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_ 또 다른 괴물. 늑대 인간

은비칼이 오강심이 장난한다고 생각한 데에는 바로 영상 속의 늑대는 인형 탈을 쓴 알바생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알바생은 목에 팻말까지 걸고 있었다.

은비칼이 팻말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늑대 카페. 귀여운 20여 마리의 늑대와 즐거운 티 타임.>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걸 읽은 은비칼의 표정은 더욱더 굳어졌다.

급기야 화까지 나는 것처럼 보였다.

그의 모습에 나채국은 초조한 듯 불안해 했지만 오강심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다.

지금 은비칼은 오강심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지구의 멸망을 막아야 하는 이 중요한 시점에, 인터넷 인기 동영상을 보여주는 오강심의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오강심 씨 이게 뭡니까?”

“보시면 아시게 될 겁니다”

오강심의 확신에 찬 발언과 함께 동영상은 재생되었고 세 사람은 마법처럼, TV 모니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

.

.

길거리 화단에 늑대가 앉아 있었고 사람들이 그 앞을 지나다녔다.

갑자기 어디에선가 나타난 껄렁껄렁한 세 명의 양아치가 늑대를 보더니 희롱을 하기 시작했다.

“얼! 이야 늑대 새X네?”

“사진 한 방 박을까?”

그중 한 명이 사진을 찍기 위해 늑대의 머리에 팔을 기대고 다른 손으로 브이자를 그리며 포즈를 취했다.

순간 앉아 있던 늑대가 화가 났는지 머리를 누르고 있던 남자의 팔을 손으로 탁 쳤다.

그러자 그 남자도 화가 났다는 듯 갑자기 늑대의 배를 발로 차자 늑대가 길바닥으로 나뒹굴었다.

“이런, 씨베리안 허스키가! 죽고 잡냐?”

다른 양아치 무리들은 그 모습을 보고 배를 잡고 깔깔거렸다.

“야, 동영상 좀 찍게 더 밟아 봐!! 빼북에 올려야지. 크크크”

길바닥에 대자로 쓰러져 있던 늑대가 일어나더니 순간 점프를 하며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그와 동시에 한 손으로 자신을 발로 친 남자의 목을 조르고 다른 손으로 머리채를 쥐어 잡았다.

그 모습을 보고 화가 난 나머지 양아치 무리들이 그 싸움판으로 달려들었고 여기저기 욕설이 난무하고 고성이 오갔다.

“저 개X끼가 뒤질라고 환장했나.”

“저런. C- 미친개”

그렇게 살벌한 개싸움이 펼쳐지자 주변 사람들이 구름 떼처럼 모여들었다.

역시 싸움에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게 불문율인가 보다.

두 명의 양아치가 달려들어도 늑대는 그가 잡은 한 명의 양아치의 머리채는 절대 놓지 않았다.

그걸 봐선 집념이 대단한 늑대 같았다.

“이거 놔! 놓으라고 이 개X끼야!”

머리채를 잡힌 양아치가 절박에 가까운 목소리로 소리를 치자, 그를 살리겠다는 듯 친구 양아치가 주먹으로 늑대의 옆구리를 계속 치며 발악을 했다.

“죽어. 죽어. 이 C발. 개새X!”

갑자기 개싸움이 UFC 경기가 되었다.

개싸움에 몰려든 사람들의 대부분이 이종격투기 시합의 관중이 된 듯 늑대를 응원하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늑대 이겨라 란 소리가 흘러나왔다.

관중의 응원에 힘을 얻었는지 아니면 기가 살았는지 늑대가 필살기를 휘둘렀다.

그 필살기는 바로 이것.

머리채를 잡은 남자를 빗자루 휘두르듯 이리저리 휘두르며, 동시에 다른 양아치의 사타구니를 커다란 발로 뻑뻑 차며 쓰러뜨린 것.

쓰러진 한 명의 양아치들은 극강의 고통을 느낀 듯 사타구니를 두 손으로 움켜쥔 체 몸부림치고 있었다.

이 장면에서 은비칼과 나채국의 표정도 함께 일그러졌다.

늑대는 이제 마지막 남은 양아치를 쳐다보았다.

너도 죽이겠다는 듯.

그 와중에도 양아치의 잡은 머리채는 놓지 않았다.

아무래도 늑대는 한 번 문 건 절대 놓지 않는 성격인 것 같다.

마지막 남은 양아치가 겁에 질려 벌벌 떨고 있을 때 늑대가 머리채를 잡은 양아치를 그 양아치에게 집어던졌다.

마지막 양아치가 쓰러지자 늑대가 달려가 커다란 발로 마구 밟았다.

성에 찰 때까지 밟아 댄 늑대가 만족을 했는지 갑자기 카메라를 보며 손으로 브이자를 그리자, 격투기 경기의 관중들의 환호와 박수 같은 갈채가 쏟아졌다.

그리고 동영상은 끝이 났다.

짝짝짝짝짝.

동영상이 끝나도 박수소리가 계속 들리자 나채국과 오강심이 소리의 근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은비칼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물개 박수를 치고 있었다.

그는 여운이 가시지 않은 듯 꺼진 TV를 계속 보고 있었다.

마치 한 번 더 보고 싶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를 본 나채국과 오강심은 그가 기립박수를 치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은비칼은 참 행복해 보였다.

그가 3년 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한 방에 날려버린 표정으로 오강심에게 말했다.

“재밌습니다. 오 강심 씨.”

“이름하여 수원역 개싸움이었습니다.”

말을 마친 오강심은 으쓱해하며 칭찬을 기다렸다.

그런데 갑자기 옆에 서 있던 나채국이 그녀의 어깨를 툭 쳤다.

오강심이 쳐다보자 나채국이 엄지 손가락을 추켜세웠다.

“강심아. 너 정말 대단해. 인정.”

오강심은 역시 자신의 실력을 알아주는 나채국에게 너와 나는 같은 것을 봤구나 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나채국도 그렇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이 둘은 말하지 않아도 의사소통이 가능한 것 같다.

이제 나채국도 알아줬으니 은비칼에게 칭찬만 받을 일만 남은 오강심은 상기된 표정으로 비칼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보셨습니까? 실장님?”

은비칼은 너무 웃어 흘린 눈물을 닦으며 대답했다.

“네 잘 봤어요.”

그러는 와중에도 아직도 자신의 입가엔 침 흘린 자국이 있다는 걸 모르는 것 같았다.

이제는 완전히 말라서 더욱더 순백의 빛을 내고 있었다.

웃음기를 간신히 진정한 은비칼이 오강심에게 갑자기 칭찬이 아닌 화를 냈다.

“이봐요. 오 강심 씨! 재밌긴 한데 왜 이런 동영상을 보여 주는 거죠?

설마.. 일 안 하고 이런 동영상이나 보고 있었던 겁니까? 이런 중요한 시국에?”

그릇이 작은 사람은 절대 그릇이 큰 사람을 알아보지 못한다.

우물 안의 개구리는 우물 속의 세상이 전부인 줄 안다.

외계인이 지금 지구에 침공하면 지구인들을 원시 부족 볼 듯할 것이다.

오강심은 지금 은비칼을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나채국까지 보았다.

늑대가 또 다른 괴물이라는 선명한 증거를..

이렇게 쉬운 증거를 보지 못하고 단순히 웃긴 동영상을 동영상을 보여줬다고 핀잔이나 늘어놓는 은비칼을 보자 오강심은 화가 났다.

“인내심 테스트하시는 건 아니시죠?”

오강심의 질문에 무슨 소리냐 듯 은비칼이 되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죠? 저는 단지 일하는 시간에 왜 동영상을 보고 있었는지 알고 싶을 뿐입니다.”

은비칼의 답에 오강심은 그가 타깃을 보지 못했다는 확인만 재차 할 뿐이었다.

다시 설명해야 된다는 생각에 오강심은 허탈해졌다.

그녀가 본능적으로 벽에 걸린 시계를 쳐다보았다.

집에 가는 시간이 조금 늦어질 것 같았다.

오강심이 비칼에게

“그런 건 지금 중요한 게 아닙니다. 죽어! 죽어! 이 C팔 개X꺄!!”

라고 갑자기 욕을 하자 은비칼은 화들짝 놀랐다.

그가 무척 당황해 놀란 표정으로 그녀가 쳐다 보고만 있을 때, 그녀가 천천히 손가락으로 티브이를 가리켰다.

“라고 하는 저 부분을 다시 보십시오.”

자신에게 한 욕이 아니라는 걸 안 은비칼은 순간 안심을 했지만 이상하게 기분이 나빴다.

하지만 그녀에게 아무 말 못 하고 그녀가 가리킨 티브이 화면을 시키는 대로 보았다.

TV 화면에는 늑대가 세 명의 양아치에게 둘러싸인 모습이 정지 화면 상태로 보였다.

뭘 보라는 건지 알 수 없는 은비칼이었다.

그런 그에게 카랑카랑한 오강심의 목소리가 귀로 파고들었다.

“오른쪽에 있는 검은 모자를 쓴 남자의 오른손을 주목해 주시길 바랍니다! 잘~ 보셔야 합니다아~ 실장님만 확인하시면 모든 게 끝납니다!”

“손에 뭘 들고 있는 것 같은데요?”

“네. 맞습니다. 실장님. 지금 그 부분을 확대해 보겠습니다.”

오강심이 스마트 폰으로 화면을 확대하자 TV 화면도 같이 확대가 됐다.

그 확대된 화면에는 양아치의 손에 칼이 쥐어져 있었다.

“칼? 칼이잖아요?”

은비칼이 깜짝 놀라자 오강심이 소리쳤다.

“그다음 장면입니다!”

손에 칼을 든 남자가 늑대의 옆구리를 마구 찌르고 있는 장면이었다.

순간 은비칼이 경악을 했다.

“아니. 저런 … 때리는 건 줄 알았는데 칼로 찌르는 거였군요. 이럴 수가. 나쁜 사람들…”

“아직 놀라시긴 이릅니다. 실장 님! 다음 확대 화면을 보시죠.”

오강심이 다음 확대 화면을 보여 주자 그 장면에는 양아치의 손에 쥐고 있던 칼의 칼날이 부러져 있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사람의 몸을 칼로 찔렀는데 칼날이 부러지는 건 그건 사람이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다.

은비칼은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소리쳤다.

“이건?!!! 저.. 저..”

은비칼이 무언가 말하려고 할 때 오강심이 선수를 쳤다.

“저 남자가 늑대를 칼로 찌르고 난 후 칼날이 부러진 것입니다!!”

은비칼은 지금 고무되었다.

오강심이 특별한 능력을 지닌 또 다른 괴물을 찾은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정말 대단한 성과였다.

이렇게 쉽게 빨리 두 명의 괴물을 찾은 건 기적 같은 일이었다.

나채국과 오강심의 성과에 은비칼이 자신이 찾은 것 마냥 한껏 고취되기 시작했다.

사방에 축포가 터지고 별들이 반짝였다.

구름 위를 나는 듯 상쾌한 기분마저 들었다.

‘드디어 세상을 구할 수 있게 된 거야. 잡는다면..’

은비칼은 생각을 하는 척하며 벽에 걸린 시계를 슬쩍 보았다.

새벽 3시 10분.

조금 있으면 과장이지만 동이 터 오를 시각이었다.

마음에 갈등이 일기 시작한 은비칼은 심각한 고심을 하는 듯 두 눈을 감았다.

‘나채국 오강심 씨에게 다시 부탁한다면 광분할 거야. 하지만 이 세상의 종말을 막아야 해.

냉혹하단 소리를 들어도 괜찮아.

냉혈한이란 소리를 들어도 상관없어.

저들은 세상을 위해 기꺼이 희생을 할 거야. 믿어요. 나채국 씨. 오강심 씨.’

감았던 눈을 뜬 은 비칼의 표정이 서릿발이 내릴 정도로 차갑게 변해 있었다.

나채국과 오강심은 그의 표정을 본 순간 불길한 일이 벌어질 거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이런 일은 익히 겪어왔던 터, 그들에게 갑자기 방어모드가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은비칼과 마찬가지로 나채국과 오강심의 얼굴엔 절대온도에 버금갈 정도로 차가운 기운이 비쳤다.

눈에선 0.001초 만에 두꺼운 쇠 판도 뚫어버릴 레이저 같은 빛이 쏟아져 나올 것만 같았다.

마치 살기에 번뜩이는 무사의 눈빛을 상상하게 된다면, 나채국과 오강심의 눈빛과 비슷할 것이다.

은비칼은 그런 그들이 살짝 두려웠지만 확고한 생각을 버릴 수 없었다.

그러나 똑바로 쳐다볼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들의 눈빛을 피했지만 입은 열었다.

“오강심 씨. 지금 즉시 바로 당장 늑대의 이동경로를 데이터화 해 자주 가는 동선을 파악해 보고 하세요.

그리고 나채국 씨는 상부에 올릴 간결하면서도 상세한 보고서를 당장 작성하십시오.”

관리자 은비칼이 불가능한 주문을 속사포처럼 쏟아내자, 나채국과 오강심의 얼굴빛이 창백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저작권자 © 불교공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