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_또 다른 바탈 늑대

잠시만.. 잠깐!

지금까지 아무 생각 없이 이야기를 읽었겠지만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사촌 형이 떠넘긴 박월.

그런데 그 월이 박토에게는 삼촌이라 부르는 이상한 호칭 법.

관계를 따지자 보면 박월과 박토는 5촌 혈족이었다.

그렇다면 족보상 월은 박토에게 당질에 해당되고 박토는 월에게 당숙이 된다.

족보가 꼬였다.

이렇게 된 데에는 나름 이유가 있었다.

요즘 세상.

식당에 가도 이모, 삼촌, 누나, 언니라고 하는 시대에..

고리타분하게 족보를 따져 정확한 호칭으로 부르는 게 더 어색하다고 판단한 박토는 월이 말을 배울 무렵 박토를 삼촌으로 부르라고 가르쳤다.

이때 진짜 월의 할아버지가 -그러니까 박토에겐 작은아버지다 - 알고 노발대발했었다.

그때 박토가 위의 논리를 설파하며 21세기에 촌수를 따져 호칭을 부르는 건 촌스럽고 어렵다며 그냥 삼촌이라고 하자며 작은아버지를 설득했었다.

물론 뼈대 있는 양반집 가문이라 고지식한 작은아버지는 반대를 했었다.

하지만 월을 양육하는 사람은 박토였기에 박토의 뜻이 더 통했다.

[당숙이나 삼촌이나 다 엉클입니다.]

이 말에 박토의 작은 아버지가 백기를 들었다.

그래서 월은 말을 배울 때부터 박토를 당숙이 아닌 삼촌으로 부르게 된 것이었다.

아무튼 지금 월의 실질 양육자 박토의 입에서 깊은 회한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하이고, 내가 잘못 키운 거야. 그나저나 늑대가 수놈인지 암놈인지 궁금한데 다시 전화하면 지랄하겠지?”

생각해 볼 가치도 없었다.

월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일은 또띠 티비 방청이다.

박토는 궁금함을 꾹 참고 가방에서 쌍안경을 꺼냈다.

“색깔도 모르는데. 회색이지 갈색인지. 크기라도 알면 좋겠는데.. 다시 전화하면 지랄하겠지?“

당연 생각할 가치도 없었다.

박월은 당연히 지랄할 거다.

“쩝.”

박토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고는 시계를 보았다.

오후 5시 30분.

그가 고개를 돌려 먼산을 바라봤다.

해가 산 중턱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곧 해질 무렵이다.

그가 다시 고개를 돌려 신우 프로텍을 바라보았다.

-저 바탈이 퇴근할 때 납치하고 바로 수원역으로 가면 될 거 같다. 그나저나 저 사업장은 법정근로시간을 지키지 않는 사업장으로 보인다. 빨리 퇴근이라는 걸 해야 할 텐데..-

박토는 쌍안경을 눈으로 가져가 신우 프로텍 내부를 감시하며 김탄을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다시 주시하기 시작했다.

김탄이 빨리 퇴근하길 절실하게 바라면서..

드디어 해가 완전히 져 버렸다.

어둑해진 수원역 길가의 가로등이 불을 밝혔다.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인파 속으로 낯선 형태가 나타났다.

바로 월이 말한 늑대였다.

그런데 그 늑대는 일반적인 늑대가 아닌 조금 다른 형질의 늑대였다.

인형 탈 늑대.

바로 사람이 그 안에 들어가 있는 형태.

아무튼 이 만화 캐릭터 같은 늑대가 나타나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런데 이 고독해 보이는 늑대는 그런 사람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제 갈 길을 간다는 듯 인도를 걷기만 했다.

하지만 늑대의 바람과는 다르게 사람들은 그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다.

갑자기 등장한 중학생 한 무리가 겁도 없이 늑대에게 장난 삼아 몸을 툭툭 치며 깔깔거리며 웃어댔다.

아무래도 늑대인형 탈이 친근하고 귀여웠던 모양이다.

그러나 고독한 늑대는 생김새와는 다르게 포악한 성질을 지녔다.

그가 화가 났는지 프로모션용 목에 걸린 팻말을 빼어 들고 중학생들을 팻말로 사정없이 후려치기 시작했다.

예상과 다른 늑대의 반응에 화들짝 놀란 중학생들은 공포에 질린 듯 소리를 지르며 도망을 쳤다.

여기서 끝나야 하는데 고독하고 포악한 늑대는 집요하기까지 했다.

곧바로 그들의 뒤를 쫓는 늑대.

그 모습에 더 도망가는 중학생들.

그러나 불변의 법칙처럼 한 무리에서 꼭 나오게 되는 낙오자가 있다.

그 낙오자인 한 중학생은 다른 아이들보다 도망가는 속도가 느렸다.

결국 늑대의 제물이 되고 만 그 중학생은 늑대의 커다란 인형 발에 밟히기 시작했다.

푹신한 늑대 발이었지만 예상보다 아팠는지 잡힌 중학생이 늑대에게 싹싹 빌었다.

"잘못했어요. 이러면서.."

중학생 남자 아이가 반성을 하자 늑대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빨리 내 눈앞에서 꺼져. 내 맘이 바뀌기 전에' 이렇게 얘기하듯 손짓을 했다.

늑대 만의 수화를 알아 들은 듯 중학생은 벌떡 일어서 도망을 쳤고, 원래 그들의 무리 속으로 합류했다.

그런데 혼자일 때와 다수일 때 행동 양상이 다른 원숭이처럼, 어쨌거나 무리의 힘을 과장하는 듯 도망친 중학생이 혀를 내밀며 늑대에게 약을 올렸다.

고독하고 포악하고 집요한 늑대가 다시 그 중학생들을 향해 걸음을 옮기자 화들짝 놀란 중학생들은 재빠르게 인파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관심을 가장한 괴롭힘이 사라지자 늑대는 다시 본업으로 돌아왔다.

바로 늑대 카페 홍보 인형 탈 아르바이트였다.

그는 그 본업에 걸맞게 길거리를 다시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

<탱고 11. 늑대가 시야에 들어왔다.>

이 소리는 은비사의 추적자중 한 추적자인 알파 11의 목소리.

그가 그의 눈에 추적 대상인 늑대가 들어오자 은비사와 한 교신이었다.

이처럼 이미 수원역 근처엔 은비사의 늑대 사냥을 위한 추적자들이 곳곳에 숨어 있었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그들을 가려내기는 쉽지 않았다.

평범한 사람들로 위장한 그들은 그 누구도 모르게 신중하고 치밀하게 늑대를 감시하고 있었다.

그 감시망 속의 주인공인 늑대가 길가에 놓인 벤치에 가서 앉았다.

추적자 중 한 명이 교신했다.

<탱고 12. 사냥감. 포인트 A로 이동 중. >

늑대가 그대로 벤치에 드러누웠다.

그 늑대를 감시하던 또 다른 추적자가 교신을 했다.

<탱고 11. 사냥감이 예상된 행동 패턴을 보인다.>

추적자들의 이어폰으로 은비사의 음성이 들렸다.

<여기는 시에라. 사냥감에서 시선을 떼지 마라. 브라보. 포인트 C에서 대기하라!>

벤치에 대자로 누워있는 커다란 머리를 가진 4등신의 늑대는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절대 감기지 않는 늑대의 눈 속에 박힌 눈동자는 밝은 사파이어 빛을 띠고 있었다.

그리고 신경질적인 성격을 가졌다는 걸 보여주듯 미간은 많이 찌푸려져 있었다.

주둥이 밖으로 튀어나온 새빨간 혀는 이따금씩 부는 바람에 덜렁거렸다.

늑대가 누워 있는 벤치 주변으로 사람들이 지나갈 때면 큭큭 대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지나가는 행인 두 명중 한 명이 걸음을 멈추었다.

일행으로 보이는 남자의 어깨를 툭 치며 말을 걸었다.

“크크크. 야 저것 좀 봐.”

일행으로 보이는 남자가 늑대를 쳐다보며 비웃었다.

“어래? 이야. 참 편하게 돈 버는 구만. 나도 인형 탈 알바나 할까? 크크크”

“얼마 못 받는다고 하던데?”

“야. 편한 게 좋지 않냐? 저렇게 드러누워 있으면 누가 못 해. 그러니까 싸지. 크크”

두 행인이 지나가자 이번에는 한 아이가 늑대 앞으로 다가왔다.

아이는 늑대의 얼굴을 쳐다보며 호기심 가득하고 해맑은 표정으로 웃었다.

아이가 늑대의 얼굴을 고사리 같은 손으로 탁탁 거리며 치기 시작하자 그 모습을 스마트 폰으로 담고 있던 아이의 엄마가 다가와 말했다.

“이제. 가자.”

“시져.”

“왜? 빨리 가서 맛있는 거 먹자.”

“시져. 나 저거 태오 죠.”

“지지. 그럼 못 써. 늑대가 일어나서 때찌 할 거야.”

엄마의 말에 아이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그래도 아이의 엄마는 단호했다.

아이가 자기의 뜻이 관철되지 않자 얼굴이 벌게 지더니 갑자기 울며 떼를 쓰기 시작했다.

“아아앙. 태오 죠. 태오 죠. 나 늑대 타고 싶단 말야!!”

“아이, 참 안된다니까 글세…”

계속되는 떼쟁이 공격에 엄마는 난처했다.

아이 엄마가 늑대를 바라보았다.

죽은 듯이 자고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엄마가 늑대의 몸을 흔들었다.

꿈적도 하지 않자 다시 흔들며 깨웠다.

“저기요? 저기요? 잠시 일어나 보세요.”

아무리 흔들며 깨워도 늑대는 일어나지 않았고 여자의 아이는 계속 울어댔다.

짜증이 난 아이의 엄마가 한 마디 내뱉었다.

“돈 참 쉽게 버네. 칫.”

아이 엄마는 그대로 우는 아이를 들쳐 안고 총총 사라졌다.

아이와 엄마가 사라지자 미동도 안 하고 누워서 있던 늑대가 발 같은 손으로 허벅지를 벅벅 긁었다.

자는 척하고 있었던 것.

늑대가 똑바로 누운 게 불편했는지 옆으로 누워 자세를 고쳐 잡았다.

새빨간 혀가 바람에 더욱더 덜렁거렸다.

어디선가 전단지 한 장이 날아와 늑대의 얼굴에 훅 붙었다.

늑대가 전단지를 떼고 보았다.

피시방 전단지였다.

늑대는 전단지를 훅 구기더니 길가에 집어던지고 그대로 잠이 들었다.

***

“형 나 뽕 좀!”

“알았어. 조져!”

“아오. 씨. 저 새X..”

박토의 옆에서 들려오는 영식과 탄의 대화에 박토는 눈살을 찌푸렸다.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천박한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박토는 그들을 신경 쓰지만 신경 쓰지 않는 척 컴퓨터로 유튜버를 켜 또띠 TV를 검색했다.

바탈이 천박한 말을 하며 게임을 하는 것보다 더 궁금한 게 있었기 때문이다.

박토는 박월의 학부모이자 실질 양육자.

그는 지금 부모의 마음으로 월을 포함한 초등학생들이 보기만 하면 미쳐버리는 유튜버 방송 채널이 궁금했었다.

또띠 티비에 대한 검색 결과가 나오자 동영상을 클릭했다.

그가 슬라이드 바를 대충 넘기며 동영상을 대충 훑어보며 생각했다.

‘게임 방송 채널이군.’

순간 네모난 사각형에 눈 코 입이 달린 캐릭터를 보고 박토가 깜짝 놀라 화면을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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