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_ 깨져버린 우정

반장은 지금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보고도 믿기지가 않았다.

그 사실에 입까지 다물지 못했다.

똑같은 작업을 하고 있는 김탄과 마영식의 결과물이 너무 달랐기 때문이었다.

김탄의 결과물에 비해 마영식의 결과물이 더 많았던 상황.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자 반장은 영식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품질이 떨어지겠지.”

반장이 곧장 영식이쪽으로 가 그가 생산해 낸 부품들을 마구 집어 들고 자세히 살펴보자마자 믿을 수 없다는 듯 표정이 굳어졌다.

이유는 너무 완벽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식이면 불량률이 제로에 가까울 것 같았다.

기적이 일어났기에 반장은 깜짝 놀라 마영식을 쳐다봤다.

마영식은 상당히 집중하고 있었고 손놀림은 정확하고 빨랐다.

저런 식으로 공부를 했다면 하버드 감이었고, 만약 축구를 했다면 프리미어리그 감이었다.

‘이 녀석 정신 차린 건가?’

비정상의 정상화에 정신이 혼미해진 반장이 정상의 비정화를 보여주는 김탄을 쳐다보았다.

무언가 불안하고 불편해 보였고 손놀림은 엉성하고 느릿느릿했다.

그 옆으로 쌓여 있는 볼품없는 작업물량이 보였다.

겨우 마영식이 생산한 양의 반도 안 되는 초라한 물량.

그 결과를 믿을 수 없었던 반장이 너무 이상해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이자 순간 그를 눈치 챘는지 김탄이 돌아보았다.

반장은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나왔다.

하지만 어색했던지 김탄이 눈치를 봤다.

사랑하는 김탄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싶은 반장은 대수롭지 않은 듯 계속 일에 집중하라며 손짓을 했다.

알아 들은 김탄은 의기소침한 얼굴로 다시 작업에 열중했다.

반장은 어찌 된 영문인지 너무 궁금해 김탄에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옆에 마영식이 없었다면 물어봤을지도.

그가 다른 생산 라인으로 가는 중 코피가 보이자 옳다구나 라며 다짜고짜 물었다.

“오늘 탄이 무슨 일 있었나? 코피야.”

“싸웠나 봐요.”

“뭐? 누구랑.”

“영식이랑요.”

“아니, 왜?”

“모르죠. 매일 투덕거리잖아요.”

“그래도 오늘은 뭐가 다르잖아.”

코피가 갑자기 깜짝 놀라 되물었다.

“못 보셨어요?”

“뭘?”

“아.. 아니에요. 시간 지나면 풀어지겠죠.”

반장은 다시 김탄과 마영식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저 둘이 저렇게 다른 걸까?' 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알 길이 없었다.

한편 김탄은 지금 이 상황이 또 이 공간이 불편하고 또 불편했다.

하필이면 오늘부터 왜 같은 생산 라인에 투입됐는지 너무 좋아하는 반장님마저 원망스러웠다.

멀리 떨어져 있었으면 무시하고 작업을 할 텐데 옆에서 같이 하려니 불편했다.

아침 출근길에 마영식을 때려눕힌 사건 때문에 마영식은 지금 화가 잔뜩 나 있다는 건, 그가 지금 내뿜는 오라에서 다 느낄 수 있었다.

김탄이 곁눈질로 힐끔힐끔 마영식을 쳐다보았다.

정말 싸늘하고 차가운 기운으로 똘똘 뭉쳐 있는 게 느껴졌다.

‘어우 씨. 되게 화났나 보네.’

김탄은 심란한 마음 때문에 도저히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에라 모르겠다.

잠시 작업을 멈추고 영식을 쳐다보았다.

곁눈으로 다 보일 텐데..

무시하고 있었다.

평상시 같으면 이런 상황에서 탄에게 웃으며 윙크를 날리는 영식이었지만 오늘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저기… 영식이 형. 미안해..”

“됐어. 너랑 할 말 없어.”

역시 돌아온 영식의 대답은 화가 난 만큼 싸늘했다.

차라리 남인 게 나을 정도의 차가움, 게다가 분노의 기운마저도 느껴졌다.

마음의 문이 완전히 닫힌 영식이었다.

그럼 풀어야 한다.

그래서 김탄이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다.

“어휴~ 형은.. 남자끼리 실수로 그럴 수도 있지… 그런 걸로 삐지냐?”

애교는 역효과였다.

영식이 갑자기 하던 작업을 멈추고는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분노로 끓어오른다는 듯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마치 스타워즈 제다이들이 전투 전 포스를 끌어올리는 상태처럼.

단칼에 일기토를 끝내기 전 기력을 모으는 무사같이.

김탄은 애교를 부린다는 게 그만 영식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걸 알아챘다.

마영식에게 멋진 남자라는 사실을 상기하며 김탄에게 맞은 사실이 아무것도 아닌 쿨한 일로 돌려버리려 했던 계략.

그러니까 자신의 잘못을 무마시키려 했던 영악한 계획이 틀어지자 김탄은 그대로 몸이 굳어버렸다.

김탄의 예상대로 영식이 딱 일합 만으로 적장의 목을 벨 기세 같은 동작으로 몸을 홱 돌린 후 살벌하게 소리쳤다.

“뭐 이 새X야? 네가 지금 이걸 보고도 그 주둥이에서 그런 소리가 나오냐?”

영식의 말은 그대로 탄의 교활한 마음을 내리쳐 버렸다.

자신의 잘못을 남자끼리의 실수로 치부하며 벗어나려고 했던 치졸한 탄의 마음이었다.

순간 부끄러워진 김탄은 참회의 마음으로 말없이 마영식을 바라보았다.

이걸 어쩌나.

마영식의 눈의 멍은 처음보다 더욱더 커져 있었다.

이제는 새빨갛다 못해 검푸르기까지 했고 눈이라고 부르는 형체는 시간이 지날수록 퉁퉁 부어 눈인지 벌에 쏘인 입술인지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부풀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김탄의 마음은 미안함으로 가득찼다.

“나.. 나도 그렇게 될 줄 몰랐어. 그냥 살짝 한 대 친 건데.. 어떻게 그런 몰골로 변할 수가 있지? 이해가 가질 않아. 형.”

“뭐 이 새꺄? 살짝 친 거라고? 이게?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김탄은 또 말실수를 해버렸다.

화를 풀라고 한 말에 영식은 불같이 화를 내고 있자 더욱더 미안한 마음에 다시 사과를 했다.

“미.. 미안해. 영식이 형.”

“응. 거절. 이러고도 네가 내 절친이라고 할 수 있냐?!! 우리 이제 친구 아니다. 꺼져! ”

김탄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겨우 이딴 일로?

“절교야?”

김탄이 묻자 영식이 냉정하게 선언했다.

“응. 절교야.”

탄은 순간 울컥했다.

영식이를 보호하기 위해 술집에서 같이 있었던 일도 탑 시크릿으로 설정했다.

그리고 혼자 도망칠 수도 있었지만 기절한 영식이를 버리지 않기 위해 또 배신자가 되지 않기 위해 튀지 않고 경찰서에 순순히 죗값을 받았다.

끌려간 경찰서에선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히는 색다른 경험도 했었다.

그런데..

이런 사소한 실수에 저렇게 가볍게 절교를 마영식이 선언하는 순간 김탄은 그가 미워졌다.

‘내 마음을 몰라주네 진짜. 너무해. 영식이 형.’

김탄은 미운 마음과 함께 억울함도 밀려왔다.

김탄은 정말 마영식을 일부러 때린 게 아니었다.

아침 출근길에 화가 난 척했지만 장난으로 끝낼 생각으로 마영식을 쫓았던 것이었고, 주먹도 정말 장난으로 날린 게 맞았다.

하지만 그의 순수하고 순결한 장난은 저주받은 손 때문에 처참한 결과가 나왔던 것.

-손이 저절로 그런 걸 어쩌라고?-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했다.

그건 그렇다 치고 김탄도 그런 마영식에게 화가 나기 시작했다.

이유는 바로 이것.

-우리가 이 정도로 이렇게 가벼운 관계였다니..-

김탄의 얼굴이 변하기 시작했다.

그래?

우리가 이렇게 가벼운 관계였다면 나도 미련 없이 끝내 줄게라는 비열함으로 가득 찬 표정으로 말이다.

그 표정에 어울리게 김탄의 한쪽 입 꼬리가 쭉 위로 올라갔다.

그가 그 비웃음을 가득 담은 얼굴로 소리쳤다.

“뭐? 절친? 절친 좋아하네! 내게 절친이라고 말하는 형은 왜 날 혼자만 두고 도망 간 건데?! 어제 내가 얼마나 무서웠는 줄 알아?!”

탄의 공격에 순간 마영식의 마음이 뜨끔해졌다.

맛없는 집 사건에서 도망친 게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당황한 영식이 에둘러댔다.

“대신 반장님께 전화를 했잖아.”

“배신자.”

“배신자.”

“배신자.”

탄의 입에서 배신자라는 말이 흘러 나올 때마다 영식의 가슴은 철컹철컹 내려앉았다.

의리가 인생의 모토인 마영식에게 배신자라는 말은 복어 독인 테트로도톡신 보다 더 치명적인 말이었다.

마영식이 그 말을 들었다는 건 수치 그 자체!

하지만 김탄은 계속 마영식에게 배신자라는 소리를 퍼부었다.

쏟아지는 저주 같은 소리를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마영식이 소리쳤다.

“그만!”

마영식이 마음에 상처를 받았다는 사실을 안 김탄의 얼굴은 더욱더 비열해졌다.

헤어질 거면 그냥 못 보네!

그냥 너만 죽어버려!

마치 그런 삼류 치정극에서나 볼 듯한 그런 표정이었다.

김탄의 찢어져 있는 눈은 더욱더 찢어졌고 살짝 올라간 한 쪽 입 꼬리는 더욱더 올라가 있었다.

그 사이로 보이는 새하얀 치아가 그 비열한 표정을 더욱더 돋보이게 했다.

‘뭐야? 저 X끼. 저런 표정도 지을 줄 알아?’

그런 모습을 처음 본 마영식은 김탄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착하고 순한 김탄의 비열한 모습에 잠시 당황한 마영식은 김탄이 경찰서로 끌려간 것과 배상금에 관한 문제 때문에 그가 애를 먹었기 때문에 자신을 원망하고 있기 때문에 저러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폭행을 한 건 또 술집의 기물을 파손한 건 마영식이 아닌 김탄이었다.

물론 그 사건의 시발점은 마영식이었지만..

책임은 없다.

‘그래서 세게 때린 거였어. 나 때문이라고 생각한 거야. 치사하다. 김탄.’

이렇게 생각한 영식도 덩달아 마음이 상했다.

“야 이 새X야. 내가 도망을 친 건 사실이지만 배신자는 아니야. 대신 반장님께 도움을 구했으니까. 그리고 더 이상 내게 배신자란 소리는 하지 말아 줘. 네가 실수했다는 거 인정할 게. 하지만 용서할 수는 없어.”

“뭔데 절교를 선언할 정도지? 내가 동생이라서? 동생한테 맞은 자존심 때문에 이러는 거야?”

이유가 정확했다.

영식은 맞아서 아팠던 것보다 동생한테 얻어맞은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에 화가 났던 것.

그것도 여자 친구 순정이 앞에서.

하지만 마영식은 사실대로 말하지 않고

“아니, 내 매력을 없앤 자존심 때문이야.”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뭐라고? 그게 무슨 말이야! 장난해. 지금.”

“이 꼴을 봐! 나의 핸섬한 얼굴이 엉망이 됐잖아. 절대 용서 못해. 어쨌든 넌 나의 치명적인 매력을 밟아 버린 거야!

앞으론 형이라고도 부르지 마라. 김탄.”

영식은 더 이상 김탄과 상종하기 싫다는 듯 그대로 몸을 돌려 다시 일을 하기 시작했다.

냉정한 그의 모습을 보고 있던 탄은 생각했다.

‘훗, 의리보단 여자였어.’

탄은 그런 마영식에게 실망했다.

정말 많이 실망했다는 듯 그의 입에서 말이 흘러나왔다.

“그래? 알았다. 영식아. 이제부턴 형이 아니고 이름으로 불러줄게.”

그런데 영식이 작업을 멈췄다.

그대로 몸을 돌려 탄을 바라보았다.

‘저 C 위아래도 없는 놈이..’

저작권자 © 불교공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