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유는 없었다

순결의 성(性)이란, 애욕(愛慾)으로 표현될 때는 쾌락과 죄악의 상반된 이율배반적 요소를 포괄하고 있다. 적어도 사랑이란 의미를 포함하고 있을 때, 순결이란 의미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을 테고, 첫 관계가 그 타당성을 갖고 시작됐다면, 오랫동안 성에 대한 원죄까지 싸잡아 자신을 옭아매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나의 성 정체성은 고평오에게 성폭행당한 이후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끈적거리는 이물질이 피와 섞여 아랫도리에서 흘러내렸다. 고평오가 내 몸에서 떨어져 나갔어도, 나는 꼼짝할 수가 없었다. 저 혼자 어슬렁거리며 길을 나던 고평오가 다시 돌아와 나를 일으켜 세웠다. 찢겨나간 치마를 여며주며 외투를 입혀주며 말을 걸어왔다.

“나에게 시집오면 되잖아!”

고평오는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비웃음이 입가에 고였다.

내 나이 겨우 열여섯 살이었다. 엄청난 일을 견뎌 낼 수 있는 그런 나이가 아니었다. 결혼이란 말조차 낯설었다. 모든 게 끝이란 생각뿐이었다. 천천히 마을을 향해 걸었다. 동네 입구에 도착하자, 고평오는 내 어깨를 잡고 있던 팔을 풀더니 오던 길을 되돌아갔다. 나는 양철 대문을 밀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살갗은 이미 얼어붙어 검푸르게 변해있었고, 두 뺨은 부어올라 일그러져 있었다. 엄마를 불렀다. 그러나 목소리가 입안에서 흩어졌다.

방문을 열자, 엄마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곧 얼굴이 사색이 됐다. 처음에는 사태 파악이 안 되는 듯 한동안 나를 멍하니 쳐다볼 뿐이었다.

얼마를 그렇게 버티고 서 있던 나는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엄마는 누군가에게 성폭행당했음을 직감적으로 알아챘다.

은총이 가득한 마리아처럼 엄마도 피눈물을 흘렸을까? 은은한 종소리가 하늘 가득 퍼지고, 아기 예수의 탄생을 알리는 찬송가가 울려 퍼질 때, 나는 자멸할 것 같은 수치심으로 몸을 떨고 있었다.

내가 눈을 떴을 땐 새벽녘이었다. 엄마는 내 몸을 깨끗한 수건으로 닦아내고 새 옷으로 갈아입혔다. 고평오의 정액과 처녀막의 혈흔도 닦아냈다. 젖가슴은 고평오의 이빨에 뜯겨 피멍이 들어 있었다. 소변을 보는 일조차 힘들 정도로 성기가 따가웠다.

“소문이라도 나면 더 큰 일이다. 그냥 조용히 있자.”

엄마가 내게 말한 첫마디였다. 몹시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처음 고평오가 성당 창고에서 손가락으로 내 몸을 더듬었을 때의 일부터 논바닥에서의 치욕을 당했던 일까지 엄마한테 모두 털어놨는데도 엄마의 얼굴은 담담했다.

“아비 없는 죄다. 어미가 못나 생긴 죄다.”

나는 말없이 돌아누워 흐느껴 울었다.

성탄의 아침은 간밤에 내린 눈으로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해있었다. 밤새 정적이 감돌았던 집이 서서히 빛이 스며들었다. 그 여명으로 낡은 가구와 허드레 물건들이 뽀얀 하게 드러났다. 엄마는 묵주기도를 하고 있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 묵주를 빼앗아 바닥에 내팽개쳤다.

“지언아! 뭣 하는 짓이야.”

“엄마! 신은 없어! 아무것도 없었다고?. 내가 고평오에게 당하고 있을 때 신은 존재하지 않았어. 아무런 기적도 일어나지 않았단 말이야!”

나는 곧 탈진했다. 그런데도 엄마는 묵주를 집어 들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잠이 들면 악몽은 꾸었고, 몸은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희미하게나마 의식을 되찾았던 어느 날이었다. 요셉 신부의 얼굴이 보였다.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기도를 하는 사람은 분명 요셉 신부였다. 나는 고개를 거칠게 흔들었다.

“예수그리스도의 사랑만이 상처받은 비아의 영혼을 구해낼 수 있어.”

요셉 신부의 음성이 가물거리는 의식 속에서도 들려왔다.

“신부님만 믿습니다. 저 혼자로는 감당하기 힘들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고 씨네와 연관된 일이고 보니 신부님만이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그리고 남편 문제도 있고 해서….”

엄마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고 있었다. 요셉 신부와 엄마의 대화를 듣는 동안 내 귓가에도 다시 싸하고 절망의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요셉 신부에게 도움을 청하는 엄마가 미웠다. 모든 사실을 요셉 신부가 알아버렸으니, 그 수치심에 의식의 끈을 놓아버리고 싶었다. 그 엄청난 일을 요셉 신부에게 고백한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소문이 퍼지면 모든 사람이 나를 추한 벌레라도 바라보듯 할 것이고. 동네 사람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요셉 신부가 앞으로 나를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싶어, 절망의 끝이 보였다.

나는 모멸감에 손가락을 물어뜯었다. 요셉 신부는 꼼짝도 하지 않는 날 내려다보며 기도를 시작했다. 그 곁에 앉아있던 엄마도 기도에 동참했다. 길고 끔찍한 기도, 그건 고문이었다.

“비오니, 사랑하는 자녀를 은총으로 보호하시어 세상 부패에 물들지 말게 하시고, 악의 온갖 유혹을 물리쳐 주의 외아들 예수를 모범 삼게 하소서. 이 세상에서 주의 뜻을 이루는 일꾼이 되어, 후세에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찬미하는 자녀의 영광을 받게 하소서.”

나는 요셉 신부와 엄마의 기도에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무녀를 찾아가 씻김굿을 하는 대신 요셉 신부가 찾아와 기도하거나 약을 놓고 갔다.

열흘 만에 자리를 털고 거울을 보았을 때였다. 너무도 낯선 내 얼굴을 보고 그만 소스라치게 놀랐다. 거울 속의 나는 이미 내가 아니었다. 시퍼런 멍 자국과 앙상한 얼굴은 죽음을 앞둔 사람의 모습이었다. 나는 철저하게 무너지고 있었다. 몇 시간을 눈이 통통 붓도록 울었다. 눈도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고 씨와 그의 아내가 찾아왔다. 내가 고평오에게 성폭행당해 누워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그들은 의심스러운 눈으로 날 내려다봤다. 나는 미친 듯이 울었다. 그러자 그들은 조소로 가득한 눈빛을 띠었다.

얼굴에 난 상처와 퍼런 멍 자국이 심해 바깥출입을 하지 못할 만큼 흉측스러운 내 모습을 천천히 훑어보던 그들은 엷은 미소를 지었다.

“지언이 엄마한테 뭐라고 참회의 말을 전달하겠어요. 철없는 평오가 술김에 저지른 죄이니까, 대가를 치르겠어요. 하지만 지언이도 잘못이 있지 않겠어요? 평소 어떻게 행동했기에 그렇게 착한 평오가 술기운을 빌어 그런 짓을 저질렀겠어요?”

“그럼, 우리 애가 옳지 못한 행동을 했단 말이에요? 그날도 자정미사를 마치고 오느라 늦었지, 잘 나가는 아이는 아닙니다. 어릴 때부터 평오에게 괴롭힘을 당한 걸 생각하면….”

“그럼 고소라도 하시겠단 말이세요? 할 테면 해 보세요. 지언이 앞날이 불 보듯 뻔해질 게 아니겠어요?”

“무슨 말을 그렇게 하세요. 아무리 딸 가진 부모가 죄인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함부로 말하는 게 아닙니다.”

“지언이 엄마! 너무 화내지 마세요. ”

고 씨 인상을 찌푸리며 아내를 향해 버럭 고함쳤다.

“소문이 나면 서로 처지가 난처해집니다. 약소하지만 얼마간의 치료비를 가져왔습니다. 병원 가서 진찰해보시고 부족하면 말씀하세요. 아직 나이들이 어려 철없이 저리를 행동이라서. 지언이 아버지가 어디 보통 병을 앓고 계셨습니까? 좌우지간 이런 일이 터졌다고 해서 선뜻 법으로 결정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저의들 상황을 이해하시리라 믿고 그만 갑니다. 서로 감정만 상하게 될 것 같습니다. 평오는 당분간 서울 이모 집으로 올려보냈습니다. 다시는 지언이를 괴롭히지 못하도록 엄하게 훈육하겠습니다. 당분간 시골엔 내려오지 못하게 못 박아 놓았습니다. 서로 조용히 입단속을 하면서 세월이 가길 기다립시다. 그 방법이 젊은 애들 앞길을 열어 주는 그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면 지언이도 거뜬히 일어나 새 삶을 찾아갈 수 있을 거구요. 그럼 몸조리 잘 시키세요.”

그들이 흰 봉투를 방바닥에 놓고 나가버렸다. 그토록 떳떳할 수 있다는데 몹시 화가 났다. 아무리 약자라지만, 밑바닥 사람으로 보는 불손한 태도였다. 제대로 항의도 못 한 엄마의 태도와 그리고 약값 몇 푼조차 거절할 수 없었던 가난 앞에 나와 엄마는 목 놓아 울었다.

그런데 내가 모르는 그 무엇이 있었다. 몇 푼 던져주고 가는 고 씨 행동에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는 엄마의 어정쩡한 행동에서 석연치 않은 게 느껴졌다. 아버지가 무슨 병을 앓았기에 그 한마디에 어머니는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인 채 더는 따지지 못한 것에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몸이 회복되어 가는데도, 점점 자제력을 잃어갔다. 아버지가 왜 우리 곁을 떠났는지를 재차 물어도 엄마는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그 사건 이후로 집에서 내몰려진 느낌이 들었다.

나는 밤마다 환청에 시달렸고, 집에 혼자 있는 것조차 두려웠다. 눈을 감으면 고평오가 달려들던 장면이 떠올랐다. 아무리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그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귀를 틀어막으면 막을수록 거친 숨소리와 논바닥이 쿵쿵거렸던 그 소리가 들려왔다.

방광에 소량의 액체만 고여도 참지 못하는 증상에 시달렸다. 결벽증도 나타났다. 하루에 몇 번씩 차가운 얼음물로 뒷물을 했다. 내 행동이 불안했던지 엄마는 그림 공부를 시작하라고 했다. 그날로 읍내에 있던 화실로 나를 데려가 수강 신청까지 했다. 엄마의 선택은 빗나가지 않았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이상한 행동들이 줄어든 건 사실이었다. 나는 미친 듯이 그림에 매달렸다. 학교 가는 시간을 빼고 대부분의 생활을 그림을 그렸다. 목탄이라도 잡고 있어야 안심이 되었다. 그건 공허감을 채우려는 집착에 가까운 행동일 뿐, 정말 그림이 좋아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그때는 그랬다. 아파하는 나를 잊고 싶었다. 전혀 다른 공간, 그 안으로 스스로 밀어 넣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위안이 되었기에, 먹지 않고 잠을 자지 않아도 그림을 그렸다.

처음부터 서양화를 그릴 생각은 아니었다. 한국화나 조각을 전공한 선생님이 없어 서양화를 배웠을 뿐이었다. 작은 소읍이라서 그림을 배운다는 게 쉽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날마다 달팽이 집을 지었던 것 같다. 드러낼 수 없는 상처를 몸 안으로 삭여야 하는 아픔을 끌어 앉은 채 두꺼운 껍질 안으로 파고들었다.

아그리파, 줄리앙, 청년 부르터서, 비너스를 바라보며 굴속처럼 컴컴한 달팽이 집에서 좀처럼 나오려 들지 않았다. 무엇이 그토록 그림에 빠져들게 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석고상들을 하나하나 떠낼 때마다 고평오의 얼굴을 하나씩 지워졌다.

요셉 신부가 그런 나를 걱정해 위로라도 하는 날이 많아졌다. 엄마의 고백성사를 통해 알게 된 내용일 수 있었다. 그런 생각이 든 탓인지 수치심이 들어 반항했다. 심지어 학교를 결석하고 화실 구석에서 온종일 그림만 그렸다. 감정이 기폭이 심해졌다. 그런 나를 지켜보던 엄마는 묵주기도를 올리며 위안으로 삼는 듯했다. 나는 기회만 되면 전재미 마을을 떠날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림 출처-장세현 작가

 

착각의 시간이었다

이곳까지 원고를 읽자, 이지언이 얼마나 힘든 생활을 해왔는지 알게 됐다. 나는 그녀에게 메일을 보냈다.

“글을 읽기 시작했어요. 가슴이 아픕니다.”

간단하게 보냈다. 어찌 됐든 내가 이지언의 글에 많은 관심으로 읽고 있음을 알려주고 싶었다. 과찬의 말은 인용하지 않았다. 자칫 삼류 소설로 전락할지도 모른다는 염려였다.

그날 밤이었다. 잠결에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다. 서늘한 기운마저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깜짝 놀라 눈을 떴다. 그런데 컴퓨터 모니터가 켜져 있었다. 분명 잠들기 전에 컴퓨터가 꺼져 있다는 것을 확인했는데, 그런 일이 벌어지다니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어떻게 저절로 컴퓨터가 켜진 채로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잠시 잠깐 키보드 자판을 누군가 두드리는 소리도 들었다.

컴퓨터는 커서가 깜박이다가 흔들거릴 뿐, 사람의 흔적이 없었다. 컴퓨터와 연결된 코드를 뽑아버리고 자리에 누웠다.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집안에 나 이외의 또 다른 존재가 머물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온몸에 소름이 돋아났다.

어느 틈에 이지언의 원고는 나와 한 몸이 됐다. 신들린 사람처럼 붉은 기운이 얼굴 가득했고, 가슴에서는 쏴 하고 바람이 거친 바람이 불어댔다. 갑자기 혜원 선배의 말이 생각났다.

‘거미 인간 아난시가 나타날 때마다 거친 바람 소리가 난다고. 얼굴엔 신열이 돋기도 한다고.’

내 손을 가슴에 댔다. 가슴이 쿵쿵댔다.

“쏴, 쏴.”

거친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이지언의 원고는 현재 상황을 말하는 듯 제3장이란 목록으로 기록이 되어 있었다.

예전엔 좁았던 비포장 길이었는데, 4차선 도로로 확장해 뚫려 있었다. 택시는 쏜살같이 내달렸다. 낯익은 이정표가 휙 스치고 지나갔다. 도로공사의 후유증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산허리가 잘리고 아름드리나무들이 밑둥치까지 베어져 황폐해져 있었다.

“너무나 많이 변했어요. 그땐 구불구불한 산길이 산자락 아래까지 이어졌어요.”

“옛날이야기를 하시는군요. 벌써 5년 전에 4차선 포장이 다 되었어요. 곧 목적지에 도착할 텐데 어디쯤에서 내리실 건가요?”

“금강변을 따라가다가…….그때 말할게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택시 기사는 구겨진 남자에게 도착지를 물어봤다.

“아저씨는 어디까지 모셔야 하는지….”

“가다가 식당이라도 있으면 내려 주시오.”

“아, 벌써 점심시간이군요.”

택시 기사의 말이 떨어지자, 몹시 배가 고파졌다. 군데군데 단풍나무들이 마지막 열기를 품고 있었다. 생명의 잔해, 가을의 전령사가 곳곳에 똬리를 틀고 있었다. 이파리마다 생명력을 잃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는 모습이 너무도 안쓰러웠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을이 되면 저 밑바닥에 깔린 낙엽이 되어 메말라버린 감정을 퍼 올리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던가 보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나는 어둠 속에 갇혀 온종일 테레빈유가 린시드 냄새를 맡으면서 힘들어했다. 복제품을 그렸던 건, 언젠가 내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희망에서였다. 그러나 착각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복제는 창작이 아니었다. 복제된 그림에는 예술이 없었다. 마치 인간 복제처럼 존엄성의 결핍이었다. 극히 절제된 기술적 습득만 남아 있었다. 대량생산이 얼마든지 가능했기에 희귀성도 존재하지 않았다. 복제품에는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작가의 영혼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어느새 내가 누군가의 복제품이 되어 있었다.

텔레비전이나 잡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자 모델들과 닮은 얼굴을 하기 위해 성형을 시작했다. 비슷한 화장술과 비슷한 유행을 좇아가는 패션을 줄곧 따라 했다. 내게는 영혼이 존재하지 않아만 했다. 그저 남들과 다름없는 길을 가고 싶어질 따름이었고. 그래야만 안심이 됐다. 조금이라도 보편적인 것들에서 이탈이라도 할라치면, 소외와 따돌림을 당할까 봐 몹시 두려워했다. 자신만의 감정을 표출은 따가운 시선을 받는 부담감이 뒤따른다고 여겼다. 그래서 나는 그 어떤 색깔을 소유하지 못한 채 숨어서 지냈다. 어쩌면 인생이란 바다 위를 표류하고 있었다는 게 확실했다.

“아! 저기예요. 산모퉁이만 돌면 작은 오솔길이 보일 겁니다. 바로 그곳에 인삼 매운탕을 잘하는 집이 있습니다.”

기사는 매운탕 식당을 자랑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곳에 웬 음식점이 이렇게 많이 생겼죠? 오래전엔 한적했어요.”

“경치가 좋아서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음식점과 모텔이 들어섰어요. 주말이면 도로가 주차장이 될 정도입니다.”

강가에는 낚시꾼들이 파라솔을 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낯익은 오솔길에 이르자, 나는 택시 기사에게 세워달라고 말했다. 구겨진 양복이 가방을 들고 차에서 내리는 나를 흘끔 쳐다보더니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렸다. 하마터면 가벼운 인사라도 나눌 뻔했다. 그가 고개를 돌리는 바람에 머물렀던 눈길이 무색해져 차 문을 세게 닫았다.

택시가 떠나자, 찻길 건너에 있는 작은 슈퍼에 들러 술과 과자를 샀다. 도로를 가로질러 산길로 접어들었다. 그 오솔길은 그대로였다. 그동안의 세월이 얼마인가. 여전히 이 길로 사람들이 지나다녔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엄마와 동생이 묻힌 곳을 찾는 데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더군다나 봉분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누군가 묘지를 관리하고 있었다. 누구일까. 묘지를 관리해준 사람이…. 혹시 요셉 신부가 사람을 사서 묘 관리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자 머리끝이 쭈뼛해졌다. 엄마의 묘는 10년이 넘도록 찾지 않았다. 이곳 방향으로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외면했다. 당연히 묘지엔 잡초가 무성하고, 봉분마저 홍수에 휩쓸러 갔을지도 모른다고 여겼다.

그곳 지형은 국유지라서 빈민가 사람들이 죽으면 소문내지 않고 슬쩍 묘를 쓰는 공동묘지였다. 엄마와 어린 동생도 딱히 쓸 자리가 없어 순철이 아버지의 도움으로 이곳에다 묘를 썼다. 엄마와 어린 동생의 죽음을 통해 나는 삶의 가치를 어디에다 기준을 둘지 몰랐다. 한없이 나약하고 가벼워 보이는 삶들이 우습게 느껴졌다. 정도의 차이겠지만, 삶이란 때때로 인간들을 농락하고 있다는 생각을 저버릴 수가 없었다. 그랬었기에 진지한 삶이라고 말하는 것들이 우습게 느껴졌다. 무슨 일이든 찰나가 중요하지, 과정과 결과는 중요의 가치를 두고 따질 수도 없다고 여겼다. 그 찰나, 운명을 비껴갈 수 있으면, 모든 일을 여유 만만하게 객기까지 부리며 살아갈 수 있다고 보았다. 사람 나름이겠으나, 자신의 처해있는 상황이 어지럽고 복잡하면 대부분 사람은 운명이란 말로 복잡한 관계를 설명하려 들었다. 불에 타 죽을 운명, 물에 빠져 죽을 운명, 또는 객사할 운명이라는 둥,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일에 관련해서 타당한 이유를 만들려고 무진 애를 썼다. 운명이란 말로 마무리를 지으려는 사람들 틈에 끼어 조용히 사는 방법을 터득했던 것.

이경

1997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오라의 땅’으로 등단

2002년 동서문학상 단편소설 대상 당선 ‘청수동이의 꿈’

2022년 직지소설문학상 중편소설 최우수상 수상 ‘달루에 걸린 직지’

*저서: 장편소설 『는개』, 『탈의 꽃』, 단편소설집 『도깨비바늘』, 『아름다운 독』 에세이집『아난다가보내온 꽃씨』 출간

*메일 imk08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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