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_ 은밀한 움직임

한민족 오천 년 유구한 역사.

대한민국의 중심.

서울은 은하수 속의 꺼지지 않는 별을 담은 듯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 야경을 바라보는 임현의 표정은 깊은 생각을 하는 듯 보였다.

미간에 있던 주름은 더욱 깊어졌고 꽉 다문 입은 그의 턱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포기를 않는 근성을 담은 입술.

때로는 인자해 보이는 눈매.

그런 그의 나의 50을 넘어 생긴 얼굴의 굴곡은 뚝심과 신념으로 모진 삶의 굴곡을 거친 얼굴이었다.

임현이 깊은 생각을 다 끝냈다는 듯 비서실장을 돌아보았다.

“운석이 떨어진 날이었지요. 그날, 왕 회장이 이상한 예언을 들고 와서 운석을 오성이 가져가야 한다며 강짜를 놓은 걸 기억합니까?”

“네. 잊을 수가 없습니다.”

“운석 안에 세상을 멸망시킬 무기가 들어 있다고 그랬지요? 이렇게 증거를 가져오니 어안이 벙벙합니다.”

대통령의 말에 비서실장은 왕종철이 가져온 서류를 다시 보았다.

운석의 중성자 단층 사진이었다.

운석 속에는 신기하게도 인위적인 정사각형의 큐브가 들어있었다.

그걸 바라보는 비서실장의 눈빛에 두려움이 서렸다.

“이것이 왕종철이 말한 그 무기입니까?”

대통령이 고개를 끄덕이자 비서실장의 눈은 놀라움으로 가득 찼다.

“정말 그 예언이 사실이었나 봅니다. 믿기지가 않습니다.”

강석민의 목소리는 상당히 떨리고 있었다.

예언이 사실로 들어난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깜짝 놀란 얼굴로 대통령만 바라보는 강석민에게 임현이 더 놀랍다는 듯 말을 이었다.

“그렇습니다. 운석 안에 저런 게 들어 있으리라 그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대통령님! 왕회장에게 운석 연구에 다른 연구팀도 합류시키는 걸 제의하는 건 어떨까요? ”

“운석 연구에 관한 전권과 기밀을 원하는 것 같습니다. 왕 회장은….”

대통령의 흐려지는 말끝 속에 불안의 기운이 느껴졌다.

그 불안한 기운을 느낀 비서실장이 말했다.

“하지만, 그건 너무 위험합니다. 재계와 결탁해서 비밀 연구를 하는 게 나중에 알려지게 되면/”

순간 강석민이 입을 닫았다.

임현이 그만 말하라는 듯 한 손을 쫙 펴 뻗었기 때문이었다.

대통령 임현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는 생각에 강석민은 쩔쩔매기 시작했다.

임현이 그런 그를 지그시 보다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어쩔 수 없어요. 이 일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왕 회장입니다. 염려하시는 게 어떤 건지 잘 압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아는 것이 없어요. 잠시 주도권을 빼앗긴다고 생각하십시오. 지금은 동행을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정권은 적이 너무 많습니다.”

비서실장의 말에 대통령은 팔짱을 끼었다.

강석민의 눈에는 그가 뜻을 바꿀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

“압니다. 비서실장. 하나, 마냥 속수무책으로 손을 놓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정권이 위태로워지는 한이 있더라도 맡길 수밖에 없지요. 안 그렇습니까?”

예상대로 대통령이 고집을 부리기 시작했다.

비서실장은 당황했다.

그가 당황한 이유는 신념으로 살아온 임현이라는 사람 때문이었다.

그 힘든 세월 약자 편에 서며 단 한 번도 신념을 버린 적이 없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람으로 사는 세상으로 바꾸자는 신념.

임현은 절대로 신념을 버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비서실장 강석민도 그런 점 때문에 임현을 좋아했다.

그리고 그 뜻을 지금도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는 그를 이루고 있는 모든 것을 버리려고 하고 있었다.

강석민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잠시 그가 변절을 한 게 아닐까 생각도 해봤다.

돌아온 답은 아니다 였다.

비서실장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의중을 알고 싶습니다.”

임 현이 눈을 치켜뜨고 비서실장을 쳐다보았다.

어쩌면 발칙한 물음이었다.

그 의미가 무엇인지 이내 눈치챈 임현은 얕은 미소를 지은 후 입을 열었다.

“강 비서실장. 정치색을 완전히 버릴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또 그걸 무조건 고집한다는 것은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진영 논리에 갇혀 버리면 그것 또한 적폐가 되는 것이죠. 저는 대통령입니다. 저는 정치인을 떠나 한 나라의 대통령입니다.

대통령은 정치만 하는 자가 아닙니다. 국정을 운영하는 위임을 국민에게 받은 자 이죠. 더 잘 살고 더 건강하고 더 행복하길 바라는 국민의 뜻으로 세워진 자리입니다.

만약 국민이 위험에 처해 있다면 그걸 피할 수만 있다면 내가 욕을 먹고 또 내가 죽는다 해도 신념을 버릴 줄도 알아야 합니다.

물론 시끄럽겠지요. 제 마음을 알아주지 않아도 좋습니다.

바뀌지 않는 사실은 그로 인해 국민들이 아무 탈 없이 일상을 영위한다는 것입니다. 그것만으로도 좋지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대통령 님. 왕회장은 모든 정보를 독점하려 하고 있습니다.

자칫하다간 만약 대통령님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면 우리 진영은 물론이고 국민들도 위험에 처해질 수 있다는 또 다른 가능성도 있음을 상기해 주십시오.

독점은 자만을 부릅니다.”

“압니다. 그래서 이렇게 고통스럽습니다.”

강석민은 그의 고충을 안다는 듯 말이 없었다.

딜레마였기 때문이었다.

신념 때문에 많은 사람을 죽이느냐..

아니면 좌파 대통령이 재벌과 결탁하느냐..

긴 침묵이 흐르기 시작했다.

각자 이 사태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듯 보였다.

왕종철과 임현의 독점권을 주는 야합은 위험한 외줄 타기가 맞았다.

그리고 왕종철은 운석에 대한 모든 정보를 깨끗하게 공유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다른 출구를 찾는 게 유리한 처사임은 분명했다.

임현은 그 후 한참 고민을 했다.

어둠의 방법.

권력의 힘을 비밀리에 이용하는 것.

그것을 사용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해.

오랜 시간 끝에 결국 그가 결심을 했다.

별로 좋지 않은 짓이지만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은 있다.

대통령이 강석민에게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비서실장.”

“네. 대통령님.”

“국정원 움직이세요. 은밀하게.”

“네. 알겠습니다.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그제야 강석민의 표정이 밝아졌다.

정권 초기에 등장한 사건 때문에 힘을 잃을 수는 없었다.

강석민은 임현의 정권을 지켜야 하는 사람 중에 하나였다.

강석민이 오랜 세월 친구이자 동료로 임현과 무수한 날들을 함께 해 온 이유는

바로 그도 임현과 같은 꿈을 꾸는 자였기 때문이었다.

그랬기에 임현의 마음이 살짝 돌아선 것은 강석민의 얼굴을 조금은 편안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문제의 해결책이 보인 두 사람은 서로 말없이 바라보았다.

이들은 서로 말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었다.

서로 신뢰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렇게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길을 나아가는 데 있어서 큰 힘이 된다.

외로운 길에서..

고독한 길에서..

하지만 여기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사라진 한 남자가 있다.

바로 김탄이었다.

그는 경찰서에 끌려와 조서를 쓰기 위해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사고의 주범 마영식은 사라지고 없다.

마영식이 사라진 이유에 대해 김탄은 그가 기절을 했기 때문에 병원에 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독하고 외롭게 혼자 경찰 조사를 받기 시작했다.

30대 초반의 경찰이 조서를 쓰기 위해 책상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며 말했다.

“자, 지금 시작할게요.”

“네.”

대답을 마친 김탄은 주눅이 든 체 곁눈질로 지구대 안을 살펴봤다.

신림동 24 지구대 안은 생각보다 복잡하지 않았다.

늦은 밤이었지만 지구대에 범죄를 저지르고 끌려 온 사람은 김 탄 한 명 밖에 없었다.

그 외의 사람으로는 김탄의 조서를 작성하기 위해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경찰과 복사기 앞에서 열심히 복사를 하고 있는 50대 중반의 경찰밖에 없었다.

조서 기입 절차 준비를 마친 듯 30대 경찰이 입을 열었다.

“자, 빨리 끝냅시다. 자, 이름 불러 보시고요.”

“기.. 김 탄이요.”

“그다음 주민번호 불러보시고요.”

“123456-7890123이요”

여기까지.

김탄은 지금 생각했던 거와는 달리 경찰이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는 것처럼 위협적이고 폭력적인 일은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처음 그가 경찰서 문을 들어오기 전까지 수많은 영화 장면을 떠올리며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조폭처럼 생긴 경찰이 이단 옆차기를 날릴 거란 상상을 하며 지구대 안을 들어섰지만 그냥 일반 사무실 같았다.

경찰서 안은 조용하고 깨끗하고 정갈했다.

주폭에 끌려 온 사람도 없었으며 유치장에 갇혀 있는 사람도 없었다.

지금 보이는 두 명의 경찰도 무섭게 생기지 않았다.

경찰복을 입고 있지 않으면 그냥 동네 아저씨처럼 보일 정도의 순박한 이미지였다.

게다가 지금 김탄 앞에 앉아 있는 경찰은 예의를 갖췄고 젠틀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그런 것인지 김탄의 마음이 편해졌다.

그에 따라 잔뜩 긴장해 있던 탄의 얼굴도 풀렸다.

김탄은 역시 경찰이 민중의 지팡이란 모토를 내건 게 그냥 내건 게 아니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렇게 친절한 경찰을 짭새라고 폄하하다니..

자신이 지금까지 속고 살아왔단 생각마저 들었다.

조서를 쓰는 경찰이 다시 입을 열었다.

“자, 주소 불러보시고요.”

“서울시 구로 1 동… 아이고. 죄송해요. 잘못 말했어요. ”

무표정이던 경찰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어디였더라? 서울시 신림 동… 흘러내리 원룸인데… 367-58이었나? -68이었던가? 뭐였더라?..”

탄의 일시적 치매에 갑자기 30대 경찰의 원래부터 있던 다크서클이 광대까지 내려앉았다.

솔직히 김탄이 그 경찰을 처음 봤을 때 그의 눈 밑에 있는 다크서클을 보고 깜짝 놀랐었다.

분명 수면부족이 원인일 거라고 생각한 김탄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어째서? 잠을 못 자는 거지? 경찰인데?

김탄의 생각이 틀렸다.

경찰은 잠을 제대로 못 잔 게 맞았다.

밀려있는 숙제 때문에 밤을 새우듯.

밀려 있던 시험공부 때문에 벼락치기를 하듯.

그 30대 경찰은 며칠 그동안 밀려 있던 서류 작업 때문에 계속 야근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대장정의 서류 작업을 마치기 직전 오늘,

하필 그 시점에 김탄의 사건이 들어왔던 것이다.

경찰의 입장으로서는 짜증을 수반한 귀찮은 일이 발생한 것이었다.

게다가 요 며칠 쌓인 서류 작업 때문에 만성 피로까지 있었으니 김탄의 치매에 속전속결로 사건을 처리하려던 경찰의 생각에 장애가 왔다.

그러니 다크서클이 광대까지 밀려 내려왔던 것일지도.

아무튼 만성피로에 이성을 제압당한 경찰은 그도 민중에게 객관적이며 친절한 대응을 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자기도 모르게 입에서 짜증이 흘러나왔다.

“주! 소! 빨리빨리 말하시라고요!”

김탄의 몸은 경직됐고 그의 특기인 눈치보기가 시작됐다.

“아! 저기… 이사한 지 얼마 안 돼서… 잠깐 검색 좀 하면 안 될까요?”

경찰이 그렇게 하라고 고개를 끄덕이자 김탄은 주머니에서 전화기를 꺼내 얼굴로 가져갔다.

페이스 인식 실패.

다른 각도로 전화기를 쳐다봤다.

페이스 인식 실패.

다시 다른 각도로 전화기를 쳐다봤다.

페이스 인식 실패.

평상시 잘만 되던 페이스 아이디가 실행되지 않자 김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어? 왜 이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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