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_ 시작되는 음모

“워~ 화내자 마. 순정아. 오빠가 좀 무리하긴 했지만 그 새X들 마지막엔 잘못했다고 싹싹 빌었어. 내가 무서웠나 봐. 오빠가 좀 화끈하지. 훗~”

뻥이었다.

과장과 조작이 잔뜩 들어간 영식이의 무용담.

하지만 현장 목격을 하지 못한 고순정은 영식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그래서 고순정의 눈이 만화 캐릭터 짱구 눈이 되었다.

짱구 눈처럼 초롱초롱 반짝반짝한 그녀가 엄철 설레어 죽겠다는 듯 두 손으로 영식의 가슴을 두드리며 자발스럽게 웃었다.

“호호호 호. 어머! 정말? 역시 우리 여보 박력 넘쳐.”

“밤에도 넘치지.”

“어머! 자기야. 왜 이래. 부끄럽게..”

고순정은 마영식의 응큼한 농담에 화들짝 놀라 부끄러운 척을 했지만 그냥 내숭이었다.

남자의 마음을 잘 아는 천생 여자인 고순정은 천생 이처럼 부끄러운 척을 잘했다.

남자 마음을 흔들 줄 아는 여자 여자 천생 여자 고순정.

그런 그녀를 보기만 해도 마음이 사정 없이 흔들리고 마는 마영식은 한껏 고무되어 있었다.

그녀에게 또 한 번의 어필을 위해, 또 한 번 더 자신의 과거를 조작해 만들어 냈다.

“아 참! 내가 아직 얘기 안 해 줬던가?”

“어떤 거?”

“이 오빠가 말야. 고등학교 때 짱 먹었던 거..”

“어머! 정말! 우리 오빠 그때부터 남달랐구나! 역시.”

고순정은 까르르르 웃으며 마영식에게 멋있다는 말을 연발했고, 영식은 그런 순정이를 보며 자신이 진짜 멋있는 줄 알고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를 않았다.

“영식이 형!!”

뒤에서 화가 난 듯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마영식이 뒤를 홱 돌아보았다.

돌아보자마자 마영식의 간이 툭 떨어졌다.

이유는 김탄이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먹다 말고 뛰쳐나온 모양인지 볼이 불룩했고 손에는 그걸 증명하듯 먹다 만 햄버거와 우유가 들려 있었다.

아, 맞다. 김탄 여기 편의점서 맨날 아침 먹지?

영식은 다친 다리 때문에 바이크 대신 지하철을 타고 오느라 김탄의 아침식사 시간과 장소를 깜박했다.

회사에서 만났으면 다른 직원들 때문에 어젯밤 일을 꺼내지도 못할 김탄이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길에는 오직 김탄과 마영식 그리고 고순정뿐이었다.

즉, 언제든 말 할 수 있는 조건이다.

순정이에게 잔뜩 뻥을 쳐 논 마영식은 두려워졌다.

그녀를 잃을 생각을 하니 눈 앞마저 캄캄했다.

그는 그저 김탄이 손에 들린 우유와 햄버거를 마저 먹기를 바라는 마음 뿐.

바로 그것만이 그가 이곳에서 재빠르게 도망칠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왜 뜻대로 되지 않는 건지..

아무것도 모르는 마영식의 여자 친구 고순정은 반가운 마음에 김탄에게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어머! 탄아! 어제 너도 우리 오빠가 일대 삼으로 싸우는 거 봤다며? 오빠가 다 박살 냈다며? 우리 오빠 짱 싸움 잘하지! 호호호호”

퉤!

김탄이 입에 들어 있던 걸 땅에 뱉었다.

그순간 그 모습에 영식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고 그와 동시에 김탄의 얼굴은 천 년 맺힌 원수를 만난 듯 분노로 일그러졌다.

얼마나 화가 났는지 그가 들고 있는 햄버거와 우유가 사정없이 흔들리는 게 멀리서도 잘 보였다.

그 화가 난 만큼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기 때문이다.

- 제발. 탄아. 여기서는 안돼. -

마영식은 여자 친구 앞에서 망신을 당할 까 노심초사했지만 어쩔 도리는 없다.

다만 마음 속으로 기적이 일어나길 빌 뿐.

그런데 기적 대신 지옥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김탄이 손에 들고 있던 우유와 햄버거를 바닥에 툭 던졌다.

쓰레기 하나 함부로 버리지 않는 김탄이 저럴 정도면 이건 굉장히 화가 났다는 뜻이다.

그와 동시에 마영식은 지금 이 순간이 아주 위험한 순간임을 직감했다.

살고자 하는 본능적인 마음을 대변하는 듯 그가 급하게 몸을 돌린 후 아주 다급하게 순정에게 소리쳤다.

“순정아. 바래다줘서 고마워! 여기서부턴 혼자 갈 게! 오빠 급해. 빨리 가봐야 해!”

“자기야. 갑자기 왜 그래?”

순정은 갑자기 돌변한 영식의 태도에 당황했다.

아주 많이 당황했다.

조금 전까지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듯 낭만적인 그가 사기친 사람을 만난 듯 얼굴이 창백해지며 도망치기 시작하자 고순정은 의아함을 느꼈다.

그러나 김탄과 연관이 있다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정말 그렇다는 듯 절뚝거리며 뛰어가는 마영식은 가끔 뒤를 돌아보며 김탄의 동태를 살폈다.

마영식은 애가 탔다.

이놈의 다리는 왜 다쳐가지고 속도가 안 나오는지..

신경질까지 났다.

뒤를 힐끔 돌아보자 김탄이 마왕에나 버금갈 정도의 오라를 내뿜으며 노려보고 있었다.

동생이지만 무서웠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었다는 생각에 필사적으로 뛰었지만 과부하에 걸린 듯 혹은 부품 하나가 떨어져 나간 기계처럼 엉망이고 가관이었다.

고순정은 그런 자신의 남자 친구 마영식의 추레한 모습에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 실망하는 중.

- 용감하고 무쌍한 남친일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그저 이런 생각을 하며 말없이 절뚝거리며 뛰어가는 남친의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다.

순간 그녀 옆으로 김탄이 지나갔다.

흡사 가젤을 쫓는 치타의 속도와 같았다.

“영식이 형. 너 오늘 나한테 죽었어!!”

김탄이 소리친 것 때문에 순정이는 모든 것을 알아 버렸다.

그것은 마영식이 어젯밤 일을 사실대로 전부 말하지 않았고 김탄에게 피해를 줬다는 사실을 말이다.

고순정이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순둥이 김탄이 저렇게 화가 났을까?' 라는 생각에 잠시 넋을 놓고 있을 때 멀리서 퍽! 하는 소리가 났다.

설마 하며 고순정이 소리가 난 쪽을 쳐다보자 길바닥에 마영식이 대자로 뻗어 있었다.

한편 김탄은 지금 당황해서 어쩔 줄 몰랐다.

또 맛없는 술집에서 일어난 사건 같은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었다.

그가 그 원흉인 두 손을 바라보았지만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 뭐지 이건? 자꾸 왜 이러지? -

자꾸 이상한 일이 생기자 김탄은 덜컥 겁부터 났다.

겁 먹은 김탄은 뒷수습은 내팽개치고 그대로 신우 프로텍을 향해 도망을 쳤다.

이렇게 아침부터 한바탕 소동을 벌인 김탄에 대한 신상을 은비칼 측으로부터 확보한 은비사가 그 정보를 티비 화면에 띄었다.

그러자 갑자기 웃음 소리가 들렸다.

“푸하하하하하. 뭐야? 저건.”

운석 경비 현장 경비원이었던 박 팀장이었다.

그는 그렇게 한참을 웃은 후 손으로 눈가에 흘린 눈물을 훔치고는 말을 이었다.

“사실이야?”

은 비사는 대답 대신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심각한 은비사와는 달리 또다시 박 팀장이 웃기 시작했다.

“풉 하하하하하하하.”

대놓고 웃는 비웃음에 은비사는 기분이 나빴지만 말 없이 다음 모니터에 또다른 사진을 띄었다.

그 순간 웃음을 멈춘 케이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심각한 얼굴이 되물었다.

“나보고 지금 저걸 믿으라고 하는 거야?”

“음. 그리고 맞아. 둘 다 괴물이야.”

은비사가 확보한 정보를 본 박 팀장은 지금 믿을 수가 없었다.

'놀리는 건가?'라고 생각하기엔 은비사의 표정은 진중하고 심각했다.

그런 은비사의 표정을 봐도 지금 티브이 모니터에 띄운 정보는 사실이었고 또 은비사가 거짓말이나 놀리기 위해 하는 일은 아니라는 게 확실했다..

그로 인해 박 팀장의 얼굴이 은비사보다 더 굳어졌다.

그가 다시 TV로 고개를 돌렸다.

화면에 떠 있는 김탄은 그렇다 치더라고 그 옆에 띄어진 늑대의 사진은 할 말을 잃게 만들었다.

-저게 괴물이라니.

어리벙하게 생긴 이제 갓 20살 정도 돼 보이는 한 청년과 늑대 탈을 쓴 신원미상의 사람이 세상의 멸망을 불러올 괴물이라니.-

정말.. 박팀장은 믿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두 괴물은 나이도 어려 보이는 아이들이었다.

또한 힘도 없어 보이고 비리비리하게 생겼다.

케이는 맘만 먹으면 손가락 하나로라도 저 세상으로 보내버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별거 없네. 괴물이라고 해서 대단할 거라 생각했는데..”

혼자 중얼거린 박 팀장이 흘깃 은비사의 눈치를 살폈다.

그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은비사는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티브이 화면 속 김탄과 늑대를 노려보고 있었다.

진지하고 심각하며 무거운 표정이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자신과 달리 너무 신중한 은비사의 모습에 박 팀장은 그가 우습기까지 했다.

갑자기 노크 소리가 들리고 경호원 같이 다부지게 생긴 남자가 들어왔다.

그 남자가 은비사를 향해 가벼운 목례를 하고 서 있자 은비사가 입을 열었다.

“준비는?”

“다 끝났습니다. 언제 시작합니까?”

“사냥은 오늘 밤에 한다. 해가 지기 전에 이동할거니 모두 대기하도록.”

“네. 알겠습니다.”

경호원의 대답이 끝나자 은비사가 나가라는 손짓을 했다.

남자는 즉시 방을 나섰고 그 남자가 회의실을 완전히 빠져나가자마자 박 팀장이 놀란 표정으로 은비사를 쳐다봤다.

그 안에 어이없다는 표정까지 깃들어 있었다.

“이봐. 비사. 설마.. 늑대를.”

“그래. 늑대부터 사냥할 거야.”

“둘 다 잡지 않고?”

“그래.”

'미쳤군.' 박 팀장은 은비사의 결정에 어이없다는 듯 픽 웃었다.

조롱에 가까웠다.

그의 태도에 은비사는 기분이 나빴는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하지만 말없이 다시 티브이 속의 김탄을 노려보았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게 어때? 나 같으면 동시에 둘을 잡을 텐데 말이야. 그리고 밤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박 팀장의 물음에도 은비사는 그를 쳐다보기는커녕 대답조차 없었다.

마치 대꾸할 가치가 없다는 듯 아예 눈까지 감아 버렸다.

그걸 읽은 박 팀장은 부화가 치밀었다.

“지금 무시하는 거야? 잘난 건 알겠는데 기분이 나쁘네.”

박 팀장이 비아냥을 쏟아내자 은비사는 그제야 반응을 보였다.

감고 있던 눈을 뜨고 그대로 눈동자만 돌려 박 팀장을 쳐다보았다.

상당히 불쾌하고 짜증이 난 듯 보였다.

그 기세에 눌려 박 팀장이 시선을 피했다.

그런 그에게 은비사가 나직이 입을 열었다.

“바뀌는 건 없어. 늑대 사냥부터 할 거야. 케이”

케이. 박팀장의 실제 이름.

하지만 케이도 진짜 이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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