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_ 반장님의 배려

잘 보이려고 하면 왜 자꾸 실수를 하게 되는 걸까?

면접에서 혹은 조별 과제 발표를 할 때 제시한 문제에 대한 답변을 혹은 몇 수십 번씩 연습한 결과물이 최종적인 상태에서 매끄럽고 준비한 대로 진행되면 좋으련만 항상 뜻대로 되지 않는 건 실수하기 싫은 마음 때문에 그러는 건 아닐까?

아무튼

김탄도 한 번에 페이스 인식이 된 상태에서 한 번에 답변을 해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럼 앞에 있는 경찰의 짜증 가득한 얼굴을 보지 않아도 될 것이기 때문이다.

평상시 잘만 되던 스마트 폰 페이스 인식이 누가 방해라도 하는 것처럼 잘 인식되지 않았던 김탄은 애가 탔다.

그렇다고 물러서기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구닥다리 고물 폰이 아니었다.

그의 폰은 최신형이었으며 상당히 고가였기에 무려 36개월 할부로 구매한 것이었다.

그가 다시 스마트 폰을 들어 얼굴을 보려 하자 귀속으로 경찰의 짜증 만땅인 목소리가 들렸다.

“거참, 빨리빨리 합시다.”

김탄이 경찰의 눈치를 보니 화가 난 듯 보였다.

그는 이 모든 상황이 자기 잘못이 아니라 전화기 탓이라는 듯 중얼거렸다.

“어? 왜 내 페이스를 인식 못하지? 잘 됐었는데.. 잠시만요. 그냥 패턴으로 풀어야겠다. ”

탄이 암호 패턴을 그리려고 고개를 숙였다.

탁!

난데없이 김탄의 머리 위로 무언가 떨어졌다 사라졌다.

아프진 않았지만 상당히 기분이 나빴다.

그가 고개를 돌려 보니 방금 전 복사기 앞에서 복사를 하던 50대 경찰이 서 있었다.

그 경찰의 손에는 돌돌 말린 서류 뭉치가 들려 있었다.

갑자기 김탄은 중학교 때 수학 선생님이 돌돌 만 서류 뭉치로 머리를 때렸던 게 기억났다.

순간 그 선생님과 50대 경찰이 오버랩이 되듯 겹쳐 보였다.

그렇다.

김탄의 머리에 떨어졌다 사라진 건 그 경찰 손에 들린 돌돌 말린 서류 뭉치였다.

이건 명백히 폭력이었다.

그러나 김탄은 화가 나야 하는 게 맞았지만 화가 나지 않았다.

다만 왜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민중의 지팡이가 그 서류로 자신의 머리를 때렸는지 이해가 가질 않을 뿐이었다.

그가 멀뚱히 그 50대 경찰에게 이유를 말하라는 듯 말없이 쳐다보고만 있을 때 마침 50대 경찰이 말했다.

“에라~이. 주소도 못 외우고 다니는 게… 학교 다닐 때 공부도 더럽게 못 했겠구먼. 그러니 술 먹고 쌈박질이나 하지. 쯧쯧.”

탄은 인정한다는 듯 그대로 눈을 내리 깔았다.

사실 그가 공부를 못한 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부를 못해서 술 먹고 싸움이나 하고 다닌 다는 건 동의할 수 없었다.

그는 우연히 마영식 싸움에 휘말렸던 것 뿐이었다.

김탄.

그는 스스로 누구보다 성실하고 정직하다고 자부하며 살았었다.

증명하자면 길거리에 쓰레기 단 한 번도 버린 적 없었다.

그리고 집에서 나오는 쓰레기는 항상 깨끗하고 완벽하게 분리수거를 했다.

이 정도면 완전 모범시민 아닌가?

‘칫, 학교 다닐 때 공부 잘했던 모범생들은 중년이 되면 저녁 9시 뉴스에 많이 나오던데..

오성 후계자 왕태자도 그랬지. 학교 다닐 때 얌전히 공부만 한 모범생이라 그랬는데 지금은 9시 뉴스 단골손님이잖아. 그건 뭐라고 할 건가? 저 꼰대 경찰. 변절하는 것보단 차라리 개과천선 하는 게 낫지 않아? 그건 진심일 테니까. ’

탄은 자신의 생각이 상당히 논리적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그 생각이 50대 경찰의 생각도 바꿀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가 내리깔고 있던 눈을 치켜뜨며 그 경찰에게 말하려 할 때 그 50대 경찰이 탄 보다 먼저 선수를 쳤다.

“어라? 저 도끼눈 좀 보게. 부모 속 엔간히 썩였겠어. 내 자식이 저러고 다닌다면 난 벌써 속 터져 죽었을 거야. 아니니 다행이지. 하여간에 자식 잘 만나는 것도 복이라니까.”

탄의 고개가 다시 툭 떨구어졌다.

부모 얘기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탄은 부모가 없었다.

태어나자마자 버려졌다.

요즘 세상에 버려지는 아이가 어디 있겠냐며 믿기 힘들어하겠지만 김탄이 태어난 때는 달랐다.

외환위기 여파로 버려지는 아이들이 많았던 시기였다.

1999년 12월 31일 보육원 앞에 갓 태어난 신생아로 발견된 김탄은 불가피하게 어쩔 수 없이 선택받은 자들 중 하나가 됐었다.

바로 버려진 선택을 받은 아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말이다.

탄은 누군지도 모르는 부모가 욕을 먹은 것 같아 미안해졌다.

한 편으로 이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랬는지 말없이 스마트 폰을 응시하는 그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떨어질 것만 같았다.

“탄아!”

어? 이건 익숙한 목소리.

탄은 갑자기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지구대 출입문을 열고 시커먼 비닐봉지를 든 반장이 보였다.

“반장님?”

“탄아. 너.. 이게.. 어떻게 된 거냐?”

순간 탄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대로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눈물이 또르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한편 반장은 담당 경찰에게 이 사건의 경위를 물어보았고 자초지종을 간단하게 들었다.

자초지종을 들은 반장은 그대로 무릎을 꿇고 경찰들에게 선처를 구했다.

탄과 경찰들은 당황해 반장을 일으켜 세웠고 반장은 손에 들린 음료수를 경찰들에게 건네며

탄의 평상시 착한 인성과 성실성을 가진 모범시민임을 강력하게 증언했다.

“이 아이는 한 번도 지각한 적도 없습니다. 일을 맡기면 아주 성실하게 불량률이 제로에 가까운 꼼꼼함으로 저희 회사의 모범이 되는 아이입니다.

술도 잘 못 마시고 담배도 안 해요. 제가 보증합니다. 무슨 오해가 있었을 겁니다. 제발 한 번만 봐주세요. 경관님.”

“일단 조서부터 마무리 짓고 얘기합시다. 지금 얘기해봤자 아무 소용없어요. 사건이 들어온 이상 조서는 써야 하거든요.”

경찰의 말에 반장은 수긍한다는 듯 물러섰고 경찰은 다시 조서를 쓰기 시작했다.

반장은 작업이 다 끝날 때까지 조바심을 내며 지켜봤다.

김탄에게는 상당히 불편한 시간이었다.

아무튼 조서 작업을 다 끝낸 경찰은 쌍방과실이지만 폭행사건이기에 형사 합의가 가장 깨끗하게 사건을 종결시킬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김탄에게 폭행당한 피해자가 전치 몇 주를 청구할지 모르지만 1주당 최대 100만 원 정도로 생각하라며 조언을 해줬다.

또 사건이 일어난 술집에서는 워낙 흔한 일이라 피해 보상금과 위자료는 그렇게 많이 청구하지 않겠다고 말했다며 걱정하지 말고 집에 가서 기다리라고 말해주었다.

그렇게 김탄이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경찰서에서 볼 일은 다 끝났기에 반장과 김탄은 지구대 문을 나섰다.

그냥 집에 가려던 탄을 반장이 잠깐 얘기 좀 하자며 지구대 앞 화단에 억지로 앉혔다.

반장은 검은 비닐봉지에서 아까 경찰서에서 두 경찰들에게 주고 남은 음료수 한 개를 탄에게 건넸다.

그리고 그는 속이 탔는지 말없이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그러고는 멀뚱히 병 음료를 쳐다보기만 하는 탄에게 말했다.

“얼른 마셔.”

“네.”

탄은 시키는 대로 바로 음료수 병을 따 마셨다.

반장은 담배 한 모금을 깊게 들이마신 후 내뱉었다.

그 담배 연기 사이로 가로등 불빛에 비친 반장의 얼굴에 근심이 그득해 보였다.

그의 눈치를 살피던 김탄은 반장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부끄러웠다.

“그런데 여긴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영식이한테 연락받았다. 전화를 해선 다짜고짜 네가 사고 쳤다고 그러더라. 나보고 가보라며 여기를 가르쳐 주었다.”

“영식이 형이요?”

“그래.”

“지금 어디 있는데요?”

“몰라.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아마 지 여자 친구 집이라는데. 둘이 좋아 죽고 못 살잖아. ”

이럴 수가.

김탄은 반장의 말을 듣고 화부터 났다.

이 사건을 일으킨 원조이자 주범 마영식은 지금 여자 친구 집에 있다.

그럼 영식은 튄 것이다.

술집 사건이 터지고 난 후, 경황이 없던 탄은 영식이 사라진 걸 경찰차에 탄 뒤에서야 알았다.

그때 탄은 당연히 마영식은 기절을 했기 때문에 병원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마영식이 비겁하게 탄만 버려두고 튄 거라는 걸 반장을 통해서 알게 된 김탄은 배신감에 마음이 상했다.

‘이 배신자. 영원한 우정을 맹세해 놓고선 가장 중요한 순간에 내빼다니......’

탄의 얼굴이 심각해지자 반장이 그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런데 영식이는 왜 찾아?”

“갑자기 사라져 버려서…”

갑자기 반장이 발끈하며 소리쳤다.

“뭐? 영식이랑 같이 있었어? 내가 그 녀석이랑 어울리지 말라고 했잖아. 자꾸 사고나 치는 놈을 왜 따라다녀.”

“아.. 아니에요. 그게.. 아이고 참. 영식이 형은 잘못 안 했어요. 오.. 오해하지 마세요. 그래도 영식이 형 착하잖아요.”

“착하면 뭐해? 사고뭉치인 걸.. 쯧”

“영식이 형 혹시 혼내실 거예요?”

“아니. 왜 혼내. 잘못한 것도 없다며.”

반장이 말을 저렇게 해도 분명 사소한 꼬투리라도 잡아서 영식에게 싫은 소릴 할 게 뻔했다.

안 그래도 반장이 탄만 편애한다며 상처를 받았는데 또 받을까 봐 김탄은 걱정도 됐다.

아무리 사고를 쳐도 김탄에게는 영식이 가장 소중한 사람이었다.

그로 인해 김탄의 마음이 불안해졌다.

그런 그를 걱정 반 근심 반으로 음료수를 쳐다보고만 있는 탄에게 반장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런데… 어디 다친 데는 없고?”

“네. 멀쩡해요.”

반장은 담배를 화단 위에 있는 흙에 비벼 끄고 옆으로 툭 던졌다.

하필 떨어진 담배꽁초 벽 위로 금연이란 팻말이 걸려 있었다.

팻말을 본 반장은 순간 흠칫 놀랐지만 바로 무시했다.

“다친 데 없으니 됐다. 합의금은 내가 어떻게 해서든 마련할 테니 너무 걱정 마라.”

탄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괘… 괜찮아요. 반장님!”

반장은 탄 보다 더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군소리 말고 받으라면 받아! 보육원에서 나와서 벌어봤자 얼마나 모았겠어!!”

“죄송해요.”

김탄이 만 18세 나이가 되던 해

그 해 생일이 지나고 탄은 정부에서 지원해 준 자립 정착금 500만 원을 들고 보육원을 나왔다.

그리고 자신이 지금 일하고 있는 신우 프로텍에 입사했다.

올해 한국 나이로 20살 탄에게 거금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런 김탄에게는 아무리 적게 나왔어도 피해 보상금이 만만치가 않았다.

이런 김탄의 처지를 미리 헤아려 준 반장님이 탄은 고마웠다.

반장은 참 속이 깊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반장의 배려와는 달리 그에 반해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 것 같아 김탄은 또다시 부끄러워졌다.

탄은 의기소침해져 고개를 숙였고 그런 탄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반장이 다짜고짜 소리를 질렀다.

“에이, 이 녀석. 사내 새끼가 그깟 일로 풀이 죽어서야 쓰나? 앞으로 살면서 더한 일도 많아. 이깟 일은 아무것도 아냐.

나 때는 말이야. 이런 걸로 주눅 들지 않았어. 다시 여기 안 오면 되는 거지. 툭툭 털고 일어서! 힘내!!”

아이고. 이런.

이걸 격려로 받아들여야 하나 아님 미래에 닥칠 불행에 비하면 새 발의 피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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