에 놓인 벤치였다.

김정구도 조진우를 따라 주변을 살펴 봤지만 그와 조진우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도 누가 보면 안 될 것처럼 조진우가 갑자기 김정구에게 몸을 바싹 붙였다.

그런 그의 행동에 김정구는 무언가 촉을 느꼈다.

“왜? 냄새나냐?”

“아니. 그냥 궁금해서.”

대충 둘러대는 듯 말을 얼버무린 조진우가 흘러내린 앞머리를 옆으로 쓸어 넘겼다.

그가 긴장할 때 나오는 버릇이다.

그걸 모를 리 없는 김정구는 뒤로 젖힌 몸을 앞으로 도로 세웠다.

그 또한 조진우의 행동에 긴장을 했던 것.

정보과 형사의 특유의 눈썰미를 작동하듯 김정구가 조진우를 넌지시 바라보며 살폈다.

그러자 조진우가 무언가 조급증이 난 듯 촐싹거리며 말을 뱉었다.

“그러니까 운석 현장을 지킨 경비원이 한 사람이었단 말이지? 형님! 자세히 좀 말해 봐.”

그럼 그렇지.

김정구의 감은 틀리지 않았다.

조진우는 그가 생각했던 대로 정보를 원했기에 여기에 있는 것이었다.

김정구는 인생 사는 동안 닳고 닳은 사람처럼 쉬운 사람은 아니라는 듯 조진우의 질문에 바로 답을 주지 않았다.

대신 한 손으로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한 개비 꺼내고는 입에 물었다.

그가 담배에 불을 붙이려고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찾는 순간 어디선가 라이터가 다가와 불을 켰다.

김정구가 눈을 슥 돌려 쳐다보니 담배를 피우지도 않는 조진우가 라이터에 불을 켠 것.

이건 명백히 아부성 짙은 몸짓이다.

그의 태도에 속 보인다는 듯 김정구가 지그시 쳐다보자 조진우가 능글맞게 씨익 미소를 지었다.

이것이 바로 구하는 자와 가지고 있는 자의 극명한 태도.

김정구는 가지고 있는 자답게 거만한 표정으로 담배 한 모금을 깊게 빨아 내쉬곤 내뱉었다.

아마도 구하기 어려운 건 쉬운 게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은 뉘앙스 같았다.

하지만 그의 거만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그는 친구이자 동생인 조진우에게 여지 없이 그 정보를 풀기 시작했다.

“오늘 개군산에서 발견된 시신은 운석 추락 현장을 경비하던 ** 경비용역업체 파견 근무자였어. 야간 경비를 2인 1조로 한 팀만 시켰던 같아. 하지만 같이 일하기로 한 경비원이 개인 사정으로 그날 근무를 제꼈다는 거야. 알리바이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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